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세 차례 감상하기는 했지만 [에반게리온]에 대해 해석하는건 진부한 일이기도 하고 또 곤란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 [에반게리온]은 사회에서 상처만 받던 인간이 엄마의 자궁 - 어머니의 인격을 담은 로봇, 그리고 양수(?)로 가득찬 기체 - 으로 돌아간 후 다시 태어나는 그런 이야기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 소년이 인간 사이의 거리를 인식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내는 성장만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즉, 설정에서 드러난 것 혹은 인류의 종말을 들먹거리거나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낸 것과 비교할 때 그리 거창한 작품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결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 부족했던 TV판의 엔딩보다 더 마음에 안 들었다는 뜻이다. 바다에서 약간의 모험을 하면서 유쾌하게 놀다가 막판에 가서 조연들 싹 죽이고 우주로 날아가버렸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와 같은 결말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라고 설명해야할까. 솔직히 [나디아]보다 이 쪽이 몇 곱절은 멀리간, 그러니까 쓸데없이 너무 거창한 엔딩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에반게리온]의 새로운 엔딩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새로운 엔딩이 나온다고 해도 내 마음에 꼭 들거란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하고. 내가 신극장판에 흥이 동한 이유는 아마도 [에반게리온]이 내게 특별한 작품이기도 했고, 또 10년 전의 추억에 젖어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극장을 찾았다. [에반게리온, 서]는 간략하게 설명하면, 아주 조금 덜 찌질해진 이카리 신지, 아주 조금 더 엄마 같아보이는 카츠라기 미사토, 아주 조금 더 친절해진 내용전개, 그리고 한참 신경 쓴 전투씬과 전투도시라고 하겠다. 커다란 화면에 풍성한 사운드, 좀 더 멋진 장면들은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얼추 외우고 있는 팬에게도 상당히 만족스러우리라 생각이 된다. 후속편이 기대가 된다. 그리고 리빌딩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거의 재편집 수준의 내용이기에 TV판 에반게리온을 접한 적이 있다면 딱히 복습을 할 필요까지는 없어보인다. (열심히 복습하고 갔더니 엊그제 극장에서 본걸 또 보는 기분도 든다.) TV판과 신극장판은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는데, 그래도 몇 가지 차이를 들자면 우선 신지에게 '믿는다'라는 주위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장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지 역시 그 믿음에 보답하여 스스로의 의지로 총을 잡기도 한다. 그래서 스크린을 압도하는 붉은 색이 불안한 세기말적 정서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나이를 먹은 안노히데아키의 세계관이 조금은 덜 극단적이고 희망적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즉, 관계에 대한 신지의 불신이 조금 누그러지지 않을까라는 생각, 또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또한 원작에서는 미사토가 아담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카지와 미사토의 뒷조사 부분이 조금 달라질 것으로 예견된다. 뜬금없이 튀어나왔던 리린과 리리스에 대해서도 [에반게리온, 서]에서 한 번은 언급하고 지나가니 내용이 상당히 친절해진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 작품의 축약이 상당히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는 어쩌면 내가 원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외에는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 하지만 비주얼적인 측면으로는 확연히 달라졌다. 아마도 이 부분이 [에반게리온, 서]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변화무쌍한 다이아몬드 사도의 모습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은 직접 겪어보는 것이 나으리라. 2008. 1. Arborday. 덧 1. [에반게리온, 서]의 하이라이트인 한 장면. 워낙 좋아하는 장면이라서 TV판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야시마 작전 중 레이는 신지를 지키려다가 부상을 당하고, 신지는 아버지가 했던 것과 똑같이 뜨거운 손잡이를 돌려 레이의 상태를 확인한다. 레이의 안전을 확인한 후 신지는 울면서 "헤어질 때 안녕이라는 말은 너무 슬프다."고 말한다. 레이는 처음에 왜 울지라고 물었다가 미안하다고 말한 후,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다. 신지는 "그냥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TV판의 이 장면에서의 레이의 웃음이 너무 어색했다. 웃을 줄 모르는 아이가 활짝 웃어서 나타나는 그런 어색함이 아니라 그냥 작화가 좀 불만족스러웠던건데, 이번 극장판에서는 가볍게 미소짓는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덧 2. 나의 [에반게리온]은 8화부터 시작했었다. 왜냐고?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가 8편에서부터 나왔기 때문.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속의 여성캐릭터에 대한 취향이 드러나는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에반게리온의 무거운 정서를 다소 완화시켜주었던(망가지기 전까지) 이 캐릭터가 좋았다. 모든 면에서 찌질 신지와는 대조되게 반응하는 캐릭터이기도 했고. 어쨌든 똑같은 이유로 아직 나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도 시작하지 않았다. 다음 편을 언제 기다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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