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25일
[감독] 브라이언 유즈나 & 스튜어트 고든
1. 80년대 중반의 황금콤비
미국 국적의 브라이언 유즈나는 필리핀에서 태어나 라틴아메리카로 이주하였다. 그는 60~70년대 반문화세대의 일원이었는데, 그가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비교종교학을 전공했고 아방가르드 예술(추상미술가)을 하던 사람이었다. 이 시절 그는 공포영화들과 공포소설들에도 탐닉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사라져가던 고어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마음먹고, 미술을 포기하고 80년대 중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국의 L.A로 이주한다. 유즈나는 다른 감독들(조지A.로메로, 웨스크레이븐 등)과는 달리 시작부터 장르감독 아니 장르제작자였다.
한 번의 TV 영화를 찍은 경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극단을 15여년 정도 소유하며 연극 연출에 있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던 스튜어트 고든은 러브크래프트의 1922년작 'Herbert West - Reanimator'를 각색하여 영화를 찍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유즈나를 만나게 된다. 이미 고든은 시카고에 있었던 극장 Organic Theater에서의 연극들에 '고어'를 사용했었던 이력의 소유자였다. 유즈나는 그 계획을 받아들여 백만달러의 제작비로 4주간의 촬영, 배우 및 특수효과 전문가인 존 버츨러를 포함한 전문기술자들을 고든에게 제공해주었다. 이것이 유즈나의 필모의 시작이자 그들의 파트너쉽의 시작이었다.
<좀비오>는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의 변형으로서, 80년대 중반 이후 패러디와 과잉의 공포영화라는 메인스트림을 만드는데 공헌했다. 이는 공포영화의 전성기를 경험한 후배들이 선배들에 비해 진지함이 조금 떨어지는 대신, 장르 자체를 가지고 놀만큼의 인프라가 형성되었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는 유머란 것이 배제되어 있었으나, 고든은 이 이야기를 의과 대학으로 옮겨 직업, 사랑 등의 소극의 성격을 추가했다. 어쨌거나 이 작품의 성공은 유즈나와 고든에게 많은 제작비 및 사회의 관심이 몰리게 하였다.
그들의 파트너쉽은 성공적이었다. 아마 공포영화의 역사상 가장 많은 시너지효과를 낸 감독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작비를 구하기가 훤씬 수월했던 <지옥인간>은 제프리콤즈와 바브라크램튼, 그리고 H.P.러브크래프트의 원작이라는 제작 상의 유사점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또한 영화도 성공했다.(지옥인간에 있어 재미있는 사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피가 아닌 다른 액체를 사용했으나, 검열에 우호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삭제장면이 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얼마전부터 삭제장면이 들어있는 필름이 발견되어 dvd가 새로이 출시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그러나, 고든이 연출을, 유즈나가 제작을 담당했던 이 황금콤비는 <돌스>를 만들고는 갈라서고 만다. 그들에게는 성향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즈나가 처음부터 장르감독이었다면, 고든은 자신을 공포영화 감독의 범주에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판타지 영화를 좋아했다는 공통점, 그리고 작품을 위해 고어를 적당히 만져도 좋다는 생각에 있어 공통점을 가졌던 것 뿐이었다.
영화를 만들며 어떤 장면에 대해 토론할 때, 유즈나는 다른 제작자들과는 달리 더욱 강도를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유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포영화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수 밖에는 없다."
