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08일
모두, 꿈을 꾸세요 - 귀여운 여인
에드워드는 고소공포증 환자이다. 당연할테지. 그저 올라가는 것(겉보기에는 성공으로 보이는)에만 신경을 썼는걸. 올라가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사람에게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마나 두렵겠는가. 웃기는건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그는 단지 특실이라는 이유로 호텔의 꼭대기층에 거주한다는 점. 이 부조리한 상황의 묘사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사실은 변질된 꿈(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말하기를 원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척 봐도 잘 나가는 것이 분명한 에드워드가 하는 일이 적대적 인수 - 약탈적 자본주의의 꽃인 - 라는 사실과 스크린을 쳐바른 돈다발의 흔적은 미국인의 꿈이 물질주의에 의해서 변질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비비안은 꿈을 쫓아 헐리웃으로 왔다가 현실의 냉혹함에 무너져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꿈을 꾸기를 자의적으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중단한 것이다. 정말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냐는 에드워드의 말에 대답하는 비비안.
"그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정말 그렇게 믿게 되요."
당연하겠지만 정말로 비참한 것은 몸을 파는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의 파괴이다.
에드워드가 만난 '귀여운 여인'은 물질적 가치에 의해 상품화된 비비안의 쭉쭉빵빵한 외모가 아니었다. (예쁘지 않았으면 기회라도 있었을까보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만났던 '귀여운 여인'은 그녀의 안에 숨어 있는 순수함, 즉 에드워드에게 결여된 속성이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했던) 성공가도에서 그는 자신이 놓쳐온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감정의 회복, 인간성의 회복. 그리고 비비안은 자신을 좌절하게 했던 얼마간의 물질을 획득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두 캐릭터의 사랑 -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신데렐라 이야기 - 은 결국 변질되거나, 무너져버렸던 꿈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영화의 마지막 흘러나오는 보이스. 노골적으로 영화는 자신의 목적을 드러낸다. 그리고 비록 변질된 꿈이나 꿈에 대한 좌절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계속 꿈을 꿀 것을 권한다.
"헐리웃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은 여기 옵니다. 꿈의 땅 헐리웃. 일부는 이루어지고, 일부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꿈을 꾸세요. 여기는 헐리웃입니다."
꿈이라는 것을 꾸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노동자를 현혹하기 위한 목적에서 과장될 수 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꿈꾸는게 나쁜가? 나는 신분 변동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조금은 나아진 세상이라고 믿는다. (물론 딱 신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현 및 유지가 가능하다면 신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낫겠지.) 게다가 꿈은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무슨 말이냐면 열심히 살아갈 추동력이 되어주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2007. 2. Arborday.
덧 1. 영화는 현명합니다(혹은 약삭빠릅니다). 각각의 캐릭터를 옹호할 수 있는 여지 - 예를 들면 에드워드는 원래 그 일을 하기 싫어했다거나, 비비안은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거나 - 를 만들어놓았거든요. 그들에게 쉽게 감정이입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멋지기 때문만은 아닐겁니다. 어찌 되었거나 [귀여운여인]은 삶의 무게 속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을 놓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정말 꿈같은, 동시에 매력적인 이야기일거라 생각합니다.
덧 2. 사실 이런 류의 영화는 여성을 위한 판타지물일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잘 감상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제대로 본 건 이게 처음이로군요. 비록 장면장면은 거의 알았지만. 어쨌거나 그게 전부는 아닌 영화더군요. 게다가 이건 개인적 성향에 가깝겠지만 저를 정말로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사실은, 제게 이 작품은 여성의 판타지라기보다는 남성의 판타지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풀어말하면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맘만 먹으면 정말 무엇이든 다 해 줄 수 있는 남자. 그것도 멋지지 않나요? 물론 상상 속에서 리처드 기어가 되는 맛도 나쁘지 않지만.
덧 3. 이 작품의 O.S.T는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 중 하나였습니다. 'It must have been love'를 비롯하여 이 O.S.T에는 정말 좋아하는 곡이 많았는데, 영화도 보지 않고 카세트테이프를 샀던 이유는 길을 걷다가 흘러나온 음악 'Fallen'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레코드점에 들어가서 "지금 나오는 이거 주세요."라고 말한 후 들고 나왔었죠.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비비안은 꿈을 쫓아 헐리웃으로 왔다가 현실의 냉혹함에 무너져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꿈을 꾸기를 자의적으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중단한 것이다. 정말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냐는 에드워드의 말에 대답하는 비비안.
"그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정말 그렇게 믿게 되요."
