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격자]는 나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놈과 이해할 수 없는 놈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처음 몇 분을 통해 관객은 엄중호가 어떤 인물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보도방 주인으로 제 밥 그릇 빼앗은 놈 하나쯤은 능히 죽일 녀석이다. 그런데 이토록 명확하게 설정된 캐릭터는 (도저히 개과천선하여 새사람이 될만한 부류의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미진에게 인간적으로 집착하는 면모를 흘리며 관객이 이입하게 만든다. 그런 인간미는 타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죄의식을 씻어버리기 위한 조금은 불순한 - 그러나 바람직한 -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끝까지 가기 위한 거짓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엄중호라는 캐릭터는 처음보다는 다소 모호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우리의 이해 안에서 움직인다. 그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부류의 인간인 것이다. 반면 지영민은 이유를 댈 수 없는 캐릭터, 즉 완전히 다른 부류의 무엇이다. 영화의 처음 몇 분 동안 관객이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 같이 들어간 여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지영민이라는 캐릭터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밝혀진다. 물론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범행동기. 성적인 무능력이 범행의 동기라고? 그렇게 생각할 여지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순진한 생각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뭔가 살해동기를 적어넣으라는 간부의 지시와 다를 바 없는 것.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지영민은 자기 누나의 어린 자식마저도 가만 두지 않는 인간이다. 감독의 말마따나 원래 맛간 사람이며, 아무런 동기없이도 악을 행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물론 그에게도 어떤 이유가 있을 수는 있을게다. 하지만 관객이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감독이라 할지라도. 따라서, 이 영화는 이해할 수 있는 자와 이해할 수 없는 자의 대결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 영화의 추격 - 다분히 봉준호를 연상할 수 있는 물리적 추격씬도 추격이겠지만 - 은 명확했던 캐릭터가 모호한 캐릭터를 따라잡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결국 감독은 이 둘을 똑같은 놈들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명백히 오버일테지만) 그가 보는 대한민국은 강간의 왕국이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랄까. 뒤엉켜 몸으로 싸우는 격한 짐승들의 왕국. 영화가 배경으로 한 것이 음성적 성매매 시장이었기 때문에 선인들은 애당초 여기에 없었는지도 모르고, 미진처럼 피빨리며 일하다가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는 분명히 악인들에 의해 진행된다. 그런데 엄중호가 과연 악인일까? 물론 악인이기는 할게다. 직업도 직업이고, 실제적으로도 미진을 죽음으로 내몬 '쓰레기'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를 단순히 악인으로 규정하기에는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없는 자들의 자화상으로도 보일 수 있으리라. (그 비열한 인물을 일종의 자화상처럼 보이게 만들다니. 이건 능청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이 영화를 '악인과 악인'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 놈과 이해할 수 없는 놈'의 대결로 규정한 것은 그 탓이다. 엄중호는 사회시스템이 지켜주지 않는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나선 인물이다. 시스템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 영화 속 경찰들의 그 삽질들 - 그 중 일부는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이 시사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공무원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한 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걸 어떻게 다 알아서 합니까." 맞는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서울시장 얼굴에 똥이 뿌려지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가 개인의 권리를 돈 떼먹힌 놈만큼 챙길 수 있을리는 만무하다. 개인에게 아무리 절실한 돈이라고 한들 말이다.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그들에게는 책임과 절차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추격자]가 시스템에서 배제된채 제 것을 지키기 위해 고단하게 투쟁해야만 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영화의 뒷맛이 씁쓸한 이유는 딱히 누군가의 죽음 탓만은 아닐게다. 2008. 2. Arborday. 덧 1. [추격자]는 상당히 잔인한 영상이 뒤덮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초반부 목욕탕씬에서 미진을 살해하려할 때 - 실패한 살해에서 - 정으로 내려찍는 것을 과격하게 보여줬을 뿐, 직접적인 가학적 장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초반부에 심어둔 강렬함이 관객의 머리 속에서 이 영화를 상당히 잔인한 영화로 느끼게끔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기교는 공포영화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이지만 제대로 연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이 감독이 공포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대 탓일까, 영민의 친구라던 이의 집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교회를 찾는 장면에서 다리오 아르젠토의 [딥레드]가 떠올랐다. 덧 2. 슈퍼마켓씬은 근래에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미스트]에서 카모디가 죽었을 때의 환호성보다 더 큰 탄식들이 극장 안을 가득 메우더라. 어쩌면 그렇게 독한 장면을 찍어낼 수 있었을까. 맞다. 우리는 적지 않은 순간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의 목을 죄어올 이에게 무기를 쥐어준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금세 그런 예들이 떠오를게다. 때로 그것을 국민의 뜻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덧 3. 이 영화가 그려낸 연쇄살인마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딱히 연기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동네]의 살인자들을 떠올려보자. 그 영화의 살인자들 - 다들 연기가 좋다고 말하던데 내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버로 점철된 연기였다면 모를까. 왜 그렇게 시종일관 안면근육을 떨어대는지 - 은 영화 속의 대사처럼 정말 기교만 있지 진정성이 결여된 느낌이었다. 잘 모르는 인간들을 잘 아는 이유로 설명하려는 안이한 시도는, 어지간한 연출로는 식상함 밖에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려내면 된다. 그래도 된다는 확신 하에 그렇게 그릴 수 있는 패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이 영화의 지영민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였다. 덧 4. 나홍진의 단편들이 보고 싶다. dvd를 발매할 때 수록되거나, 혹은 따로라도 발매되었으면 좋겠다. 난 놈은 처음부터 난 놈이었는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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