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배분에 실패한 영화 - 30 days of night
[스포일러 있습니다]

밤에만 움직일 수 있는 흡혈귀에게 30일동안 밤만 계속되는 지역은 천국일테고, 흡혈귀를 맞닥뜨린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곳일게다. 살아날 가능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곳. [30 days of night]는 그같은 지옥을 배경으로 한다. [30 days of night]의 흡혈귀 무리는 태양이라는 핸디캡도 없는데다가 치밀하기까지 해서 이미 해가 지기 전 손발을 어느정도 묶어두기까지 했으니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이건 안 봐도 뻔한 싸움, 아니 학살이다. 설정 상의 매력에 적당 수준의 가학성, 게다가 근사한 비주얼까지 존재하니 [30 days of night]는 충분히 (어떤 부류의)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있을 작품이다. 게다가 [30 days of night]의 흡혈귀 집단도 [죽음의 키스] 이후로는 간만에 만난 인상적인 무리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시간의 안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흡혈귀들의 탁월한 육체능력과 낚시질까지 감행하는 지적 능력, 그리고 첫 날부터 설쳐댄 부지런함에도 불구하고 30일은 손쉽게 지나간다. 애당초 자신들을 공상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무려 수세기를 보낸 흡혈귀 무리였고, 처음부터 단 한 사람의 목격자도 남길 생각이 없었음에도 30일 동안 마을 하나 절단내지 못한다니 이거 원. 마지막에는 진작 불 좀 지르지 그랬어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기까지 한다. 시간 배분의 실패는 근사했던 처음으로부터 갈수록 긴장이 느슨해지는 엔딩을 이끌어내기도 하니, 이같은 실패는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화끈하게 30분정도 쳐내었으면 어땠을까. 강력추천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마냥 까기는 아쉬운 - 제법 재미도 있는 - 범작 정도라고 생각된다.

2007. 1. Arborday.


덧 1. 샘레이미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는데 사실 그의 느낌은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주 접하기 힘든 여자아이 아작씬(?)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잔인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귀신에 씌였을 때만 친구들을 조져댔던 [이블데드]에서와 유사한 방법을 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작자가 샘레이미라는 사실을 몰랐으면 그냥 지나쳐가고 말았을 것이니 끼워맞추기 식 이야기임이 분명합니다.

덧 2. 저는 뮤직비디오삘의 빠른 편집에 상당히 흥이 떨어져버린 것 같습니다. 이같은 편집은 순간의 간지를 자아내기도 하고 흡혈귀의 놀라운 신체능력을 표현하는데는 제격입니다만, 아무래도 긴장감이 좀 덜하달까. 뮤직비디오삘의 편집은 생각할 여유가 없이 몰아쳐서 그런건지 영화를 보고나면 감상할 때보다 느낌이 팍 죽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덧 3. 그런데 한겨울치고는 공포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네요. 이게 웬 일이래.
by ArborDay | 2008/01/14 14:10 | 공포/호러 | 트랙백(5)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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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마란스 at 2008/01/14 14:21
조쉬 하트넷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팬에게 비추하고픈 작품이죠. (웃음)
흡혈귀 소재 자체를 잘 썼고 그 독특한 설정과 공중에서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학살씬을 그려냈던 장면은 정말 좋더군요.
근데 정말 좀 시간을 줄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먼산]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1/14 15:17
살짝 고민되는 영화입니다. 볼것도 많아서 더더욱이요......
Commented by 레드몽키 at 2008/01/14 15:20
마지막 한판승부도 좀 싱거웠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hypnus at 2008/01/14 15:32
소재는 괜찮은거 같은데 전체적으로 상당히 심심하더군요.
엔딩도 너무 허무하고 말씀처럼 한 30분 정도 짤라냈으면 그나마 지루함은 덜 했을것 같지만, 그래도 빈틈이 너무 많아 보여서 어느정도까지 커버가 될지..
Commented by 대마왕 at 2008/01/14 16:22
마지막에 가서는 영화 둠과 블레이드2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필살의 스트레이트는 좀 -_-;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8/01/14 16:37
영화가 너무 늘어져도 문제지만, 확실히 뮤직비디오삘의 빠른 편집도 여운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러한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쳐서 조금 그래요. 그래도 오랜만에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흡혈귀 집단이 나오는 영화라 나름 재미있게 봤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14 18:12
아마란스님/ 그래요? 조쉬하트넷을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서.
그 조감샷은 정말 괜찮았던 것 같아요. 까기만 하기엔 아쉬운 구석이 좀 있는데. ^^

천용희님/ 직접 보고 평가하시기를.

레드몽키님/ 원래 절대무적을 꺾는다는게 싱겁게 끝나기 마련일것 같아요. 좀 더 시간을 줬다고 해도.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14 18:13
hypnus님/ 30분쯤 짧았으면 훨씬 괜찮지 않았을까라고 상상만 하고 있습니다. ^^

대마왕님/ 하하하, 필살의 스트레이트. ^^;;

비둘기는/ 확실히 매력적이었어. [죽음의 키스] 이후로는 간만에 마음에 드는 집단이었지.
Commented by 정호찬 at 2008/01/14 20:50
트랙백 타고 왔습니다.

