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3일
경제학자에 대한 연민
간만에 경제학 포스팅 - 가급적이면 하지 않고자 했었던 - 이다. 나는 기자가 부럽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들은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지 않을만한 주장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권리, 아니 의무를 가지고 있다. 상식에 반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엄밀하게 증명하는 구차스러운 작업 - 경우에 따라 한없이 소모적일 수 있는 - 을 얼마든지 건너뛸 수 있다.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재분배문제. 그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당연하게 보이는 그 주장들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Redistribution'이라고 키워드를 넣으면 무수히 쏟아지는 그 논문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재분배' 정책을 정당화하는 논거를 찾고자 하고 있는지 아는가. 멀리 가지 않아도 현정부 역시 사회안전망이나, 양극화 문제 해결 - 적어도 기자나 블로거들에게 언급되는 수준 내에서라면 - 에 대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정책 - 그것의 기여도에 대한 논평은 찬반으로 나뉘어진다고 하더라도 - 은 한계에 부딪혔다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이가 태반이다. 너무나 복잡한 사회 내에서의 조율과정이 힘에 겹고, 이것저것 고려할 것이 너무 많아 어떤 답을 내야할지 고심하고 있는 것 뿐이지. 물론 그 성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거나 혹은 있는 자만을 위한다라는 질타에 대해 그들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결단코 없다. 내가 보기에도 욕 좀 먹어야 한다. 노력이 부족하고, 방향이 편향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경제학자가 주류인 이 사회인지라, 미국의 주류 - 신자유주의 - 가 이 나라의 주류인 것도 확실하고.
예를 든 김에 재분배 이야기를 좀 해보자. 한 나라가 자본을 가진 이에게 과세를 하여 없는 이에게 혜택을 베푸려는 의도의 조세 개혁을 단행했다고 하자. 만약 자본에 과세를 한 결과 그 자본이 국가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면, 이는 단지 자본만 빠져나간게 아니라 한 단위의 노동에 결합되는 자본량을 줄여 그들의 생산성 - 그러니까 결국 임금 - 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재분배를 위한 자본과세는 결국 세원을 해외로 도피시키고 저소득층의 임금을 줄여 오히려 분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모형이고, 무수히 많은 논리들이 적어도 20년 이상 이 모형을 깨기 위해 계속 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일부의 승리는 거둔 바 있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직 거두지 못했다(내가 알지 못하는 완전한 승리를 거둔 논문을 누군가가 안다면 추천 부탁드린다). 멋있는 주장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현실로 들어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잘 모른다. (경제학자들의 모형도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명분에 의해 돌아갈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라고 주장할 누군가도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시행착오를 줄이는게 사회적으로 낫다는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하고 보자라는 것. 자기 혼자만의 문제라면 몰라도,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이들을 포함한 집단적인 결정의 문제에서는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닐까.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사회적 판단에 도움이 될만한, 티끌만한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당연하겠지만 모두가 그런건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해보자. 북유럽의 어떤 나라 얘기인데, 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거나 그 쪽의 사례이다. 노동자들의 동일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그들은 동일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동일하게 주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업계내 노동자들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기업의 생산성은 저마다 다르다. 우량기업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아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산물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량기업과의 가격경쟁에서 패배한 중소기업들이 모두 도산해버렸다. 경기가 좋았을 때 일자리를 잃은 중소기업의 일꾼들은 시장의 순기능에 따라 다른 직종으로 유입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지자 그들은 모두 실업자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동일임금 정책은, 대기업만 살아남게 만들어 형평성을 악화시켰다. 실업자의 양산으로 세원이 줄어들었으며, 실업보험의 과대한 지출을 만들어내 복지지출을 위한 재정에 압박을 받았다. 이중고, 삼중고. 결국 없는 자가 더 피해를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레이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한 말 중 하나만큼은 좋아한다. "최고의 복지 정책은 일자리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물론 이런 예들을 해석하자면 정책 실패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나올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장하준 박사는 실업자가 양산되기 전까지만을 언급했던 것 같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슬쩍 읽어서 헷갈리기는 하는데. 