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2일
잡담 : 태엽감는새, 책지름 외
0. 얼마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나 맡았다. 거의 타의에 의해 맡는거라 영 시작이 안되어 고민 중이다. 이게 압박이 되는건지 장문의 글을 쓰려고 마음 먹고 포스팅을 시작해보지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단문으로 마무리 짓는다. 장문의 글은 고사하고 앞으로 2주간은 영화도 보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안봐야한다.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읽는다. 지하철은 타야하니까. 책이 똑 떨어져서 몇 권 주문했다. 그간 읽어보고 싶었던 천명관의 [고래]와 김영하의 [퀴즈쇼], 히가시노게이고의 신작 한 권과 여자친구 줄 책 한 권. 그리고 (이건 dcdc님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데) 마음산책에서 나온 우디알렌의 인터뷰집(이건 고민도 안했다)과, 팀버튼 인터뷰집(이건 살까말까 고민을 좀 했다. 그러니까 나는 우디알렌을 팀버튼보다 좋아하는 것일게다)도 포함시켰다. 뭐부터 읽을까.
2. 오후 3시에 방문하겠다는 택배기사의 전화를 받았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했다. 잘 알고들 있겠지만 택배박스는 아무리 뜯어도 즐겁다. 이거 심한 중독이다. 어쨌거나, 그걸 받으려고 경비실에 들렀는데(8시경) 아니 이게 웬걸. 없다.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 분실되었나 싶어 조회를 해보니 아직 배송완료가 안 떠있다. 오지 않은 것이다. 연락도 없이 이래도 되나? 한 마디 해야겠다. 새 책이 와있을거라 생각한 탓에 아껴읽지도 않았단 말이다. 참고로 나는 학교 가는 길에 읽을 책을 고르다가 지각을 해 본 적도 수없이 많을만큼, 책없는 지하철을 참아내지 못한다.
3. 어제 마친 마지막 읽을거리는 [태엽감는새]였다.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았다. 내가 하루끼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었다는걸. 머리 속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물론 대강은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재미있어 미치겠다. 게다가 눈에 들어오는 상황(혹은 문장)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를 읽던 중 '아니 이 여자는 어떻게 이런 표현을!'이라고 생각했던 구절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여자 하루끼라고도 불린다라는 광고문구가 떠올랐다.
4. [도쿄타워]에는 좋은 문장이 참 많지만 내가 꽂힌 구절은 다음이다. 주인공 토오루는 너무 올바른 인간이라 읽기에 별 재미가 없지만, 그가 얼마나 사랑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묘사한 부분은 매우 재미있다. 독창적이면서 간결하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문장이다.
너무 똑부러지게 말했기에, 토오루는 그만 미소 짓고 말았다.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귀여움이 자신에게는 전혀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했다.
귀엽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에 빠지다니, 다들 왜 그렇게 겸허한 것일까?
- 도쿄타워, p307. 에쿠니 가오리
5. 문학평론을 하던 사람들이 영화라는 툴에 익숙해진 후 본격적으로 영화평론을 하면 현재 활동하는 대다수의 영화평론가들은 밥그릇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영화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설마라고 생각하고는 이내 잊어버렸다. 그런데 새삼 그 말이 떠오르게 하는 문학평론을 만났다. [태엽감는새] 3편 말미에 수록된 평론. 감동했다. 실로 오랫만의 일이다. 내 머리 속에서 뒤섞여 있던 것이 글자로 말끔하게 표현되어 있다니.
6. 오늘은 간만에 필름2.0이나 사봐야겠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쨌거나 수다는 끝이다. 이제 나가봐야겠다.
2008. 3. Arborday.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읽는다. 지하철은 타야하니까. 책이 똑 떨어져서 몇 권 주문했다. 그간 읽어보고 싶었던 천명관의 [고래]와 김영하의 [퀴즈쇼], 히가시노게이고의 신작 한 권과 여자친구 줄 책 한 권. 그리고 (이건 dcdc님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데) 마음산책에서 나온 우디알렌의 인터뷰집(이건 고민도 안했다)과, 팀버튼 인터뷰집(이건 살까말까 고민을 좀 했다. 그러니까 나는 우디알렌을 팀버튼보다 좋아하는 것일게다)도 포함시켰다. 뭐부터 읽을까.
