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22일
이방인 - 알베르 까뮈
1.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독후감을 써야할 책들 중에서 유일하게 죽음이 주된 소재로 사용된 소설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제목이 멋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이라는 것이 온전히 내 행동에 의해 정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 책 내용과는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 어린 시절, 어째서 '이방인'이라는 단어에 그토록 매료되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방인]에서의 모든 사람은 제목 그대로 낯선 자이다. 그 낯선 자들은 심지어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기까지 하는데, 예를 들어 뫼르소는 사람을 죽였는데도 그 사건의 중심에 서지 못한다. 하긴 살인사건에서 살인보다 더 중요한게 수두룩하니.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혹은 피고의 증언이 아니라, 객관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타인들의 판단이다. 판사, 배심원, 목사, 그리고 낯선 양로원의 사람들. 죄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까나? 모든 것은 겉돌고 있다.
2. 2부를 이루는 재판이야기는 일종의 부조리극의 느낌이다. 이 살인사건을 의도적으로 부풀린 기자들의 행태도 충분히 야유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테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에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로 이어지는 재판과정은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이다. 모두들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객관이라는 이름 하에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민다. 등장인물 중 가장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피고이다. 남의 이야기를 대하듯, 뫼르소는 사실적으로 사건의 추이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뫼르소가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비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귀찮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이자,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인물이다. 사형 - 그는 어쩌면 정당방위로 선고될 수도 있었고, 동정을 삼으로써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도 있었다 - 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에서의 주인공과 타인들의 대비는, 주인공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도 희생양이라면 희생양이다.
감정적으로 매말라 보이는 그이지만, 그리고 타인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된 그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많은 구경꾼이 와서 외로움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엔딩은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사람이란!!
한 글자도, 그리고 글자 사이에 놓인 하나의 의미조차도 놓치기 싫은 작품.
덧. 나이를 먹은 후, 학창시절 읽으라던 책들을 다시 읽는 경우가 간간히 있습니다. 많은 경우 당시에는 그토록 따분했던 책들이, 엄청나게 재미있다 - 비단 멋지기만 한게 아니라 - 는 사실에 놀라고는 하지요. 저는 학교가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좋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권하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좋은 책의 재미로부터 내모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읽으라는 책은 재미없어!"와 같은 편견을 만들어낸달까.
알고 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대부분의 작품들에 있어 공통적인 특징은 재미있다는겁니다. 이 작품이나 혹은 문학에만 국한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2007. 3. Arborday.
[이방인]에서의 모든 사람은 제목 그대로 낯선 자이다. 그 낯선 자들은 심지어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기까지 하는데, 예를 들어 뫼르소는 사람을 죽였는데도 그 사건의 중심에 서지 못한다. 하긴 살인사건에서 살인보다 더 중요한게 수두룩하니.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혹은 피고의 증언이 아니라, 객관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타인들의 판단이다. 판사, 배심원, 목사, 그리고 낯선 양로원의 사람들. 죄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까나? 모든 것은 겉돌고 있다.
2. 2부를 이루는 재판이야기는 일종의 부조리극의 느낌이다. 이 살인사건을 의도적으로 부풀린 기자들의 행태도 충분히 야유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테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에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로 이어지는 재판과정은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이다. 모두들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객관이라는 이름 하에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민다. 등장인물 중 가장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피고이다. 남의 이야기를 대하듯, 뫼르소는 사실적으로 사건의 추이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뫼르소가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비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귀찮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이자,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인물이다. 사형 - 그는 어쩌면 정당방위로 선고될 수도 있었고, 동정을 삼으로써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도 있었다 - 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에서의 주인공과 타인들의 대비는, 주인공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도 희생양이라면 희생양이다.
감정적으로 매말라 보이는 그이지만, 그리고 타인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된 그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많은 구경꾼이 와서 외로움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엔딩은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사람이란!!
한 글자도, 그리고 글자 사이에 놓인 하나의 의미조차도 놓치기 싫은 작품.
덧. 나이를 먹은 후, 학창시절 읽으라던 책들을 다시 읽는 경우가 간간히 있습니다. 많은 경우 당시에는 그토록 따분했던 책들이, 엄청나게 재미있다 - 비단 멋지기만 한게 아니라 - 는 사실에 놀라고는 하지요. 저는 학교가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좋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권하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좋은 책의 재미로부터 내모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읽으라는 책은 재미없어!"와 같은 편견을 만들어낸달까.
알고 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대부분의 작품들에 있어 공통적인 특징은 재미있다는겁니다. 이 작품이나 혹은 문학에만 국한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2007. 3. Arborday.
