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일 장편공포소설, [손톱]

한 여인이 있다. 딸아이의 죽음을 겪고, 남편과의 이별을 경험한 사연 있는 여인, 하지만 새로운 남자를 만나 새 삶을 시작한 여인. 어느 날 그녀는 꿈을 꾼다. 끔찍한 악몽을. 그 악몽에서 그녀는 타인에게 빙의되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생생한 고통. 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손톱 하나가 빠져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도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꿈은 계속되고, 매번 다른 사람 - 모두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들 - 이 되어 죽음을 경험하며, 손톱 역시 계속 사라진다. 물론 이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다. 꿈은 현실로 이어진다.

이런 부류의 소설을 읽게 되면 당연히 생각할 수 있듯,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그 악몽들은 왜 그녀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손톱]에서 빙의되는 것은 열 명이나 되는 사람이고, 꿈을 꾸는 것도 홍지인 한 명만이 아니기에 이야기는 자칫하면 지나치게 뻗어나기 쉽다. 따라서 이러한 설정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김종일의 [손톱]은 상당히 정교한 소설이다. 장편소설의 구성에 있어 작가가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와 동시에 작가 특유의 흡입력 역시 힘을 잃지 않는다. 가학적인 폭력의 묘사와 진절머리나는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들은 물론 정교한 이야기는 결코 독자의 흥미를 놓치지 않는다. 열 개의 손톱이 다 빠져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궁금해하면서 하나씩 밝혀져가는 단서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라만고의 실체가 드러나 몸을 두고 싸우는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지 않을 수 없다.

기존 작품에서처럼 [손톱]에서도 인간이나 관계에 대한 어떤 불쾌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손톱]은 그럼에도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물론 그 희망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죄를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대면하는 것.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우리는 많은 순간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속인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고 있다. 물론 가장 확실한 누군가는 자기 자신이겠지. 죄의식을 만들어내는 이유야 무수히 많겠지만, 그것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기기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따라서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죄의식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손톱]을 아우르는 작가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손톱]은 사실, 아주 착한 소설인 셈이다.

각설하고. [손톱]은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한 번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2008. 2. Arborday.


덧 1. 작가가 영화매니아인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이미지가 영상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판권이 팔렸다는데 그럴 듯한 영화가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덧 2. 손톱이 빠지는 고통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발톱이 빠져본 적이 있는데, 정말 끔찍하더만요. 그런데 그것은 양심의 가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에요.

by ArborDay | 2008/02/17 13:10 | 애니/서적 | 트랙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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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December 1st.. at 2008/02/18 09:00

제목 : 손톱 (김종일) - 간만에 추천 공포소설.
손톱 - 김종일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1. 소설 손톱은. 딸을 유괴살인으로 잃고 남편과 이혼한 네일 아티스트 홍지인은 어느 날부터인가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꿈에서 그녀는 추악한 범죄를 일삼는 사이코패스, 존속살인자, 고문수사관이다.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끔찍한 고통만 남긴 채 하나씩 사라지는 손톱. (출처: 알라딘) 2. 나이트 메어. 꿈속의 공포가 현실이 될 때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잠을 덜 ......more

Commented by rainydoll at 2008/02/17 13:51
'재미있는 영화블로그! 익스트림무비'에 '몸'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계시더라구요. 저는 그거 보고 팬이 되버렸습니다. :)
Commented by 몽중인 at 2008/02/17 19:05
호러물도 그렇지만, 특히나 ArborDay님이 추천하는 책들은 재미를 보장하더군요. ^^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습니다.
Commented by delius at 2008/02/17 21:08
와 기대작이군요. 꼭 챙겨 봐야 겠네요~ / 주말에 본 영화 2편에 모두 손톱 다치고 빠지는 장면이 나왔어요.. 상상만 해도 무서워요 ㄷㄷㄷ
Commented by 우노히카 at 2008/02/17 22:57
히히히히 김종일님 카페 번개 가셨는 데 혹시 사인본으로... 읽으셨는지 ㅎㅎ
김종일님 소설 읽다보면 영화로 예를 굉장히 많이 들더군요
막 연재가 마감된 삼악도 (출간 예정이라던데...)에도 다양한 영화들(B급 부터 메이져까지)의 이름들이 나와서 기뻤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영화매니아~

위시리스트 0순위 입니당...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2/18 02:20
손톱, 재밌기는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 전작 몸이 좀 더 좋았어요.
Commented by ssita at 2008/02/18 09:04
이런저런 얘기해도 결국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죠. ^^

기본 줄거리만 잘 따라가도 기대할만한 영화가 나올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론이 너무 착해서 밋밋하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식상하지는 않았고요. 비쥬얼도 좋았고, 이래저래 맘에 들었어요. 추천작~!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18 16:01
rainydoll님/ [몸]은 기존에 출판했던 작품이랍니다. 웹으로 읽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니, 한 권 장만하심이 어떠신지요. ^^

몽중인님/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사료되옵니다. ^0^

delius님/ 무슨 작품들을 보셨으려나~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18 16:04
우노히카님/ 그런 셈이죠. 조금 다른 경우이기는 합니다만. 흠흠흠.
예, 종일님은 영화를 예로 무지 많이 드는 편이죠. 그것도 대체로 호러물, 너무 좋아~

풍류도인/ 굳이 따져야 한다면 나도 그런 편일지도.

ssita/ 맞아, 줄거리만 쭈욱 따라가도 괜찮은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어디서 본듯한 느낌을 걷어낼만한 연출력이 있으면 더 좋고.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2/18 22:18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라, 잘 못 쓰면 엄청 유치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작가분의 내공이 있어서인지 그럴 듯 하게 잘 넘어가더군요. 암튼 한 우물만 꾸준하게 판 이런 작가들이 공포소설을 꾸준하게 써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공포소설(영화도 역시)에 대한 확실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몸>보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취향이라서요^^ <손톱>이 <몸>보다 (개인적으로는) 좀더 대중적으로 느껴졌거든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19 06:30
비둘기/ 확실히 이 작품이 훨씬 대중적인 느낌이야. 친절한 스타일을 떠나서라도 뭐랄까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랄까. 꾸준히 활동할 장르문학작가가 몇 명만 더 있어도 세상 훨씬 살만할 것 같은데 말이지. 완소 김종일!
Commented by 김종일 at 2008/02/19 22:15
'완소'까지야... ^^;
사려 깊고 애정 어린 평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20 02:59
김종일님/ 이름만으로도 신뢰하는 작가 아닙니까. 완소 맞지요, 뭐. ^^
Commented by 디오니 at 2008/02/22 04:22
안녕하세요. 종일의 카페에서 영화평을 보고 들르게 됐습니다. 링크신고 드릴게요. 저도 공포영화라면 환장하는데
블로그를 너무 늦게 알게됐네요. ^^ 좋은 하루 되시길~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22 15:54
디오니님/ 정말 반갑습니다. 또 뵈요~ 더불어 [손톱] 평도 잘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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