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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라고는 지브리, 그 중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밖에 몰랐던 내게 곤 사토시와의 첫 만남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과도 같았다. 야한 장면이 나온답시고 히히덕거리면서 친구가 건네주었던 영화를 호기심에서 재생했을 때, 내 눈에 나타난 것은 흡사 다리오 아르젠토의 그것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법한 정말 멋진 - 그야말로 걸작 스릴러물이었던 것이다. 어라? 이런 애니메이션도 있나? 하룻밤새 자라버린 나무 위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씨익 웃는 고양이버스를 타고 마구 달려대며 동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살벌 그 자체인 이 작품의 충격에 나는 감히 버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곤 사토시가 카메라를 무척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새 확인할 수 있다. 한장면 한장면이 강박적인 카메라 앵글을 연상시킨다. 극중 인물의 시야에 맞춰 카메라를 돌려대는 솜씨도 능숙하다. 장면의 연출도 인상적이다. 우유를 사고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는 미마에서 공연중 앞으로 나아가는 마미의 모습(현실과 허구의 대조)으로, 빙글빙글 춤을 추다가 갑자기 드라마 속의 한 장면으로 넘어가는(미마에게 일어날 변화를 축약) 식의 자연스러운, 아니 절묘한 연출들은 작품내내 계속된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조명으로 착각하고 두 손을 들어올리는 장면도 어지간해서는 잊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카메라의 느낌에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인물들의 외모가 더해져,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은 실사영화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내츄럴 본 애니메이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의 장점은 명백히 애니메이션이 비교우위를 가질, 상상력의 표현에 있기 때문이다.
[천년여우]에서 곤 사토시는 그녀가 극중에서 맡았던 역할들을, 흡사 전생과 후생을 넘나들며 천년동안 저주받아 이루어지지 않을 하나의 사랑을 찾아 쫓아간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해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거나 그녀의 영화를 본 사람은 그녀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문자그대로 정말 들어간다) 그녀의 조력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소 생소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허구는 동력이 되고 한 여인의 삶이 될 수도 있으며, 여전한 위력을 가진다. 하지만 현실이 아닌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것은, [천년여우]가 [퍼펙트블루]와는 조금 다른 지점이다. 그가 허구의 세계를 꼭 차갑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겠지만 허구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도피처로서 기능하거나 다른 문제들을 유발하는 경우에 국한된 것이다.
[동경대부]는 특히 소외된 자들, 노숙자나 불법체류자들에게서 물씬 풍겨나오는 인간미로 인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작품이다. 게다가 캐릭터들의 입담은 때때로 마주치게 되는 사회문제들 - 아무래도 주인공이 노숙자들이다보니 - 을 바라봄에 있어, 무거운 기분을 갖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든다. 중간중간 보여지는 연말연시를 맞는 도시의 풍경은 세심하고 유려한 작화로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한마디로 즐겁고 따뜻한 작품. [동경대부]는 곤 사토시의 필모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작품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은 전작과 후작을 통털어 드라마가 가장 강조되어 있는 작품이며 사실과 허구의 이분법에서 다소 거리를 둔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간 상대적으로 개인의 영역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던 곤 사토시가 좀 더 복잡하고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로 옮겨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효율성은 증대되었지만 전체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는게 매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복잡성의 증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기만하도록 만든다. 자신만 속이면 책임으로부터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배트소년은 너무나도 유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다 네 탓이야. 난 잘못없어. 모든 일은 아줌마들의 수다처럼 배트소년의 소행으로 부풀려진다. 극단적으로 쫓기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배트소년의 행로는 정확히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향하고 있다. 돈에 쫓기는 경찰, 자살사이트, 자아분열, 집단따돌림, 도촬, 게임중독 등으로. 배트소년에게 맞은 사람들은 죽거나 혹은 편해지거나 둘 중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들이 처한 문제에서 벗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안식이다. "피곤해서 그래, 나와 함께 낮잠을 자는게 어떻겠니?"라고 유혹하는 마로미가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도피처. 우리는 [망상대리인]을 통해 그의 장점이 실사를 기반으로 한 리얼리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표현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곤 사토시 특유의 현실과 허구의 이분화된 그리고 동시에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는 이제 아이돌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그 세계들을 넘나드는 연출은 거의 완숙에 이른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 그의 기법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는 없다. 거대한 망상이 지나간 황폐한 모습을 전후 일본의 모습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장면이다. 2차대전이란 그야말로 일본의 거대한 망상의 결과 아니었던가. 묵시론적인 성격으로 폭주하기는 하지만, 곤 사토시는 이 미친 사회가 종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원상태로 돌아간다. 그것은 결국 모든 것이 반복될 것이다라는 예언일 것이다. 하긴, 망상에 빠지지 않는 인간을 본 적이 있나?
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분석은 이 작품을 진부한 것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 꿈이란 어떤 논리나 정형성으로부터 자유로운 현상이고, 그것을 소재로 한 [파프리카] 역시 매우 자유롭게 상상력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파프리카]의 감상은 그야말로 90여분 동안 타인의 꿈 안에서 허우적댈 수 있도록 만드는 놀라운 경험들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림이 아니고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그 극단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다 해도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를 [파프리카]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곤 사토시를 이야기함에 있어 가장 행복한 사실은, 그의 이름이 아직 과거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 꿈의 영역을 지나, 과연 그가 다시 들고 올 작품이 무엇일지를 기대하는 것은 '즐거운 기다림'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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