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9월 08일
Cat people(1982)
폴슈레이더의 82년작 캣피플은 전작의 설정을 크게 훼손한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42년작에 대한 리뷰에서 언급했듯, 82년의 작품은 더 보여주고, 더 야릇하며, 더 자극적입니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 흑표범을 불러내는 계기가 '키스'에서 '섹스'로 변했다는 사실만 언급한다해도 얼추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42년작이 '악'이란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 -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암시하고 그 내면을 탐험하는 식으로 정신분석학과의 연계를 모색한 보편적인 드라마를 강조했다면, 82년작은 훨씬 많은 잔인한 장면 - 그리고 희생자 - 을 포함하고 있을 뿐더러 '신화'를 구체화시킴으로서 '악'이라는 것의 시작점이 개인 차원보다 더 높은 어떤 차원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악이 행사되는 계기는 사랑이지만요.
붉은 빛이 도는 색감으로 표현된 처음의 장면 - 전작에서 주인공의 모호한 언급만으로 묘사되었던 캣피플, 혹은 악에 대한 기원의 묘사장면 - 부터 이 작품은 꽤나 야릇한 작품이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몸의 사지절단이나, 자신의 분비물을 먹는다거나, 나스타샤 킨스키의 음모노출 등의 표현적 수위도 수위지만, 여인과 표범과의 '수간'에 대한 암시, '근친'에 대한 강한 설정까지 이 작품은 꽤나 파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82년의 캣피플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폴'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통한 '근친'의 설정입니다. 영화속에서의 '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를 남자배우 중 한 명인 '말콤맥도웰'의 폭력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 - 클락웍 오렌지에서보다는 확실히 나이가 들어보이기는 하지만 - 는 은근한 긴장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합니다. 그리고 이 '근친'의 설정은 단지 긴장감만을 끌어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해치는 '폴'은 의외로 '악'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맹수이기 때문에,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해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꺼리는 편이지요. '폴'은 최소한의 욕구를 해소하는 것으로 그치면서 '이레나'를 기다립니다. 그녀는 세상에 딱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동족이자 육체적으로 사랑해도 되는 대상 - 따라서 이것은 '근친'이라는 보이는대로의 해석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이거든요. 만약 '폴'이 '이레나'에게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면, '폴'과 '이레나'가 서로 사랑하며 더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결론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겁니다. 문제는 폴이 죽기까지 이레나는 자신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거죠.
반면 이레나는 자신이 사랑해도 되는 대상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합니다(어떤 의미에서 이같은 관계는 불륜의 관계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겠네요). 게다가 그 사람을 한 번 (육체적으로) 사랑하면, 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폴이 죽은 후 이레나는 타인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올리버를 사랑하겠다라고 결심합니다(계속 사랑하지 못할 바에는 본모습으로 살겠다라는 결심도 포함되어 있겠죠). 이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당사자'를 제외한 사람에 대한 폭력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매력있는 설정이죠. 그런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는 남성인 '올리버'가 표범으로 변한 '이레나'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묘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표범의 울부짖음과 함게 꽤나 강렬한 엔딩으로 기억될 법 하죠.
82년작의 또다른 매력은 컬러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보여주지 않기라는 '절제'를 통한 영상미는 사라져버렸지만, 조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죠. 특히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오리지널 영화를 그대로 재현한 장면들이 아니라, 나스타샤 킨스키가 처음으로 각성할 때의 장면(토끼사냥씬, 위)입니다. 나신으로 뛰쳐나와 몽환적으로 걷는 그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갑자기 주변 소리가 커지면서 다른 물체들의 움직임이 느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의 색상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눈에 사냥의 대상(토끼)의 모습이 확연히 도드라집니다. 이 장면은 그녀가 인간의 탈을 벗고 맹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시각적 만족을 경험하게 될 요소는 꽤 많습니다. 데이빗 보위가 참여한 음악은 청각적 만족 역시 안겨줄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진행(예를 들어 느닷없는 앨리스에 대한 적의나, 폴의 무대뽀 들이밀기 등) 등은 거슬리더군요. 앨리스에 대한 적의는 수영장씬을 재현하기 위해 그냥 가져온 것입니다. 또한 이레나가 '올리버'를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에 - '폴'을 악역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 '폴'을 무대뽀로 들이대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는데, 사실 이 과정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렸다면 - '폴'을 좀 더 복잡한 캐릭터로 표현했다면 - 영화의 퀄리티는 한참 더 올라갔을거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설정들과 원작 사이의 삐걱대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영화를 훨씬 더 높게 평가했을겁니다. 물론, 캣피플이 공포장르에서 꽤 괜찮은 작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건 아니지만요.
덧 1. 척 봐도 고양이와 같은 느낌을 주는 나스타샤 킨스키는 연기력보다는 눈요기감으로서 더욱 어필하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꽤 늦게(얼마전입니다) '파리,텍사스'를 접했을 때, 기억 속에 남아있던 것보다 이 여인이 연기를 몇 배는 더 잘한다는 사실에 정말 많이 놀랐거든요.
