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1. 일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노홍철의 결벽증(?)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나서 생각났던 영화 - 단지 생각만 난 것이니 혹시 노홍철씨가 이 글을 읽게되던지(그럴리야 없겠지만), 그의 팬이 이 글을 읽게 되던지 흥분하지 마시기를. - 였는데,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감상했다(그런걸 보면 나도 꽤 게으르다). 조셉루벤은 결혼생활이란걸 꽤나 끔찍한 것으로 생각하나보다. 물론 그의 영화를 몇 편 못 봤으니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겠지만, [계부], [굿선], [적과의 동침] 모두 그런 느낌(다음 작품으로는 포가튼을 봐야겠다, 별 관심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적과의 동침]은 [계부]와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두 작품은 자신의 생각에서의 완전함을 상대방에게 강요함으로써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지지만, 그에 대항할 수 있을만큼 강해진 여성이 등장한다는 점이 포인트. [굿선]은 남편이 아닌 아들 얘기니 여기서는 제쳐두고. 그러고보니 줄리아로버츠는 [귀여운 여인]으로 신데렐라가 된 직후 두 편의 호러성향이 강한 작품(유혹의 선, 적과의 동침)에도 모습을 보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귀여운 여인]에서의 이미지가 몇 분 정도는 차용된 듯 싶다.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2. 영화에서의 남편은 때리고 사는 남자의 전형적인 작태를 보여준다. 지 멋대로 패놓고 선물로 달래준 후, 진짜 풀렸다고 믿어버리는 것. 물론 진짜로 풀리는 여자 -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해서 때리는거야, 원래는 착한 사람이지라고 생각하는 - 도 소수 있다고 듣기는 했다만, 입장 바꿔서 자신 같으면 풀어지겠나. 어쨌거나 일종의 싸이코기질을 보여주는 남자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대사들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특히 "난 너 없이 살 수 없어."라고 말한 후 바로 이어지는 "널 나 없이 살게 할 수 없어."라는 대사는 정말 재미있었던 동시에 마음 깊은 곳 어딘가를 찔린 듯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난 너 없이 살 수 없어."의 참뜻이 뭐였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상대방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텐데.
난 널 안다고 말하다가 아내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도, 새로운 연인에게 "상대를 완전히 알 수는 없어요."라고 말하던 줄리아 로버츠의 대사와 어우러지며 역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한심한 드라마처럼 여인의 불행을 새로운 남자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끝맺음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 내 생각에는 바람직한 - 영화의 결말이다. 영화 자체보다 영화의 제목 - 워낙 정치권에서 많이 써먹은 단어라 그런지 - 이 더 유명할 영화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

. 화장실 수세식 변기에 반지를 넣고 물을 내리면 그것이 영화 속에서처럼 변기 안에 남아있을 것 같기도 한데, 누가 해본 사람이 있는지. 1000원짜리 싸구려 반지라도 하나 사서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데, 궁금하더라구요. (웃음)

2007. 4. Arborday.

by ArborDay | 2007/04/21 15:48 | 비호러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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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abiko at 2007/04/21 16:05
저도 왜 반지가 안내려가는지 진짜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하시고 결과 알려주세요...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7/04/21 16:31
케이블에서 종종 이 영화를 해주곤 해서 봤는데, 줄리아 로버츠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색달랐어요.
제목이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인용되어서 영화에는 정작 관심이 덜했어요.

그리고 해피엔드 마지막 장면에선 물 내리면 반지가 떠내려가던걸요. ^^
정말 직접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Commented at 2007/04/21 16: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4/21 16:56
nabiko님/ 워낙 귀찮음을 타서 실험을 하게 될른지는. 하하하.

나무피리님/ [해피엔드]에 그런 장면도 있었던가요. 가만 보면 제 기억력도 아주 형편없는 듯 합니다. (웃음)

비공개님/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게 맞을 것 같네요. 글은 살짝만 수정했습니다. 감사드려요. (웃음)
저도 [귀여운 여인]에서의 줄리아로버츠보다 이 작품에서의 그녀가 더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병원에서 몇 번이나 엇갈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조셉루벤은 호러물의 연출 쪽이 적성에 잘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바닥에 널부러진 주인의 손을 떠나 홀로 반짝이는 반지를 보여준 엔딩이 참 기억에 남을 것 같더라구요. 물론 말씀하신 장면들도 좋았지요.
Commented by mavis at 2007/04/21 18:07
저는 계속 엇갈리길래 감독이 참 여리고 착한 사람이구나 했었는데....-_-;;
여자라서 그런지, 줄리아가 결혼 전에 너무 잘해줘서 몰랐다고 하는 말에 도대체 저런 놈을 추려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서 배워야 하나 어린 마음에 한참 궁금했습니다.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7/04/21 19:17
포가튼은 그냥 마음 비우시고 90분짜리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좋은 특수효과로 만든 [서프라이즈] 보신다 생각하시면 속 편합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4/21 23:07
mavis님/ 맘에 안든다고 일가족을 살해하기를 반복하는 [계부]에서의 피터오퀸을 보셨다면, 달리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런 놈을 추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답을 모르겠네요. 물론 뽑기운만은 아닐텐데.

천용희님/ 그래도 연기들은 잘 하나봐요. 그럼 90분 정도는 참아줄만하죠. (웃음)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7/04/22 16:27
저 덧글의 요점은 다른게 아니라 [서프라이즈]입니다.(은근히 힘든 영화입니다......)

조셉 루벤은 빨랑 다른 저예산 호러영화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중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호러에는 능력있는 분이니까요.
Commented by mithrandir at 2007/04/22 17:47
정말 결벽증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저도 결벽증이 조금 있다는 것... -_-;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4/23 15:18
천용희님/ 조셉루벤이 저예산호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확실히 호러에 재능이 있는 분이거든요.

mithrandir님/ 겁내지마세요, 누구나 조금씩은 결벽증을 가지고 있을테니까요. 저도 그래요. (웃음)
Commented by Ruii at 2007/04/26 11:07
흠...반지 종류에 따라 틀리거나 저 당시 수압으론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4/26 22:07
Ruii님/ 음, 스폰지에 물어볼까요? (웃음)
Commented by 수운 최제우 at 2007/04/27 15:44
제가 이제까지 영화에서 본 최악의 남편이었습니다. 그 끈질김과 사악함에 완전 ko! 그래 당신이 최고다. 나쁜 시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4/27 22:35
수운최제우/ 일 저질러놓고 영화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 남편들도 있는걸, 뭐. (웃음)
Commented by seimei at 2007/05/08 18:59
천원짜리 반지하고 진짜 반지하고는 중량감이 틀리기 때문에 실험결과가 틀릴걸요? 특히나 저 영화에서 줄리아가 착용했던 반지는 아마도 꽤 나 중량감이 나가는 스톤이 달려있던 것 같던데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5/09 14:21
seimei님/ 하하하. 귀찮아서 실제로 해볼 생각은 없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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