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얼마전 부자집 딸에게 데릴사위로 들어오라는 게시물을 올린 한 결혼정보업체가 있었다. 충분히 예측가능하겠지만 수도 없이 많은 남자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물론 그 경우는 일반적인 예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오디션을 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경우 결혼을 전제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은 오디션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 사람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조건은 외모(사진)와 그 사람이 내뱉은 자신에 대한 조금의 정보이며, 그 사람의 존재를 키우는 것은 자신의 망상이다. 열심히 발레로 12년간을 수행한 사람이니, 이런 사람일거야. 아무리 상대가 진실만을 이야기한다고 한들 듣는 이는 자기 마음이 끌리는대로 듣게 된다. 계속 전화를 기다렸다고 이야기한들, 정말 영화 속의 여인처럼 정말 전화만 기다렸다고 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돋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평가라는건 그 사람이 가진 매력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마음에 들면 다소 어두운 부분이 있다손쳐도 그녀는 역경을 이겨낸 훌륭한 사람이고, 마음에서 들지 않으면 그녀의 어두운 과거가 혹여 그녀를 이상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라며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다. 슬프지만, 어느 정도는 그게 사실이다. 때로 그런 판단은 성관계를 맺기 전과 맺고 난 후의 차이가 되기도 한다.

물론, [오디션]은 무척 가학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무서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고통을 준 후 내미는 사탕을 받아먹기를 바랬던 [착신아리]의 여주인공처럼, [오디션]에도 평범치 않게 성장한 그래서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애정에 궁핍했고, 학대에 시달렸던 그녀를 사랑하는 법은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과는 다르다. 그녀는 정말 쉽지 않은 방법, 자신만을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장담컨대 그것은 아마 목사가 예수를 상대로도 할 수 없는 일일게다. 하지만 극단적인 주인공이 아니라도, 이 영화의 공포는 통용될 수 있다. 일단 자신이 상대의 과거를 직접 겪지 않은 이상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온전히 아는 것도 불가능하고, 설사 안다한들 사랑은 개인적 영역이기에 모두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을테니. 방법은 맞춰가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함에도 타인을 자신의 잣대로 규정하고, 자신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기를 원한다. 영화의 가학적 표현들 - 예를 들어 '다리를 자르면 어디로 못 가겠지', '다른걸 다 없애면 나만 사랑하겠지'와 같은 - 처럼 그것은 일종의 폭력(물론 급은 다르지만)이다.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사육이다. 토사물을 받아 먹는 짐승을 만들어놓고서 어찌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온전히 얻을 수 없는 사랑이야기 - 그렇다, [오디션]은 분명히 로맨스영화이다 - 는 필연적으로 지독한 외로움의 정서를 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외로움은 블루톤의 색감 덕에 더욱 도드라진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색은 붉은 색이다. 아사미의 계부를 만나던 장면이나, 엔딩부의 가학적 장면은 붉은 색으로 그 불안함을 배가한다.
[오디션]은 결코 앞뒤가 틀어짐없이 들어맞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각본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품고 있다. 평가절하되는 것이 아쉬운 미이케 다카시의 걸작이라 생각한다.

2007. 7. Arborday.

덧 1. 영화를 보고난 후 그 유명한, '끼리 끼리 끼리 끼리 끼릭~'을 따라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일단 입에 배면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휏휏휏휏~'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한 걸로 알고있다.

덧 2. 8월에 미이케 다카시가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넌지시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시네바캉스의 상영스케줄을 보니 이제서야 실감이 나는군요. [오디션]도 해주었다면 더 좋았으련만!

덧 3. 긴급수정. 덧글을 보니 미이케 다카시 방한은 부천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술자리에서 넌지시 들은 이야기는 정확히 기억하기가 힘들어요. ㅠㅠ

by ArborDay | 2007/07/10 11:20 | 공포/호러 | 트랙백(1)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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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Horror Paper.. at 2007/07/10 12:43

제목 : 오디션 - 타인의 상상에 대한 가장 강렬하고 잔혹한..
7년전 부인과 사별한 아오야마는 아들 시게히코의 권유로 재혼을 결심한다. 친구인 요시가와는 영화의 오디션에 참가한 여배우 지망생들 중에서 신부감을 고르라고 한다. 그 중 아오야마는 자신의 이상형인 야마사키 아사미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무라카미 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1999년 작품으로 국내엔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소개되었다.이 영화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타인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방식으......more

Commented by dcdc at 2007/07/10 11:26
그 끼리끼리끼리 소리가 어찌나 공포스럽던지 -_-; 미이케 다카시 영화를 다 찾아보자 라고 생각했던 제가 원망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아직 다 보진 못했군요 ㅜ_ㅜ)
Commented by Zet at 2007/07/10 11:29
이거 함 봐야겠는데요 ^^ 잘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석원군 at 2007/07/10 11:30
전반부 내내 웃다가, 후반부 내내 떨다가.