어쨌거나.) 하지만 적어도 재분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를 정당화하는 엄밀한 증명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도 모른다는 정도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위한 논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재분배정책의 당위성(이건 말할 필요도 없는거고)이나 현실적용에 대한 것(공부는 하고 있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내 수준을 상회한다)이 아니다. 단지 내가 진짜 하기를 원하는 말은 오랫동안 경제학을 공부한, 그리고 공부하고 있는 자로서 가진 경제학자에 대한 깊은 연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저 경제학자라는 딱 들어도 핏기가 제거된 듯한 그 어감만으로, 그들은 정부나 대기업과 붙어나서 거짓말만 해대는 사람으로 매도되기 쉽상이다. (그것도 죽은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경제학원론 수준의 지식을 근거로 삼아, 단적으로 현대경제학은 합리적 인간보다는 제한된 합리성에 훨씬 많은 초점을 맞춘다.) 내가 좋아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도 경제학자라면 손수레를 치고 본다.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을 안하는 편이 나았을걸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목소리가 큰 누군가의 소리 - 어디에서든, 대체로 주류라는 것들은 기득권이 되고 만다. 그리고 목소리도 크다. 신자유주의는 경제학 사조 중의 하나일 뿐이다. 광풍으로 몰아쳐서 그렇지. - 에 소수의 소리가 가릴 뿐인게지. 시장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시장 그 자체는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편의를 가져다 준다. 시장이 세상을 망치는게 아니라,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세상을 망친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망치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다. 도덕론자 아담스미스가 자신이 이 세상의 원흉이 되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아는 진정한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하는 말에 비해서는 훨씬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2007. 12. Arborday.
예를 든 김에 재분배 이야기를 좀 해보자. 한 나라가 자본을 가진 이에게 과세를 하여 없는 이에게 혜택을 베푸려는 의도의 조세 개혁을 단행했다고 하자. 만약 자본에 과세를 한 결과 그 자본이 국가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면, 이는 단지 자본만 빠져나간게 아니라 한 단위의 노동에 결합되는 자본량을 줄여 그들의 생산성 - 그러니까 결국 임금 - 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재분배를 위한 자본과세는 결국 세원을 해외로 도피시키고 저소득층의 임금을 줄여 오히려 분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모형이고, 무수히 많은 논리들이 적어도 20년 이상 이 모형을 깨기 위해 계속 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일부의 승리는 거둔 바 있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직 거두지 못했다(내가 알지 못하는 완전한 승리를 거둔 논문을 누군가가 안다면 추천 부탁드린다). 멋있는 주장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현실로 들어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잘 모른다. (경제학자들의 모형도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명분에 의해 돌아갈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라고 주장할 누군가도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시행착오를 줄이는게 사회적으로 낫다는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하고 보자라는 것. 자기 혼자만의 문제라면 몰라도,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이들을 포함한 집단적인 결정의 문제에서는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닐까.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사회적 판단에 도움이 될만한, 티끌만한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당연하겠지만 모두가 그런건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해보자. 북유럽의 어떤 나라 얘기인데, 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거나 그 쪽의 사례이다. 노동자들의 동일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그들은 동일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동일하게 주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업계내 노동자들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기업의 생산성은 저마다 다르다. 우량기업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아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산물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량기업과의 가격경쟁에서 패배한 중소기업들이 모두 도산해버렸다. 경기가 좋았을 때 일자리를 잃은 중소기업의 일꾼들은 시장의 순기능에 따라 다른 직종으로 유입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지자 그들은 모두 실업자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동일임금 정책은, 대기업만 살아남게 만들어 형평성을 악화시켰다. 