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세계

예전에 들은 말이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너희들도 열심히 일하면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을 통해 없는 자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있는 자들이 허락한 정말 최소한의 것이라고. 그것조차도 없는 사회와 비교할 때 물론 그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회가 나은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현실은 그렇다. 우아한 세계라는 것은 애당초 그들만의 리그 - 이른바 로얄 패밀리에게만 허락되는 - 이다. 아무리 결과를 내어본들, 회장의 동생이 누리는 그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이 허락되는 사람은 극소수의 운 좋은 경우 뿐이거든.

영화 [우아한 세계]는 '우아한 세계'에 편입하고자 하는 한 남자, 그리고 그것을 얻을 수 없는 한 남자의 투쟁기를 그린 작품이다. 인구가 설정한 자신만의 우아한 세계라는 것은 별 것 없다. 좋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잘 사는 것. 그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목표만큼 이루기 어려운 것도 없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사회적 한계가 있거니와, 정말 운 좋게 바깥에서 무언가를 이룬다고 해도 그로 인해 안에서 무언가를 잃고 만다. 좋은 집을 얻었다고 해도, 가족들의 호응없이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룰 수는 없거든.

사회의 로얄 패밀리 못지 않게 인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의 가족들이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깡패짓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아버지의 돈으로 유학을 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깡패짓 그만 두지 않으면 이혼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벌이수단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아한 세계]가 어딘지 묘하게 찝찝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버지의 수난기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나머지 구성원들을 너무 얄밉게 그려내거든. 자신들은 아무런 노력없이 아버지의 노동의 단물을 빨아먹기만 하는 캐릭터들로.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는 법이기도 하고, 돈 벌어온다고 장땡은 아니지 않는가.

어쨌거나 비디오를 보며 오열하는 인구의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다. 그는 자신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자신이 원하던 세상을 누리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을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브라운관이라는 장벽을 통해 보게 된다. 그리고는 그들에 대한 분노와 남겨진 자신에 대한 슬픔 등 복합적인 기분이 든 탓에 그릇을 깨버린다. 당연하겠지만 현실은 그에게 깨진 그릇을 치우고 더러워진 방바닥을 닦을 것을 명한다. 그 우아한 브라운관 앞에서.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결국 정말 우아하고자 한다면 집을 짓거나, 방을 깨끗이 하는 그 누군가에 자신이 속하지 않아야 한다. 즉, 노동자들이 아니라 베블렌이 말한 유한계급(노동이 제거된,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계층)이라야 우아한 세계에 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노동하는 이들에게 우아한 세계란 꿈에 가깝다. 그래서 슬프다.

2007. 8. Arborday.

. 인구가 이사를 생각하면서 집 사진을 보았을 때, "이런 집이 정말로 있네요."라고 말한다. 사진은 아름답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 한 장면, 혹은 어떤 결과물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집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했는지, 그것을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것들이 편집되어 사라져버렸다. 현실이란 당연하게도 사진과는 다르다. 그것은 비디오 - 물론 인구가 보고 있는 그 비디오에도 나쁜 것들은 빠져 있을 것이므로 복에 겨운것 만은 아닐 수도 있을게다 - 나 영화도 마찬가지이며, 대부분의 인간의 꿈이나 이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슬프다.

by ArborDay | 2007/08/15 13:39 | 비호러 | 트랙백(3) | 핑백(2) | 덧글(17)

트랙백 주소 : http://Arborday.egloos.com/tb/333778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딸기밭은 영원히! at 2007/08/15 13:44

제목 : 우아한 세계 / 한재림, 2007
가장의 직장생활은 반복되는 일상에 피곤하고, 능력없는 상사는 되지도 않는 요구를 해댄다. 오래된 아파트는 샤워하다 물이 끊기기 일쑤고, 조기유학 보낸 아들의 학비는 만만치 않은데다, 어느새 아빠와의 사이가 멀어져버린 딸은 자기도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라댄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번 건수가 잘만 풀리면 목돈도 들어오고, 강남에 정원넓은 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이 상사라는 놈이 내 뒤통수를 치네? 우아......more

Tracked from REDMONKEY'S .. at 2007/08/15 14:14

제목 : 우아한 세계 (2007)-대한민국 가장들에게 바치는..
1.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오로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무심한 가장의 모습에서 가족의 해체위기를 부각시키다가 결국 야망을 접고서 가족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간다는 "가족애"에 대한 메시지를 자주 접할 수가 있다. 영화 속 메세지 처럼 눈앞에 놓여진 성공의 기회..아니 성공까지 아니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비지니스적 환경을 를 떠나서 항상 가족을 우선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2.아내와 아들,딸 두자식을 둔 가장 인구는 넓은 ......more