2. 오후 3시에 방문하겠다는 택배기사의 전화를 받았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했다. 잘 알고들 있겠지만 택배박스는 아무리 뜯어도 즐겁다. 이거 심한 중독이다. 어쨌거나, 그걸 받으려고 경비실에 들렀는데(8시경) 아니 이게 웬걸. 없다.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 분실되었나 싶어 조회를 해보니 아직 배송완료가 안 떠있다. 오지 않은 것이다. 연락도 없이 이래도 되나? 한 마디 해야겠다. 새 책이 와있을거라 생각한 탓에 아껴읽지도 않았단 말이다. 참고로 나는 학교 가는 길에 읽을 책을 고르다가 지각을 해 본 적도 수없이 많을만큼, 책없는 지하철을 참아내지 못한다.
3. 어제 마친 마지막 읽을거리는 [태엽감는새]였다.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았다. 내가 하루끼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었다는걸. 머리 속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물론 대강은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재미있어 미치겠다. 게다가 눈에 들어오는 상황(혹은 문장)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를 읽던 중 '아니 이 여자는 어떻게 이런 표현을!'이라고 생각했던 구절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여자 하루끼라고도 불린다라는 광고문구가 떠올랐다.
4. [도쿄타워]에는 좋은 문장이 참 많지만 내가 꽂힌 구절은 다음이다. 주인공 토오루는 너무 올바른 인간이라 읽기에 별 재미가 없지만, 그가 얼마나 사랑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묘사한 부분은 매우 재미있다. 독창적이면서 간결하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문장이다.
너무 똑부러지게 말했기에, 토오루는 그만 미소 짓고 말았다.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귀여움이 자신에게는 전혀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했다.
귀엽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에 빠지다니, 다들 왜 그렇게 겸허한 것일까?
- 도쿄타워, p307. 에쿠니 가오리
5. 문학평론을 하던 사람들이 영화라는 툴에 익숙해진 후 본격적으로 영화평론을 하면 현재 활동하는 대다수의 영화평론가들은 밥그릇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영화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설마라고 생각하고는 이내 잊어버렸다. 그런데 새삼 그 말이 떠오르게 하는 문학평론을 만났다. [태엽감는새] 3편 말미에 수록된 평론. 감동했다. 실로 오랫만의 일이다. 내 머리 속에서 뒤섞여 있던 것이 글자로 말끔하게 표현되어 있다니.
6. 오늘은 간만에 필름2.0이나 사봐야겠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쨌거나 수다는 끝이다. 이제 나가봐야겠다.
2008. 3. Arborday.
# by | 2008/03/12 13:02 | 일상/기타 | 트랙백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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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새 이야기를 보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요즘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기억이 흐릿해져가고 있어서 속상하거든요.
요번주는 필름2.0보다 씨네 21이 흥미롭던데~ 정성일씨가 쓴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글~ 형 꼭 읽어봐요~~ ^^ 추천한 데어 윌 비 블러드 형도 좋아하니 기쁠따름~~ 헤헤~
책없는 지하철은 저도 싫은데 제가 요즘 붐비는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있어서 조금 괴롭더군요. ㅠ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어보지 못했네요. 조만간 경험해봐야겠어요.
유니마르/ 네 뽐뿌질은 당해낼 수가 없어. 네 취향이 얼마나 나와 비슷한지를 알고 있는데 어찌 거부하겠니.
급히 해야할 일이 있어서 오는 길에는 작업과 관련한 서류를 읽었는데, 갈 때는 씨네21을 구매해야겠구나.
zizi님/ 물론 다르겠죠. 하지만 좀 더 스펙트럼이 넓어질 것 같기는 해요. 잘 써진 글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일 따름이지요.
비트손님/ 예, 그런 듯 해요. 계절이 바뀌었음이 이제 확연히 몸으로 느껴지네요.
shuai님/ 사실 네 권 조금 부담이 되어 아직 못 읽고 쟁여놓고만 있었는데, 한 번 붙잡으니 손을 뗄 수가 없네요. 이전에 읽었던 책들의 총집편 같은 느낌도 들고.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고 싶어요. 지금 읽으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훨씬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3. 무라카미 하루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태엽감는 새>는 아직 못 읽어 봤습니다. 20대 초반 대학교 다닐 때 푹 빠진 적이 있는데, 유독 이 작품만 읽지를 못했네요. 아마도 4권짜리라 부담이 되었나봐요. 암튼 읽고 싶기는 한데, 그 때와 요즘 제 취향이 많이 바뀌어서 어떨지 모르겠네요...-_-:;
추신: 그나저나 저는 무라카미 성 가진 사람들 소설은 별로더군요. 허허~~~ 상실의 시대도 명성에 비해 저에겐 그다지 영....... ㅡㅡ!
