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 룰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 매치포인트

[내용공개 있습니다. 주의하시기를.]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접할 때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이다. 우디 알렌은 인생의 어처구니 없이 많은 부분이 운에 좌우된다고 나레이션으로 읊어주면서 영화의 처음, 테니스 경기의 중요한 한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공을 네트에 맞히는 과정까지는 운이 아니라 노력이겠지만, 네트에 맞은 공이 넘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일종의 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운이 아닐지도 모른다. 엄연히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을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는 않기로 하자.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수많은 노력과 그리고 결정적인 운이다. 하지만 이것은 운의 속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스포츠라는 것에는 일반적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실 위의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을 위한 장난질이었을게다. 그가 던진 반지 - 범죄의 물증 - 가 다리의 난간을 맞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최초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하필 반지가 물이 아닌 땅으로 떨어졌을 때, "아, 그는 운이 없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운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의도와 달리 - 부주의가 그를 살렸다 - 반지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혐의에서 벗어나게 된다. 심지어 귀신까지 범인을 형사에게 알려주었음에도(이 설정은 [스쿠프]에서 또 다시, 그리고 좀 더 노골적으로 반복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흔히 스포츠에 비견되지만 그와는 많이 다르다. 인생에는 어떤 일반적 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이 네트를 넘어가도 질 수 있는게 삶이다. 진정한 운이란 이런거야라고 말하며 키득키득 웃고 있을 노인네의 모습이 훤히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매치포인트]는 절대적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삶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런 삶 속에서는 부조리는 당연한 것이며, 누구나 유혹에 빠질 수 있는게 아닐까. 윤리의 회복 - 죄의식에 의한 - 만이 유일한 희망일테지만, 그것에 의존하기에는 내가 너무 순수하지 못한 것 같다.


2007. 11. Arborday.


덧 1. 최근 글자만 가득 채워진 이 블로그가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아무래도 그림이 있으면 더 설명하기 편한 경우도 있어 캡쳐한 이미지를 올려봅니다. 글만 빽빽하면 여자친구마저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간만이라 그런지 무척 어색하다는 느낌도 드는데, 여러분 보시기엔 어떠신지요?

덧 2. 며칠 전 [폭력의 역사] dvd를 구입하러 갔다가, 하나 있던 [매치포인트] 신품을 입수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 작품의 dvd를 구매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셨던 분이라면, 그것도 정말 대단한 운이라고 인정하실겝니다. 물건 하나를 어디에선가 빼오셨다고 하시던데. 그래서 생각난 김에 포스팅.

by ArborDay | 2007/11/12 14:14 | 비호러 | 트랙백(3)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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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키노21 at 2007/11/12 16:17

제목 : 장르적 관습의 파괴와 수용 - [매치 포인트] 우디..
#.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합니다. 그러니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놓친 독자들 꽤나 많으실 것 같네요. 이 글은 역시나 예전에 썼던 글인데요. 사정상 여기로 옮겨오는 겁니다. 공개 하지만 발행 하지는 않습니다. 매치 포인트 (Match Point, 2005) 미국, 영국, 룩셈부르크. 밝은 느와르 멜러 드라마. 123 분. 개봉 2006.04.13 우디 알렌 (Woody Allen)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Jonat......more

Tracked from 소박한 정원 at 2007/11/13 18:06

제목 : 매치 포인트
그 사람의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면 배경, 재산, 학력, 외모 등은 그의 외적인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것들을 사람의 능력이나 성품 등 우리가 그 사람의 사람됨을 일컫는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따로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실력은 있는데 집안이 가난해. 사람은 착한데 무능하지. 능력은 있는데 좀 별난데가 있어. 우리는 그 사람의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이 상호작용은? 사람의 양심은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 사람의 능......more

Tracked from Eternal Suns.. at 2008/03/30 21:00

제목 : 매치포인트(Match Point, 2005)
누군가 '착함(good)보다 운(lucky)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다. 두려울만큼 인생은 대부분 운에 좌우된다. 그런 능력 밖의 일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면 무서울 지경이다. 시합에서 공이 네트를 건드리는 찰나, 공은 넘어갈 수도 그냥 떨어질 수도 있다. 운만 좋으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은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다. 영화의 첫 부분 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이런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more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7/11/12 14:19
결국 덧2를 자랑질 하신거군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2 14:21
닥슈나이더님/ 핫핫, 그렇게 되나요?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7/11/12 15:04
아, 저는 우디 앨런의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암튼 그래서 dp중고에서 우디 앨런의 <매치포인트>와 <스쿠프>를 발견했음에도 그냥 패스했어요. 사실 CJ라 구하기 힘든 타이틀이지만, 제 취향은 아닌 듯 싶어서요. 암튼 위의 2작품 파는 분에게 몇 개 구입했는데, 그냥 비닐만 뜯고 고이 모셔 놓은 것 같더라고요. 암튼 무척 깨끗했습니다. 암튼 매치포인트 아직까지 11,000원에 팔고 있네요. 구하시는 거 알았으면 미리 알려드렸을텐데^^ 암튼 그래도 구하셨다니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7/11/12 15:14
아, 그리고 혹시 애니메이션 <건그레이브> 보셨나요? 모 사이트에서 초회한정판을 무척 싸게 팔고 있네요. 그림체는 아으에 드는데, 어떤 애니인지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레드몽키 at 2007/11/12 15:18
운빨이 좋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의도와 상관없이 남의 운을 가로채 와서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지지리 복도 없는 요한슨T_T
Commented by 신어지 at 2007/11/12 15:25
<스쿠프>가 우디 앨런의 전형적인 스타일과 더 유사했지만(직접 출연도 하구요)
저는 <매치 포인트> 쪽이 더 좋더라구요.

