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04일
관계로의 회귀 - 쏘우3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보셨거나 관계치 않는 분만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쏘우]의 1편과 2편을 통해 나는 플레이어의 수가 늘어나고, 비협조관계에 놓인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그런 식이라면 더 이상 [쏘우]를 통해 보여줄 새로운 것은 없을테니까. 아마 나는 나도 모르게 [쏘우]의 2편을 보고 더 이상 이 시리즈가 새로울 것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쏘우]는 하나의 게임, [쏘우2]는 두 개의 게임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관점에서 [쏘우3]가 동시에 세 개의 게임이 진행되었으니 나름대로의 확장을 꾀했다고도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외형적인 특징도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둘이나 셋이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같으니까. 정리하자. [쏘우3]는 전작과 비교할 때 외형상의 변화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쏘우3]는 전작과의 아무런 차별성없이 단지 볼거리에만 치중한 작품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 [쏘우]는 많은 예전 호러시리즈의 신화들처럼, 스스로 만들어낸 설정들을 재활용하기도 하고, 방향을 전환하기도 하며 롱런을 위한 태세를 갖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라는 관점에서 직쏘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시점에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그가 자신을 이을 후계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 - 그래서,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느냐 - 일 것이다.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부류의 부기맨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그를 되살릴 수 있겠지만, [쏘우]에 부여된 살인마의 인성은 자연적 법칙을 초월할 수 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직쏘의 유지를 이어갈 후계자에 대한 시험 - 게임 - 을 다룬다. 자신의 목숨까지 게임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원대한 계획.
이미 2편에서 발표했던 직쏘의 후계자가 전편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진 시험관이 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의심했던 것은 관객만이 아니었나보다. 당연하겠지만 제작진도 그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것이고, 이 작품을 통해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내보였다. 아만다는 태초에 직쏘로부터 그 후계자로서 낙점되었다. 생각해보자. 그녀는 다른 플레이어와는 달리 자신의 몸이 아닌 타인의 몸을 훼손하는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그것은 직쏘의 게임 - 타인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진행하는 게임 - 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 게임은 아만다에게 직쏘의 게임의 외적인 특징 - 형식 - 을 가르쳤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녀가 배우지 못한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다. 직쏘의 게임에는 룰이 있고, 게임에서 승리한 - 게임을 통해 삶에 대한 무언가를 배운 - 플레이어는 살아날 수 있다는 것. 룰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 게임의 목적이 '처형'이 아닌 '용서'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직쏘를 다른 살인마와는 다른 모종의 확신범 -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 으로 만들어주는 특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룰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직쏘가 자신의 게임을 맡길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만다가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용서'이며, 그것은 게임의 형식 안에 숨어 있는 '본질'이다. 그래서 [쏘우3]에서 자행되는 게임의 가장 중요한 질문도 "용서할 수 있을까?"이다.
극 중 여의사는 직쏘와 아만다 사이에 모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의도적으로 그것을 부추키는 씬 - 명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 이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이 삼각관계에 대한 아만다의 반응은 자해와 필요 이상의 위협이다. 이같은 삼각관계는 직쏘가 의도적으로 만든 아만다에게 주어질 위협이다. 아만다에 대한 위협은 온전히 심리적인 것이다. 이렇게 관계를 위협하는데도, 너는 그녀를 용서 - 혹은 감정의 절제 - 하고 내 뜻을 따를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 이와 같은 맥락에서 [쏘우3]의 실제모습 혹은 그것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심리극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심리극으로서의 회귀는 [쏘우3]가 전작과 차별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좀 더 설명하면 사실 [쏘우]가 재미있는 소품일 수 있었던 이유는 플레이어 간의 심리상태를 조명한 것에 기인한다. 장담컨대 그들의 머리싸움이 [쏘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였다. [쏘우2]도 직쏘와 반장의 게임을 통해 관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쏘우2]는 플레이어의 수가 많았던 하부게임 - 아들과 관계된 게임 - 의 탓에 그러한 심리적인 재미가 반감되었다. 또한 하부게임에서의 플레이어 집단을 분열시키는 것은, 흑인캐릭터의 폭력이었다. [쏘우3]는 플레이어의 수를 제한함으로써 다시 심리적인 갈등에 좀 더 중점을 두고자 시도했다. 즉, [쏘우3]는 외형상의 확장을 이룬 [쏘우2]의 얼개를 기본으로, 다시 플레이어들의 관계를 부각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증거를 조작한 경찰관의 아들과 같은 공간에 떨궈진 플레이어들의 긴장관계보다는 아무래도 직쏘와 아만다, 그리고 여의사 간의 삼각관계가 훨씬 흥미롭다.