요즘은 '양을 쫓는 모험' 영문판을 보고 있습니다. 영어로 옮겨놓아도 그 특유의 문체는 재밌더라구요.
그렇긴 해도 영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긴 하더군요.
순수하게 글만 읽어도 봐도 킥킥 거리게 만드는 작가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은 나오는 족족 읽어버린다기보다는 잊을만하면 한 권씩 꺼내든다고 하는게 맞을꺼야. 그의 글과, 글 속의 캐릭터들은 분명히 나와 맞는 구석이 있어.
풍류도인/ 너는 나하고는 취향이 많이 다른것 같아서 패스할랜다.
unique님/ 확실히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저도 [태엽감는새]를 예전에 영문판으로 조금 보다가 시간만 오래 걸리는 것 같아서 한글판으로 바꿨답니다. ^^
태엽감는새는 읽지 못했네요. 항상 책방에 가면 1권만 없고 2,3,4권은 있어서... 하지만 태엽감는새의 모티브가 된 히루카의 단편을 본 적은 있었습니다. 제목이 특이하고 길었는데, 워낙 예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네요.
상실의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본 적은 없네요... 상실의시대가 워낙 대단해서 그런지... 하루키 소설은 항상 읽기 전에는 상실의시대를 기대하고 읽고, 읽을 때에는 걍 잼나게 읽고, 읽고난 후에는 상실의시대보다 못해서 실망하죠 ㅎㅎ;
데어 윌 비 블러드~ 꼭 봐야되는데 ㅋㅋ 보고싶습니당~~~
2. 택배에 관한 마음 이해합니다. 그리고 책 없는 지하철, 미치죠. 더욱이 아이팟까지 없다면 시간을 아주 제대로 허비하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0.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성사하시기를 빕니다. :)
유니마르/ 흐흐흐, 뭐 주성철 기자 글도 좋아하니까.
우노히카님/ 무라까미 하루키는 뭐랄까, 상실의 작가이자 추구의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태엽감는 새]를 읽으면서도 [상실의 시대]가 계속 아른거렸거든요. [해변의 카프카] 같은 경우가 좀 더 친절하게 성장소설로 그려낸 케이스인데, 사실은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그나저나 풍류도인 저 녀석, 은근히 발이 넓군요. ^^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까지처럼 잘(?) 해낼거에요. 좀 고생스럽기는 하겠지만. ^^
회색인간님/ 흐흐, 기왕 칠거면 과하게 치는걸 좋아하는 취향이랍니다. ^0^
수업시간에 천명관 작가가 직접 오셔서 이야기할 기회도 가졌기 때문에 더 의미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은근 자랑... 아니 대놓고 자랑질하고 있습니다..-ㅂ-;;)
무척 장대한 이야기가 유려하게 흘러가는게 작가가 호흡 조절을 참 잘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해보니 그 때 그 수업 시간에 접했던 소설들이 다들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
흠... 저도 무라카미의 소설은 그다지 땡기질 않아요..;;
제가 처음으로 본 무라카미의 소설은 해변의 카프카였는데, 그다지 와닿는게 없어서...;;
그 외 추천작: 엘렌 보나푸 뮈라: 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 황석영: 무기의 그늘-바리데기, 이언 매큐언: 암스테르담, 김연수: 꾿빠이 이상, 폴 오스터: 브룩클린 풍자극-폐허의 도시 등등등~~~ 신가 나는 대로 계속 추천해드릴게요. ^_^
풍류도인/ 너랑은 취향 안 맞아서 패스한대도!! 내 말을 뭘로 보는거냐!! 그러고보니 [바리데기]도 선물 받았네.
괜히 제가 너무 좋아 한줄 더 남깁니다.
하루키는, 마치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는 것만 같은, 탁월한 문장력을 발휘하죠.
그런데 간혹 '그래, 넌 하루키 좋아할 것 같다.'라는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