실업자의 양산으로 세원이 줄어들었으며, 실업보험의 과대한 지출을 만들어내 복지지출을 위한 재정에 압박을 받았다. 이중고, 삼중고. 결국 없는 자가 더 피해를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레이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한 말 중 하나만큼은 좋아한다. "최고의 복지 정책은 일자리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물론 이런 예들을 해석하자면 정책 실패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나올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장하준 박사는 실업자가 양산되기 전까지만을 언급했던 것 같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슬쩍 읽어서 헷갈리기는 하는데. 어쨌거나.) 하지만 적어도 재분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를 정당화하는 엄밀한 증명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도 모른다는 정도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위한 논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재분배정책의 당위성(이건 말할 필요도 없는거고)이나 현실적용에 대한 것(공부는 하고 있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내 수준을 상회한다)이 아니다. 단지 내가 진짜 하기를 원하는 말은 오랫동안 경제학을 공부한, 그리고 공부하고 있는 자로서 가진 경제학자에 대한 깊은 연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저 경제학자라는 딱 들어도 핏기가 제거된 듯한 그 어감만으로, 그들은 정부나 대기업과 붙어나서 거짓말만 해대는 사람으로 매도되기 쉽상이다. (그것도 죽은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경제학원론 수준의 지식을 근거로 삼아, 단적으로 현대경제학은 합리적 인간보다는 제한된 합리성에 훨씬 많은 초점을 맞춘다.) 내가 좋아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도 경제학자라면 손수레를 치고 본다.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을 안하는 편이 나았을걸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목소리가 큰 누군가의 소리 - 어디에서든, 대체로 주류라는 것들은 기득권이 되고 만다. 그리고 목소리도 크다. 신자유주의는 경제학 사조 중의 하나일 뿐이다. 광풍으로 몰아쳐서 그렇지. - 에 소수의 소리가 가릴 뿐인게지. 시장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시장 그 자체는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편의를 가져다 준다. 시장이 세상을 망치는게 아니라,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세상을 망친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망치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다. 도덕론자 아담스미스가 자신이 이 세상의 원흉이 되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아는 진정한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하는 말에 비해서는 훨씬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2007. 12. Arborday.
# by | 2007/12/13 13:39 | 일상/기타 | 트랙백(1) | 핑백(2)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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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 피해를 실업자들이 모두 다 짊어지는 것은 (그 나라의 경험상) 아닌 것 같습니다. 스웨덴이 몇 개의 기업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적은 인구와 그 적은 인구를 담당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대기업인데, 이러한 대기업을 만들 수 있는 요인 중 하나가 연대임금제라고 생각합니다. 연대임금제 하의 스웨덴 실업자들이 얼마마큼의 피해를 보았는지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있어야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실업자의 고통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컨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떠올리는 실업과 그 나라 사람들이 떠올리는 실업의 개념이 다른 거겠죠. 아마 그들이 받는 실업수당은 우리나라의 2차 노동시장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보다 많은 겁니다. 스웨덴 실업자의 고통이 우리나라 2차 노동시장의 노동자 (대표적인게 비정규직이죠) 보다 더 강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이는 스웨덴의 특성입니다. 인구가 작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대기업으로 유지가 가능한 거겠죠. 한국은 스웨덴과 다르기 때문에 스웨덴의 경우를 기계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선의 복지가 일자리라는 말은, 그 맥락이 다양하게 쓰이지만 저는 어느정도 동감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를 또 바라보면..참 난감합니다. 인구는 5천명, 내수시장을 안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규모도 아니고..그렇다고 과거처럼 재벌이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어떻게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요즘 제 고민입니다. (잠재적 취업자로서 가장 현실적인 고민..ㅠ_ㅠ)
근데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연구 결과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 '이기적'인 걸로 나타났대요!ㅋ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말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채택하고 밀고 나간다는 뜻이게지요..
