방명록

"인생에는 확실한 것 2가지가 있다. 어느날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출생에 대한 얘기는 간단하고 흥미로울게 없는 반면 죽음에 대한 것과 죽음의 미학에 대한 것은 흥미로울 수 있다. 나는 사랑과 죽음을 함께 담은 영화를 하고 싶다." - [마스터 오브 시네마, 마리오 바바], 로이 바바의 증언에서 재구성

안녕하세요, Arborday입니다. 무엇이든 제게 남기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여기에 남겨주세요.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환영합니다. 실은,,, 저는 혼자 떠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2008. 7. Arborday.

by ArborDay | 2008/12/31 12:16 | 트랙백 | 덧글(37)

악몽으로부터의 극복

적잖은 영화들이 아이를 잃은 부모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남편과 바다에 나갔다가 처참한 고통을 겪거나(죽음의 항해), 관계의 위험에 놓인 이들 - 가장 흔한 이유는 자식을 잃은 것이다 - 이 여행에서 죽음의 기로를 마주하거나(베이컨시, 디센트), 아이를 잃고 난 후 이사한 새로운 곳에서 악몽과 조우하게 된다(체인즐링). 이러한 설정의 변주는 무수히 많다. 물론 아이를 잃었다는 것은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만 확장하면 다른 종류의 고통들 역시 손쉽게 이와 같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뻔한 설정의 작품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러한 영화들은 결국 어떤 트라우마에 대한 주인공의 극복기를 그려내는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고난은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후폭풍과 다르지 않다. 영화 속의 두 가지 사건들은 인과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는 사건은 앞의 설정이 없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고통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죽고 싶은 심정이, 생사의 기로를 마주한 공포감보다 못할 것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영화들의 결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극복하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사는지 죽는지가 아니라, 극복하는지 그러지 못하는지가 이런 부류의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만들거나 배드엔딩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물론 살아남는다면 대개의 경우에는 시간과 망각이 인간을 무디게 만들어줄테지만.

우리의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 무언가에 대한 극복의 연속이다. 삶은 결코 인간이 마음 먹은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죽을만큼 괴로웠던 - 고통의 크기란 상대적인 것이다 - 순간들은 아마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들 -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 - 을 극복하며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자신을 조금 더 칭찬해줘도 괜찮을 듯 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충분히 대견스러운 일이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2008. 9. Arborday.


. [베이컨시]를 뒤늦게 보고. 원래는 영화평을 작성하려고 했었는데 쓰다보니 다른 길로 새버렸다. 그래서 덧붙인다. 간만에 본 참으로 깔끔하고 좋은 영화다.

by ArborDay | 2008/09/05 13:25 | 영화잡담 | 트랙백 | 덧글(4)

9월 첫날

[스마트 피플] 언론시사에 갔을 때 필름2.0의 하XX 기자를 만났다. 담배를 태우며 하기자가 말했다. "형이 월요일날 언론시사를 오는걸 보니 요즘은 정말로 한가한가봐?"
아닌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한가했던건 아니지만 적어도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은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올 여름 정도로 불태울 수 있는 시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영화 세미나에 참여해보기도 하고, 일주일 내내 극장에 가보기도 했고, 보지 못하고 쌓아둔 dvd들도 상당수 해결했다.

올 여름 본 적지 않은 영화들 중 내게 가장 즐거웠던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빌리와일더의 [달콤한 이르마]였다고 대답하는게 옳을 것 같다. [달콤한 이르마]는 정의감 넘치는 경찰관이 어쩌다가 포주가 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영국인 신사로 변신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죽여서 감옥에 가고, 또 탈옥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 뭔가 좀 장황하고 얼토당토 않아 보이는 내용을 가진 영화 - 짧게 말하면 사랑영화다 - 이지만, 아니 저게 말이 되냐고 등의 생각 따위는 할 틈이 없는 영화다. 사실 영화라는게 현실을 반영한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거짓말 아닌가. 재미있으면 장땡인게지. 극장문을 나서면서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정말 원론적인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끔 만드는 그런 영화였으니, 이것도 그리 과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쁘띠브루조아에 가까운 내가 보기에 마냥 행복한 영화만은 아니다. 하긴 빌리와일더 영화가 대체로 그렇지만)

결국 나는 세상에서 도망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영화를 본다.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 순간 당연한 것들을 잊고 살거나, 자기합리화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영화를 보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해도, 영화보기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다른 것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내 인생이 그리 즐겁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여름을 영화와 함께 보내기 위해 제껴놓았던 일들 덕분에, 상당한 후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이제는 내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개강도 했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9월이 되었으니, 지키지 못할 다짐이라고 하더라도, 방학맞이 일과표를 작성하는 소년의 심정으로 돌아가본다.

2008. 9. Arborday.

by ArborDay | 2008/09/01 10:29 | 일상/기타 | 트랙백 | 덧글(6)

호주에서 안경 잃어버린 사나이

작년 이 맘 때의 일이다. 학회 때문에 호주를 방문할 일이 있었던 나는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기 전, 몇 군데 관광을 하기로 했다. 시간 여유도 얼마 없었고 워낙 땅덩어리가 넓기도 해서 여행계획을 세우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안내자가 동행하는 버스 관광을 하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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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borDay | 2008/08/29 13:44 | 일상/기타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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