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대부분 읽은지 꽤 오래 지난 책들이라 어차피 세세한 리뷰는 어려울 것 같으니, 흔적만 간단하게 남긴다. 늘 그렇듯 편견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1. 솔직히 천명관의 글쓰기에 홀딱 빠졌다. 그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장르를 가리지 않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로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흡사 쾌락에의 탐닉과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작가적 자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 (뭔가 늘어놓고 싶은데 정리가 잘 안되니 여기까지만) 다만 가르치려는 생각이 없어보일 뿐이다. [고래]도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모두 추천할만하다. 유쾌한 아이러니와 발견의 순간들이 있는 작품들이다. 두 가지 질문. 첫째,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책 앞 표지에 친필싸인이 있는데, 모든 책에 하나하나 다 적은건가? (그러니까 싸인이 없는 책을 구매한 이가 계시는가?) 둘째,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 실린 [프랭크와 나]가 그가 등단했다는 그 작품이 맞는가?
2. 황석영을 모르고 요즘 소설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어 하나 골랐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실망도 무척 컸다. 내가 집어들은 책은 [바리데기]였다. [바리데기]는 조금 쥐어짜는 감이 없는건 아니나 기본적으로는 너무 착한 소설이다. 현실은 지옥이요, 해결책은 용서다. 너무 착한 소설을 원래 환영하지 않는 성향 탓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게 꽤 진부하다는거다.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보편적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이야기임은 알고 있으나 글쎄? 내 주위에 이걸 읽은 사람들은 다들 좋다고 난리들이니 내가 이상한거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황석영의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달리 읽어본게 없으니(장담할 수는 없다) 추천 좀 해달라.
3. 김영하도 첫 만남. 작품은 [퀴즈쇼]. 젊은 세대의 고충을 다루는 듯 하여 초반부에는 몰입하여 읽었지만, 갑자기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시큰둥해졌다. 전반적으로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영퀴방을 들락날락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 그나마 즐거웠던 전부였다. 쓰다보니 오늘 삐딱한 느낌이네.
4. 내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광팬인 것은 예전에도 설명한 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또하나의 몬스터] 역시 출간과 동시에 사서 읽었다. 하지만 팬북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처음 접해보았다), "아, 이런 것도 팔리는구나." 외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 어떤 언어의 리듬감도 없이 읽어내려가는건 시간낭비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그러한 느낌의 가장 큰 이유는 매끄럽지 않은 번역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5. 지금은 이언매큐언의 [속죄]를 읽고 있다. 언젠가는 책을 한 권 내보리라 달콤한 공상에 빠질 때도 있지만, 이런 인간을 만나면 그게 그냥 꿈임을 깨닫게 된다.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거의 300 페이지에 가깝게 풀어갈 수 있다니 그게 사람인가? (길게 늘리는 것이 부럽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 이야기의 밀도다.) 어쨌거나 이 작품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이다. 호흡이 빠른 일본소설을 주로 읽느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읽히는 리듬감이 장난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나면 영화도 봐야지. 이 작품을 읽은 것을 계기로 영미권이나 유럽의 소설을 조금 읽어보려 한다. [악의영혼]이라는 책이 평판이 좋은 듯하여 주문했는데 기대된다.
6. [속죄]에서 인상에 남는 구절 2개. 물론 괜찮은 구절은 수도 없이 많은데, 하필 비슷한 페이지에서 2개만 추린 이유는 여기쯤이 오늘 읽은 분량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24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북클립을 한 번 써보고 싶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문득 로비는 자신이 도살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모두 그곳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이언매큐언, [속죄], p339
기다릴께. 돌아와. 그토록 소중했던 이 말도 지금은 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수학공식처럼 분명하고 감정이 배제된 일임이 분명했다. 기다림.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기다림이란 너무나 힘겨운 말이었다. - 이언매큐언, [속죄], p368
7. 주문하는 김에 [월하의 여곡성]도 주문했다. 이런건 읽기 전이라도 추천이다. 여자귀신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지나치지 마시기를.
영화<어톤먼트>가 생각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동안 일어난 일을 거의 300페이지 분량으로 써내려 간, 밀도있는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닌데, 나름대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소설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에 대부분 실망한 경험이 많았는데, <어톤먼트>는 표정하나, 눈빛하나, 대사 한 마디에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더라구요.^^
전 속죄를 영화 본 다음에 읽었더니 자꾸 영화 속 장면이 오버랩되서 책에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전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영화를 먼저 보게 되면 그 비주얼에 너무 얽매이게 되는 거 같아요. 덕분에 주위 분들이 많이 칭찬해준 책인데도 그닥 인상이 남지 않더라고요. 그보다는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몇몇 장면들만 계속 머리 속에 반복되는 느낌이에요.