덧 2. 두 작품을 비교해본 적이 없어서(원작 vs 리메이크), 비슷한 시기에 두 작품을 다시 감상했습니다. 덕분에 얼추 정리가(제 머리속에서는) 되었네요. 발류튼의 속편, '캣피플의 저주'는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보는게 낫겠습니다. ^^
붉은 빛이 도는 색감으로 표현된 처음의 장면 - 전작에서 주인공의 모호한 언급만으로 묘사되었던 캣피플, 혹은 악에 대한 기원의 묘사장면 - 부터 이 작품은 꽤나 야릇한 작품이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몸의 사지절단이나, 자신의 분비물을 먹는다거나, 나스타샤 킨스키의 음모노출 등의 표현적 수위도 수위지만, 여인과 표범과의 '수간'에 대한 암시, '근친'에 대한 강한 설정까지 이 작품은 꽤나 파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82년의 캣피플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폴'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통한 '근친'의 설정입니다. 영화속에서의 '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를 남자배우 중 한 명인 '말콤맥도웰'의 폭력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 - 클락웍 오렌지에서보다는 확실히 나이가 들어보이기는 하지만 - 는 은근한 긴장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합니다. 그리고 이 '근친'의 설정은 단지 긴장감만을 끌어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해치는 '폴'은 의외로 '악'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맹수이기 때문에,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해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꺼리는 편이지요. '폴'은 최소한의 욕구를 해소하는 것으로 그치면서 '이레나'를 기다립니다. 그녀는 세상에 딱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동족이자 육체적으로 사랑해도 되는 대상 - 따라서 이것은 '근친'이라는 보이는대로의 해석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이거든요. 만약 '폴'이 '이레나'에게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면, '폴'과 '이레나'가 서로 사랑하며 더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결론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겁니다. 문제는 폴이 죽기까지 이레나는 자신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거죠.
반면 이레나는 자신이 사랑해도 되는 대상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합니다(어떤 의미에서 이같은 관계는 불륜의 관계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겠네요). 게다가 그 사람을 한 번 (육체적으로) 사랑하면, 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폴이 죽은 후 이레나는 타인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올리버를 사랑하겠다라고 결심합니다(계속 사랑하지 못할 바에는 본모습으로 살겠다라는 결심도 포함되어 있겠죠). 이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당사자'를 제외한 사람에 대한 폭력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매력있는 설정이죠. 그런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는 남성인 '올리버'가 표범으로 변한 '이레나'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묘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표범의 울부짖음과 함게 꽤나 강렬한 엔딩으로 기억될 법 하죠.
82년작의 또다른 매력은 컬러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보여주지 않기라는 '절제'를 통한 영상미는 사라져버렸지만, 조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죠. 특히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오리지널 영화를 그대로 재현한 장면들이 아니라, 나스타샤 킨스키가 처음으로 각성할 때의 장면(토끼사냥씬, 위)입니다. 나신으로 뛰쳐나와 몽환적으로 걷는 그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갑자기 주변 소리가 커지면서 다른 물체들의 움직임이 느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의 색상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눈에 사냥의 대상(토끼)의 모습이 확연히 도드라집니다. 이 장면은 그녀가 인간의 탈을 벗고 맹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시각적 만족을 경험하게 될 요소는 꽤 많습니다. 데이빗 보위가 참여한 음악은 청각적 만족 역시 안겨줄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진행(예를 들어 느닷없는 앨리스에 대한 적의나, 폴의 무대뽀 들이밀기 등) 등은 거슬리더군요. 앨리스에 대한 적의는 수영장씬을 재현하기 위해 그냥 가져온 것입니다. 또한 이레나가 '올리버'를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에 - '폴'을 악역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 '폴'을 무대뽀로 들이대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는데, 사실 이 과정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렸다면 - '폴'을 좀 더 복잡한 캐릭터로 표현했다면 - 영화의 퀄리티는 한참 더 올라갔을거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설정들과 원작 사이의 삐걱대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영화를 훨씬 더 높게 평가했을겁니다. 물론, 캣피플이 공포장르에서 꽤 괜찮은 작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건 아니지만요.
덧 1. 척 봐도 고양이와 같은 느낌을 주는 나스타샤 킨스키는 연기력보다는 눈요기감으로서 더욱 어필하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꽤 늦게(얼마전입니다) '파리,텍사스'를 접했을 때, 기억 속에 남아있던 것보다 이 여인이 연기를 몇 배는 더 잘한다는 사실에 정말 많이 놀랐거든요.
덧 2. 두 작품을 비교해본 적이 없어서(원작 vs 리메이크), 비슷한 시기에 두 작품을 다시 감상했습니다. 덕분에 얼추 정리가(제 머리속에서는) 되었네요. 발류튼의 속편, '캣피플의 저주'는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보는게 낫겠습니다. ^^
# by | 2006/09/08 11:31 | 공포/호러 | 트랙백(2)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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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보기'를 클릭하자마자 정말 깜짝 놀랐어요. 굉장히 강렬합니다. ArborDay님의 글과 몇 개의 스틸만으로도 이 영화에 확 끌려드는걸요.
심볼리즘이 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드네요. 재밌기야 하겠습니다만+_+
도대체 언제적 킨스키인데 아직까지도 젊었을 때의 모습이 남아있는 건지..
이건 뭐, 보톡스니 성형이니 하는 차원의 얘기로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전 주로 눈을 감고 본다는....^ ^
파리,텍사스를 보면서 저도 이전에 테스와 캣 피플의 그녀가 주인공 그녀라는 것을 보고 약간 혼동을 느꼈습니다. 그 영화에서 그녀는 이해할 수는 없는 행동을 하는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했던 것 같아요.
상징이 꽤 많은 작품이죠. 확실히. ^^
새침떼기님/ 놀라운 외모입니다. '세월도 그녀를 피하는 느낌'이라는 상투적 수식어 외에는 설명하기가 어려울. ㅠㅠ
realove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 듯 보이지만, 별로 없답니다.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죠.
seimei님/ 햐,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나스타샤는 연기력보다 먼저 떠올릴만한 것들, 아버지 혹은 완벽한 외모 등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불운하죠.
Elliott님/ 보고 싶습니다. 그녀가.
티라미수님/ 음,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머리가 커서 보면 더더욱 야릇할 작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