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버튼, 돌아오다 - 스위니토드
자신의 기괴한 취향을 일종의 선의의 거짓말 정도로 치부했던 영화 [빅피쉬]를 보고난 후, 나는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았던 팀버튼도 이제 나이 좀 먹었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빅피쉬]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내 취향을 이해해주세요라는 화해의 제스쳐였다기보다는, 어차피 거짓말하는 것 가볼때까지 가볼테니 각오하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던 모양이다. 기뻐하라. 팀버튼이 돌아왔다. 훨씬 노골적인 세계관을 들고.

[유령신부]에서 보여주었던 화해따위는 플릿 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담시의 [배트맨]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를 빨리던 사람들을 구원할 자애로운 권력(꼭 자애로운 것만은 아니지만)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이제 그들은 도움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대신 분노한다.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어, 나도 똑같이 하겠어. 그런데 어쩌면 당연할 그 행동들이 악마를 낳는다. 분노는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고, 그 대상을 왜곡하거나 한없이 확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위니토드]는 물론 잔혹하다. 사람이 사람잡는 시궁창을 문자그대로 그려내며, 목따기를 밥먹듯 한다. 그의 음울한 회색빛의 세계는 이제 흥건한 피로 뒤덮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니토드]는 잔혹기라기 보다는, 팀버튼의 말처럼 비극적인 로맨스로 규정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권력 하에 희생된 토드의 사랑, 대에 걸친 판사의 허락받지 못한 집요한 사랑, 외면 받는 러벳 부인의 사랑. 모두가 사랑이 낳은 비극이다. 하필 그 사람에게 반한걸 어찌 하겠는가. 그러므로 [스위니토드]는 슬픈 영화이다.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들은 굳게 쌓인 자신의 성 안에 기거하는 [가위손]의 에드워드처럼 타인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본다. 토드는 복수를 꾀하고, 판사는 조안나를 탐하며, 러벳 부인은 토드를 욕망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들은 정당화된다. 하지만 룰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 엔딩은 당연한 귀결이다.

2008. 1. Arborday.


덧 1. 영화의 잔혹성에 대해 알고 있는 관객은 토드가 면도날만 들어도 긴장을 하게 됩니다. 면도칼이 주는 이미지는 꽤나 섬뜻하거든요. 어쨌거나 팀버튼은 살해를 꽤나 재치있는 리듬감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 같네요. 한참 뜸들이다가 실패하는 첫 칼질도 그렇고 그에 이어지는 당혹스러운 칼질의 타이밍도 그렇고 애를 태울줄도 놀라게 할 줄도 아는 것 같습니다. 올해 초 유난히 제 취향의 작품들이 극장에 많이 걸리네요. 열두달이 이랬으면 좋겠어요.
덧 2. 조니뎁이 노래를 잘하더라라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노래가 형편없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어 전혀 기대를 안했었는데, 괜히 겁먹었다 싶네요. 이완맥그리거의 음색이 무대의 뮤지컬을 떠올린다면, 조니뎁의 음색은 팝송을 떠올리는 감은 있었지만요. 헬레나 본햄카터의 목소리도 그만하면 감미로운 편이라 생각합니다. 이 두 배우는 모두 범상치 않은 역들이 더 잘 어울리는것 같네요. [스위니토드]에서도 물론 좋았어요. 다만 황홀감에 젖어 있던지, 얻어맞고 난 뒤던지간에 똑같은 목소리로 조안나를 불러대는 청년의 노래는 좀 지루한 감이 있더군요. 아이의 노래는 듣기에 좋았습니다. 목소리도 이쁘고 생김새도 이뻐요.

덧 3. 알란릭맨 많이 늙었네요. 그러고보니 [다이하드]의 한스그루버가 벌써 20년 전이군요.
by ArborDay | 2008/01/27 14:31 | 공포/호러 | 트랙백(8)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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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테판 at 2008/01/27 15:23
처음에 조니 뎁이 스티븐 손더하임에게 오디션을 봤을때, 스티븐 손더하임이 조니뎁의 목소리가 너무 '락적'이라고 우려를 표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는 그의 노래에 만족을 표했지만...
Commented by 리승 at 2008/01/27 18:36
으으으 아직 못 봤습니다! ㅠ ㅠ
Commented by 나비부인 at 2008/01/27 19:29
팀버튼과 조니뎁,,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Commented by 누렁이 at 2008/01/27 20:25
트랙백 보냈습니다. 영화 좋던데요? 나긋나긋하지 않고...
Commented by reme19 at 2008/01/28 00:53
토드와 판사의 서로 다른 감정의 노래가 묘하게 어울리는 등, 재미있는 면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특히 토드와 러트부인을 피로써 엮은 비극적 숏은, 완전 그림이었어요.
Commented by anakin at 2008/01/28 01:02
저는 요즘 이거 ost에 빠져 지내고 있어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저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족으로, 본햄 카터의 역은 러벳 부인(Mrs. Lovett)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Commented by anakin at 2008/01/28 01:34
그런데 이 글, 덧글보다 트랙백이 더 많네요 @_@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 덧글 하나 더 추가합니다. ^^a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8 02:24
스테판님/ 제가 듣기에도 '락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런 뒷얘기가 있었군요. 트랙백 즐겁게 읽었습니다. ^^

