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카펜터 <1>

'아무 생각없이 그냥 감독 이름만 믿고 공포영화를 보고 싶은데 누구의 것을 보면 좋겠냐?'고 물을 때에 대한 답변으로 첫 손가락에 '존카펜터'를 꼽는 것은 비교적 안전한 선택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퀄리티가 큰 기복없이 상향평준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B급 감성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상당히 진지하다. 그는 어설픈 볼거리 위주의 싸구려 작품을 만드는 감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미국의 주류사회에 비판적이면서 다른 어떤 장르보다 공포영화라는 장르 아래 가장 세련된 화법을 구사했던, 그리고 대중적인 찬양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강한 자의식을 가진 장르의 진정한 작가 중 한 명이다.

1. 학창시절에서 '할로윈'까지

48년생인 카펜터는 뉴욕에서 태어났고 켄터키에서 자랐다. 그는 어릴적부터 하워드 혹스나 존 포드에게 매료되었으며, '금지된 행성(forbidden planet)'이나 '검은 산호초의 괴물(Creature from black lagoon)', '더씽(The thing from another world)' 등과 같은 영화들에 홀딱 빠져들었다. 그는 영화에 홀딱 빠져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미 8mm 카메라를 가지고 다양한 영화를 찍기 시작하기까지 한다. 그가 15세(한국나이)에 만든 작품이 imdb에 등록되어 있기도 하다.

좀 더 자란 그는 아버지가 음악교수로 있는 Western Kenturky University에 입학하였지만(이것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영화에서 사운드트랙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 후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로 옮겨 영화를 배웠다. 카펜터는 학창시절 프로젝트로 만들었던 단편 'The Resurrection Of Bronco Billy(70년)'가 아카데미에서 단편영화상을 받음으로서 영화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이 작품에서 카펜터는 편집과 각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까지 담당했다). 카펜터는 이 시절부터 영화천재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의 동창인 조지 루카스도 카펜터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카펜터는 자신의 졸업작품으로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패러디영화 '다크스타(74년)'를 계획한다. 그러나 카펜터가 이미 유명세를 어느 정도 타기도 했고, 또한 이 작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지인들의 권유로 이 작품은 극장판으로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다크스타는 패러디 영화의 퀄리티를 상회하여 SF/코미디로 그 규모가 커지게 된다. 6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던 이 작품은 당황스러운 정서 덕분에 배급사에서는 외면받았으나, 자동차 극장에 걸리면서 컬트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제작자 Jack H. Harris와의 껄그러운 관계에 대한 보복으로 영화 속에 'Fuck you Harris'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다음 작품으로 선택된 것은 '분노의 13번가'였는데, 이 작품은 카펜터에게 영감을 준 하워드혹스의 리오브라보(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를 저예산 액션영화 버전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영화가 그의 매니아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영화 '분노의 13번가' 이후 그가 자신의 영화 제목에 John Carpenter's "assault on precinct 13" 등과 같이 자신의 이름을 삽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하워드 혹스 역시 그와 비슷하게 자신의 이름을 제목에 삽입했기에 그것을 모방했거나(카펜터는 서부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이전 영화들에 대한 실망감(그는 자신이 죽어도 자신의 영화는 남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제목에 이름을 삽입했다) 때문에 새로운 시작의 의지로 자신의 이름을 삽입했다라는 것 외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설명한 이상은 필자도 잘 모르니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있다면 설명해주시기를. 어쨌거나 '분노의 13번가'는 영국 필름 페스티발에서 관객들에게 추앙받았을 뿐만 아니라(자국에서보다 훨씬 가치를 인정받았다), 할로윈의 제작자 중 한 명인 무스타파 아카드(2005년 요르단 폭탄테러 당시 사망했다. 할로윈 시리즈를 끝없이 우려먹은 것은 아카드였다.)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배급업자 마이클 마이어스까지.

카펜터는 그 후 자신의 필모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작품을 만들게 된다. '할로윈'은 '베이비시터 머더러'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할로윈의 제작자 중 한 명이었던 Irwin Yablans의 머리속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데브라 힐의 베이비시터 경험과, 카펜터의 이야기 확장이라는 공동 작업이 더하여져 최종시나리오로 완성된다. 시나리오에 만족한 아카드는 32만달러의 제작비를 제공했고, 약 4달여의 작업 끝에 '할로윈'은 세상에 빛을 본다. 이 작품은 무려 당시 5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카펜터가 상업적으로도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누적 수익은 7천5백만달러에 달한다). 할로윈은 슬래셔무비의 원조라는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그리 가학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뾰족한 칼에 대한 극단적 클로즈업과 희생자에 대한 테러가 뒤따를 때에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깔끔한 트릭이 사용될 정도로. 이러한 절제는 자신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다른 슬래셔무비(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와는 차별되는 것이었다. 카펜터는 일반적으로 특수효과보다는 이야기와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감독이었다. 어쨌거나 할로윈의 탁월한 장점은 카메라에 있었는데, 넓은 화면의 가장 자리로 살인마를 몰아가면서 은근한 추격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카펜터를 카메라로 말하는 감독이라 칭해지게 하였다. 날카로운 음악(자신이 작곡한) 역시 그러한 긴장감 고조에 일조한다. 이 작품은 자신이 만든 다른 모든 작품을 합한 것보다 카펜터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물론 80년대의 공포영화 붐을 조성했던 하나의 폭탄이었다.


