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살인마 - 연장통 살인마

토비 후퍼라는 감독에게 [텍사스 살인마]는 자랑스러운 작품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평생 넘어서지 못할 거대한 벽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참 잔혹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연장통 살인마]는 LA를 배경으로 한 [텍사스 살인마]인 것을. 물론 [연장통 살인마]는 여러모로 [악마의 씨]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 이사온 LA의 아파트, 강박증에 걸린 듯한 여인, 다소 낯선 느낌의 오컬티즘, 실제 있었던 어떤 사건까지. 하지만 토비 후퍼가 그려내는 이 아파트의 참극은 로만 폴란스키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이 어디 가겠는가. 기본적으로 [연장통 살인마]는 [텍사스 살인마]에 훨씬 가깝다. 요즘 영화 느낌이 배어나긴 한다만.

공포영화의 대명사격인 [텍사스 살인마]는 미국의 서부 마을에, 전기톱이라는 현대문물을 가지고 들어온, 가부장을 고집하는 한 폭력집단이 그냥 아무나 다 죽였더라라며 자신들의 역사를 재해석한 작품이자, 새로운 살해도구에의 집착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전기톱을 먼저 사용한건 웨스 크레이븐의 데뷔작이기는 했지만) 그런 영화를 만들었던 토비 후퍼가 [연장통 살인마]를 한 번쯤 리메이크해보겠다고 마음 먹은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성공을 찾아 LA를 찾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이야기. 게다가 살해도구도 다양하지 않은가.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대도시가 안전하다고 믿는 이는 없을게다. 바로 옆집에 사람이 살아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것이 대도시거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훔쳐보기 광이 아니라면. 그래서 대도시 안에 외딴 곳을 만들어내는 것은 의외로 손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토비 후퍼는 사소한 트릭을 사용하여 아파트 내에 뼈다귀가 널려있는, 사람들을 처단하였던, 텍사스의 한 낡은 집과 같은 음침하고 살벌한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비밀의 504호를 찾으려던 여주인공이 추락한 그 곳의 디테일들에서 반가움까지 느껴질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양한 살해도구만큼이나 다양한 죽음들을 그려낸다. 비록 끈끈함은 덜하지만 무난하게 장르의 공식 위에서. 그래서 한 마디로 [연장통 살인마]는 가볍고 편하며 적절한 재미를 보장하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가벼이 추천한다.

2008. 6. Arborday.


덧 1. [연장통 살인마]에는 그의 공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몇 있다. 확실히 토비후퍼는 외화면에서의 습격을 참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감독인 것 같다. 이 정도 작품만 꾸준히 찍어줬어도 그리 무시 받지는 않았을텐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지만.

덧 2. [메이]의 안젤라 베티스, 공포영화에 참 잘 어울린다.

덧 3. 504호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공포영화에 504호가 나오면 좀 서늘해진다. [소름] 때도 그랬고, [네번째 층]에서도 그랬고, 유독 504호가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은데 조금 불길한 숫자인가? 하긴, 내 방을 보면 귀신 아니라 귀신 할아버지라도 나올 것 같기는 하다. 청소 좀 해야지.

by ArborDay | 2008/06/10 11:46 | 공포/호러 | 트랙백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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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雅人知吾 at 2008/06/10 12:33
읽고 나니 연장통과 텍사스를 연작으로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0 14:25
시간 있으실 때 한 번 쯤 감상할만해요.
Commented by 작대기 at 2008/06/10 13:58
알바들을 제외한 전 국민이 촛불시위하는 현 시국에

미국영화 홍보하네여 ㅎㅎㅎㅎㅎㅎ

조선일보 광챈이신가?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0 14:26
허허허.
Commented by giantroot at 2008/06/11 10:58
작대기님... 이거 뭐 답이 없네요.
Commented by 헬몬트 at 2008/06/14 15:39
헐리웃 영화 보는 이들은 죄다 조삐릿 신문 광이라고 여기시네, 후하하하 별
Commented by 기대작 at 2008/06/10 15:31
알바들을 제외한 전 국민이 정부를 대상으로 촛불시위하는 현 시국에

엄한데와서 찌질대네요 ㅎㅎㅎㅎㅎㅎ

입만살은 초딩이신가?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1 11:59
하하하, 대화명까지 완벽한 패러디였군요.
Commented by ssita at 2008/06/10 19:25
부천에서 심야로 보는 바람에 눈꺼풀이 무거워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나쁘지 않았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연장통보다는 공구통이라고 하는 것이 더 무식해 보이지 않나요? ^^;;

원작을 한번 보고 싶은데 기회가 없네요. 안젤라 바티스를 보고 있으면 무슨 연상작용에선지 자꾸 도미니크 삐뇽이 생각난다는...

토브 후퍼의 영화는 라이프포스랑 이런저런 잡음이 많았다고는하지만 폴터가이스트가 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1 08:45
원래 공구통이라고 하는데 사진 하나 얻으려고 검색하다보니 연장통이라고 쓴게 더 많이 보이길래 써봤다. 그리고!! 원작보다는 리메이크가 좀 나은 편인걸로 기억하고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는 말기를.
확실히 토비 후퍼의 영화는 [라이프포스]와 [폴터가이스트]가 재미있는 편이지. ^^
Commented by monots at 2008/06/10 21:38
안젤라 베티스는 정말 호러를 위한 배우같아요. 메이도 그렇지만 너무 잘 어울렸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1 08:46
예, 참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브릭]을 보다보니 귀여운 팜므파탈(?)이 나오던데, 이 여자 어디서 봤더라하고 곰곰 생각하다보니 [메이]에서 봤더군요. [메이]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갑자기 생각이.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6/12 17:24
이 양반은 작품 완성도가 워낙에 들쑥날쑥해서 도통 믿음이 안 가요. 덕분에 이 작품도 계속 보류하고 있어요. 에휴~~~ 그나저나 저의 공포영화 우상인 존 카펜터는 최근들어 별다른 소식이 없어서 아쉽네요. ㅠ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4 20:37
그러게, 카펜터 옹 뭐하시나!
Commented by 헬몬트 at 2008/06/14 15:40
기대안하고 보았다가 기대안하길 잘했지...기분이 들던..정말이지 들쭉날쭉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4 20:38
재미있던데요. ^^;;
Commented by Damon at 2008/06/19 00:35
아. 이 영화 몇년전 부천에서 보고는 환호를 질렀습니다. 지난 10년간 나온 슬래셔 영화중에서도 일급이라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19 12:44
너무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조금은 속상한 작품이랍니다. 꽤 괜찮은 영화죠. 저도 부천에서 봤었어야 하는건데.
Commented by 전기톱살인 at 2008/07/23 17:35
이런 영화가 있었네요.. 툴박스머더라니 ㅎㅎ
꼭 봐야겠어요 ㄳ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7/23 22:41
나름 이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영화랍니다. 리메이크도 그렇고, 원작도 그렇고. ^^
Commented by 메루 at 2008/07/27 17:56
어제 부천에서 원작을 보고.. 검색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_-;;
윽 전 참 재미없더라구요.. 초반에는 막 신났는데...... 흑흑
이글을 보니 리메이크도 보고 싶어지네요 ;ㅁ;

(뒤늦게 안부인사. 잘 지내시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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