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

[스포일러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페킨파의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는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애초의 명분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애당초 베니는 그렇게 심한 악한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애인의 죽어버린 전애인에게 사소한 질투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삶이 시궁창같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을 뿐. 베니는 죽은 자의 목을 잘라오면 이 시궁창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소풍을 떠나듯 가르시아의 무덤을 향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랴. 돈이 걸렸거늘. 돈을 찾아 떠나는 폭력의 여행 길에서 베니는 불량배들을 만나고, 배신당하며, 고통을 종용받는다. 그렇다.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는 잠재된 폭력성을 회복하는 남자 - [어둠의 표적]에서의 수학자와 마찬가지로 - 를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보호를 위해 폭력을 휘두르던 - 여인을 강간하려는 불량배들을 살해한 - 그들은 점점 폭력에 익숙해져간다. 베니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던 순간, 호텔의 방을 내달라는 그 장면에서 여인은 말한다. "특실로 주세요." 점점 폭력에 익숙해져가는 그들이지만, 이 순간까지는 아직 괜찮았었다.

시체의 머리를 자르려던 그 순간, 누구에겐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베니. 정신을 차려보니 애인은 죽어 나자빠져 가르시아의 무덤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이 결정적으로 틀어졌을 때, 즉 애인이 죽었을 때 베니는 생각한다. 이 놈의 시체는 대관절 무엇이관대 많은 돈이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까지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가는 등 죽음을 부르는가(일종의 질투).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죽어서까지 신체훼손을 당해야 하는가(피해자로서의 연민). 베니는 가르시아를 질투하기도 하고, 우정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부조리한 상황. 영화는 시종일관 합리적이지 못하다. 폭력이 어디 합리적이던가.

상황이 이 쯤 되자 베니에게 애당초의 목적, 돈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게임은 공정하지 않았고, 이미 베니는 너무 많은 댓가를 지불했다. 결혼을 원했지만, 애인은 죽어버렸다. 베니는 가르시아의 목을 자를 마음만 먹었지, 행동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이제 그가 원하는 것은 이 비극을 가져온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오는 길과 가는 길은 같은 길이지만, 결코 같을리가 없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계속 된다. 그가 파리떼와 여행하며 뜨거운 뙤약볕 하에서 가르시아의 머리를 가져간 그 근원지, 이제 그 곳에서는 그 머리의 필요조차 없어져버린 것. 이건 농담도 무척 고약한 농담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순간적인 마피아의 분노가 현상금을 만들고, 관심조차 사라져버린 그 돈이 배신과 죽음을 낳았던, 즉 무의미한 뻘짓이 무한정 커져버린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사라져버린 분노와 이미 죽은 시체가 유령이 되어 산제물들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것. 이 얼마나 허무하고, 섬찟한가. 이것이 진정한 유령이다.

제목의 살벌함과는 달리 이 작품은 폭력의 피카소라는 페킨파의 명성에는 다소 못 미친다. 최후의 대결이 있기 전까지는. 영화의 엔딩 - 위의 사진 - 은 정말 인상적이다. 너도 (베니처럼) 이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돈에 정신차리지 못하는 평범한 속물이 아니더냐. 넌 아니라고 생각할테지만 여행을 한 번 떠나는 순간, 너 역시 그런 운명이 될 것이다라는 경고를 담고 있는 관객을 향한 총탄세례. 두 말 할 나위 없는 명작이다.

2007. 2. Arborday. 

by ArborDay | 2007/02/14 12:47 | 비호러 | 트랙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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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이세상을 알마렌으로 at 2008/03/25 18:22

제목 :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지고 와라 (1974년)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감독 : 샘 페킨파(Sam Peckinpah) 주연 : 워렌 오츠(Warren Oates)배경이나 스토리는 많이 다르지만 조금 맹한 구석이 있는 별볼일없던 주인공의 폭력성이 홍수에 댐 무너지듯이 순식간에 바깥으로 폭발하는 점은 Straw Dogs와 비슷합니다. "와일드 번치"보다 폭력의 강도는 조금 덜 한편이고 비록 놈팽이기는 하지만 악한은 아닌 한명의 인간이 너무도 쉽게 폭력......more