리승님/ 남자친구분 데려가서 보세요. 피가 철철 넘친답니다. ^^;;

나비부인님/ 확실히 그 조합 괜찮아요, 그쵸?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8 02:26
누렁이님/ 예, 저 이런게 좋아요. 나긋나긋하지 않은 다소 막 가는. ^^

reme19님/ 헤, 말씀하신 장면들이 머리 속에서 살아나고 있답니다. 괜찮은 그림이 제법 있었죠. ^^

anakin님/ 잘못된 부분 수정했습니다.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봐요. 트랙백 읽으러 가봐야겠네요.
Commented by sesism at 2008/01/28 09:50
헬레나 본햄 카터랑 조니 뎁 분장은 정말 맘에 들어요 ^^
Commented by 잔디 at 2008/01/28 14:28
온통 잿빛 배경에 선명한 핏빛 대조가 자극적인것이.. 참 잔혹해도 아름답게 잔혹한것 같아요. ㅎㅎ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1/28 15:10
한 때 제가 굉장히 좋아했던 헬레나 본햄 카터가 이렇게 늙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ㅠ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8 16:38
sesism님/ 둘 다 한 칼 하는 역할에 어울려요. ^^

잔디님/ 위에 reme19님이 적으신대로 그림 나오는 장면이 몇 개 있었죠.

풍류도인/ 헬레네 본햄카터 임신 중이라더라. 그런데 폭삭 늙은게 아니라 잘 늙어가고 있지 않아?
Commented by seimei at 2008/01/28 21:13
Depp씨가 락밴드 출신이라 그래요. ....(웃음) 전 뮤지컬 버전 ost듣고 있는데 이게 훨씬 노래를 잘 하더군요.
제 생각에는 헬레나 본햄 카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목소리가 매우 감미롭죠...
영화 너무 좋았죠? 진짜 1월은 너무너무 좋은 영화들만 가득..저는 미스트만 보면 끝납니다.

보고 난후 저랑 제 지인의 생각은 피가 "지나치게" 가짜 같았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도 징그럽지 않았다나요.

Depp씨는 정말 둘도 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지녔어요. 나름 그 분야에선 최고의 배우~!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8 23:57
krzys님/ 확실히 팀버튼이 돌아온 것 같아요. 환호성 지를만하죠. 저도 [클로버필드]는 심히 고민 중입니다. 요즘 들어 흔들리는 카메라에 흥도 잃었을 뿐더러, 정말 멀미가 나기도 하거든요. ㅠㅠ
[미스트]는 엄청 괜찮으니 꼭 보세요. 올해 극장에서의 경험이 꽤 좋네요. 쭉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seimei님/ 그러고보니 예전에 조니뎁이 락밴드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네요. 전 부인에게 배워서 그런가 했었죠. ^0^
팀버튼이 그려내는 영상은 워낙 동화적이기도 하고 가상의 색채를 가진지라, 피 역시 가상으로 그려내지 않으면 잘 어울리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 말씀처럼 그 피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가짜같았죠. 하지만 목 따는 장면들은 여느 슬래셔 영화 못지 않더라구요.
Commented by 누렁이 at 2008/01/29 00:45
조니뎁은 락밴드를 했었죠. P라고...
(아마 집구석 어딘가에 씨디가 있을겁니다.)

근데 얼터너티브라서 영화에 나오는 목소리랑은 많이 달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ㅎㅎㅎ
Commented by 라엘 at 2008/01/29 01:35
요고 꼬 봐야겠습니다!!!!! ^-^ 스틸 분위기가 으시시한 것이. 좋네요!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9 12:37
누렁이님/ 오호라, cd가 발매까지 되었군요. 생각보다 거창한(?) 락밴드였나봅니다.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얼터너티브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은 드네요.