영화 [쏘우3]로 돌아가자. 아만다는 삶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것에 대한 절박함이 직쏘만 못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죽음이 예정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직쏘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직쏘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직쏘는 신이자, 아버지이자, 연인이다. 그는 자신에게 새 삶을 주었고, 심판에 대한 책임을 물려주었다. 그녀의 존경과 감사는 애정과 구별되어지지 못한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직쏘의 뜻이 아니라, 직쏘와 자신과의 관계이다. 따라서 관계를 위협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룰을 우선한다. 그녀는 게임을 통해 그 누구도 살아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살아난 플레이어가 직쏘의 그녀에 대한 애정을 위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전 직쏘와 달리 게임에서 이겨도 살아날 수 없다는 차별점이 발생한 것은 그 탓이다. 그녀는 형식은 배웠지만, 그 게임의 본질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직쏘가 요구하는 것, 즉 아만다에 대한 게임이 추구하는 것은 단 하나 - 아만다의 거듭남, 혹은 성장 - 이다. 물론 아만다가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는 직쏘는 그 외에도 하나의 대안을 만들어둔다. 당연하겠지만 그녀가 실패하고 모두가 죽으면 시리즈가 끝나거나, 흡사 제이슨의 모방범과 같은 직쏘우를 만들어 정통성을 포기하거나, 죽어서도 영향을 미치는 식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거나 혹은 뒤늦게 후계자가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라는 식의 허접한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게 누구냐고? 자기 몸에 대한 위협 없이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이다. 생각해보라. - 장담은 당연히 못한다. 제작자들의 장난끼가 보통 수준은 아니거든.
재미있게도 관객의 지향점 역시 아만다와 다르지 않다. 겉도는 직쏘의 궤변보다는 살해씬을 목격하기를 원한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징벌이 가해지기를 기대한다. 결국 이는 [쏘우]의 살해씬에 대한 쾌락 이외에,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유치한 궤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무엇 하나라도 얻어가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거대한 망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직쏘의 궤변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관객에게, [쏘우3]는 실망스러운 속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변명이라고 치부해도 상관없다. 나는 [쏘우3]가 그저 단순한 고어영화라는 것에는 동감하지 않는다. 나는 고어의 진정한 맛은 신체훼손이 일어나는 그 순간보다, 그 순간 이전까지의 분위기에 있다고 믿는 편이다. 게다가 그것이 정말 고어에 대한 관객의 관음증을 풀어주기를 의도했다면, [쏘우3]의 편집 - 그저 잔인한 장면을 짧게 끊어 보여주는 것 - 으로는 부족하다. 분명 [쏘우3]는 잔인한 영화지만, 휙휙 지나가는 장면들에 사실 나는 뭘 봤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수많은 고어들이나 게임의 가학적 부분들은 [쏘우]라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트릭을 숨기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saw'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관객은 모든 것을 눈으로 목격했다. 그럼에도 속아넘어가도록 만드는 하나의 장치, 그것이 고어였다고 생각한다. 늘 그랬지만 [쏘우]는 잘 짜여진 각본에서 나오는 반전영화가 아니라, 여전히 영화 자체가 트릭인 아이디어 영화이다.
