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05일
악마의 씨(Rosemary's baby)

어쩌면 오컬트 무비는 철저하게 흥미 위주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실 이가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오멘]이나 [엑소시스트]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두 작품의 작품성은 별개로 하자. 오해하는 이가 있으실까봐 미리 말하자면 나는 두 영화를 미치도록 좋아한다.) 두 영화는 악마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큼은 누구도 예외로 두지 않지만, 결정적 존재 악마 자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타자화하여 별로 실감이 나지 않게 만든다. 그러니까 우리의 책임을 초월하는 악의 존재 - 초월적 존재에 대한 무력함에 동조하게 만드는 것이 이들 영화의 장점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 를 설정해두고, 그것을 무찌르는 과정을 그저 불구경하듯이 보게 만든다는 뜻이다. 실제로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들의 책임일텐데도. 게다가 영화는 전통적인 선의 승리라는 전형적이고 보수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결론은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화 속에서 악마의 반란은 진압되고, 세상은 다시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돌아가는 듯 하다. 실제로 승리하는 것은 기독교이며, 회복되는 것은 전통적 가족이나 가치관이다.
하지만 오컬트 영화를 주류 영화계로 끌고 들어왔던 [악마의 씨]에도 그런 설명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영화는 이런 영화들의 선구자적인 영화지만, 그들 영화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비단 엔딩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의 차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거론한 영화들보다 [악마의 씨]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으며(이만큼 피를 보기 어려운 공포영화도 없다), 동시에 좀 더 사회적이다. 이 영화가 담은 것은 단지 시대의 불안함 뿐만이 아니라, 그것의 실체에까지 근접한다. [악마의 씨]에서의 악마는 현실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타자화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악마의 씨]가 말하는 악마, 악마를 숭배하는 이, 악마의 자식을 잉태하는 이, 그리고 악마라는 존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이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는 뜻이다.
관객은 사회적 겉치장 뒤에 숨겨져 있던 우리 이웃의 실체, 그리고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악마의 씨]는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공포를 자아내는 영화이다. 아파트에 기거하는 악으로부터 거리가 먼 유일한 인물은 로즈마리(미아 패로우 분)지만 그녀의 운명 역시 다르지 않다. 물론 자의가 아님은 확실해보이지만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와 같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운명은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무력하고, 슬프기도 하다. 타인의 위에 서야만 성공할 수 있는 가이(존 카사베츠 분) 역시 그러한 운명에서 예외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관객 역시 마찬가지일게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부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토록 슬프고 애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악마의 씨]는 60년대말의 영화지만 지금 봐도 전혀 낡아보이지 않는다. 요즘의 적지 않은 공포영화들에게 반성을 촉구한다면 또 모를까.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객을 심리적으로 몰아가는 로만 폴란스키의 연출력은 탁월하며, 미아 패로우의 창백한 외모와 다소 신경질적인 연기는 영화와 완벽히 부합된다. 걸작이라는 말은 이런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2008. 3. Arborday.
덧 1. [악마의 씨]가 리메이크된다기에 재감상. 리메이크작은 잘 찾아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볼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유사한 설정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블스 에드버킷]도 재미있게 봤었거든.
[악마의 씨]는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함께 미아 패로우가 나온 영화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다. 물론 그녀가 나오는 영화를 그리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덧 2. 아마 [악마의 씨]를 보신 분이라면 애너그램을 기억하고 계실게다. 애너그램(anagram)이란 철자를 바꾸면서 노는 것인데, 이를 통해 영화는 악마와 관련한 몇 가지 예언들과 친한 이웃이 악마의 자손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미아패로우는 그 단어들을 조합함에 있어 스크래블게임의 알파벳 조각들을 사용하는데, 사실 이 게임은 어릴적 내가 미치도록 가지고 싶었던 게임이었다. 나는 이 게임을 친구집에서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는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었거든.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거라며 게임을 사줬다는 친구의 아버지를 존경(?)한 적도 있다. 이 영화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게임을 다시 떠올린 작품이었다. 그 덕에 친구집에 있는 스크래블 게임을 최대한 떠올려 자작한 후 가지고 논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나는 그런 게임은 외국에서만 살 수 있는건줄 알았다.) 물론 지금이라면 그 게임 누가 준다고 해도 사양할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영어라면 딱 질색이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니 또 모르겠다. 가지고 있다가 내 자식에게 주려나?
# by | 2008/03/05 17:56 | 공포/호러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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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마의 씨는 작가 자신이 후속작을 썼는데 이건 흑역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었지요.
3. 악마의 씨의 설정은 휴거 대하장편 소설 "래프트 비하인드"의 외전에서 아주 충실히 배꼈습니다. 물론 그 시리즈의 적 그리스도가 실제로 성장하는 결말이지만요
4. 미아 패로우는 이 영화때문에 꽤 좋게 봤는데 "순이" 사건으로도 꽤 유명세를 탔지요 -_-;;;
근데, 이 제목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악마의 씨'라는 번역은 아무리 봐도 엄청난 스포일러 아닙니까? ㅎㅎ
이준님/
1. 아, [스텝포드 와이프]의 저자였군요. (앞에건 못 봐서 뭔지 몰라요) 전 오리지널 버전은 못보고 니콜 키드만 버전만 봤는데, 코믹스럽게 그려냈지만 상당히 공포스럽더라구요.
2. 쩝, 어쩌다가.
3. 들어본 것 같은데 소설 자체는 못 읽은 것 같습니다. 궁금해지네요.
4. 에구, 떼놓을래야 떼놓을 수 없는 사건. ^^;;
krzys님/ 그 장면 [할로윈]의 첫 장면 삘 딱 나지 않나요? 칼 잡은 각도도 그렇고. 하긴 카펜터의 그 장면이 아르젠토의 영향을 받은 장면이니.
delius님/ 저도 그랬어요. 2장짜리로 내주는 비디오업체는 정말 싫었거든요. ^^
그나저나, 얼른 보시기를!!
lain님/ 좋은 영화죠. 제게는 잊혀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랍니다.
newt/ 집안의 인테리어도 그렇고 굉장히 예쁜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해. 옷도 이쁘고.
그런데 저 아파트가 다코다 빌딩인가요? 전 몰랐네요. ^^
mazzy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하고 계시는군요. ^0^
디오니님/ 저도 제목에 좀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이기도 한데다가, 다른 영화랑 늘 헷갈리게 만들어서. 이를테면 [Demon seed] 같은 작품들. (이 작품의 출시제가 또 요상하죠)
아니 데블스 에드버킷이 이 물건의 리메이크에 해당한단 말인가요orz 언제 노컷으로 구해 다시 봐야겠네요 하도 컷 된 버전만 나돌아서...(별건 없을듯 합니다만)
오해가 좀 있으신 것 같아요. 저는 [데블스 에드버킷]이 이 작품의 리메이크라고 말한게 아니라, 설정이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생각하는겁니다.
almaren님/ 마지막 장면 정말 헉이죠. 좋은 영화에요~
결국 dVD를 할인도 없던 시절에 사버린 기억이......
IMDB보니까 전혀 아니더군요 ㅡ ㅡ......뭐야 그럼?
앤톤 베이가 아니라 다른 배우가 맡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