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잘못될 수 있다 - 파고

돈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놓인 남자가 있다. 그의 장인은 부자이지만 사위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 절대로 사위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아내를 납치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장인에게 돈을 뜯어내서 절반으로 나누자고 제안한다. 납치하는 쪽과 돈을 주는 쪽의 사람들끼리 입이 맞은 이 납치극은 그러니까 일종의 상황극과 같은 것이다.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 하지만, [파고]의 인물들은 그러한 소꿉장난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범인들은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에 몇 명의 사람을 죽이게 되고, 의뢰인은 자신의 장인조차 제대로 구슬리지 못한다. 어느 순간 계획은 틀어지고 당사자의 손을 벗어난다. 상황은 계속 꼬여만간다.

영화의 마지막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경찰의 대사가 나온다.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다.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든 목적이란 없었다.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들은 안전한 범죄를 의도하였으나, 모든 일이 자신의 생각처럼 진행되지는 않았다. 과정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폭력은 증식한다.

돈이 얽힌 사단을 그려냈지만, [파고]가 실제로 전하고자 하는 말은 세상이 당신의 맘대로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분노의 저격자]의 도입부 나레이션처럼 모든 일은 잘못될 수 있다. 우연, 그리고 수많은 인과관계와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나는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어요라는 생각은 얼마나 순진하고 안이하며 또 오만한 것이라는 말이더냐.

2008. 2. Arborday.


덧 1. [분노의 저격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궤를 함께 한다. 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아내를 부하직원에게 빼앗겨 버리고 그 분노로 그 둘을 제거해줄 것을 사설탐정에게 부탁한다. 많은 댓가를 약속했음에도 그는 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돈 외에는 어떤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은 탐정의 입장에서는 둘을 죽이는 것보다는 하나를 죽이는게 더 손쉬운 일이다.
그래서 탐정은 의뢰인을 속인 후 돈만 받아내고 그를 죽임으로써 모든 사실을 묻어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관계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 계획은 매우 손쉬운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탐정도 그 상황을 제어하지 못한다. 사소한 실수로 그는 세 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들을 다 죽여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나마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다.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잔꾀를 부려봐도 문제는 그리 간단한게 아니다. 그러니 엉뚱한 생각인들 먹지를 말아라. [보디히트]에 나오는 대사 하나. "네가 범죄를 저지를 때 범할 수 있는 50가지의 실수 중에서, 25개만 피할 수 있으면 넌 천재야."

덧 2. 코엔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죽인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보고 싶어서 슬슬 몸이 달아오르는 중에 생각해보니, [밀러스크로싱]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감상한 코엔형제의 영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분노의 저격자]와 [파고]를 복습했다. 스크린에 흐르는 피와 폭력을 숭상하는 개인의 취향을 제쳐놓는다고 하더라도 이 두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다. 긴장을 자아내는 솜씨와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꼬아대는 재능을 영화 내내 자랑하고 있다.
그들의 영화를 몇 편 더 봐야겠다. 다음은 [바톤핑크]다.

by ArborDay | 2008/02/04 15:21 | 비호러 | 트랙백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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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유니마르 at 2008/02/04 15:38
과정이 어떻게 캐릭터들 각자의 의도와 틀리게 꼬여가는가~ 파고,분노의 저격자는 그런 점들이 극에 끝없는 긴장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느낌의 노인을~ 도 기대하고 있고~ 코엔 형제는 연출도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긴장스런 상황을 만드는 솜씨와 꾜여가는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노는 점은 정말 최고인것 같아요. 바톤 핑크~ 정말 좋아하는 영화~ ^.^
Commented by hihoon at 2008/02/04 16:32
바톤핑크... 본지 십수년은 된 것 같은데, 며칠 동안 '덜걱덜걱'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를 않더군요... -.- 사실 영화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극정 문을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2/04 16:33
흠..... 저도 <노인을...> 보기 전에 복습 좀 해야 하는데... 저는 <파고>만 우선 봐야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개봉관에서 봤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잘 안 나네요^^ 그나저나 <노인을...> 이 영화는 dvd를 사야하기에 영화관에서 보기가 조금 그래요. 중복으로 돈이 나가서요...ㅠㅠ