하지만 위의 변명들은 [쏘우3]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 위해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한 심리극이란 사실 별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을 만들어가는 그 매무새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영화의 아이디어도 그다지 대단치 못한데, 3중으로 만들어둔 - 2편과 완전히 똑같았던 - 그 게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게다가 뭘 그렇게 친절하겠다고, 교차편집까지 해가며 다가오는 그를 보여주던가? 교차편집이 아니더라도, 정신사나운 편집은 무척이나 거슬린다. 결국 나는 [쏘우3]의 최대 단점은 어설픈 매무새와 지나친 중언부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트릭이 밝혀진 영화의 후반부가 길다는 것은 편집의 실패 혹은 노망에 가까운 잔소리와 다르지 않다. 관객은 너무 자세한 설명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다른 말로 대단한 재미는 없더라라는 말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 건너에서는 엄청나게 환호받았다던 영화를 감상한 것치고는 어느 정도의 실망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보류된 후계구도에 대해 여전히 궁금함이 생긴다. 그래서 말인데, [쏘우] 후속작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새로운 감각으로 만들어질 호러 시리즈물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나 혼자의 열망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2006.12. Arborday
[쏘우]의 1편과 2편을 통해 나는 플레이어의 수가 늘어나고, 비협조관계에 놓인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그런 식이라면 더 이상 [쏘우]를 통해 보여줄 새로운 것은 없을테니까. 아마 나는 나도 모르게 [쏘우]의 2편을 보고 더 이상 이 시리즈가 새로울 것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쏘우]는 하나의 게임, [쏘우2]는 두 개의 게임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관점에서 [쏘우3]가 동시에 세 개의 게임이 진행되었으니 나름대로의 확장을 꾀했다고도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외형적인 특징도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둘이나 셋이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같으니까. 정리하자. [쏘우3]는 전작과 비교할 때 외형상의 변화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쏘우3]는 전작과의 아무런 차별성없이 단지 볼거리에만 치중한 작품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 [쏘우]는 많은 예전 호러시리즈의 신화들처럼, 스스로 만들어낸 설정들을 재활용하기도 하고, 방향을 전환하기도 하며 롱런을 위한 태세를 갖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라는 관점에서 직쏘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시점에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그가 자신을 이을 후계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 - 그래서,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느냐 - 일 것이다.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부류의 부기맨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그를 되살릴 수 있겠지만, [쏘우]에 부여된 살인마의 인성은 자연적 법칙을 초월할 수 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직쏘의 유지를 이어갈 후계자에 대한 시험 - 게임 - 을 다룬다. 자신의 목숨까지 게임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원대한 계획.
이미 2편에서 발표했던 직쏘의 후계자가 전편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진 시험관이 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의심했던 것은 관객만이 아니었나보다. 당연하겠지만 제작진도 그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것이고, 이 작품을 통해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내보였다. 아만다는 태초에 직쏘로부터 그 후계자로서 낙점되었다. 생각해보자. 그녀는 다른 플레이어와는 달리 자신의 몸이 아닌 타인의 몸을 훼손하는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그것은 직쏘의 게임 - 타인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진행하는 게임 - 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 게임은 아만다에게 직쏘의 게임의 외적인 특징 - 형식 - 을 가르쳤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녀가 배우지 못한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다. 직쏘의 게임에는 룰이 있고, 게임에서 승리한 - 게임을 통해 삶에 대한 무언가를 배운 - 플레이어는 살아날 수 있다는 것. 룰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 게임의 목적이 '처형'이 아닌 '용서'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직쏘를 다른 살인마와는 다른 모종의 확신범 -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 으로 만들어주는 특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룰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직쏘가 자신의 게임을 맡길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만다가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용서'이며, 그것은 게임의 형식 안에 숨어 있는 '본질'이다. 그래서 [쏘우3]에서 자행되는 게임의 가장 중요한 질문도 "용서할 수 있을까?"이다.