돌아오셨군요. 저도 곧 돌아오겠습니다. 아직 인터넷이 안되서..
Commented by reme19 at 2007/07/10 11:38
기대보다는 덜 가학적이라.. 약간 실망했던.. 아주 약간이지만요.
Commented by 유니마르 at 2007/07/10 11:53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넘쳐나다 못해 폭주하는 다작의 작품들 중 개인적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베스트 5 중 한 작품이네요~ 영화의 후반부가 특히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오디션 보고 끼리끼리~~는 안따라했는데... 솔직히 거북이~ 보고나서는 한 1주일동안 내내...
휏휏휏웻~ 거리고 다녔다는거... ^^; 더운 날씨 시원하게 보내세요. 멀지 않은 시점에 시원한 맥주도 한잔~ ㅋ
Commented by lain at 2007/07/10 12:43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영화였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공포영화가 될 수 없었겠죠?
Commented by toluidine at 2007/07/10 12:43
로맨스영화가 공포라는 외피를 뒤집어 쓰고 가장 극단으로 나갈 때 나올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역시 시네바캉스였군요. 미이케 다카시가 온다면 이치 더 킬러와 오디션을 들고 싸인을 받으러...고고씽해야겠습니다. ^^
Commented by 문화파괴 at 2007/07/10 13:22
끼리끼리끼리~
Commented by sesism at 2007/07/10 13:46
정말 보고 싶어요! 그런데 끼륵끼륵의 공포가 너무 강해요! ^^;
Commented by newt at 2007/07/10 15:27
8월 4일, 5일로 잡힌 것 같은데.. 5일에 몰려있네요. 그 날 안되는데..-_ㅜ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7/07/10 17:18
이번 부천에도 오길 강력히 희망하는 중입니다......(특별 상영작 중 하나가 그의 신작 용과 같이입니다.)
Commented at 2007/07/10 18: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7/10 19:02
dcdc님/ 저도 아직 다 보지 못했어요. 자책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네요.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워낙 다작을 하는 감독이기도 하니. ^^

Zet님/ 기회가 되신다면 꼭 감상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조금 가학적이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미리 하시기를.

석원군/ 초반부는 다카시의 영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이지.
그나저나 얼른 돌아오렴.

reme19님/ 오. 제가 가졌던 reme19님의 이미지보다 훨씬 가학성을 잘 견뎌내셨었군요. 조만간 뵙기를 고대합니다.

유니마르/ 흐, 베스트 5를 공개해다오!!
난 '휏휏휏~' 요건 안 따라했는데, '끼리끼리~' 요건 일주일 정도는 입에 달고 살았을껄.

lain님/ 맞는 말씀이십니다.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죠, 확실히.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7/10 19:06
toluidine/ 동감 100%.
그런데 난 싸인 받을만한 DVD가 [착신아리] 밖에 없네, 이거. 끙.

문화파괴님/ 아, 그 여자 은근히 귀여운. 퍽.

sesism님/ 전 그 뭐냐, 전화 기다리던 그 모습. 으, 아직도 소름이 돋을 정도네요.

newt/ 나도 그 때 되봐야 알 것 같아. 일단 언제 오는지 정확히 정보를 입수한 후. ^^

천용희님/ [용과 같이] 이 작품도 보고 싶기는 하네요. 볼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ㅠㅠ

비공개님/ 감사드립니다. 간만의 칭찬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네요. (웃음)
Commented by 돼지콜레라 at 2007/07/10 19:07
끼리끼리끼리끼리-
전 그 자루였나.. 움찔움찔 거리던 것이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Commented by 오리대마왕 at 2007/07/10 20:18
아아, 정말 그 아가씨 최고였어요.
끼리끼리끼리~

소설로 먼저보고 영화를 접했는데, 전 소설도 좋았지만 "끼리끼리끼리" 때문에 영화가 훨씬 충격이 컸습니다.
Commented by Cynic at 2007/07/10 21:00
시네바캉스에서 미이케 다카시 작품들 보기 전에 한번 봐야겠군요.
보고 나서 적응 안되면 그 프로그램은 접어야... ㅠ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7/10 22:19
돼지콜레라님/ 그게 언젠가는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깜짝 놀라버렸었죠. ^^

오리대마왕님/ 아, 소설도 읽으셨군요. 읽고 싶기는 한데, 볼게 많다보니 미루고 있답니다.
끼리끼리끼리~ 역시 대단했죠.

