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28일
[잡담] Arborday의 2006년 영화 베스트5
원래 무언가를 잘 선택하지 못하는 내게, 몇 작품을 선정할지를 정해두고 베스트를 추리는 행위는 너무 힘이 드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좋은걸 다 늘어놓자면 딱히 추리는 것의 의미도 없고.
그 작업이 왜 힘든고 하니 영화들에 대한 엄정하고 공정한 자세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동일한 체력상태와 동일한 관람여건 하에서 영화를 본 것이 아닌 이상에야,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의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 태아와 마찬가지로 감상 전부터 그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동일한 체력상태와 관람여건이 지켜진다 한들, 그것을 보는 시기적인 요인이 - 머리 속이 복잡해서 진지한 영화를 보기 싫을 때, 코미디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던가 등 -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무엇인가에 대한 선택이란건 선택되지 못한 다른 것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의미인데, 그런 제거작업이 불공평하게 이루어진다면 너무나도 억울한 일일게다.
하지만 사실 위의 이유는 애교스러운 수준이다. 그보다 더 빠져나가기 어려운 - 원초적인 이유가 있으니, 추릴만큼 본 영화가 없다는 것. 올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영화를 많이 못 봤다. (아니 영화야 많이 봤지.)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올해 개봉한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내 취향은 70~80년대의 공포영화들에 머물러 있고, 대개의 영화감상수단은 dvd -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바쁘다. 지척에 서울아트시네마, 시네큐브, 스펀지하우스가 있는데도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 - 이기에 지나간 작품들을 개봉작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보게 된다. 가급적 디빅은 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dvd 발매 시기를 기다리다가, 흥이 깨져 못 본 영화들도 수두룩하다. 하다못해 올해 영화제들의 수상후보작 중에서도 못 본 영화가 적지 않거늘. 어찌 되었건 그런 연유로 내가 베스트가 어쩌고를 운운하는 것은, 정말 거만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작업이 어려우면 - 혹은 불가능하다면 - 하지 않으면 될 것인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올해의 영화란걸 꼽아보고 싶다는데 있다. 어쩌면 좋을까? 변명을 하자. 본 것도 별로 없고 별 다른 기준없이 순전히 제 맘대로지만, 재미로라도 꼽아보고 싶어요. 라고.
나의 베스트 5는 영화의 제작국가와, 장르, 어디에서 어떤 매체로 감상했는지의 여부는 관계없이, 올해 처음 본 영화로 2005년 이후 제작된 영화 중에서 골랐다. 감상한 편수가 적어서 베스트로 추린 수도 적다. 순서는 무순이다.
[괴물] : [괴물]은 [한반도]와 정치적으로 대척관계에 있는 작품임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낸다. 무언가 한 군데씩은 모자란 가족 구성원들이 괴물이라는 공적과 현서라는 목적을 매개로 연대하여 싸우지만, 사실 그 괴물도 희생양 - 혹은 본질이 아닌 현상 - 에 불과하다는 것. 지독하게 처절한 농담, 아니 현실이다. 변희봉씨의 마지막 모습은 앞으로도 잊혀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수상을 축하해요.)
[라디오스타] : 한물간 스타와 그 매니저. 몸은 현재에 있으나, 마음은 과거에 있는 사람들. 둘은 모두 자신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공생관계이다. 환상적인 공간, 영월에서는 퇴물가수도 웃음을 되찾고,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자본의 힘도 사람 앞에 무너지며, 과거(최곤)와 미래(이스트리버)는 접점을 가진다.
[라디오스타]는 작위적인 부분이 적지 않지만, 이준익 감독이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게 얼마나 능수능란한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근사한 시나리오는 말할 것도 없고. 세세한 감정묘사도 발군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여작가를 업고 가는 안성기에게 박중훈이 "형, 힘들지?"라며 묻는 장면.
[가족의 탄생] : 올해 본 영화 중 내게 가장 많은 후유증을 남긴 영화. 언제 끈을 놓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관계들이건만, 그들을 끌어안는건 혈연이 아니라 정이었다. 더불어 어째서 정유미라는 배우가 젊은 감독들에게 사랑받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매력만점, 정유미.
[폭력의 역사] : 올해 본 해외영화 중 최고의 작품. 폭력의 순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한 가정의 이야기로 설명해냈다. 각본도 각본이지만, 크로넨버그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발군이다. 어떤 출시사든지 이 작품을 국내에 정발로 내준다면, 나는 그 회사의 애정 가득한 서포터즈가 될 용의도 있다. 내년에는 반드시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연대기순으로 다 보고 말리라.