극 중 여의사는 직쏘와 아만다 사이에 모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의도적으로 그것을 부추키는 씬 - 명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 이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이 삼각관계에 대한 아만다의 반응은 자해와 필요 이상의 위협이다. 이같은 삼각관계는 직쏘가 의도적으로 만든 아만다에게 주어질 위협이다. 아만다에 대한 위협은 온전히 심리적인 것이다. 이렇게 관계를 위협하는데도, 너는 그녀를 용서 - 혹은 감정의 절제 - 하고 내 뜻을 따를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 이와 같은 맥락에서 [쏘우3]의 실제모습 혹은 그것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심리극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심리극으로서의 회귀는 [쏘우3]가 전작과 차별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좀 더 설명하면 사실 [쏘우]가 재미있는 소품일 수 있었던 이유는 플레이어 간의 심리상태를 조명한 것에 기인한다. 장담컨대 그들의 머리싸움이 [쏘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였다. [쏘우2]도 직쏘와 반장의 게임을 통해 관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쏘우2]는 플레이어의 수가 많았던 하부게임 - 아들과 관계된 게임 - 의 탓에 그러한 심리적인 재미가 반감되었다. 또한 하부게임에서의 플레이어 집단을 분열시키는 것은, 흑인캐릭터의 폭력이었다. [쏘우3]는 플레이어의 수를 제한함으로써 다시 심리적인 갈등에 좀 더 중점을 두고자 시도했다. 즉, [쏘우3]는 외형상의 확장을 이룬 [쏘우2]의 얼개를 기본으로, 다시 플레이어들의 관계를 부각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증거를 조작한 경찰관의 아들과 같은 공간에 떨궈진 플레이어들의 긴장관계보다는 아무래도 직쏘와 아만다, 그리고 여의사 간의 삼각관계가 훨씬 흥미롭다.
영화 [쏘우3]로 돌아가자. 아만다는 삶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것에 대한 절박함이 직쏘만 못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죽음이 예정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직쏘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직쏘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직쏘는 신이자, 아버지이자, 연인이다. 그는 자신에게 새 삶을 주었고, 심판에 대한 책임을 물려주었다. 그녀의 존경과 감사는 애정과 구별되어지지 못한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직쏘의 뜻이 아니라, 직쏘와 자신과의 관계이다. 따라서 관계를 위협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룰을 우선한다. 그녀는 게임을 통해 그 누구도 살아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살아난 플레이어가 직쏘의 그녀에 대한 애정을 위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전 직쏘와 달리 게임에서 이겨도 살아날 수 없다는 차별점이 발생한 것은 그 탓이다. 그녀는 형식은 배웠지만, 그 게임의 본질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직쏘가 요구하는 것, 즉 아만다에 대한 게임이 추구하는 것은 단 하나 - 아만다의 거듭남, 혹은 성장 - 이다. 물론 아만다가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는 직쏘는 그 외에도 하나의 대안을 만들어둔다. 당연하겠지만 그녀가 실패하고 모두가 죽으면 시리즈가 끝나거나, 흡사 제이슨의 모방범과 같은 직쏘우를 만들어 정통성을 포기하거나, 죽어서도 영향을 미치는 식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거나 혹은 뒤늦게 후계자가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라는 식의 허접한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게 누구냐고? 자기 몸에 대한 위협 없이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이다. 생각해보라. - 장담은 당연히 못한다. 제작자들의 장난끼가 보통 수준은 아니거든.
재미있게도 관객의 지향점 역시 아만다와 다르지 않다. 겉도는 직쏘의 궤변보다는 살해씬을 목격하기를 원한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징벌이 가해지기를 기대한다. 결국 이는 [쏘우]의 살해씬에 대한 쾌락 이외에,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유치한 궤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무엇 하나라도 얻어가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거대한 망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직쏘의 궤변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관객에게, [쏘우3]는 실망스러운 속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변명이라고 치부해도 상관없다. 나는 [쏘우3]가 그저 단순한 고어영화라는 것에는 동감하지 않는다. 나는 고어의 진정한 맛은 신체훼손이 일어나는 그 순간보다, 그 순간 이전까지의 분위기에 있다고 믿는 편이다. 게다가 그것이 정말 고어에 대한 관객의 관음증을 풀어주기를 의도했다면, [쏘우3]의 편집 - 그저 잔인한 장면을 짧게 끊어 보여주는 것 - 으로는 부족하다. 분명 [쏘우3]는 잔인한 영화지만, 휙휙 지나가는 장면들에 사실 나는 뭘 봤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수많은 고어들이나 게임의 가학적 부분들은 [쏘우]라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트릭을 숨기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saw'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관객은 모든 것을 눈으로 목격했다. 그럼에도 속아넘어가도록 만드는 하나의 장치, 그것이 고어였다고 생각한다. 늘 그랬지만 [쏘우]는 잘 짜여진 각본에서 나오는 반전영화가 아니라, 여전히 영화 자체가 트릭인 아이디어 영화이다.
