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40페이지 가량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하기가 어려웠던 것인지, 중요한 배역의 여주인공이 없다는 사실이 흥행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생각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원작과는 사소한 부분에서 조금씩 다르다. 등장인물은 늘어났고, 마호가니와 주인공의 대결을 위해 들이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나 영화는 대체로 원작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도시의 실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목격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원작의 핵심에 맞닿아 있기 때문. 다만 영화는 원작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을 다소 걷어내고, 그보다는 좀 더 개인적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원작이 거부할 수 없는 악의 힘에 굴복해버린 주인공의 비극을 다룬다면, 영화는 악을 접하면서 조금씩 그 악에 잠식되어 가는 주인공을 분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 마디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장르적 도식 하에서 말초적인 즐거움을 우선한, 큰 욕심은 부리지 않은 공포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 - 말 그대로 최소한이다 - 기본은 될거라고 생각한다. 어딘가 클라이브 오웬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호가니의 카리스마도 매력적이고, 도살장으로 변해버린 지하철의 살풍경함은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모든걸 다 떠나서 나는 사방에 흥건한 피에 미끄러져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영화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기도 하다. 조금은 자신을 절제하는 듯 보이는 기타무라 류헤이의 연출도 매력적이고, 촬영감독 조나단 셀라 역시 근사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들의 영화화가 이 정도 퀄리티만 유지되었더라면, 자신이 직접 [헬레이저]를 찍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명백한 비극일 테지만.)

2008. 8. Arborday.


덧 1.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편견 - 편견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 이 있다면, 원작이 있는 경우 원작이 대체로 더 낫다라는 것일게다. 물론 이 말은 원작이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일 뿐이지, 영화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하지만 결말만큼은 원작을 살렸어도 좋았을텐데란 아쉬움을 버리기가 어렵다.

덧 2. UFC 전 챔피언 퀸톤 잭슨은 마호가니와의 맞짱을 위해 영화에 출연했다지만, 그보다는 잊을 수 없는 명대사로 기억될 듯 하다. 이런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나올거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무슨 말인지는 보면 안다.


by ArborDay | 2008/08/08 13:54 | 공포/호러 | 트랙백(1) | 덧글(22)
트랙백 주소 : http://Arborday.egloos.com/tb/385700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레드몽키 블로그 at 2008/08/29 08:43

제목 :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Midnight Meat Tr..
원작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그게 원작에서 나타나던 등장인물의 성향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피비린내나는 도시탄생의 근간을 파헤치는 기본 설정에서 영화와 원작은 맥을 같이하고 있지만.(사실 이것이 원작을 빛나게 하는 가장 매력적인 코드이기에 그런 메세지 자체를 파괴해버린다면대단히 실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전설이다"를 봐도 그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대신 영화는 "살인자 마......more

Commented by 산왕 at 2008/08/08 14:10
관심은 있었는데 시사회가 안되서(...) 개봉하면 보러갈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08 14:40
시간이 허락하면 보러 가시라는 원칙적 답변(?)을 드립니다. ^^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8 14:50
올 여름 진정한 의미의 호러물인가 보군요...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08 14:53
용희님은 좋아하실거에요.
Commented by 네모도리 at 2008/08/08 14:51
이거 개봉했나요?
보고는 시픈데 어디서하는지 도통 찾을수가....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08 14:54
언론시사를 통해 감상했답니다. 작품은 조만간 개봉하니 조금만 기다리심이. ^^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8/08 14:52
감독이 기타무라 류헤이라서 전혀 기대 안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작품이 잘 나왔나 보군요. 기대감이 살짝 상승.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08 14:57
류헤이는 예술영화가 찍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더라. 그의 작품을 몇 개 건너뛰어서 그런건지 조금 낯설더구만. 좋게 말하면 점점 스타일이 안정적이 되어가는 듯 하고, 나쁘게 말하면 남과 별로 다르지 않아져가는 듯 해.
Commented by qwer999 at 2008/08/08 15:35
원작은 그래도 많이 남아있다길래 결말을 어떻게 했을까 했는데 좀 다른가보군요.
도시의 실체 부분이 압도적으로 근사하길 기대하는데 괜찮을런지;

한밤의 식육열차로 개봉해줬음 더 좋아해 줬을텐데 아쉽네요. 너무 키치해보인다고 판단 내렸을까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08 15:41
사실 결말 부분을 잘 묘사했으면 정말 멋진 그림이 나왔을텐데, 마지막이 조금 아쉽기는 했어요. 너무 막가는 취향이라고 자제를 한건지 - 저로서는 이해가 안됩니다만 -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유는 있었을테죠.

그나저나 한국개봉명에서 미트를 빼면 안된다는 요구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라는 제목을 쟁취했다는 말도 있던데, [한밤의 식육열차]라는 제목이 훨씬 근사해보여요. 삭막하기도 하고. ㅠㅠ
Commented by 예영 at 2008/08/08 23:30
미트 = 고기 = 육.
결국 똑같은 건데 말이지요? ^_^;;;;;;;;;;

아뭏든 원작이 있는 공포물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한다는 것----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재미있어보이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10 11:58
예, 괜찮습니다. 전반부는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지만, 중반부 이후는 긴장감도 있고 재미있어요. 다만 저는 [헬레이저]와 같은 그림들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Commented at 2008/08/09 17: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10 12:00
헤헤, 돌아오시면 제가 맥주 사드릴께요. 그나저나 건강한 듯 하여 안심이네요. 발리우드 영화도 잔뜩 보시고, 다른 좋은 것도 잔뜩 보시고 그렇게 돌아오세요. ^^
Commented by 열쇠수색자 at 2008/08/10 02:42
아 기대하고 있는데 보고 오셨군요. 부럽습니다. 칼의 철학을 구해 봤습니다만 영화와 다큐의 중간 선상에서 특정 줄거리 없이 보려니 좀 불편하더군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10 12:01
아, [칼의 철학]이 마루타 이야기... 그거죠? 전에 듣긴 했는데 별 관심이 생기지는 않아 보지는 못했네요. 보고나면 얘기해요~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8/08/12 22:37
원작이야 모르지만 전부터 이 킬러 아자씨에게 묘한 애정을 품고 있습죠. 으하하하~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13 00:14
흐흐흐, 그렇다면 당연히 보셔야죠? 커밍쑨입니다요. ^^
Commented by 레드몽키 at 2008/08/29 08:47
초콜릿상자 이야기 말씀이시군요^^
그러고보니 마호가니가 은근히 검프를 닮긴 닮았어요~^^머리모양도 비슷하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29 11:54
저도 머리모양이나 앉은 자세에서 마호가니가 은근히 검프 닮았는데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기에 더더욱 웃겼더랍니다. 내뿜을 뻔 했어요. ^^;;
Commented by Wheniflow at 2008/11/15 19:06
행여나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으로, 지 꼴리는대로 만든 괴작이 아닐까하고
걱정하다가,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이 왠지 놓이더라구요.
근데 이 감독은 무슨 눈알훼손 패티시라도 있는걸까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11/16 08:13
분명히 있을걸요. ^^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