Tracked from like a movie. at 2007/08/15 16:43

제목 : 우아한 세계 (The Show Must Go On,..
영화는 현재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위치와 고독을 말해주는 듯하다. 영화의 시점인 아버지 인구(송강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하루하루가 위험하고 고독하다. 언제 어디에서 칼침을 받을지 모르고 각목 맞는 정도는 일상이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자신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아내는 10년째 조폭 안그만두냐고 바가지고 딸은 차라리 칼에 맞아 죽어버리란다. 무엇때문에 칼에 찔리고 긴장을 놓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자신도 ......more

Linked at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 at 2007/12/18 10:33

... 않을 수 없을텐데 내가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그 희망이란건 신에 의한 구원이 아니고 자기구원일테니 내 마음만 잘 먹으면 되겠지만. [우아한세계] : 한재림을 다시 보게 만든 영화. 그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우아한 세계를 꿈꾸며 한없이 발버둥치는 이 시대의 가장에 대한 얘기지만, 조금 확장해서 생각 ... more

Linked at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 at 2007/12/29 20:39

... 내이글루는 개설한지 1154일이 되었습니다. 내이글루의 첫 포스트는 호러영화에 대한 편견 내이글루에서 이오공감2.0에 추천된 글 경제학자에 대한 연민 (추천 16)우아한 세계 (추천 17)복습해도 좋을 한국공포영화들 (추천 24)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기. (추천 25)[잡담] 사다코의 망령 (추천 24)삶은 살 ... more

Commented by yosuda at 2007/08/15 14:01
제 친구는 술만 마시면 '비디오를 보며 오열하는 인구의 모습'을 얘기하면서 마구 한탄을 하더군요. ^^;;;
그 부분이 참 그런가봐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
Commented at 2007/08/15 14: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WhenIFlow at 2007/08/15 20:59
어떤 의미로는 우아한 세계는 현실적인 공포영화라고 생각하고싶었습니다.
살인마가 전기톱 들고 난동부리는것보다도 두렵게 느껴지는 그의 이기적인 가족들이란..
그러다가 문득 딸의 모습과 인구의 모습이 겹쳐서
그 딸의 모습은 내 현재모습이며 인구의 처절함은 내 미래모습이라고 생각됐습니다.
동시에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괴로운 삶을 살고있는지, 앞으로 저렇게 살아가야하는건지. 아주 확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공포영화들보다도 무서운 영화가 됐습니다.
연애의 목적때부터 지독했지만, 거부할수없는 지독함이에요. 한재림의 신작이 기대됩니다.
Commented by oldman at 2007/08/15 22:23
마지막 엔딩이 그렇게 슬퍼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때 가슴 속에서 깊은 슬픔이 같이 밀려왔었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15 22:35
yosuda님/ 사실 삘이 꽂힐만한 장면이었어요. 왜 진작 극장에서 못 봤나 안타깝더라구요. 송강호가 나오면 [옥동자와 갈갈이... ] 어쩌고(영화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취향에 안 맞는 것입니다)라도 봐야겠습니다. 연기가 물이 올랐어요, 아주.

비공개님/ 휴, 감당하기 어려웠겠네요. 사람은 뭐랄까 비슷해야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슬프죠?

WhenIFlow님/ 공감해요. [연애의 목적]이 하고자 하는 말의 전체 맥락도 분명히 공감이 되었었는데, 어딘가가 묘하게 불쾌한 구석이 있더라구요. 이번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영화는 정말 더할나위 없이 좋네요.
영화 내용에도 공감합니다. 저 역시 제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어버렸거든요.

oldman님/ 예, 쓰리더라구요. 슬픔을 넘어서.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7/08/15 23:08
인구에 비해 나머지 식구들은 정말 밥맛 떨어지는 식충이, 4가지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우아한 세계'를 위해서라면 어떤 오물 위에서라도 웃을 수 있는...
굉장히 찝찝했어요. 우울하고...
Commented by nadia at 2007/08/16 04:00
이렇게 까지 깊이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저렇게 까지 고생시키지는 말아야 겠다,
그리고 남이 나를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을 당연하게는 생각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은 일단 뭉쳐있어야 해요.