라엘님/ 영화 참 괜찮습니다. 꼭 보시기를. (취향은 좀 갈릴 것 같지만서도)
Commented by Timlover at 2008/01/30 16:11
스위니 토드에 대해 한마디로 얘기하자면.."팀버튼이 돌아왔다!!! 본인의 진정한 색깔을 가지고!!"입니다...팀버튼의 영화는 개봉날 꼭 봐야 한다는 작은 기쁨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비피쉬'에서 약해진 그의 '색깔'을 다시 보게되어 행복감까지 느꼈습니다...그토록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웃게 만들다니! 역시 그는 천재입니다..그리고...비록 노래는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스위니토드역을 극장에서.. 죠니뎁말고 누가 할 수 있었을까요.. 누가 팀을, 그리고 우리를 만족시킬수 있었을까요.. 팀과, 뎁이 있어 인생이 좀더 재밌습니다..ㅋㅋ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01/30 18:32
저는 이걸 회사 워크숍에서 봤었어요. 근데 너무 상태가 안좋아 영화의 절반 이상을 못봤었답니다.
중반 이후부터 본 느낌은 참 섬뜩하면서도 좋더라고요. 다들 저더러 어땠느냐 물었는데 저는 "으응, 피 색이 좀 연해서 호호호"하고 웃고 말았지요. 조만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더 보고 감상글을 올려볼까 해요.
+조니뎁의 노래목소리는 예상보다 참 이쁘던걸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30 23:21
Timlover님/ 제가 하고 싶은 말, 그대로입니다. ^^

나무피리님/ 어이쿠, 얼마나 안 좋았으면. 트랙백 기다릴께요~
Commented by catail at 2008/01/31 20:16
스위니토드까지 안 가도 그 옛날 면도칼로 슥슥 미는 장면은 닭살이 팍팍 돋아요.
총이고 검이고 도끼고 그런 것보다 날 선 얇은 면도칼로 목을 그어버리는 장면이 저는 그렇게나 무섭더라고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1 00:13
catail님/ 맞아요. 이발사용 면도칼은 그 자체로 정말 섬찟하죠.
정말 얇은 면도칼이라면 루치오풀치가 도루코(?) 면도칼로 난자하는 장면을 그려낸게 있는데, 그것도 짜증 제대로 난답니다. ^^
Commented by newt at 2008/02/01 11:13
'팀버튼이 돌아왔다'에 동감! 난도질에 배어나오던 피도 그렇지만 사운드도 한몫하더라구요. 재미있게 봤어요.
Commented by 루이 at 2008/02/02 10:58
스네이프 교수로 나왔을때도 잘 몰랐는데 어제 보니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는;;; 다이하드에선 참 섹시한 악역이었죠 :)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02/03 12:06
두 번쨰 보고서야 알았어요. 제가 처음에 이 영화를 하나도 못 본거나 다름없었다는 것을요.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자기 보고 싶은 것들만 보게 되고 그것의 결말은 예상가능했지요. 그럼에도 저는 마지막이 참 무서웠어요. 피가 쏟아져서가 아니라 그 표정 때문에.
회색빛인데 제게는 파르스름함이 느껴져서도 좋았답니다.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2/04 13:58
newt/ 나도 재미있었어. 얘기해보니 극렬히 취향타더만.

루이님/ 해리포터를 한 편도 못봐서 최근에 그를 본 적이 거의 없었나봐요. [다이하드]에서는 물론 섹시했지요. 푸하하.

나무피리님/ 죽음을 받아들인 모습이라고 해야하나. 정말 마지막 장면은 한 폭의 그림 같았어요. 무섭기까지 하셨군요. ^^
Commented by RodoMom at 2008/08/24 17:34
팀 버튼을 당대 최고의 감독이라 여기며, 그의 대부분의 영화를 소장해온 팬으로서, 이 영화에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원수를 만나 칼질하는 초반부의 장면에서 약간의 스릴을 제공한 이후, 이 영화는 (1) 느린 진행감 (2) 천편일률 기대를 배반치 않아, 심지어 지루했습니다. 리듬감 있게, 경동맥을 잘라내는 연속적인 장면에서, Mars Attack! 등에서 보여진 팀 버튼 특유의 유머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슬리피 홀로우에서 보여주었던, 몽환미와 서스펜스가 부족했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8/24 18:22
동감합니다. [슬리피 홀로우]와 비교할 때 몽환미와 서스펜스는 분명히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보다 괜찮았답니다. 마지막 죽음 같은 경우는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는 생각도 들구요. 눈이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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