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26일
왼편 마지막 집
잉마르 베르히만에게 깊은 감화를 받았던 웨스크레이븐은 강간 후 살해된 딸에 대한 복수를 부모가 직접 치른다는 [처녀의 샘]의 이야기를 차용한 공포영화를 만들기로 마음 먹는다. 영화의 전반부는 크루그와 동료들에 의해 자행되는 두 명의 여자에 대한 폭력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들에 대한 부모의 폭력이 보여진다. 영화의 폭력의 수위는 결코 약하지 않아 이 영화는 역사 속의 가장 끔찍한 작품 중 하나로 회자되는데,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수많은 항의로 인해 개봉 초기에 (숀커닝햄의 동의 하에) 극장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영화를 더욱 끔찍하게 만든 것은 표현의 수위가 아니라 영화의 사실성이었다.(이 영화의 광고캠페인은 "계속 반복하라, 이것은 단지 영화일 뿐이다."라며 보여지는데, 이것이 허튼 소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볼 것 없는 이 광고캠페인은 MGM에서 출시된 dvd에 서플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한 사실성은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스타일에서 나온다(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편집 일 외에는 영화현장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웨스 크레이븐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의심이다).
영화는 마치 미국의 한 시골 마을의 정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범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발랄한(때로는 서정적인) 음악이 영화 전반에 걸쳐 흘러나오고 있으며, 끔찍한 범행이 일어나는 곳으로 생각하기 힘들만큼 자연광경을 아름답게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더더욱 제고하는 것은 거친 입자(16미리를 35미리로 확대하는 것에 인한 스타일)이다. 범행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호수에는 오리가 떠다니고, 나무 가지 사이로는 햇빛이 스며들며, 새들은 날아다닌다. 이렇게 대비되어 보이는 추악한 범죄와 아름다운 경관은 이 영화의 목적이 숨겨져 있는 악을 까발리는 것에 있음을 보여준다.신과 종교, 그리고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던 [처녀의 샘]을 가져왔지만, 웨스크레이븐이 [왼편 마지막 집]을 통해 의도했던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의 의도는 숨겨져 있던 악을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호수 속에 가라앉은 시체(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웨스크레이븐의 신앙, 침례교의 침례의식을 연상시킨다)는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미국 사회내의 악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부모의 복수는 미국 건립 당시의 '원죄' - 개척시대부터 강조된 '가족'이라는 미국의 가치가 실상 자신들이 땅을 빼앗은 인디언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 즉 자신들의 폭력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필연적으로 폭력을 내포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 로까지 거슬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웨스크레이븐이 보여주고 싶었던 또 하나의 사실은 누구나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페킨파의 [어둠의 표적]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학자의 겉모습을 벗고 자신 내면에 잠재한 폭력성을 보였던 것과 같이, 신앙인의 모습을 벗고 광기를 내보이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부모를 보여준다. 한없이 평안한 집의 가장이 전기톱을 사람에게 들이대는 것은 이미 정상을 벗어난 일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끝난 후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 넋이 나가버린 부모의 모습을 보라. 그들은 정말 엄청난 폭력을 자행했지만 사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낯선 이방인에게 음식과 잘 곳을 내어주는 사람들이었다.
단언컨대 이 작품은 거장의 첫걸음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물론 영화는 상업적으로 만들어졌고(사실 모든 영화는 상업적이다), 베르히만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철학적 깊이도 얕아보이며 가벼운 느낌을 던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의미에서 진지한 사회적 시각 - 예컨대 우리의 적은 내부에 있어요와 같은 고발과 베트남전에 대한 반성 및 자기혐오 - 을 담고 있으며, 그런 시선은 주적의 외형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이 영화가 낡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 [왼편 마지막 집]은 영화 외적으로 숀커닝햄과 웨스크레이븐을 각성(?)시켰거나 혹은 장르에서 활동하도록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가진 영화라는 사실. 물론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진 최소한의 의의일 것이다.