Commented by 사랑이아빠 at 2007/08/16 07:48
길억아빠는 아니되요~ 가족은 함께살아야 합니다. 훌쩍.

그리고, 차는 좋은걸 타야한다는 결론이..;;
Commented by 까마귀 at 2007/08/16 07:56
하는 일이 다를 뿐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남편과 아버지가 겪는 고독과 우울을 잘 표현한 영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16 10:42
히치하이커님/ 그렇게 안 보일 수가 없더라구요. ㅠㅠ

nadia님/ 그 생각 꼭 간직하시는게 좋겠어요. 아마 바깥분에게 엄청난 힘이 될거랍니다.
저는 가족과 떨어지고 사이가 좀 더 나아진 편 - 나이가 많아 그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지만 - 이지만, 그래도 일단 뭉쳐있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랑이아빠님/ 헤헤헤, 기러기 아빠 하기 싫어요. 얼마나 더 잘 살겠다고. ㅠㅠ

까마귀님/ 동감해요. 저 역시 푹 빠져서 감상했답니다. 극장에서 할 때 왜 못 봤는지. 뭐가 그리 바쁘다고.
Commented by 유니마르 at 2007/08/16 13:37
형 글을 읽고보니, 우아한 세계란 단어가 지닌 반어적 느낌에 집중해서 주제적 메세지와 캐릭터를 그려간 영화 같네요. 나두 dvd 빌려서 봐야겠다. ^.^ 근데 블루 컬러 층에 속한 가장들이 우아한~ 무엇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은 가족 부양에 대한 희생때문일까요? 돈이라는 물질적인 수단이 적게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역겨운 현대사회는 로얄 층에게만 그 우아함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일까요?
우아함이란 단어. 우아한 세계라는 단어가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형의 글을 읽으니 왠지 저에게 멀미가 나는 짜증스런 느낌을 주니, 영화를 보면 감독의 의도대로 잘 따라가며 감상할 듯 싶네요. 조만간 볼께요. ㅎㅎ
Commented by sesism at 2007/08/16 14:56
저는 이 영화 마지막에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송강호 혼자만 가족들과 떨어져서 비디오 보며 울고, 엎은 라면 치우고. 그런데 라면 치우는거랑 비슷한 장면은 초반에 고문한 사람 차에서 내리면서 토사물 치우는 거. 그러니까 인구는 말씀하신 것처럼 노동을 바치는 기러기아빠이면서, 그가 몸담은 조직에서건 가정에서건 계속해서 뭔가를 치우고 뒷바라지해야하는 역할. 결코 우아하지 못하죠. 슬퍼요 정말.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17 00:18
유니마르/ 실은 그 삶이 우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우아한 세계라는 것은 없는 사람들이 볼 때 그렇게 보이는 세계일 뿐, 있는 자들의 그냥 평범한 환경에 다름 아니거든. 그 환경으로 진입하면 우아해질 것이고, 열심히 하면 집입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만큼, 노동력을 확실히 빨아낼 수 있는 수단도 없는거지.
영화 꼭 보렴.

sesism님/ 예. 늘 치닥거리. 불쌍한 소모품의 꿈. 정말 슬픈 영화입니다.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7/08/17 10:22
유니마르에게 한 답변.... 끔찍하네요. "그 환경으로 진입하면 우아해질 것이고, 열심히 하면 집입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만큼, 노동력을 확실히 빨아낼 수 있는 수단도 없는거지." 알면서도 우아해 지고 싶은, 그러나 이래저래 (물론 열심히 노력 안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발버둥을 쳐도 우아한 세계로의 진입은 참으로 힘들다는 거. 가끔은 우아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들러리 삶을 살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보면 바보스럽고,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암튼 복잡한 감정이에요. 저도 이 영화 무척 좋게 봤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송강호가 자기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는 장면은 답답하게 마음을 짓누르더군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17 18:22
비둘기는/ 사실 지금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난. 이 영화의 교훈은 돈에 목매지 말라는 것 아닐까?
Commented by krzys at 2007/08/18 07:29
이 영화의 이야기를 조금 확장하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나와요. "도구와 목적의 가치는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인구는 실수를 한 거죠, 돈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잡았으니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애석한 게 [가장]이라는 인구의 직책 때문에 별다른 방법이 있던 게 아니라는 거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19 14:37
krzys님/ 맞습니다. 사람 나고 돈 난거니까.
별다른 방법이 있던 게 아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정리가 잘 안되니 다음 기회에 좀 더 늘어놓아보도록 할께요.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