김종일 씨 <손톱> 출간 벙개에 나가셨더군요...ㅎㅎ 사진이^^ 원래 가려고 했는데, 제가 술을 못 먹어서(불면증 때문에 한약을 먹고 있어서요...ㅠㅠ), 맨 정신에 나가기 좀 뻘쭘해서, 그냥 집에 왔습니다. 최코치님은 예전에 몇번 만나서 술 먹은 적이 있는데, 암튼 부러웠습니다. 3차까지(4차는 노래방이었더군요)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는데, 무척 아쉬웠어요.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2/04 16:34
그러고보니 <바톤핑크>는 아직 못 봤네요. 이상하게 이 영화만은 끌리지가 않더군요....ㅠㅠ
Commented by krzys at 2008/02/04 16:4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어둠의 경로로) 보고 코엔 감독 형제에 급관심이 갔는데, 때마침 [파고] 감상평을 올려주시네요. +_+
Commented by dcdc at 2008/02/04 17:41
운명이 얼마나 사람을 갖고 노는지 아주 좋은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그것도 이렇게나 무덤덤한 어조로 말한다는 것도 대단해요!
Commented by 이니드 at 2008/02/04 19:52
으악 저장면ㅠㅠㅠㅠ 한창 부세미씨를 좋아할때 봤던거라 너무 충격이 컸어요.....
Commented by 수족냉증 at 2008/02/04 21:24
우리도 코엔감독을 좋아한다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언제상영예정인지?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5 00:02
유니마르/ 네 말처럼 연출도 기가 막히게 잘하고,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놀 줄도 알고. 대단한 양반들이야. 저런 사람들이 영화 안 만들었으면 뭘했을까?

hihoon님/ 저도 [바톤핑크]는 영화를 본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그닥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상당히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죠. 아차, 그 낡은 호텔의 벽지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 볼 때는 조금 불명확한 느낌이 들기는 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비둘기는/ 세상 참 좁더라고. 난 보통 극장에서 본걸 dvd로 사게 되던데. 좋았으니까 가지고 싶다고 해야하나. 차라리 극장에서 보고 dvd를 안사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해.
종일님을 한 번 보고 싶어서 [손톱] 출간 벙개에 나갔다왔지. 역시 노는 곳이 비슷하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이가 적지 않구만.
그나저나 [바톤핑크]도 영화 괜찮았던걸로 기억하는데 한 번 보지 그래.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5 00:06
krzys님/ 앗, 아직까지 코엔 형제에게 관심이 없으셨다는 말씀이세요? 그럼 노다지를 하나 찾으셨군요!!

dcdc님/ 그러게요. 게다가 코엔형제, 은근히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것 같아요. 대단한 분들이죠, 뭐.

이니드님/ 크, 쇼크 받으실만 하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나온 스티브 부세미의 모습 중에서는 저 전 장면이 마음에 들었었어요. 사람을 하나 죽이고 와서는 "다음에 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해."라고 말하면서 허리춤에 찬 총을 살짝, 정말 아주 살짝 보여주는 장면. 굉장히 복합적인 그런 감정 상태에서의 모습인데, 참 근사하게 연기했다고 해야하나.
[파고]에서의 스티브부세미는 결코 웃긴 얼굴이 아님에도, 가는곳마다 우스운 외모라는 증언들이 뒤따라서 좀 묘한 느낌이었답니다. 물론 [웨딩싱어] 같은 영화에서의 그는 무척 재미있죠.

수족냉증님/ 2월 20일 즈음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별 일 없으면 그 때쯤 극장에서 볼 수 있을겝니다.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2/05 01:19
하루빨리 형님이 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평을 보고 싶네요. ^_^ 참고로 코엔 형제의 이번 신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개인적으로 코엔 형제 최고 걸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입니다. 진짜 보는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걸작!
Commented by 누렁이 at 2008/02/05 03:06
이 영화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존 캐롤 린치의 무심한 앙상블 정말 좋지 않나요? :)

그러고 보면 저는 코엔들의 영화중에서는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을 특히 좋아하는군요.
역시 부러운 감독입니다. 이번엔 "그런 여배우와 결혼할만 하다."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ㅎㅎㅎ
Commented by 새침떼기 at 2008/02/05 03:09
그러고보니 이 사람들 영화는 국내에도 전부 DVD로 출시된 것 같아요. 어지간한 주류영화 감독들도 이 정도 위세는 누리지 못 할텐데, 그저 쌩유라고 밖에는..^^
Commented by Ritsuko at 2008/02/05 03:58
파고는 한 10년전에 MBC(공중파)에서 해주었지만 무슨 일인지 성우 더빙을 안하고 자막으로 방영을 하더군요. 장인이 죽고 이상해서 꺼벼렸지만 나중에 봤을때는 간만에 제대로 된영화를 봤다는 생각을 했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5 13:26
풍류도인/ 개봉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야지, 뭐.