처음에는 고든도 이에 동감했으나, 점점 그들의 차이는 벌어지고 만다. 유즈나가 고어 자체에 집착하는 반면, 고든은 고어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든은 폭력의 결과를 고발하는 경우 등에 고어가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 각각의 길(1) - 브라이언 유즈나
유즈나는 고든과 결별한 이후에는 제작과 감독을 병행하였는데, 특히 '감독'으로서의 유즈나가 두드러졌다(많은 경우 자신의 감독작의 제작 역시 그 자신이 맡았고, 그 외 몇 작품의 제작에 동참했다). 처음의 두 작품은 1989년의 <소사이어티>와 90년의 <좀비오2>였다. 이 두 작품은 기존의 것들에 대한 오마쥬이며, 변형이자, 캐릭터와 비쥬얼에 대한 집착이라는 유즈나의 성향을 설명한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에 자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증거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89년의 <소사이어티>는 사회 계층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로 발전시켰지만, 결국은 <신체강탈자의 침입>이라는 모티브의 학창시절 버전을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패컬티>도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사이어티>는 기득권층이 비밀리에 담합하여 그렇지 못한 계층을 빨아먹는다는 생각을 섬뜻할 정도로 이미지로 형상화해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유즈나의 전위예술가로서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소리'로 공포를 표현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장점이었다. 소사이어티는 홀로 선 유즈나의 데뷔작이자, 그의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는 아쉽게도 이후로 이 작품을 단 한 번도 넘어서지 못한다. 그에 비해 90년의 <좀비오2>는 다소 안전한 작품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제목에서 힌트를 얻은 속편으로 조금 더 볼거리가 많아진 뻔한 이야기였지만, 전편의 팬들은 이번에도 역시 만족했다.
이후 몇 편의 작품을 마친 후, 그는 <바탈리언> 시리즈에 가담하여 전작과 관계가 없는 시리즈의 3편을 만들어낸다. <리빙데드3>는 유즈나를 말함에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이분법(산자와 죽은자)에 커플의 로맨스를 첨가한 이 작품은 사도마저히즘마저도 결합시켰다. 이 작품의 최고의 미덕은 여성 캐릭터였다. 또한 흡사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로맨스를 담은 엔딩장면은 좀비물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혹자에게는 이 작품이 그의 베스트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는 <공포의 이블데드(Necronomicon)>를 통해 다시 한 번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그는 이 작품의 모든 단편을 제작하였으며, 2개의 단편을 감독하였다. 이 작품은 브라이언 유즈나가 공포소설들에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엿보게 해준다는데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3. 각각의 길(2) - 스튜어트 고든
애드가 앨런 포우에게서 영감을 받아, 고어가 많이 약해진 비디오용 공포영화 <펜드럼>을 만든 후 고든의 행보는 쇼킹할 정도였다. 그의 네 번째 장편작은 <로보족스(Robojox)>였다. 고든은 로보족스를 통해 공포영화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명백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았던 로보족스는 의도하지 않은 유머를 통해 소수의 매니아층을 형성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너무나 허접한 영화였다. 그 이후 만들어진 <포트리스>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물론 브라이언 유즈나와 결별했다고 해서, 고든이 고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설명했듯 그는 고어를 하나의 표현수단으로 생각하는 감독이었고, 고어를 사용한 기간도 유즈나보다 훨씬 길었다. 단지 그는 작가의 성향이 더 강했을 뿐이었다.
영화 <포트리스>에서는 자신의 몸 속으로 칩이 삽입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로보트 간수로 이용하기 위해 아기들에게 행하는 행위를 '푸른 액체'와 함께 명백히 표현한다. 영화 속의 고어들 모두가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관객의 상상을 이끌어내는 기법이 사용되었다.(고든은 원래 스스로 절제를 감행하는 부류의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고어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소위 '빅브라더'가 가하는 개인에 대한 인권 제한 등의 다른 차원의 공포를 시각화하는 장치에 불과했다.
고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명백히 유즈나와 결별한 고든은 공포영화 감독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공포영화 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인생에 있어 단언하자면, 고든의 변신은 결과론적으로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런 탓일까? 그는 다시 아벨페라라의 <바디에이리언>의 각색진에 참여하며 장르로 귀환한다. 그리고 <사탄의 테러(Castle freak)>를 통해 감독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든의 이름 값에 대한 높은 기대치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4. 재회, 그 이후.
고든은 이후 <스페이스 트러커>라는 영화를 찍고 난 후, 일회성이 아닌 호러 장르로의 영구한 복귀를 꿈꾸었다. 그의 장르복귀는 각색을 통해서였다. <덴티스트>의 공동 각색진으로의 참여는 고든에게 다시 브라이언 유즈나를 만날 기회를 주었다. 그 이후 <프로제니>, <덴티스트2>에 이르기까지의 고든이 각색에 참여한 작품들의 감독을 맡았던 것은 유즈나였다.