근데 저는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사는 삶을 많이 배우기도 한다는. 독일 월드컵에서
티켓 파워가 있는 유럽팀들이 잔치를 벌이는 일 같은 거요. 2002년에 우리가 4강을
한 것도 사실 마찬가지죠.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2 17:50
비둘기는/ [강령]도 서너장 있더라고. 어디서 좀 빼온 것 같아. 애니 [건그레이브]는 정말 막장 할인이네. 예전에 중고로 미국판을 하나 사뒀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중고를 누구 주는 한이 있어도 코드3 하나 들여놓아야겠구만. 전반부는 정말 강추, 후반부는 그저 그런 작품이랄까. 만족할거야, 아마도.

레드몽키님/ 후후후, 운의 총량이라는게 고정되어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신어지님/ 스포츠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삶이 그걸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는거죠. ^^
개인적으로는 [스쿠프]의 가볍고 명랑한 농담도 무척 좋아해요. 우디알렌의 영화들은 대체로 좋아요.
Commented by Charlie at 2007/11/12 18:44
구하기 힘든 물건을 구했을 때에는 당연히 자랑하셔야죠. 축하드립니다.
덧1에 대해. 읽기에 부담이 없고, 글 전체에 여유가 생겨서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ArborDay님의 경우 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Commented by 오리대마왕 at 2007/11/12 20:02
이 영화 무척 재밌게 봤어요. 일단 다른거 필요없이 스카렛 요한슨 나와서 별 5개.
반지 부분에서는 정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더라고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2 22:41
charlie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품을 줍는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뭐 대단히 희귀한 아이템까지는 아니니까. DP중고장터에서도 종종 보이고.
어쨌거나 간만의 사진도 그렇게 보기 이상하지는 않다는 말씀이죠? 제가 예전에 했던 말을 주워담느라 무척이나 쑥스러웠어요. 솔직히. ^^

오리대마왕님/ 예,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던질 때 "아..."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었죠. [세브란스] 보니까 그런 장면이 하나 있더라구요. "아..." 이런 생각이 번쩍 드는. 그래서 칼을 뽑자마자 웃어제끼기 시작했어요. 쟤, 왜 저래 이런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Commented by shuai at 2007/11/13 18:04
오늘 어느 분이 보내주신 트랙백 덕분에 제 매치포인트 감상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밑에 ArborDay님의 덧글이 있었습니다. '사실 많이 보고 싶은 작품인데 어쩐지 또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써주셨는데 이렇게 영화를 보고 포스팅을 해주셨네요. 그 기념으로 트랙백도 같이 보내봅니다. 흔치 않게 제가 쓴 글 중에 마음에 드는 영화 감상문이네요. (이거 완전 자뻑이군요.) 이젠 영화를 봐도 글 한편 쓰는게 만만치 않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4 13:12
shuai님/ 아, 그 글 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좋은 글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다시 한 번 읽으러 가봐야겠습니다. (자뻑 아니에요. 저도 그런 글이 몇 개, 풉) 그나저나 영화 보고 글쓰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여유가 없으니, 끌끌.
트랙백 감사해요. 확인이 늦어 죄송하네요.
Commented by 제목없음 at 2007/11/14 16:53
우디 알렌이었습니까orz
결국 이 작품을 봐야만 하겠군요. 최근 영화를 거의 못보고 있어서...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4 23:21
제목없음님/ 아니, 우디알렌의 작품인지도 모르고 계셨단 말입니까!! 저보다 더 영화를 못 보고 계시는거로군요!!
Commented by unique at 2007/11/15 00:41
글 읽는 재미가 있지요.

그래서 여길 들려요.

아마 비슷비슷한 분들이 들릴걸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5 16:07
unique님/ 감사드려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7/11/15 16:09
건그레이브는 주문까지 했다가 취소했어요...-_-;; 지름을 조금 자제해야 될 필요성을 느껴서요...-_-:; 가격은 정말 저렴하고, 게다가 <대부> 필이 난다기에 구입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돈이 아쉽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5 17:53
비둘기는/ 후후후, 모쪼록 그 맘 잘 지키렴. 지름 자제 발언에 불은 못 붙이겠구나. ^^
Commented by 써머즈 at 2007/11/17 18:52
이미지도 이미지 자체로 뭔가를 말하고 있으니까요. 글의 의도에 맞는 이미지라면 있어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해요.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18 01:41
써머즈님/ 예, 앞으로 이미지 좀 넣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주위에서는 일단 이게 낫다는군요. ^^
Commented by 풍류도인 at 2007/12/17 00:11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사려고 갔더니 바로 품절! ㅡㅡ! 대략 난감~~~~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2/17 13:25
이거 신품 구하기 꽤 어렵지,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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