당연하겠지만 정말로 비참한 것은 몸을 파는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의 파괴이다.
에드워드가 만난 '귀여운 여인'은 물질적 가치에 의해 상품화된 비비안의 쭉쭉빵빵한 외모가 아니었다. (예쁘지 않았으면 기회라도 있었을까보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만났던 '귀여운 여인'은 그녀의 안에 숨어 있는 순수함, 즉 에드워드에게 결여된 속성이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했던) 성공가도에서 그는 자신이 놓쳐온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감정의 회복, 인간성의 회복. 그리고 비비안은 자신을 좌절하게 했던 얼마간의 물질을 획득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두 캐릭터의 사랑 -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신데렐라 이야기 - 은 결국 변질되거나, 무너져버렸던 꿈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영화의 마지막 흘러나오는 보이스. 노골적으로 영화는 자신의 목적을 드러낸다. 그리고 비록 변질된 꿈이나 꿈에 대한 좌절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계속 꿈을 꿀 것을 권한다.
"헐리웃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은 여기 옵니다. 꿈의 땅 헐리웃. 일부는 이루어지고, 일부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꿈을 꾸세요. 여기는 헐리웃입니다."
꿈이라는 것을 꾸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노동자를 현혹하기 위한 목적에서 과장될 수 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꿈꾸는게 나쁜가? 나는 신분 변동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조금은 나아진 세상이라고 믿는다. (물론 딱 신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현 및 유지가 가능하다면 신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낫겠지.) 게다가 꿈은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무슨 말이냐면 열심히 살아갈 추동력이 되어주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2007. 2. Arborday.
덧 1. 영화는 현명합니다(혹은 약삭빠릅니다). 각각의 캐릭터를 옹호할 수 있는 여지 - 예를 들면 에드워드는 원래 그 일을 하기 싫어했다거나, 비비안은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거나 - 를 만들어놓았거든요. 그들에게 쉽게 감정이입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멋지기 때문만은 아닐겁니다. 어찌 되었거나 [귀여운여인]은 삶의 무게 속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을 놓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정말 꿈같은, 동시에 매력적인 이야기일거라 생각합니다.
덧 2. 사실 이런 류의 영화는 여성을 위한 판타지물일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잘 감상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제대로 본 건 이게 처음이로군요. 비록 장면장면은 거의 알았지만. 어쨌거나 그게 전부는 아닌 영화더군요. 게다가 이건 개인적 성향에 가깝겠지만 저를 정말로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사실은, 제게 이 작품은 여성의 판타지라기보다는 남성의 판타지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풀어말하면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맘만 먹으면 정말 무엇이든 다 해 줄 수 있는 남자. 그것도 멋지지 않나요? 물론 상상 속에서 리처드 기어가 되는 맛도 나쁘지 않지만.
덧 3. 이 작품의 O.S.T는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 중 하나였습니다. 'It must have been love'를 비롯하여 이 O.S.T에는 정말 좋아하는 곡이 많았는데, 영화도 보지 않고 카세트테이프를 샀던 이유는 길을 걷다가 흘러나온 음악 'Fallen'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레코드점에 들어가서 "지금 나오는 이거 주세요."라고 말한 후 들고 나왔었죠.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 by | 2007/02/08 10:26 | 비호러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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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ism님/ 부럽긴요, 정답을 추구하는 사람은 재미없어 보이는걸요(정답 수준의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dcdc님/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구요. 조금만 관대하게 바라보자면, 퀄리티도 꽤 높고 말이죠.
돼지콜레라님/ 그럼 한 번 감상해보세요. 제가 그 동안 줄리아로버츠를 별로 안 좋아했던 이유가 이 작품을 안 봐서라는 주변의 이야기가 확실히 맞는 것 같네요.
사실 이 작품을 보게 된 첫번째 신호탄은 당황스럽게도 휴그랜트를 좋아하게 된 사건이지. [어바웃 어 보이]에서의 그를 보고, 그의 작품을 보다가 [노팅힐]을 보게 된 거고. 그래서 줄리아 로버츠에 대한 비호감이 어느 정도 제거되었지. 그렇게 겸사겸사 거슬러 올라가던 중, 인터넷에서 또다시 'Fallen'을 들었어. 그러자 그걸 영화 속에서 확인하고 싶다는 거스를 수 없는 충동이 생기더라.
물론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나서는 영화만 봤지. 재미있더라고.
히치하이커님/ 사실 저도 줄리아 로버츠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는 매우 낮습니다. ^^
미디어몹님/ 감사드려요. ^^
아. 배너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