사실 <공포의 이블데드>를 만든 후 유즈나도 이전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지는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덴티스트>의 제작자는 유즈나가 선호하는 형태의 공포영화를 원하지 않았고, 메디칼스릴러를 만들 것을 원했다. 카툰을 소재로 한 다크히어로를 등장시킨 <파우스트>는 가위손 캐릭터와 신체 변형이라는 유즈나의 성향에 가까웠지만 다소 아쉬운 작품에 그치고 만다.
어쨌거나 감독으로서의 정체의 늪에 빠진 브라이언 유즈나와 변신에 실패한 스튜어트 고든은 2001년 <데이곤>을 통해 그들의 전성기 무렵의 제작 방식, 유즈나 제작, 고든 연출, 러브크래프트의 원작이라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사실 이 작품은 15년전에 이미 유즈나와 고든 사이에서 계획된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성공이었는데, 물론 전성기 무렵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갖춘 범작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고든은 '개미들의 왕'과 '에드몬드'를 만들며 호러/스릴러의 감독으로 완연히 컴백한다. 반면, 유즈나는 여전히 제작과 감독을 겸하고 있다. 유즈나는 현재 판타스틱 팩토리(필맥스와 결합된 장르영화사로 공동책임자로 보인다)를 통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장르는 호러이기 때문에, 판타스틱 팩토리가 만드는 영화의 대부분 역시 호러영화이다.
유즈나는 한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감독을 더욱 좋아하지만, 영화사를 먹여살리기 위해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에 주력한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가 감독을 직접 맡는 경우는 적당한 감독을 찾지 못할 때라고 말했고, <좀비오3>가 이에 해당했다. 어쨌거나 이상의 행보에서 유즈나 역시 이 장르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80년대 중반 매니아들의 필감리스트에 오르고도 남을 굵직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이 황금콤비는, 물론 그 시절만큼 서로 의존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결별한 것을 정말 아쉬운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그들이 호러장르에서 계속 하여 활동하는 한, 그들의 공동작업은 머지 않은 기회에 또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한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만날 수 있게 되는 일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항상 즐거운 일일 것임이 자명하다.
- written by Arborday
덧 1. 유즈나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는 'Kino의 Brian Yuzna 인터뷰'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작품을 보면 그 이해도가 확실히 높겠지요. 그는 상업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이 집착하는 캐릭터와 신체 변형 등을 작품에서 다루는데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덧 2. 고든은 한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제작자는 브라이언 유즈나였습니다. 아련한 추억이로군요. 제프리콤즈와 함께.
덧 3.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은 배제되었습니다. 그건 짧은 시간 동안에 쓸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미국 국적의 브라이언 유즈나는 필리핀에서 태어나 라틴아메리카로 이주하였다. 그는 60~70년대 반문화세대의 일원이었는데, 그가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비교종교학을 전공했고 아방가르드 예술(추상미술가)을 하던 사람이었다. 이 시절 그는 공포영화들과 공포소설들에도 탐닉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사라져가던 고어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마음먹고, 미술을 포기하고 80년대 중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국의 L.A로 이주한다. 유즈나는 다른 감독들(조지A.로메로, 웨스크레이븐 등)과는 달리 시작부터 장르감독 아니 장르제작자였다.
한 번의 TV 영화를 찍은 경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극단을 15여년 정도 소유하며 연극 연출에 있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던 스튜어트 고든은 러브크래프트의 1922년작 'Herbert West - Reanimator'를 각색하여 영화를 찍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유즈나를 만나게 된다. 이미 고든은 시카고에 있었던 극장 Organic Theater에서의 연극들에 '고어'를 사용했었던 이력의 소유자였다. 유즈나는 그 계획을 받아들여 백만달러의 제작비로 4주간의 촬영, 배우 및 특수효과 전문가인 존 버츨러를 포함한 전문기술자들을 고든에게 제공해주었다. 이것이 유즈나의 필모의 시작이자 그들의 파트너쉽의 시작이었다.