덧 1. 지금은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로 장르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숀커닝햄과 웨스크레이븐이지만, 당시의 그들은 호러에 대해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답니다. 크레이븐의 경우 편집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고,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에 무지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겪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는 크레이븐에게 시나리오, 스토리보드, 현장감독 등 전반에 대한 값진 경험이 되었을겁니다.
덧 2. 이 작품의 타이틀을 두고 커닝햄과 크레이븐, 그리고 그 친구들(촬영장소를 제공하거나, 배우로 나왔던)은 설전을 거듭했는데, 얼추 추려진 타이틀은 모두 세 개였답니다. [크루그와 그의 동료들], [Sex Crime of the Century], 그리고 마지막으로 [왼편 마지막 집]. 첫번째는 이 영화의 악당두목이 크루그 -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로 이어짐을 알 수 있겠죠 - 였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영화 속 농담 - 세기 최고의 성범죄자는 바로 프로이드라는 - 때문이고, 세번째는 내용과는 별반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결론을 내지 못해 세 지역의 극장에서 세 개의 타이틀로 각각 영화를 상영했고, 유일하게 대박이 난 제목을 채택하게 되었다는군요.
덧 3. 웨스크레이븐은 어릴 적 근본주의적 침례교인으로서의 신념 때문에 극장에 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가 상업영화 극장에 가게 된건 대학 4년 때의 일이고, 대학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잉마르 베르히만이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전 작품을 볼 수 있었고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왼편 마지막 집]이라는 영화 속에서 종교가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거나, 물에 가라앉는 것이 예수영접의 의미가 아니라 범행의 은폐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나타난 것이 과연 그의 개인적 경험과 무관한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덧 4.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씀. "응일군, DVD를 선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미뤄두었던 재감상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네."
# by | 2007/01/26 13:04 | 공포/호러 | 트랙백(1)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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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먹지 말고 도전하는거 그 자체가 아마 엄청난 공부이지 싶은데..음..무슨 말인지 오늘은 더 두서가 없어지네..^^;
솔리드님/ 요지는 알겠습니다. 하하.
사실 겁먹고 시작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하는거고, 하면서 배우는 부분도 많은거죠.
한 번 사는 인생이라 선택이 쉽지는 못하지만.
이 양반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각본 형편없어서 수십번 고쳤고, 스토리보드는 이전 장면과 비슷해요라고 한 줄 메모로 넘긴 것도 많았고 기타 등등. 정말 삽질 많이 했더라구요. 그 결과 지금은 미국 공포영화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한 명이 되어 버렸네요.
김응일/ 정말 고마워, 덕분에 신기한 것 많이 봤어. 히어링이 좀 힘들어서 제작과정에 대한 서플은 보다 말았지만.
비공개/ 뭐든 오케이.
비둘기는/ 탈옥한 살인마들에게 마약 사겠다고 지 발로 걸어들어가는걸 보면서 얼마나 안타깝던지. ㅠㅠ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나이트메어]는 한글자막 없어도 감상하는게 전혀 어렵지 않으니, 코드1번으로 구입해버려. 언제 기다려, 나오지도 않는 것!
피가 튀고 사지가 잘리고 이런 맛도 있겠지만
실상 가장 무서운 것은 왜 무서운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겠지요.
나이트메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릴적 당시의 AFKN에서 방영해주던 것을
자막없이 재미?나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단어와 문장은 몰랐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어요.
이규영님/ 아, 끔찍한 장면이죠.
수운최제우/ 읽다가 말았다. 먹을 것 소재의 만화 좋아하지 않아.
타선생님/ 예, 자막 때문에 놓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의외로 자막이 없어도 많은걸 이해할 수 있답니다.
호러의 대부로 불리는 웨스 크레이븐의 초보작.. 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구요 ^ ^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미디어몹님/ 감사드립니다.
더군다나 웨스 크레이븐의 상업영화 첫 작품이라니 얼마나 서투른지 보는 것도 좋을듯...
저도 가족 대대로 기독교인지만 뭐랄까요, 기독교인이면서 공포영화보는데대해 약간 거부감이 있긴 한데, 웨스 크레이븐이 저와 같은 침례교라니 반갑구 기쁘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