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열외인간(Rabid)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실질적인 - 초기 단편을 제외한 - 두 번째 작품. [열외인간]은 전형적인 저예산영화로 실험적 의술의 실패가 육체의 변화(혹은 결합, 다시 말하면 은유적 의미에서의 돌연변이)를 가져와 인간의 통제력을 앗아가고 사회(혹은 인류)에 위협이 되는 무엇으로 변한다는 크로넨버그 특유의 소재를 흡혈귀 성향이 강한 좀비물로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잘못된 시술로 인해 육체의 변화를 일으킨 여주인공은 살아가기 위해 피를 필요로 하는데 그녀에게 물린 사람들에게는 바이러스가 전염되고, 병원체가 된 그녀만 그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지고 있어 피에 대한 열망 외에 이성적 사고를 병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열외인간]은 전작 [전율]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병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좀 더 설명하면 바이러스로 인해 제어할 수 없는 성욕망에 시달리고 키스나 포옹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달되었던 [전율]이나, 상처에 닿는 타액에 의해 원인불명의 흡혈증이 전염된다는 [열외인간]의 설정은 당시 예술계에 팽배해 있던 사랑의 죽음, 혹은 성병에의 공포를 그 기저에 깔고 있을 확률이 높다. 물론 흡혈귀라는 자체에서 성병을 떠올리는건 상투적인 언급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성기를 닮은 겨드랑이의 입 - 이 입으로 상대를 공격하려면 자세가 어떻게 나오겠는가 - 과 촉수의 모양, 여주인공의 섹스어필, 그리고 연인의 파국을 비극적으로 그린 결말 등은 [열외인간]이 의도적으로 성병에 대해 다루었음을 드러낸다.

원래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생각했던 여주인공은 씨씨 스페이섹 - 그래서 영화 속 포르노극장 앞에는 [캐리]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 이었으나 그녀가 그다지 섹스어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릴린 챔버스가 캐스팅되었는데, 훌륭한 캐스팅이라 생각된다. 영화의 백미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하고자 했던 여인과 애인이 통화를 하던 마지막 장면. 다소 지루한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상당한 재미를 제공한다.

by ArborDay | 2007/02/21 15:33 | 호러비디오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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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ansang at 2007/02/21 15:47
크로넨버그의 초기 걸작중 하나죠.
Commented by kkongchi at 2007/02/21 15:51
이 영화를 못 봤지만... 씨씨 스페이식은 좀 아닌것 같기는 하네요. 아주 특이한 매력을 가진 여배우이긴 하지만...섹시함과는 거리가 꽤 있죠..^^;
Commented by rumic71 at 2007/02/21 16:09
마릴린 체임버스는 물론 잘 된 캐스팅이긴 하지만, 포르노계 왕언니인 탓에 그녀가 몸을 뒤틀며 신음소리를 내면 엉뚱한 연상을 해버리게 됩니다...^^
Commented by 돼지콜레라 at 2007/02/21 16:10
저는 마지막의 쓰레기 수거차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수거해 간다는게 참 섬뜩했다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이끼 at 2007/02/21 16:19
섹시하지 않은게 매력이었죠....ㅡ,.ㅡ;;
공포영화에 섹시는 필수요소인데....ㅎ_ㅎ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1 17:48
hansang님/ 크로넨버그의 작품은 대체로 수준이 높아서, 저는 [열외인간]이 그의 평작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의 작품이라면 아마 평가가 한참 좋아졌을 영화죠.

kkongchi님/ 그렇기는 해요. 그녀의 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

rumic71님/ 앗, 그녀가 포르노계 왕언니였다는 말입니까? 그건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돼지콜레라님/ 마지막 장면도 괜찮지요. 전 꼭 그 장면에서 [피의 향연]이 떠오르더군요.

이끼님/ 헤헤, 섹시하면 좋지만 필수까지는 아니에요. ^^
Commented by qwer999 at 2007/02/21 20:21
어릴때 보면서 너무 무서워서 끝까지 못봣던 기억이 나는군요.
겨드랑이로 흡혈한다는 내용까지 읽으니 기억이 났습니다. ㅠㅠ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챙겨봐야겠습니다 :)
Commented by myungworry at 2007/02/21 21:14
크로넨버그가 만든지 모르고 봤다가 마지막 쓰레기 수거 장면에서 "어 이거 뭐야!"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겨드랑이의 입은 너무 노골적이라 살짝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1 22:16
qwer999님/ 겨드랑이로 흡혈하는게 흔한 설정은 아니죠. 시간이 나신다면 꼭 한 번 쯤 다시 감상해보세요. 아마 그 때와는 또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겁니다.

myungworry님/ 꼭 초기작들만 그런건 아니지만, [전율], [열외인간], [플라이]에는 성병에 대한 공포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해요. 뭐, 성적인 설정은 [비디오드롬], [엑시스텐즈], [크래쉬]에도 담겨 있었고.
그가 '섹스에 의한 공포의 왕'이라고 불렸던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셈이죠. ^^
Commented at 2007/02/21 23: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규영 at 2007/02/21 23:25
저는 이 영화 고딩때 으뜸과 버금에 갔다가, 크로넨버그 영화인줄도 모르고 그냥 표지가 독특하길래 빌려봤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오프닝 장면의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성기모양을 닮은 괴물도 기억나고...
Commented by 수운 최제우 at 2007/02/22 00:34
아 이 작품 오래 전에 비디오로 재밌게 본 작품이군요. 역시 형의 안목은 대단하십니다.
Commented by 미디어몹 at 2007/02/22 09:12
arborday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雅人知吾 at 2007/02/22 10:28
매릴린의 이름을 양지에서 보게될 줄이야!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2 18:49
비공개님/ 늦게라도 꼭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이규영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법도 합니다. 그게 언제적 일이래요. ^^

수운최제우/ 너도 이 작품을 봤구나. 올해는 반드시 크로넨버그 영화를 연대순으로 재감상하겠다고 마음먹은지라 영화를 보기는 진즉 봤는데, 이제서야 글을 올렸지.