1. 레이더스는 영화가 나온 다음에 맞추어서 급조된 무비 타이 인입니다. 당연히 영화가 낫지요. -_-;;
2. 황석영씨는 개인적인 사생활만 눈감으신다면 -황구라라는 별명이 다른게 아닙니다.- 글은 나름대로 좋습니다. 최근에는 노벨상이나 정치쪽에 약간 물든 작품을 내지요. 노벨상을 노린게 "바리데기"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지요. 좀 무거운(연중의 압박으로 이야기의 구성은 하늘로 날라가는) 작품으로는 "무기의 그늘" 연작을 권합니다. 재미로 본다면 단편집이 최고구요, 데뷔작이기도 한 "탑"같은건 웬만한 헐리웃 미드 에피소드를 넘어섭니다.
ps: 참고로 무기의 그늘에서의 "영규"는 황석영씨 자신을 모델로 한겁니다. 거기다가 "아는 고위 장교가 내 누나랑 노는 바람에 빽을 써서 빠져 나왔다"는 이야기를 넣으면 황석영씨 자신이 됩니다. (다시말해 실제 전쟁에서 안 싸웠다는 이야기 -_-)
1.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먼저 읽고 '와~ 작가 글 잘 쓴다'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 고래를 읽고나서 정말 경악에 충격을 했지요. 번개에 맞은 느낌? 책을 덮고나서 온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니까요. 한국에 이렇게 구라 잘 치는 작가가 있어나 하면서말이죠. 고래는 정말로 모든 소설을 한 데로 섞은 느낌이였어요. 어쩔때에는 로맨스, 어쩔때에는 호러, 어쩔때에는 판타지로 가는데에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이도저도 아닌 느낌을 주지도 않고...
저 싸인본 아닌데요......................................................................... 헐......... 식목일님 운도좋으셔라...
2. 바리데기 평이 워낙 안 좋아서 사놓고 안 읽고 있네요. 요즘 네이버에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하시던데, 함 읽어보시길 ^^...
3. 전 퀴즈쇼 좋았어요. 감각적이고 현대적이였어요. 끝이 조금 흐지브지된게 좀 걸리지만...
4. 이번에 21세기 소년이 상,하로 나뉘어서 나왔던데 ^^ 읽어보셨어요?
5. 속죄. 꼭 읽어보고 싶은데 일단 분량에 질렸고, 너무 어려운 전쟁이야기만 나오지 않을까봐 걸리네요...
7. 월하의 여곡성은 무슨 내용이죠?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의 원작소설인가요, 영화 여곡성의 원작소설인가요? ㅋㅋ
1. '유쾌한 하녀 마리사' 제것도 싸인은 들어있지 않아요. 당첨이신건가요? ㅎㅎ 고래는 정말 기가 찬 작품이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2. 바리데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용서를 하긴 하지만 그게 쥐어짜듯 억지로 이해하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마냥 착한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하지 않으면 자기가 죽어버릴 것 같아서 한 최후의 선택이라는 그런 정도.
4. 예전에 하루키의 팬북을 읽어보았는데 하루키의 문체만 가져다가 발가락으로 쓴 것 같더라구요. 이런 소설도 출간을 해준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5. '속죄'는 체크체크.
7. 월하의 여곡성은 저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것 분명히 금방 절판되겠죠. 에휴.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5/15 09:39
<유쾌한 하녀 마리사> 사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책에 있는 사인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요. 암튼 집에 가서 확인 좀 해 봐야 겠네요. 그리고 데뷔작은 <프랭크와 나> 맞아요.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더군요. 다음해에 <고래>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고요. 그러고보니 이 작가는 문학동네가 참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듯^^
그런데 사족으로 dvd에 있는 사인은 좋은데, 책에 있는 사인은 별 느낌이 없더군요...ㅎㅎ 김영하, 박찬욱, 심지어 영화배우 사인까지^^(김영빈 감독의 <나에게 오라> 개봉 첫날 관람시 책을 주었는데, 사실은 <테러리스트> 비디오테이프와 선택하는 거였어요, 배우 및 감독 사인까지 함께 해서 주더군요) 등등 암튼 사인이 있는 책이 몇 권 있는데, dvd만큼 좋거나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도서잡담 재밌습니다. ^^
천명관의 고래는 읽었는데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보고 싶은 책 목록에 올려놔야겠습니다.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5/15 10:01
덧붙여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조금 착한 소설이기는 해요. 초기작과 굉장히 다른 느낌이 많더군요.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대하 장편소설 <장길산>(전10권)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전 10권이라 조금 버거울 수도 있겠네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제가 읽은 판은 1991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소설) 단편집 <객지>를 추천해 주고 싶어요. 단편이라 부담도 없고, 황석영의 문학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삼포 가는 길'은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고요.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5/15 10:03
<속죄>는 풍류도인도 열심히 추천을 하던데^^ 괜찮은가 보네요. 저는 정말 장르소설(그것도 일본 미스터리소설) 매니아라 <속죄> 읽기게 왠지 무척 힘이 들 것 같기도 한데, 언제 한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1. 고래는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첨에는 꽤 두껍고, 그로테스크(?)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한 번 잡으니 뗄 수가 없더군요.