<좀비오>는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의 변형으로서, 80년대 중반 이후 패러디와 과잉의 공포영화라는 메인스트림을 만드는데 공헌했다. 이는 공포영화의 전성기를 경험한 후배들이 선배들에 비해 진지함이 조금 떨어지는 대신, 장르 자체를 가지고 놀만큼의 인프라가 형성되었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는 유머란 것이 배제되어 있었으나, 고든은 이 이야기를 의과 대학으로 옮겨 직업, 사랑 등의 소극의 성격을 추가했다. 어쨌거나 이 작품의 성공은 유즈나와 고든에게 많은 제작비 및 사회의 관심이 몰리게 하였다.
그들의 파트너쉽은 성공적이었다. 아마 공포영화의 역사상 가장 많은 시너지효과를 낸 감독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작비를 구하기가 훤씬 수월했던 <지옥인간>은 제프리콤즈와 바브라크램튼, 그리고 H.P.러브크래프트의 원작이라는 제작 상의 유사점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또한 영화도 성공했다.(지옥인간에 있어 재미있는 사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피가 아닌 다른 액체를 사용했으나, 검열에 우호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삭제장면이 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얼마전부터 삭제장면이 들어있는 필름이 발견되어 dvd가 새로이 출시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그러나, 고든이 연출을, 유즈나가 제작을 담당했던 이 황금콤비는 <돌스>를 만들고는 갈라서고 만다. 그들에게는 성향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즈나가 처음부터 장르감독이었다면, 고든은 자신을 공포영화 감독의 범주에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판타지 영화를 좋아했다는 공통점, 그리고 작품을 위해 고어를 적당히 만져도 좋다는 생각에 있어 공통점을 가졌던 것 뿐이었다.
영화를 만들며 어떤 장면에 대해 토론할 때, 유즈나는 다른 제작자들과는 달리 더욱 강도를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유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포영화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수 밖에는 없다."
처음에는 고든도 이에 동감했으나, 점점 그들의 차이는 벌어지고 만다. 유즈나가 고어 자체에 집착하는 반면, 고든은 고어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든은 폭력의 결과를 고발하는 경우 등에 고어가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 각각의 길(1) - 브라이언 유즈나
유즈나는 고든과 결별한 이후에는 제작과 감독을 병행하였는데, 특히 '감독'으로서의 유즈나가 두드러졌다(많은 경우 자신의 감독작의 제작 역시 그 자신이 맡았고, 그 외 몇 작품의 제작에 동참했다). 처음의 두 작품은 1989년의 <소사이어티>와 90년의 <좀비오2>였다. 이 두 작품은 기존의 것들에 대한 오마쥬이며, 변형이자, 캐릭터와 비쥬얼에 대한 집착이라는 유즈나의 성향을 설명한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에 자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증거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89년의 <소사이어티>는 사회 계층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로 발전시켰지만, 결국은 <신체강탈자의 침입>이라는 모티브의 학창시절 버전을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패컬티>도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사이어티>는 기득권층이 비밀리에 담합하여 그렇지 못한 계층을 빨아먹는다는 생각을 섬뜻할 정도로 이미지로 형상화해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유즈나의 전위예술가로서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소리'로 공포를 표현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장점이었다. 소사이어티는 홀로 선 유즈나의 데뷔작이자, 그의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는 아쉽게도 이후로 이 작품을 단 한 번도 넘어서지 못한다. 그에 비해 90년의 <좀비오2>는 다소 안전한 작품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제목에서 힌트를 얻은 속편으로 조금 더 볼거리가 많아진 뻔한 이야기였지만, 전편의 팬들은 이번에도 역시 만족했다.