- to be continued...

by ArborDay | 2006/07/04 14:18 | 특집/칼럼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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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6/07/04 15:02
호박외계인 나오는 거였죠, 다크스타?
Commented by 야옹이형 at 2006/07/04 15:03
헉, to be continued.. ㅎㅎ 클릭하고 싶어져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04 15:20
rumic71님/ 넵, 전 그냥 그 뭐냐 해변에서 바람 넣어 만드는 풍선같이 생겼다고 기억하고 있었지만요. 외계인이라 믿어주기엔 너무 당황스러운 외모였죠.

야옹이형/ 흐흐흐. 클릭해도 소용없다. ㅠㅠ
Commented by 몽중인 at 2006/07/04 16:16
<분노의 13번가>가 리오 브라보에서 나온 것이었군요. 이분의 연출력도 연출력이지만 일렉트릭한 영화음악이 참 좋아요. 작곡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가 본인 직접 하는 것이겠죠? to be continued... 기대하겠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7/04 16:53
만세! 그렇잖아도 점점 더 공포 영화들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어제 드디어 [할로윈]을 앵커베이 DVD로 보고 환호한 참입니다. 그 놀라운 화면구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전 시네마스코프 페티쉬도 있거든요) 이어질 연재를 기대하겠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04 17:16
몽중인님/ 잘 알고 계시네요. 음악공부를 전문적으로 마친 것은 아니기에, 옥스포드 세계영화사에는 아마추어 작곡가의 대표적 예로서 '존카펜터'가 잠시 이름을 올리더군요. 저도 카펜터의 전자음악이 참 좋습니다. ^^

sabbath님/ 아, 확인하셨군요. 할로윈은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확실해요. 그나저나 '시네마스코프 페티쉬'란 표현은 정말 참신하네요. 확실히 가로로 긴 편이 더 미학적으로 와닿는 것 같아요. 저도 시네마스코프 페티쉬를 가진건가요? ^^
Commented by reme19 at 2006/07/05 00:56
카펜터의 작품 중에서는 괴물이랑 매드니스, They live를 가장 좋아합니다~ 할로윈도 물론..^^;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되어 있다는 말, 적극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05 07:12
reme19님/ 캬, 가장 좋은 작품들을 좋아하시는군요.
존카펜터만큼 기복없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감독도 흔치 않을겁니다.(상대적으로)
문제는 얼마가 들어가던 작품성에 큰 기복이 없다는 것이겠지만. ^^
Commented by 니야 at 2006/07/05 09:22
아우~ ArborDay님은 복받으실겁니다! 존 카펜터 만세!
Commented by toluidine at 2006/07/05 14:57
어쩐지 요즘 부쩍 카펜터를 자주 거론하시더니, 이런 것을 준비하고 있었군요. 카펜터씨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생각이 많은 개구장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주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05 17:12
니야님/ 니야님도 카펜터를 좋아하시는군요. ^^

toluidine/ 흐흐 이걸 준비해서 카펜터를 거론한게 아니라, 너랑 얘기하다가 삘받아서 정리 좀 해볼까라고 마음 먹은거야.
선후관계가 중요하지, 암. ^^
Commented by 피터팬 at 2006/07/05 18:06
대학 1학년 때 '매드니스'를 보고 난 후에 엄청나게 열광했었죠. 제가 꼽는 호러 걸작 중에 하나입니다. 그 후에 이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지를 알았다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05 18:25
피터팬님/ 매드니스는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대단함을 먼저 알고, 감독의 대단함을 뒤에 아는 것은 편견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
Commented at 2006/07/05 21: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esism at 2006/07/05 21:59
오! 그러고보니 슬레이어도 카펜터 작품이군요! 총으로 뱀파이어를 탕탕 쏴죽이는게 디게 재밌었어요 ^0^
Commented by 91 at 2006/07/05 22:10
저역시 매드니스를 가장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할로윈은 아직 못봤는데 꼭 챙겨봐야 겠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05 22:44
비공개님/ 저와 비슷하신걸요. 저도 카펜터의 근작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마스터즈 오브 호러'의 에피소드가 훨씬 나았죠. 마음껏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는걸요. ^^

sesism님/ 아, 슬레이어는 저로선 다소 당혹스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카펜터가 B급 액션에도 많은 관심이 있음을 몰랐던건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었어요.
그 작품은 다시 보고 새로이 평가를 내려야 할 듯.

91님/ 할로윈은 보셔야 합니다.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들수는 있겠지만.
Commented at 2007/05/18 17:00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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