[슬리더] : 5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정서를 소화하는 잡탕 호러물.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선물. 이 작품의 선정은 오로지 애정에 기인한다.
덧. 대부분의 영화들은 리뷰를 통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야기한 바 있다. 물론 영화에 대한 느낌은 그 때와는 살짝 바뀌었을테지만, 그 후로 다시 보지 못했거나(슬리더, 괴물), 다시 봤음에도 필력이 부족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더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폭력의 역사, 가족의 탄생) 경우이기에 기존리뷰의 링크로 대신하도록 한다. 라디오스타는 dvd를 구매했으니, 다시 본 후 좀 더 긴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2006. Arborday
그 작업이 왜 힘든고 하니 영화들에 대한 엄정하고 공정한 자세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동일한 체력상태와 동일한 관람여건 하에서 영화를 본 것이 아닌 이상에야,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의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 태아와 마찬가지로 감상 전부터 그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동일한 체력상태와 관람여건이 지켜진다 한들, 그것을 보는 시기적인 요인이 - 머리 속이 복잡해서 진지한 영화를 보기 싫을 때, 코미디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던가 등 -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무엇인가에 대한 선택이란건 선택되지 못한 다른 것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의미인데, 그런 제거작업이 불공평하게 이루어진다면 너무나도 억울한 일일게다.
하지만 사실 위의 이유는 애교스러운 수준이다. 그보다 더 빠져나가기 어려운 - 원초적인 이유가 있으니, 추릴만큼 본 영화가 없다는 것. 올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영화를 많이 못 봤다. (아니 영화야 많이 봤지.)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올해 개봉한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내 취향은 70~80년대의 공포영화들에 머물러 있고, 대개의 영화감상수단은 dvd -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바쁘다. 지척에 서울아트시네마, 시네큐브, 스펀지하우스가 있는데도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 - 이기에 지나간 작품들을 개봉작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보게 된다. 가급적 디빅은 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dvd 발매 시기를 기다리다가, 흥이 깨져 못 본 영화들도 수두룩하다. 하다못해 올해 영화제들의 수상후보작 중에서도 못 본 영화가 적지 않거늘. 어찌 되었건 그런 연유로 내가 베스트가 어쩌고를 운운하는 것은, 정말 거만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작업이 어려우면 - 혹은 불가능하다면 - 하지 않으면 될 것인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올해의 영화란걸 꼽아보고 싶다는데 있다. 어쩌면 좋을까? 변명을 하자. 본 것도 별로 없고 별 다른 기준없이 순전히 제 맘대로지만, 재미로라도 꼽아보고 싶어요. 라고.
나의 베스트 5는 영화의 제작국가와, 장르, 어디에서 어떤 매체로 감상했는지의 여부는 관계없이, 올해 처음 본 영화로 2005년 이후 제작된 영화 중에서 골랐다. 감상한 편수가 적어서 베스트로 추린 수도 적다. 순서는 무순이다.
[괴물] : [괴물]은 [한반도]와 정치적으로 대척관계에 있는 작품임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낸다. 무언가 한 군데씩은 모자란 가족 구성원들이 괴물이라는 공적과 현서라는 목적을 매개로 연대하여 싸우지만, 사실 그 괴물도 희생양 - 혹은 본질이 아닌 현상 - 에 불과하다는 것. 지독하게 처절한 농담, 아니 현실이다. 변희봉씨의 마지막 모습은 앞으로도 잊혀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수상을 축하해요.)
[라디오스타] : 한물간 스타와 그 매니저. 몸은 현재에 있으나, 마음은 과거에 있는 사람들. 둘은 모두 자신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공생관계이다. 환상적인 공간, 영월에서는 퇴물가수도 웃음을 되찾고,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자본의 힘도 사람 앞에 무너지며, 과거(최곤)와 미래(이스트리버)는 접점을 가진다.
[라디오스타]는 작위적인 부분이 적지 않지만, 이준익 감독이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게 얼마나 능수능란한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근사한 시나리오는 말할 것도 없고. 세세한 감정묘사도 발군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여작가를 업고 가는 안성기에게 박중훈이 "형, 힘들지?"라며 묻는 장면.
[가족의 탄생] : 올해 본 영화 중 내게 가장 많은 후유증을 남긴 영화. 언제 끈을 놓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관계들이건만, 그들을 끌어안는건 혈연이 아니라 정이었다. 더불어 어째서 정유미라는 배우가 젊은 감독들에게 사랑받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매력만점, 정유미.