Commented by 딸기향해열제 at 2007/02/14 15:53
보려다가 끝내 같이 보지 못한 영화 중 하나가 된 작품이네요..^^
글 잘 봤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당신의 글(과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은
공포영화를 지독히도 좋아하지 않는 나를
공포영화를 지독히도 좋아하는 분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끔 만들기에 충분하답니다.
Commented by 수운 최제우 at 2007/02/14 16:12
진짜 너무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비둘기는... at 2007/02/14 16:37
페킨파 감독의 작품은 별로 본 게 없는데, 유일하게 본 영화가 이 영화같아요. 그런데 보기 전에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그다지 큰 재미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매력은 있는 영화같아요. 다시 한번 봐야할 것 같아요. 다시 보면 이 영화의 재미를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유니크루슈 at 2007/02/14 17:06
제목 하나는 맘에 드는군요.. 보고 싶습니다 ^^
Commented by 니와 at 2007/02/14 17:38
으아 제목도 그렇고 보고싶습니다 ;ㅅ;
구정 끝나고 손을 대봐야겠어요.
Commented by 미디어몹 at 2007/02/14 19:03
arborday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메인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Commented by 석원군 at 2007/02/14 21:00
자니 오츠의 감동할만한 1인극이었죠. 극장에서 보니 더 낫더군요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14 21:54
딸기향해열제님/ 오랫만에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셨군요. 마이 다링. ^^

수운최제우/ 손이 안 가는건 어쩔 도리가 없지, 뭐.

비둘기/ 난 페킨파의 영화를 다섯 편 정도 본 것 같은데, 맞나? [가르시아], [어둠의 표적], [와일드번치], [겟어웨이], [철십자훈장] 다 괜찮았어. 내가 워낙 폭력영화들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유니크루슈님/ 제목 죽이죠? ^^

니와님/ 예, 한 번 쯤 감상하실만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미디어몹님/ 감사드립니다.

석원군/ 햐, 정말 멋지더라. 그 주연배우.
난 아쉽게도 극장에서 보려다가,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서 발걸음을 옮겼지.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뭐 또 기회가 있겠지. ^^
Commented by 속물/위선자 at 2007/02/14 21:57
중반부부터 롤러 코스터였습니다. 너무 덜덜 떨린 작품이었습니다.
<어둠의 표적>처럼 인간의 변화를 잘 그린 작품이죠.
목적을 상실한채 무차별 폭력을 가하던 모습...
워렌 오츠의 검은 선글라스...억울한 표정...
정말 생각만해도 떨리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14 22:03
속물/위선자님/ 예, 말씀처럼 중반 이후 롤러코스터였죠. 워렌오츠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몽중인 at 2007/02/14 23:10
아. 이 글 읽고 싶은데 스포일러때문에 차마 클릭못하고 있습니다. DVD를 사 놓기만 하고 보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후딱 보고 정갈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Commented by 방랑객 at 2007/02/15 11:35
제목 한번..; 뭔가 엄청난 영화일 것 같군요-_-;;
Commented by allthat at 2007/02/15 16:37
훑어보니 리로드된 박찬욱의 영화평론서 사 보시고 하나하나 따라가고 계신 듯. 맞죠!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15 16:49
몽중인님/ DVD를 사두셨으면 얼른 보셔야죠. ^^

방랑객님/ 엄청난 영화인건 맞지만, 그런 의미로 엄청난건 아닌지도 모릅니다. ^^

allthat님/ 어이쿠, 날카로운 말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오마주 때문이 맞습니다. 원래 좋아하던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의 글을 읽으니 보고 싶어져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웃음) 그런데 제가 요즘 그를 따라가고 있는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우디알렌 영화를 주로 보는걸요.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2/17 15:37
이 작품의 매력은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가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고용인 찾아가는 데까지는 그래도 저쯤 가면 많이 간 게지 싶었는데, 어 어 하는 사이 결국엔 끝까지 가버리더군요. 페킨파 형님 아니면 누가 저런 클로즈업으로 영화를 끝맺을 수 있을지.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0 14:59
wideawake님/ 폭력이란 명분과는 관계없이 원래 끝을 봐야 하는 법인가 봅니다. 총구를 떠난 총알이 의지를 가지고 도중에 떨어져버리는 것은 아니니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페킨파야말로 폭력영화에서 칭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hihi at 2007/02/21 16:43
국내 출시된 이 영화 dvd는 대략 비디오 가져다 뜬 거 같던데, 괜찮을까요? <관계의 종말>도 너무 다시 보고 싶은데, 도통 찾을 수가 없네요. 그저 <와일드 번치> 다시 보기 하면서 만족해야 하는지... 영어가 짧은지라 코드 1번을 구하기도 좀 망설여지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2/21 17:49
hihi님/ 아, 그렇게 상태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비디오를 자주 보고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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