2. 바리데기는 읽고 나니, 원작이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갑자기 나무잎으로 귀 찌르던게 생각나서 -_-;
3. 저도 퀴즈쇼 처음 부분에 광분하며 읽다가 끝에 좀 당황했습니다. 맥이 풀리는 기분.
4. ....제목만 보고 질렀는데, 진도가 안나가요. -_- 읽히지가 않아요. 그리고 살펴보니 집에 예전에 일본갔을 떄 산 일어판이 있더군요. 일어를 잘 읽지못하니 패스. -_-;
5/6. 읽어보지 못한 책이라 뭐라 할 말이 ^^;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5/15 12:19
개인적으로 황석영 소설의 정수는 '무기의 그늘' 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이 작품을 적극 밀어요. 그 외에 '손님' 도 상당히 좋고요. 그리고 유명한 작품은 아닌데 이세벽 작가의 '지구상에 단 한 명뿐인 죽음 대역 배우 모리' 도 꽤나 재밌어요.
이준님/ 1. 전 [레이더스]를 워낙 늦게 본고로 몰랐네요. 늘 그렇듯 이준님께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2. 사실 전 글과 글쓴이를 별개로 놓고 보는 편이라 사생활은 크게 개의치 않는 편입니다. [무기의 그늘]을 읽어봐야겠네요.
우노히카님/ 1. 전 [고래]를 먼저 봤는데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2. 제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리데기] 좋아하던데요. ^^
3. 결말 정말 마음에 안들더라구요. 초반부는 나쁘지 않았는데. 흠흠
4. 아직요, 궁금해 미치겠답니다.
5. 그렇지 않아요. 어려움과는 거리가 멀어요.
7. 한국공포영화 속 여귀에 대한 교양서적입니다. 참고문헌을 보니 한 두개 챕터의 내용은 미리 본 것 같기도 해요.
ssita/ 1. 당첨인가보네. 하하하.
2. 곱씹으면 나쁜 작품은 아니야. 그런데 문제는 나 이런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거지. 세상을 하나의 보편적 잣대로 감싸안으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보편적이란건 늘 그렇듯 뻔한 것 같아.
4. 흐흐흐, 발로 쓴 책. 비슷하다. 그 느낌과.
5. 체크해둘만한 가치가 있음.
7. 내가 이 책을 오프라인에서 한 번 보고 사려고 갔는데, 출시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책이 광화문점에 없더라고. 어이가 없었다.
비둘기/ 난 dvd 싸인판이 한 장도 없거던. (네가 내 맘을 알겠냐!!)
[삼포가는길]은 읽어본 것 같아. 기억이 안나서 그렇지. [장길산]은 조금 버거울 것 같고, 일단 [무기의 그늘]부터 읽어보려고.
[속죄]는 괜찮아. 그것도 그렇지만 풍류도인 놈이 추천하는건 대체로 괜찮아. 지 말만 해서 문제지.
shuai님/ 헤헤, 재미있으시다니 제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고래]를 읽고 아직까지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지 않을 수도 있는건가요. ^^
Go-z님/ 1. 예, 저도 단번에 읽어내려갔답니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2. 원작이 있는건가요? 그냥 설화라고 알고 있는데.
3. 너무 맥빠지더라구요. 캐릭터들의 행동도 좀 어이없고.
4. 전 일어 전혀 못 읽습니다. 부럽네요. ^^
풍류도인/ 네 말대로 [무기의 그늘]을 읽어봐야겠어. 검색해보니 재작년에 재출간한게 있더라고.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5/15 14:28
<무기의 그늘>은 고1 때 읽었는데(담임 선생님의 추천도서가 대부분 빨간책?^^), 베트남 전쟁 자체가 아니라 전쟁을 이용하여 무기를 사고 파는 거래로서 바라보는 시선이 그 당시에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인간이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먹고 살기 위해 그걸 또 이용해 먹는 사람들... 악어와 악어새라고 할까요? 암튼 저도 이 작품은 추천합니다.
사족: 정말 dvd 싸인판이 하나도 없습니까? 헉 저는 그래도 몇 개 되는데^^ 임수정 양 싸인은 너무 좋아요....^^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5/15 19:27
형님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은 한국 소설 중 박범신 작가의 '촐라체' 를 가장 재밌게 읽었어요. 초강력 추천작이니 참고하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