깨님/ 1. 동의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것입니다. 스웨덴의 경우 대기업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보다 훨씬 좌파정권이 대기업을 컨트롤 할 수 있었기에 고통이 훨씬 완화되었을 것이며, 실업수당은 우리와 같은 고통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 제가 비교하는 것은 한국과 스웨덴이 아니라, 스웨덴의 전과 후입니다. 실업이 늘어나서 실업수당이 증가하여 복지지출에 압박을 가져왔는데, 그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민들이 더 나아졌으리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국가의 보호란 다른 말로 국민의 세금이란 뜻이니까요. 간단하게 실업수당은 임금을 100% 커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기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결론은 또 달라집니다. 30년 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을 단순비교 할 수 없는 것처럼요. 참고로 저는 이 문제의 결론에는 그렇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평균생산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업체가 물러나고, 그 인력이 다른 더 효율적인 산업 부문으로 이동해야 된다는 것은 철저한 시장원리입니다. 단, 이 경우에는 대기업의 피고용인이 자신의 생산성만큼 임금을 받은게 아니라, 업계 평균에 맞추면서 임금을 낮추어 그만큼 대기업에 보조금을 준 효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2.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기존 제조업,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에서 서비스업, 중소기업을 함께 고려하는 성장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시행착오 좀 겪겠지요.
3. 저는 그 결과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그것이 생활에서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 실험 - 그러니까 훨씬 학습에 가까운 상황에서 일어난 것 - 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깊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자기가 배운걸 써먹게 되어 있어요. 평상시에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 이타적인지 이기적인지의 문제는 또 다를겁니다. 물론 상관관계는 있을 수 있겠지만 훨씬까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비공개님/ 좋으실대로 하세요. 전 환영합니다.
굉장히 오랫만에 경제학 이야기라 제가 써놓고도 좀 낯선 느낌이군요. ^^
뭐 제가 보아온 경제학자들은 모두 저런분들 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대선 공약을 봐도, 모두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고 있지만...어떻게 살릴려고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은행은 콜금리를 두번이나 올리면서 물가안정에 기를쓰는데, 대선 후보들은 어떻개든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니.
저는 근데 사실 기자보다도 경제학원론 수업 하나 듣고서 경제학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부럽다는..얼마나 깊은 통찰력을 가졌길래 저럴 수 있을까..싶기도하고요-_-
그리고 이건 제 짧은 소견인데, 어쨌거나 경제학자 분들은 '할 수 있는만큼'은 사회에 기여해온 것 아닐까요. 산업 정책같은면에서..
경제 활성화야... 뭐, 어떻게든 잘 해주기를 빌어야죠. ㅠㅠ
chada님/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명확히 짚으셨네요. 세 줄이면 충분할 글을 꽤나 길게 쓴 셈이 되었네요. ^^
저는 당연하게도 경제학자들이 사회에 상당히 기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어요.
경제학을 전혀 듣지 않고도 통찰력만으로 충분히 경제나 경제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의 학문을 공부했다고 해도, 방법론적으로는 다르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요는 토론의 자세죠. 말씀처럼 극소수의 깊은 통찰력을 가진 이들은 부러워할만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아는게 다라고 생각하고 덤벼드는 부류인데, 그럴 때는 난감합니다. ㅠㅠ
"경제 상황이 좋다." = "자기 배가 부르다."로 단순화시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학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그 학자들이 있어서 세상은 유지되며 돌아간다고 믿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자도 그 예외가 아니지요. ^^
[보이지 않는 마음]과 [괴짜경제학] 추천드려요. 경제학원론 수준을 대충 알고 계시다면 [행동경제학]도 재미있답니다. 어떻게 보면 대변혁 같지만, 사실은 경제학의 주요원리들과 다를바가 별로 없더라구요. 하지만 비경제학도에게는 훨씬 유용할거에요. 경제학도에게도 유망한 분야이기도 하고.
퍼갈게요. 'ㅁ'
풍류도인/ 세상이 원래 그런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