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닥터스트레인지러브

[닥터스트레인지러브]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미소 두 대통령이 10분쯤 통화를 더 했더라면 굳이 미친 놈이 나타나지 않아도, 전쟁 날지 모르겠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의 대화는 더럽게 유치하다. 우리가 이러니 니네가 이러니 은연중에 힘을 과시하지 않을 없는 상황이란 애들이 서로 우리 집에 뭐 있네 자랑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참 원시적이고 유치한 행동이다. 물론 역사를 돌이켜보거나 사람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 애들도 전쟁억제력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산다. 니가 때리면 나도 때릴거야. 나 건드리면 너 죽어.

[닥터스트레인지러브]는 물론 배꼽을 잡을만큼 웃긴 영화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쓴 웃음이 배어나오게끔 만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작품이다. 어쩌면 많은 설정들은 이제 진부해진 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과학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어느날 갑자기 기능이 무력화된 책임체계도, 숫자만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군인이나 과학자도. 그렇지만 여전히 서정적인 노래와 어우러지는 리드미컬한 엔딩은 매력적이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더란 말이냐.

2008.1. Arborday.


덧 1. 냉전시대, 미소 대통령이 핫라인으로 전화를 하면 그들은 어떤 언어로 소통했을까? 난 그게 상당히 궁금했다. 동시통역을 달고 있었을까? 영어로 했을까? 소련어로 했을까? 아니면 3국어로 했을까?

덧 2. [닥터스트레인지러브]의 엔딩이니 보고 싶은 사람만 재생할 것.

by ArborDay | 2008/01/31 15:09 | 단평/숏컷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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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8/01/31 16:01
미소간 핫라인은 전화가 아니라 텔랙스였읍니다. 톰 크란시의 sum of all fears에 미소 대통령이 텔렉스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있읍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8/01/31 18:14
1. 이 작품은 일명 아는 만큼 보인다는 설정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운명의 날 장치 격차" "방공호 격차"라는말은 당시 실제 유명한 "미사일 격차"(이 말도 자주 나옵니다.)에 대한 패러디이죠. 항공대 본부에 걸려 있는 표어도 실제 표어입니다. 우리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박사는 3명의 실존 인물을 패러디했지요. 쿠바 위기 종반기에 실제로 만취한 소련 수상이 핫라인에서 헛소리 한 적이 있었습니다. -_-;;;

2. 이 작 자체가 상당히 성적인 코드가 많아서 더 유명하지요. 리퍼 장군이 고민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그거입니다.

3. 리퍼 장군으로 나온 배우는 2차 대전 연간 유고빨치산 지원 업무을 한 OSS 출신이었습니다. 50년대 이 전력으로 전향 선언을 하고 동료 배우들을 팔아먹는 역할을 했지요. 그런 이유로 인해서 큐브릭은 리퍼 장군역을 맡겨서 철저하게 조롱했습니다.(영광의 길에 나오는 쓰레기 프랑스 장군도 이런 케이스로 캐스팅 되었다고 합니다)

4. 이 작은 무려 요술공주 밍키에서 멋지게 패러디 되기도 했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31 18:30
서산돼지님/ 텔렉스였군요. 감사합니다.

이준님/ 예, 리퍼장군의 진짜 고민은 성적인 문제이지요. 맞습니다. 그런데 요술공주 밍키에서 패러디라니! 크, 어떤 장면이 나왔으려나.
Commented by dcdc at 2008/01/31 19:56
퓨쳐라마에서 저 마지막이 한번 패러디 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 큐브릭의 블랙코미디-랄지, 냉소랄지-는 정말 최고입니다 ㅠ_ㅠb
Commented by krzys at 2008/01/31 21:04
한국은 이 영화의 2차 판권이 워너가 아닌 유니버셜에 있어서 코드1 박셋과는 달리 워너 박셋에서 빠졌었죠. 결국 저는 유니버셜에서 나온 판본을 따로 샀는데, 워너 박셋이 워낙 부실했어서 오히려 이렇게 따로 따로 나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그래도 년도를 감안하면 무진장 재밌는 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로리타]를 좀 더 좋아하는데, 어쨋든 그와 함께 스탠리 큐브릭의 컬러시대의 흑백 영화로써 블랙코미디라는 점이 참 흥미롭죠. 앞의 두 작품으로 성과 폭력의 희화화를 실험을 한 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비극성을 거쳐 비로서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걸작 블랙코미디가 완성되는 데, 그것을 장르의 완성 과정으로 보고 이 영화를 감상하면 꽤나 흥미로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초기작들이 [배리 린든] 이후의 후기작들 보단 더 재밌는 것 같아요. [배리 린든]을 기점으로 스탠리 큐브릭은 전작의 한계를 넘지 못해서 계속 실망스러워진달까요? 따로 놓고만 본다면, 다들 쟁쟁한 걸작들입니다만.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8/01/31 22:34
생뚱맞은 소리지만, 문득 우리(?) 위대하신(?) 2MB 각하께선 자랑스레 영어로 통화를 하실 거란 생각이...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1 00:11
dcdc님/ 전 처음 이 엔딩을 보면서 장면전환에 따른 운율이라는 것을 느꼈답니다. 물론 미사일 타고 가는 카우보이도 웃겼었지만요. ^^

krzys님/ 콜롬비아 아닌가요? 제가 가진 dvd는 콜롬비아였던 것 같은데. ^^
그래서 저도 큐브릭 영화를 순차적으로 한 번 다시 보려고 해요. 시간순으로 작품들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제 주위에 큐브릭을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 말에 따르면 너무 영화가 완벽해서 싫다더군요. 재미있는 이유지만 의외로 공감도 가는 그런 이유였어요.
조만간 [로리타]를 감상할 생각이랍니다. 그 때 보고 다시 이야기 나누죠. ^^

히치하이커님/ 흐흐흐, 2MB면 어지간한 mp3 하나 수록 못할 용량 같은데요. ^^
Commented by krzys at 2008/02/01 04:04
어이쿠, 제가 헷갈렸네요. 콜롬비아 맞습니다. ^^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8/02/01 09:41
요술공주 밍키에서 장군이 아끼는 고양이가 죽었읍니다. 장군은 슬픈 나머지 전화에다 대고 고양이가 죽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핵공격 암호였읍니다. 그래서 핵폭탄을 실은 폭격기가 출동하고....나중에 카우보이가 탄 핵폭탄이 떨어지는데 밍키가 마술을 걸어서 지상이 꽃바다가 되는 것으로 끝났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우노히카 at 2008/02/03 14:47
DVD로 소장 중이였는데 없어져 버린 =ㅁ= 세상에...
다시 사려고 막 해매는 중이예요 ㅋㅋ

그나저나 종공 종모에 가셨더군요... 저는 학생이라 못 갔는데
흑흑 갈껄 그랬나...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4 13:56
krzys님/ 헤헤, 사실 저도 회사가 어디인지 기억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거 잘 못 외우겠더라구요. ^^

서산돼지님/ 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궁금증 많이 풀게 되었습니다.

우노히카님/ 종공 모임에 여고생이 한 분 나왔더군요. 쿨럭.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2/12 13:49
이 작품의 이두식(?) 일본판 제목은 아직도 일본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박사의 이상한 애정"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12 20:47
rumic71님/ 하하하, [박사의 이상한 애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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