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다라본트는 그의 영화 인생 초기에 [나이트메어3], [외계생명체 블롭], [플라이2] 등의 각본가로 장르에 업적을 남겼다. 그래서 호러에 대한 다라본트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에 국한된 말많은 엔딩 역시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라본트와 장르를 연관시키는데 있어 누구도 [생매장]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 유감이다. (아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생매장]은 TV물이기는 하지만 다라본트가 애당초 호러물의 연출에도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이는데는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쇼생크탈출] - 사실 [쇼생크탈출]을 빛나게 하는 것도 스릴러장르에서나 보일법한 연출감각이 아닐까 - 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다라본트의 작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생매장]이었고, 그렇기에 늘 그가 극장용 공포영화를 한 편 찍는다면 상당히 훌륭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나는 이같은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스트]는 '무엇이 인간을 두렵게 만드는가'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두려움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영화다. (물론 때로 후자는 전자로 이어질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스트]는 안개가 무엇이며 그 안에서 나온 괴물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에는 별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를 통해 '화살촉 프로젝트'니 차원의 틈으로 이세계의 것이 침입했다는 등의 막연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원인들이 딱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툭 던져준 납득할 수 없는 몇 마디만으로 군대나빠요, 혹은 과학발전은 위험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해도 영화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미스트]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 - 이유를 모름이 문제가 아니라 납득할 수 없음이 문제이다. 이유를 모름이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이 발생했을 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더욱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이 그러했듯 이러한 상황은 구성원들의 대립과 가치들의 붕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마트에 고립된 인간의 수가 로메로의 저예산영화보다 훨씬 많기에 이러한 대립은 훨씬 규모가 커지는데, 그에 따라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끌어낸다. 구성원들의 갈등은 떼거리 싸움인 정치로 이어지고, 불확실성 하에서 하나의 대처방식으로 종교까지 확장된다. 주어진 정보가 지나치게 적은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은 점차 힘을 잃고, 광기가 집단을 점령해나갈 것이라는 예측은 상당히 신빙성 있어 보인다. 사실 현실에서 적잖은 증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모습의 표현은 관객이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현실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차원의, 괴물이 튀어나옴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어떤 거북함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음에도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에 놓인 인간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엔딩은 관객을 더욱 괴롭고 허무하게 만든다. 총알이 네 발 남았다고 이야기할 때 결말이 대충 예견되어 입에서는 탄식이 나왔고, 괴물의 실체가 밝혀질 때쯤에는 아버지의 마음에 동화되어 눈물을 훔쳐 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주위에서 소란스러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난 내가 잘못된건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면서 계속 들리는 군부대의 이동소리는 이 영화가 보여준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임을 짐작케 한다. 고난은 과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화면만큼이나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주인공의 앞날을 생각하니 쉽게 감정이 추스려지지가 않는다.
2008. 1. Arborday.
덧 1.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섭고 섬찟한 인물은 카모디이리라.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 중 하나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괴물이 죽음을 받아들인 카모디를 그냥 지나쳐가는 장면 - 일종의 성스러운 체험 - 이었다. 사실 카모디의 급격한 변화도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는 확신을 가질만도 하다. 단 그녀의 연기에 비해 다른 캐릭터들의 연기력은 떨어지는 느낌이다. 참, 마샤 게이 하든은 [데드걸] - 이 영화도 그렇고 - 을 보면서 니콜 키드만과 르네 젤위거를 섞어놓은 이의 10년 후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혹시 동감하시는 분 없겠지). 또 주인공의 편에 섰던 콧수염난 남자는 존카펜터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의도적 캐스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 2. 안개를 소재로 한다는 것에서 [미스트]는 존카펜터의 [안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존카펜터의 안개가 가려진 과거를 상징한 것과 비교할 때 [미스트]의 그것은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섬찟함을 자아낸다. 더 보여주는 것 이외에도. 사실 이 작품의 괴물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아주 훌륭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 혹시 영단어 fog와 mist 사이에 학술적 의미가 아니라 어감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아시는 분 있으면 설명 부탁드린다.