Cynic님/ 이번에 개봉하는 작품들은 어쩌면 [오디션]과는 조금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씨네바캉스를 준비하시려면 [표류가]나 [데드오어얼라이브]를 보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새침떼기 at 2007/07/11 01:48
끼리 끼리 끼리 끼리 끼릭~
간만에 한 번 따라해봤습니다. -_-v
Commented by 수운 최제우 at 2007/07/11 12:26
상당히 재밌게 봤지만 미이케 특유의 정돈되지 못 한 이야기 구성은 짜증이 나더군요. 차라리 이야기 꼬지 말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갔으면 정말 대단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저의 결론은 훌륭한 공포물이지만 뭐가 조금 아쉬운 작품입니다.
Commented by toluidine at 2007/07/11 13:27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방한하는 것은 시네바캉스가 아니라 부천영화제네요. 20일날 깜짝상영이 '용이간다'로 공지가 나왔는데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온다고 하네요. 시네마테크에는 물어보니까 감독이 올지 안 올지 결정되지 않았음이라고 하더군요. 7월20일, 8월5일 연이어서 방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 보아요. 아우... 7월20일은 정말 시간이 안되는데... ㅜㅡ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7/11 13:32
새침떼기님/ 하하하, 저도 사실 글쓰면서 몇 번. ㅠㅠ

수운최제우/ 이야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영화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 궁금하구나. 때로는 너무 정돈된 이야기도 심심할 것 같은데 말이지.

toluidine/ 땡큐, 역시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구나. 양치기소년이 되어버렸네.
Commented at 2007/07/11 16: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7/11 18:23
비공개님/ 음,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들도 서열을 매기기가 곤란해요. 좋아하는 감독의 베스트를 꼽는건 정말 어려운 작업이거든요. 그래도 굳이 제 대답을 들으시겠다면, 저는 [오디션]을 꼽고 싶어요. 제 입문작은 [데드 오어 얼라이브]였답니다.
Commented by 뷰티풀그린 at 2007/08/09 15:13
오디션을 보고 그 여운을 즐기고자...
검색중에 님 블로그 찾았습니다.
전 아사미가 너무 안됐더라구요....
주인공 아자씨가 마지막에 눈물을 흘린 것처럼... (전 측은지심으로 이해했음)
그리고 끼리끼리끼리끼리~ 가 인상적인건 아사미의 묘한 목소리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암튼 공감하고 갑니다.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09 18:20
뷰티풀그린님/ 아, 검색을 통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글에는 적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두 번 째 볼 때, "아, 애들은 애처럼 커야해."라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 이유는 아이의 트라우마가 엽기적 사건으로 발전했다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뭐랄까 다른 사람을 고문하는 것에서 놀이와 비슷한 어떤 기운(좀 더 심사숙고해서 글을 쓴다면 설명이 좀 쉬울 것 같은데)을 느꼈거든요. 끼리끼리~는 아이가 놀면서 입으로 내는 소리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겉으로는 강인한 듯 자신을 포장하고 살지만, 그 내면에는 어릴 때 신나게 놀지 못했던 외로운 아이가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Commented by 뷰티풀그린 at 2007/08/10 09:24
오우.. 또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어린시절 '놀이' 박탈당한 사람들은 (그게 외부의 영향이든, 선천적인 것이든간에)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든 그 상실을 메우려 하는것 같아요.
아사미의 경우에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결합되어 고문의 형태로 나타난 것일테고...
아사미양..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ㅜ_ㅜ 그 전화'만' 기다리던 모습도..
너무나도 처연하게 느껴졌었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8/10 15:47
뷰티풀그린님/ 예, 바로 그겁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외로움이거든요.
Commented by 우노히카 at 2007/11/07 19:01
멋진 리뷰군요! 전 오디션중 끼리끼리와 사지 절단 장면 보다는
자루 포대와 전화 장면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더라는... 무음 속에서 고개만 살짝 끄덕임과 동시에 자루 포대가 움직였던것 밖에 없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이런 분위기가 지속 될줄 알았는데 갑자기 바늘을 꽃는... ㅜㅜ;
왜 항상 미이케 다케시는 바늘만 꼽는 걸까요? 이치더 킬러에서는 피어싱을, 오디션과 마스터즈 오브 호러 임플린트에서는 바늘을...
심지어 착신아리에서도; 주인공이 문 구멍으로 보는 데 바늘이 갑자기 튀어 나오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11/07 22:35
우노히카님/ 오호, 듣고보니 그렇네요.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
Commented by mazzy at 2008/03/04 12:47
Kiri kiri kiri...... 얼마나 무서웟는지..... 마니마니요;P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3/04 23:33
mazzy님/ 그 소리, 웬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내는 것 같지 않은가요?
Commented by mazzy at 2008/03/06 01:36
BRRRRRRR!!!!!!!!! 넘 무서워~~~~~~ 여....;P
Commented by 수염고래 at 2008/04/13 23:46
트랙백 감사합니다. 저도 이 영화 굉장히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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