# by | 2007/03/22 14:02 | 애니/서적 | 트랙백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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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굉장히 조용하고 느릿한 내용에 지루함이 더한 이미지로 기억되는데
지금 다시 읽는 다면 이해가 되겠지요?
지금도 종종 꺼내 읽죠. 습관적인 삶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아직도 종종 꺼내어 보곤 합니다.
:D
정말 좋은 책은 몇번을 다시 봐도 새로 느끼는 점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책을 여러번 다시 읽는 편인데 이방인도 조만간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그 책이 좋은 작품이라는 증거겠죠.^^
학창시절에는 자기 스스로 작품을 고를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필요할 텐데요...국내에서는 너무 일관된 책들만 억지로 읽히는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소설 전집 류가 다 나올까요..-_-;;;
하는 짓을 보면 공감을 이루기가 어려운 사람인데 막판엔 어찌나 말 한마디가 와닿던지
참 재밌게 읽었더랬죠-
저도 이 작품으로 까뮈를 처음 만났어요. ^^
헤이님/ 장담할 수 있어요, 지금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겝니다.
vervain님/ 저도 [이방인]은 몇 번 읽었답니다. 말미에 수록된 부자가 된 아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어머니가 운영하는 여관에 투숙했던 이야기만 따로 읽은 것도 굉장히 여러번이었구요.
비둘기/ 원래 공부하려고 하다가도 누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잖아? (웃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건 대체로 읽어도 괜찮은 것 같아.
마케팅이 판을 치는 요즘보다는 과거의 경우, 훨씬 만족도가 높고.
좋은 책은 곱씹어볼만한 재미를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류의 재미이든간에 말이죠.
돼지콜레라님/ 공감해요. 제가 가진 리스트에 대한 반감이 가만 보면 학창시절에 생긴게 아닌가 싶어요.
dcdc님/ 사람만 안 죽이면 되죠, 뭘. 뫼르소, 은근히 쿨가이라서 멋지더라구요. (웃음)
rayray님/ 뫼르소 같은 사람, 옆에 있으면 정이 안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하지만 그가 내뱉은 말들이나, 생각의 흐름들은 한결같이 제 맘에 들더군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인데, 애써 부인하는게 더 웃기거든요.
근데 학교에선 그걸 각자 맘껏 느끼게 하질 않고, 심상이 어쩌고 주제가 어쩌고 화자가 어쩌고 강제로 '정답'이란 것을 쥐어주니 싫어질 수밖에요. 에휴...
기억이 새록새록 나려구 하는군요.
몽롱하고 몽롱해져서, 의식도 없고 짜증이 나는 것도 아닌, 그냥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사람을 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이입되었더랬어요 ㅋ
읽게 된 동기는 저와 같으시네요.
이끼님/ 다시 읽으심으로써 기억을 갱신하시는겁니다. (불끈)
Shoo님/ 확실히 그 내려쬐는 뙤약볓이 지배적 기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게다가 감정선은 참 건조하죠. 어릴 때는 뫼르소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키튼님/ 저처럼 어둠 - 좀 더 정확히는 어두운 소재를 다룬 매체 - 에 매력을 느끼시는 분일까요? (웃음)
또 보려해도 이상하게 대부분 결론과 과정을 대충은 알아서 일까..손이 안가는군요..^^;
혹시 나이 먹은 것에 대한 예찬으로 받아들일까 조심스럽지만, 사실 아는만큼, 겪은만큼 다른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때로는 자신의 경험만 고집하게 될 수도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는 이방인 뒤에 단 편 두 편이 더 실려있었는데, 저는 이방인보다 그 단편이 더 좋았었습니다.
아마 그 책을 읽을 당시엔 그 이야기들이 이해하기 더 쉬웠기 때문이었겠죠..^^;
지금도 이 책을 들춰볼 때면 이방인보다 뒤의 단편에 더 손이가요.
하지만 그 단편들의 제목도 모르고, 내용도 기억이 나지를 않네요. 저도 읽고 싶은데 말이죠.
제목을 가르쳐주시면 다음에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두 단편 중에 기억나는 제목은 '배교자', 혹은 '배덕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야만인(?)들에게 잡혀가서 그들의 종교를 강요받고 있는 한 문명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독백 형식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는 포로의 신분으로 신체적인 고통을 겪으며 그들의 신과 자신의 신에 대해 저울질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카뮈라면 어떤 결론을 내렸을 것인 지 이미 결정된 상태지만..^^;
이 책을 읽을 당시에 상당히 반기독교적이 되었죠.(지금도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ㅂ-;)
seimei님/ 음,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요? 전 제 운명을 그다지 장악하고 있지 못한 느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