하지만 위의 변명들은 [쏘우3]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 위해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한 심리극이란 사실 별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을 만들어가는 그 매무새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영화의 아이디어도 그다지 대단치 못한데, 3중으로 만들어둔 - 2편과 완전히 똑같았던 - 그 게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게다가 뭘 그렇게 친절하겠다고, 교차편집까지 해가며 다가오는 그를 보여주던가? 교차편집이 아니더라도, 정신사나운 편집은 무척이나 거슬린다. 결국 나는 [쏘우3]의 최대 단점은 어설픈 매무새와 지나친 중언부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트릭이 밝혀진 영화의 후반부가 길다는 것은 편집의 실패 혹은 노망에 가까운 잔소리와 다르지 않다. 관객은 너무 자세한 설명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다른 말로 대단한 재미는 없더라라는 말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 건너에서는 엄청나게 환호받았다던 영화를 감상한 것치고는 어느 정도의 실망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보류된 후계구도에 대해 여전히 궁금함이 생긴다. 그래서 말인데, [쏘우] 후속작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새로운 감각으로 만들어질 호러 시리즈물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나 혼자의 열망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2006.12. Arborday
# by | 2006/12/04 07:33 | 공포/호러 | 트랙백(2)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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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2편을 보면서 느낀건데,..연기자들의 얼굴이 낯설어서 인지 연기도 어설프게 다가 오더군요..
그런데 3라니....음 전 3류호러가 되지 않을까 생각 했는데..기대밖의 성과를 올렸군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롱런하는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결국 장기시리즈가 되려면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전 이 궤변가가 싫지만은 않습니다. ^^
주성치님/ 같은 것을느꼈네요. 정신 사납더라구요. ^^
레드몽키님/ 훨씬 더 잘 만들 수도 있을 영화인데, 날림으로 만든 느낌이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작품성 저하에 대한 핑계로 적합한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1편만 보고 2편부터는 안보고 있네요.
이런 쪽에 약해서.... 으으.
괜찮은 영화.. 같지만 저에겐 안맞는 영화인 듯 해요. ㅠㅠ
2편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서 보지 않았었는데, 여기저기서 나오는 3편의 반응이 2편과 동종류라고 하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전 이 시리즈를 1편의 기억으로 만족해야 하겠습니다.
저처럼 관대한 마음을 가진다면야 후속편이 나와도 반갑겠지만, 대부분은 [쏘우4] 따위는 안 보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써머즈님이라면 패스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솔리드님/ 보고 싶으셨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GoGo!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에 반도 못미쳐서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뭔가 큰걸 터뜨리는줄 알았는데....
그래도 1,2편에 이어서 3편에서도 찰리 클라우져의 음악은 단연 대박이었습니다; 3편에서 그의 음악과 스코어가 다시금 두드러지는걸 보니 탄성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도 역시나 좋았구요. 그래도....제 별점은 여전히 별 하나입니다; 그것도 어떤분의 리뷰를 보고서 별 하나로 올랐지요^^;
2편은 몇번을 봐도 여전히 별 반개입니다 ㄱ-
비공개님/ 아닙니다. 저도 방금 읽어봤는데, 핵심은 거의 비슷하네요. 뻔한 영화이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
이전에도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를 보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다른 분의 평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 적이 있었죠. 공개할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었답니다.
아차, [샤이닝]의 경우도 그랬었네요.
전에 한 번 인사드렸던 것 같은데, 전 호러타임즈에서 활동했었답니다. ^^
2007년 할로윈에도 어김없이 4편이 나온다고합니다. 4편은 역시 3편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딸을 찾는 게임과 직쏘가 생전에 만났던 (꿈에서 본) 여자에 대한 미스테리가 조금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번 편은 4편으로 가기위한 정리 및 워밍업 처럼 보여졌어요. 공포씬들은 지긋지긋하게 혐오스럽긴 했지만.
게다가, 조금 현명한 구석이 있죠. 시류도 잘 탄 작품인데다가.
어찌 되었거나 저 역시 4편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4편이 나와봐야 3편을 다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실질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싹 물갈이 된다고 하지만서도.
다음편을 볼때마다 전편에 대한 답답함을 해결해주니 욕하다가도 또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인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