덧 3. 다수가 즐겨보는 영화와 내가 즐기는 영화 사이에 조금은 갭이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해오기는 했지만, 어째서 이 영화가 평이 갈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걸 보면 그 갭은 의외로 큰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공포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기회는 일년에 몇 번 안될 것이다라고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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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ewt at 2008/01/13 17:06
오홋 보셨군요! 나도 봐야징~ 평이 워낙 갈려서 더 궁금하더라구요. 글은 나중에 읽을게요~ ^^
- 저도 주변의 반응을 들으면서 내가 이상한 건가 하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 엔딩 크레딧의 효과음은 제가 이해를 못했는데... 그렇게 읽을 수 있겠군요.
- THE FOG는 보지 못했지만 그 리메이크판은 정말 별로였던 기억이 납니다;
- 초반 주인공 작업실에 존 카펜터의 THE THING 포스터는 발견하셨는지? :)
1. 생매장 유명하죠 ^^;; 이 감독님 필모그래피에 꽤 괜찮은 (혹은 괴악한) 장르물 극본이 많은데 의외로 삼빡한 작품이 생매장이기도 했습니다. 쇼생크 탈출 이후에 이 이야기를 주변에 언급하면 더 놀라긴 하더군요. 저는 토요명화 버젼으로 봤습니다(2편은 비디오로 빌려보았지요)
2. 원작에서는 열린 엔딩입니다. 차원문제 이야기도 아예 언급만 나오지요.-군인중에 아주 비참한 최후를 맞는 친구가 원작에는 아예 없습니다. 나머지 두 친구도 아무런 이야기 없이 영화의 예를 따르지요. 그러니까 원작 자체도 괴물 관련 이야기는 은근슬쩍 암시만 있습니다.-괴물과의 사투(특히 약국)부분은 영화의 목적상 늘려버린거지요.
3. 원작은 뭐랄까요? 총알 4발 이야기도 살짝 나옵니다. 다만 열린 결말에서 일말의 희망을 약간 가집니다. 영화에서 초기에 아주 잠깐 지나간 "라디오 방송 잡히는 이야기"가 원작에서 약간의 희망을 줍니다. 대신에 원작-이 자체가 탈출중에 최후로 남기는 수기입니다.- 수기 맨 마지막에 "이런때 흔히 나오는 다음날 군부대가 우리를 구해주었다거나 혹은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라는 결말은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감독은 원작의 이 어구를 놀랍게 비틀어버린겁니다.
호러물은 아니지만 안개는 [리버틴]에서 정말 멋드러지게 나왔죠. 보면서, '아.. 안개 낀 초원이 저렇게 멋지구나,' 싶었는데...
[미스트]는 어딜 가든 평이 좋아서,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 가야겠어요. 지금 관객 평가만 봐서는 금방 자취를 감출 것 같은데 말이죠.
그나저나 수술은 잘 끝나셨나 보군요! 오랜만에 arborday님의 글을 읽으니깐 좋으네요.
평이 좋은 듯. ㅎ 그야말로 짧고 굵게 치고 들어오는 소설을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어요. 절망에 처한 인간들의 모습이란, 훗(...). 사기꾼(?) 아줌마가 어찌 그려졌는지 제일 궁금하네요. 아, 소설엔 제법 므훗한 장면도 나오는데 것도, 하하. 그나저나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다면(...), 여친과 조조로 보러 가기로 했는데, 어찌 될런지는. 음...
krzys님/ [리버틴]은 못 봤습니다. 그 영화도 관심이 있기는 했었는데 어느새 슬며시 사라져버린 케이스였죠. 바쁘다보면 그래요.
[미스트]는 놓치지 마시고 극장에 걸려있을 때 한 번 쯤 확인해보심이 좋을 듯 싶습니다. 물론 krzys님과 저의 취향이 비슷한 듯, 다른 부분이 있어 책임은 못지지만요. ^0^
걱정해주신 덕분에 수술은 잘 끝났답니다. 감사해요~
히치하이커님/ 지금쯤이면 영화 보셨을라나? ^^
newmeca님/ 딱히 newmeca님이 이기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 역시 그렇거든요. 정답은 상영회? ^^
카모디가 안 죽은 이유.. 굳은 상태로 안 움직여서였을 겁니다. 침을 찌른 이유. 눈앞의 대상이 큰 움직임을 보이거나 하면 곤충은 위험요소로 인식하여 방어 수단을 사용하기 십상....
사람의 입장에서도 리얼한 심리를 묘사했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이계생물의 심리조차 리얼하게 묘사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생사의 운명조차도 너무나 현실적으로..