[폭력의 역사] : 올해 본 해외영화 중 최고의 작품. 폭력의 순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한 가정의 이야기로 설명해냈다. 각본도 각본이지만, 크로넨버그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발군이다. 어떤 출시사든지 이 작품을 국내에 정발로 내준다면, 나는 그 회사의 애정 가득한 서포터즈가 될 용의도 있다. 내년에는 반드시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연대기순으로 다 보고 말리라.
[슬리더] : 5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정서를 소화하는 잡탕 호러물.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선물. 이 작품의 선정은 오로지 애정에 기인한다.
덧. 대부분의 영화들은 리뷰를 통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야기한 바 있다. 물론 영화에 대한 느낌은 그 때와는 살짝 바뀌었을테지만, 그 후로 다시 보지 못했거나(슬리더, 괴물), 다시 봤음에도 필력이 부족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더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폭력의 역사, 가족의 탄생) 경우이기에 기존리뷰의 링크로 대신하도록 한다. 라디오스타는 dvd를 구매했으니, 다시 본 후 좀 더 긴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2006. Arborday
# by | 2006/12/28 13:58 | 영화잡담 | 트랙백(5)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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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꼭 봐둬야겠습니다.
슬리더는 볼 때는 몰랐는데, 유독 기억에 남던 영화더라구요.
"슬리더"도 결국 같은 운명이 되겠죠?ㅠㅠ
새침떼기님/ 아마도 그 전례를 따라가게 될 것 같네요. 극장개봉이야 불가능일테고, 코드3도 요원해 보입니다. ㅠㅠ
라디오스타는 극장에서 봤는데, 정말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보면서도 보고나서도 기억에 참 오래 남게 되었어요.
+제목에 a가 빠져있는거 같아요^^
하여간 구해봐야겠습니다.
Elliott님/ 저도 아까 들은건데, 내년 상반기 개봉할 가능성이 있나봅니다.
[스파이더]도 워낙 괜찮은 작품이었으니 비교는 쉽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낫더군요.
슬리더 보니까 무척 땡기는군요'ㅂ'!! 꼭 찾아서 봐야겠어요..ㅎㅎ
원래 할 생각이 없었는데, ArborDay님의 포스팅이 자극이 되어 트랙백 올립니다. ^^
레드몽키님/ 마이클루커의 그 애정어린 눈빛이란. ^^
몽중인님/ 아, 그런가요? 정말 괜찮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대중적으로 무게감을 낯춘 작품입니다. 몽중인님도 꼭 보게 되시기를 고대하며, 트랙백 확인하러 달려갑니다.
구태연연하지 않고 뭔가 새로워 질려고 했던 정신에 저도 5편 모두에 박수를 보냅니다..^^;
슬리더만 빼고는 저도 다 좋아했던 영화들입니다. 슬리더는 예고편 한번 보고는 아예 볼 생각도 안했었더랬죠. -o-
저도 여기저기에서 정리 글을 보면서, 갑자기 쓰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래서 혹해서 했답니다.
써머즈님도 재미삼아 한 번 해보심이~
수운최제우/ 아, 그 리스트. 난 개봉작에 멜빌의 이름이 올랐던게 놀라웠었어.
주소를 올렸던 덧글이 있었구나. 스팸에 가 있더군. 복구했다. 지금.
언제 저런걸 찍었는지-_-;; 암튼 이것 하나만 빼고 다 봤네요;
toluidine/ [가족의 탄생]은 참 아픈 영화더라고. 영화보고 나오면서는 가슴이 헤지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아픈게 흐려지기도 하고,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프면서도 동시에 따스한 영화라, 참 말하기가 어렵네.
라디오 스타는 이준익 감독에 대해 안좋은 인상이랄까 괜한 시기심이랄까 그런 게 있어서 이상하게 보기가 싫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칭찬하길래 쬐끔 후회했더랩니다. 이준익 감독의 차기작을 한번 더 지켜보고, 그때 가서 이 영화를 볼지 말지 다시 결정해야겠습니다.
충분히 그런 은유로 읽어낼만합니다. 아니 그게 정상이겠지요. 다만 제 경우에는 다른 영화들에서 본 장면들이 장면과 담겨 있던 그 의미 그대로 [슬리더]에 펌질되듯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
저는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을 보면서, "아니 전쟁판에서 영웅도 아닌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에게 촛점을 맞추는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동성애코드를 건드리다 만 듯한 [왕의남자]가 다소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이준익의 영화는 분명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것은 영화 아니 감독에게서 물씬 배어나는 사람냄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