누렁이님/ 예, 정말 잘 어울리더군요.
확실히 전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엑스트라에 가까웠던 [밀러스크로싱]에서의 역도 좋아한다는 말이죠. 아이를 가진 몸으로 살인현장을 다니고, 짖궂게 웃고 황당함을 드러내던 [파고]에서의 캐릭터 역시 잊을 수 없네요. ^^

새침떼기님/ 흔치 않은 케이스 같습니다. 그저 쌩유라고 밖에는(2). ^^

Ritsuko님/ 엇, 자막방영이요? 공중파에서는 그다지 못 본 것 같은데(워낙 TV를 안봐서이기도 할거에요).
전 아쉽게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군에 있는 바람에 극장에서는 못봤어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나는 코엔형제의 영화가 될 듯.
Commented by seimei at 2008/02/05 13:49
전 이영화보면서 그 톱밥만드는 기계인가요? 나무절단기인가요? 거기다가 사람 신체를 한 부위씩 넣고 분쇄하는 장면 참 잊을 수 없습니다.
눈에 빨간색 피가 튀면서...
눈과 피는 아마도 의도적인 설정이었겠죠.
Commented by 초하(初夏) at 2008/02/07 02:37
분명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
오랜만에 다녀가는 것 같네요. 잘 지내시죠?
설 명절 잘 쇠시고, 좋은 일 가득한 한 해되시길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9 00:11
seimei님/ 예, 아마도 의도적 설정이었겠지요. 일단 보기에 아름답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파고]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몇 개 있습니다. 첫번째는 사람을 죽이고 돌아온 스티브 부세미가 자신을 때렸던 이에게 조심할 것을 전해달라고 말하면서 허리춤에 찬 총을 살짝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두번째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모든 표정이었답니다.

초하님/ 감사합니다. 초하님도 좋은 일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delius at 2008/02/11 08:03
예전에 [KINO] 기자 필기시험 볼 때 - 아 그 시절만 해도 저는 열혈청년이었어용 홍홍 - 영화 5편 목록을 주고 영화평을 써보는 것이 과제에 있었는데 그 5편 중에서 본 것이 딱 [파고] 하나였는데 그것도 그 전날 빌려서 한 번 본 것이 다였어요.(이미 여기서 저는 안되겠구나를 예감 ^^) 뭐라고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최근에 토막살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완전범죄를 꿈꾸려면 [파고]에 나오는 것처럼 톱밥 만드는 기계를 이용해야해요."라고 말하고서는 흑 저는 이 영화를 단순히 이런 식으로 봤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에 우표이야기 랍니다. ^^
Commented by almaren at 2008/02/11 13:59
이영화 또 blood simple(또 비슷한 simple plan)도 simple하게 시작했다가 걷잡을수없이 "안simple"하게 전개되는데 정말 재밋게 봤지요. ^^* 행동이 제일 어설프고 임신해서 몸도 불편한 여경찰이 마무리를 짓더군요. 그과정이 참,,,,, 흥미진진했죠.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11 16:32
delius님/ 이거 연배를 짐작하게 하는 덧글인걸요. ^^
마지막의 우표 이야기 확실히 기억에 남을만하죠. 세상에 그 가치가 어떻게 보이든간에, 다들 자신의 용도대로 쓰이기 마련 아닐까 싶네요.

almaren님/ 코엔형제의 영화들은 소동극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아요. 특히 일부 영화들에서는 필요없는 헛소동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참 재미있게 소동을 그려내는 감독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mazzy at 2008/03/04 12:28
Fargo 본지 10년 두 넘네여.. 조용한곳 에서 끔찍한 사건 미국에선 더 흔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3/04 23:32
mazzy님/ 전 최근에 다시 한 번 감상했답니다. 그나저나 미국에 사시는 분이신가봐요? ^^
Commented by mazzy at 2008/03/06 01:22
네.. ^ㅡ^ 마니쓰고 십진만 (about the movies) 영어가 더 쓰기시워여..;P
William H. Macy 가 예전 저이 "성상님" ^^;; 하고 마니 달맜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3/06 14:33
mazzy님/ 그럴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한글에도 상당히 능하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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