여자 관객들은 조쉬 하트넷이 나온다는 점에서 점수를 많이 주더군요.(그러니까 이건 나쁜 영화)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8/01/14 22:17
우리 친형님은 무척 재밌게 봤는데 형님은 아닌가 보군요. 그나저나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지 원. ㅡㅡ!
Commented by 벨제뷔트 at 2008/01/14 23:31
말씀하신 대로 시간 배분에 실패해 뒤로 갈수록 지루해진 것도 문제였지만 저는 무엇보다 이 영화의 비쥬얼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여름부터 줄곧 기대해오던 작품인 탓에 상대적으로 실망감이 한층 배가된 면이 있다고 쳐도 너무 맥 빠졌어요;
10년 전에만 나왔어도 어떨지 모르겠지만 2008년 현재 시점에 보기에는 너무나 흔해빠진 장면들의 연속이라... 차라리 극중에서
지독하게 낡은 클리셰의 하나로 언급되는 벨라 루고시 영화들이 이 영화보단 (돌고 돌아) 아름다워보이지 않을까 싶더라니까요 TT.
Commented by 그리스인마틴 at 2008/01/15 02:09
이런 영화도 있었군요.
주욱 읽어보니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느낌을 주네요.
잘보고 갑니다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15 13:19
정호찬님/ 그래요? 조쉬하트넷은 이상하게 좀 심심하던데. ㅠㅠ

풍류도인/ 보라는 사람 말을 믿으면 돼.

krzys님/ 저도 기대를 좀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 정도면 볼만한 것 아닌가요? 뱀파이어들 좀 지저분하기는 해도 간지는 나잖아요.

벨제뷔트님/ 그래픽 노블을 아시는 분들은 대체로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리스인마틴님/ 감사합니다. 또 뵐께요.
Commented by 궁극의 힘 at 2008/01/17 14:03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글에 대체적으로 공감합니다.
제가 이전에 써둔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놓은글이 있길래 트랙백걸었어요.
(사실 어제 트랙백걸었는데 댓글 다는걸 깜빡했어요 죄송)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18 12:12
궁극의힘님/ 댓글없이 트랙백 거셔도 괜찮아요. 저도 그런 경우가 많은걸요.
그나저나 원작과 영화비교라니, 흥미가 동하는 포스트네요.
빨리 달려가겠습니다. 슝~
Commented by 지킬 at 2008/01/21 11:11
이 영화는 확실히 설정상의 매력 때문에 어떤 부류를 동하게 하는 영화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진 못한 거 같구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1 13:58
지킬님/ 이런 영화를 볼 때는 참 아쉬워진답니다.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참 괜찮은데, 종합하면 부족한 느낌. ㅠㅠ
Commented by 몽중인 at 2008/01/23 10:31
끝날 때 되니 허겁지겁 불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죠. '<300>의 스릴러 버전'이라고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스타일리쉬가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을 말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ArborDay님! 제가 블로그를 옮기게 되었어요. 그 공간도 자주 찾아주실것을 믿습니다.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3 13:48
몽중인님/ 안그래도 네이버 블로그,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답니다. 거기서 뵈요. ^^
Commented by yums at 2008/01/23 23:38
ㅎㅎㅎ 시간분배란 표현 아주 마음에 드는데요. 저는 솔직히 매력적으로 푹빠지면서 보지 못했지만 흡혈귀씨들의 파워풀한 그 힘에 비해 어이없는 결말에 제정신으로 복귀했거든요,.ㅡㅡ

어린시절의 추억땜인지 매력적이고 파워풀하고 좀....새디스트적인 흡혈귀씨들이 나왔음 하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4 01:16
yums님/ 아무래도 경제학을 공부하다보니 분배 이런 용어가 친숙하답니다. 처음에는 꽤 기대를 하며 보다가, 중반 이후 김이 새버렸어요. ㅠㅠ
전 그런 생각을 할 때 그냥 어린 시절 즐기던 영화를 찾아본답니다. 제 집에는 요즘 흡혈귀 영화보다 옛날 흡혈귀 영화가 더 많아요. ^^
Commented by N. at 2008/01/24 02:05
많이 아깝고, 그래서 더 화가 난 영화였습니다. 근사하게 시작하고 몇몇 씬들도 대단히 인상적인데 (학살이 이루어지는 마을 전경을 부감으로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랄지 고어장면들, 애들 셋이 길거리에 있다가 그중 한 명이 눈앞에서 습격받고 휙 사라지는 장면이랄지), 그렇게 시작해서는 갈수록 한숨만 나오다가 분노 게이지를 급상승 시키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저도 이전에 썼지만, 30일 동안 인구도 적은 그 마을 접수를 못 했다니 흡혈귀들이 대단히 멍청하거나 실은 약하거나. 겠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4 18:48
N.님/ 그래요. 확실히 괜찮은 구석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매력이 뚝뚝, 급기야는 화도 나더라구요.
말씀처럼 실제로는 멍청하거나, 약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겁니다. 어쩌면 감독이 안이한건지도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catail at 2008/01/31 20:20
보는 내내, 피 좀 닦지... 이러면서 봤다죠 헷
옛날의 멋지던 흡혈귀들은 다 어디가고, 지적능력도 뛰어나면서 입가에 피도 안 닦는 좀비 흡혈귀들만 있을까. 이러면서 봤어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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