미디어몹님/ 감사드립니다.

雅人知吾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더라구요. 전 딱 이 작품 하나만 알았답니다.
Commented by 김응일 at 2007/02/22 21:49
소장하고 있으나 아직 꼼꼼히 보질 못했어요.. 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2 23:29
김응일/ 오호, 이런 녀석도 소장하고 있었구만. 요즘은 많이 바쁜 것 같으니, 시간 날 때 챙겨보렴.
Commented by jgjunn at 2007/02/23 19:37
85년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 동네에서 비디오 플레이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지름신의 강림을 받으신 아버지께서 어디서 돈이 나셨는지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들고 오셔서 우리를 놀래킨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께서 아무 생각없이 빌려오신 작품 중에 이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전혀 없이 비디오를 통해 감상했던 작품들이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열외인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까지도 겨드랑이 촉수라든가, 쓰레기차 수거 씬 등 상당히 강렬한 인상이 남아있는 작품입니다. 어린 마음에 가슴 졸이며 부모님과 함께 봤었습니다만, 직접적인 묘사는 없었어도 은근히 XX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습니다.

다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지, 언제 한번 꼭 다시 감상하도록 해야겠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4 08:32
jgjunn님/ 많은 것들을 접한 후 감상하는 지금보다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접했던 그 때 작품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뭐랄까. 당시는 뭐든지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던 시기였거든요. 어리기도 했거니와.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은 마음만 먹으면 대체로 구할 수 있으니, 꼭 한 번 감상해보시기를 권합니다.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2/24 11:15
앗, 이거 제가 불과 1주일 전에 처분한 비디오네요. 하하.
(구매자가 혹시 ArborDay님이셨나..^^)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4 11:22
지루박님도 좋은 작품들 많이 가지고 계셨나봅니다. 블로그에 가서 훔쳐보니 일주일 전 즈음 판매하신 물건들이 장난이 아니던데요.
(아, 구매자는 아쉽게도 제가 아닙니다. ^^)
Commented by N. at 2007/02/26 02:47
어윽, 친구네 집에서 6학년 때 이걸 보다가 메스꺼움 때문에 결국 꺼버렸어요.
아마도 대학생 때? 아니면 첫 직장을 다닐 무렵? 다시 봤는데 그땐 끝까지 봤지요. 그러나 그때만 해도 크로넨버그, 참 무시무시하다 생각했었는데... 뭐 지금은 <비디오 드롬>이 됐든 <라비드>가 됐든 낄낄거리면서 볼 수 됐습니다요. 흐흐;;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6 10:24
N.님/ 크로넨버그 영화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조금 머리가 큰 후 들기 시작하더군요. 어릴 적에는 그의 작품 중 좋아하는게 몇 편 안 되었답니다. 지금은 다 좋아하지만요. ^^
Commented by N. at 2007/02/26 16:30
저도, 웬만큼 나이가 들고서야 그의 영화가 좋더라고요. 아마 <엑시스텐즈> 개봉 전후였던 거 같은데, 그때 그 사람 영화들 중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을 쭈욱 찾아보면서 우와~ 했답니다. <비디오드롬>을 보면서는 내내 감탄만 했더랬죠. 저때 어떻게 저런 상상을 했을까...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6 17:32
N.님/ [비디오드롬]에서 보여준 상상력은 정말 대단했어요.
입만 벌리면 [데드링거]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크로넨버그의 작품이라 떠들어대고 다녔던 작품인데. ^^
제가 크로넨버그라는 이름을 사랑하기 시작한건 정확히 [데드링거]를 본 후였습니다. [데드링거]를 보고나서 바로 비디오대여점으로 다시 가서 [비디오드롬]을 한 번 더 대여했었죠. 영화보다도 그 당시의 감정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나네요.
Commented by seimei at 2007/03/26 20:10
ㅋㅋ그렇죠 씨씨는 매우 안 섹스어필한 배우중 한명이라고 생각해요. 가슴수술을 하고 분장을 새롭게 하면 달라질까요?
어쩃든 그 덕분에 캐리가 더 공포스러워졌잖아요. 캐리가 섹스어필했다면 그 영화 재미는 별로 보장 못했을 것 같네요 소설의 재미는 뒤로하더라도.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3/26 23:27
seimei님/ 동감해요. 씨씨스페이섹은 분명히 섹스어필한 배우는 아니죠. 두 영화 모두에서 최적의 여배우가 기용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하로기 at 2007/05/17 12:13
맞아요. 그녀의 캐스팅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어필이었지 않았을 까요.
하드코어 포르노계의 ...-_-;;
rumic71님 말쑴처럼 왠지 그녀가 나오면 갑작스럽게 XXXXXX 해버릴것 같은 이상한(?) 긴장감이 들더라구요. ㅎ.ㅎ
정말 나이스한 캐스팅이었던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5/17 13:49
하로기님/ 앗, XXXXXX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넌지시 비공개덧글로 알려주세요~
이 영화를 보면서 매를린 챔버스는 참으로 나이스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계통의 왕언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약간 충격(?)을 먹었어요. 하긴 공포영화에 포르노계의 왕언니가 나오는게, 아주 드문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얼마전 제나제임슨이 나오던 [삼하인]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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