맨 처음 촉수괴물이 순순히 물러간 이유(다른 영화 같으면 통상적으로 구조물 전체 들었다 놓는 후속 파괴씬 정도는 기본으로 나왔을텐데). 그런 생물들은 예기치 못하게 호되게 당한 곳은 근접도 안하는 것이 생리. 다리 잘린 악이 받쳐서 더 사납게 덤벼드는 복수전이란 건 사람이나 생각하는 것인지라..
곤충 괴물도 애초에 사람이 아닌 불빛을 보고 날아든 것이며, 새도 제 먹이감(곤충) 잡아 먹으려다 생소한 유리창에 부딛친 것. 그 안의 인간을 새로운 먹이감으로 인식하여 부러 유리창을 깬게 아니라.
다른 크리쳐 영화들 같으면 괴수들은 주인공 및 그 주변 인간을 향해 당연스레 덤벼듭니다. 오로지 그들의 타겟은 살아있는 인간 뿐이며. 마치 인간을 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이... 헌데 이 영화의 이 세계 생물들은 그저 자기 세계의 약육강식을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뿐입니다. 정복대상이어서가 아니라, 크기차로 인한 단순 상위 포식자로서 말이죠. 이런 묘사부터 탁월하게 현실적이라 할까요.
연주님/ 감독의 강단이죠. 물론 다라본트라는 감독을 닥치고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작품성이 아닌 메세지의 측면에서), 어쨌거나 이번 결말은 참 모호하면서도 멋졌어요.
누렁이님/ 사실 전 울었답니다. ㅠㅠ
unique님/ 제가 아는 누군가는 오버스러웠다고 하더군요. 주인공의 연기력이 부족한 느낌이라고 하기도 했고. 그 말씀에는 상당부분 공감합니다.
gaya님/ 친절한 덧글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듣고보니 그렇네요. 단순 상위 포식자. 카모디가 죽지 않은 이유 역시 물리적으로는 그 이유 때문일겁니다. ^^
그런데 괴물이 물러나는 장면, 은근히 묘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옅은 조명이 더해지면서 종교적 색채가 팍 묻어나왔다고 해야할까. 가끔씩 이 영화가 기독교 비판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일하게 무게중심을 둔 한 사람 정도랄까.
옹호도 아니지만 비판 정도는 아닐거예요.
제 보긴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아등바등 아무리 애를 써봤자, 말하자면 스스로 최선을 다했네 하며 여한 없어 해봤자. 인간의 체념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살고 죽는 것은 자연의 우연성(혹은 신의 섭리)에 달렸다는 것. 그런 운명론적이면서도 사실상 극 현실적인 메시지로 보였습니다.
gaya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무력성에 대한 운명론적인 메세지가 주가 되는 부분이며, 종교란 그에 대한 다양한 반응 중 하나였을 뿐이었을테죠. 거듭 감사드립니다. ^^
(gaya님께서 기독교를 들먹거렸다고 생각해서 덧글을 그렇게 남긴건 아니랍니다. 생각난 김에 조금 덧붙인거였어요.)
괴물의 비주얼은 마치 에볼루션과 같았고, 액션은 죠스와 같았고, 사람들의 광기는 매드니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우주전쟁과 같았지만, 미스트의 진짜 특유의 묘미는 마지막의 극적인 반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어떻게 살아갈까요?(어차피 가상의 이야기이니 상상일 뿐이지만.)
으으..마지막에 주인공 참 허무하겠더라구요..차라리 죽는 게 낫겠죠
전 스티븐 킹 소설 영화한 거는 다 재미있더라구요. 이것도 역시 .
미스트 같은 경우에는 스티븐 킹을 좋아하지 않거나, 러브크래프트 작품에 관심없는 사람들이면 아주 비웃을 만한 요소를 많이 가졌죠. 제 주위에 이 영화 비웃을 만한 사람이 생각나 갑자기 기분 나빠지네요..
괴물의 디자인도 좋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 극한상황에서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피터팬님/ 어이쿠, 이걸 극장에서 못 보셨구나. 전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별로 읽어본 바가 없어서, 그의 느낌이 뭔지 잘 모른답니다. 다만, 그의 작품이 영화화 - 특히 호러의 경우 - 되면 재미없더라라는 편견만 일부 사라진 상태랄까요. [스탠드]는 읽어보고 싶기도 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