이후 몇 편의 작품을 마친 후, 그는 <바탈리언> 시리즈에 가담하여 전작과 관계가 없는 시리즈의 3편을 만들어낸다. <리빙데드3>는 유즈나를 말함에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이분법(산자와 죽은자)에 커플의 로맨스를 첨가한 이 작품은 사도마저히즘마저도 결합시켰다. 이 작품의 최고의 미덕은 여성 캐릭터였다. 또한 흡사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로맨스를 담은 엔딩장면은 좀비물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혹자에게는 이 작품이 그의 베스트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는 <공포의 이블데드(Necronomicon)>를 통해 다시 한 번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그는 이 작품의 모든 단편을 제작하였으며, 2개의 단편을 감독하였다. 이 작품은 브라이언 유즈나가 공포소설들에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엿보게 해준다는데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3. 각각의 길(2) - 스튜어트 고든
애드가 앨런 포우에게서 영감을 받아, 고어가 많이 약해진 비디오용 공포영화 <펜드럼>을 만든 후 고든의 행보는 쇼킹할 정도였다. 그의 네 번째 장편작은 <로보족스(Robojox)>였다. 고든은 로보족스를 통해 공포영화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명백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았던 로보족스는 의도하지 않은 유머를 통해 소수의 매니아층을 형성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너무나 허접한 영화였다. 그 이후 만들어진 <포트리스>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물론 브라이언 유즈나와 결별했다고 해서, 고든이 고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설명했듯 그는 고어를 하나의 표현수단으로 생각하는 감독이었고, 고어를 사용한 기간도 유즈나보다 훨씬 길었다. 단지 그는 작가의 성향이 더 강했을 뿐이었다.
영화 <포트리스>에서는 자신의 몸 속으로 칩이 삽입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로보트 간수로 이용하기 위해 아기들에게 행하는 행위를 '푸른 액체'와 함께 명백히 표현한다. 영화 속의 고어들 모두가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관객의 상상을 이끌어내는 기법이 사용되었다.(고든은 원래 스스로 절제를 감행하는 부류의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고어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소위 '빅브라더'가 가하는 개인에 대한 인권 제한 등의 다른 차원의 공포를 시각화하는 장치에 불과했다.
고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명백히 유즈나와 결별한 고든은 공포영화 감독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공포영화 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인생에 있어 단언하자면, 고든의 변신은 결과론적으로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런 탓일까? 그는 다시 아벨페라라의 <바디에이리언>의 각색진에 참여하며 장르로 귀환한다. 그리고 <사탄의 테러(Castle freak)>를 통해 감독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든의 이름 값에 대한 높은 기대치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4. 재회, 그 이후.
고든은 이후 <스페이스 트러커>라는 영화를 찍고 난 후, 일회성이 아닌 호러 장르로의 영구한 복귀를 꿈꾸었다. 그의 장르복귀는 각색을 통해서였다. <덴티스트>의 공동 각색진으로의 참여는 고든에게 다시 브라이언 유즈나를 만날 기회를 주었다. 그 이후 <프로제니>, <덴티스트2>에 이르기까지의 고든이 각색에 참여한 작품들의 감독을 맡았던 것은 유즈나였다.
사실 <공포의 이블데드>를 만든 후 유즈나도 이전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지는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덴티스트>의 제작자는 유즈나가 선호하는 형태의 공포영화를 원하지 않았고, 메디칼스릴러를 만들 것을 원했다. 카툰을 소재로 한 다크히어로를 등장시킨 <파우스트>는 가위손 캐릭터와 신체 변형이라는 유즈나의 성향에 가까웠지만 다소 아쉬운 작품에 그치고 만다.
어쨌거나 감독으로서의 정체의 늪에 빠진 브라이언 유즈나와 변신에 실패한 스튜어트 고든은 2001년 <데이곤>을 통해 그들의 전성기 무렵의 제작 방식, 유즈나 제작, 고든 연출, 러브크래프트의 원작이라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사실 이 작품은 15년전에 이미 유즈나와 고든 사이에서 계획된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성공이었는데, 물론 전성기 무렵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갖춘 범작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고든은 '개미들의 왕'과 '에드몬드'를 만들며 호러/스릴러의 감독으로 완연히 컴백한다. 반면, 유즈나는 여전히 제작과 감독을 겸하고 있다. 유즈나는 현재 판타스틱 팩토리(필맥스와 결합된 장르영화사로 공동책임자로 보인다)를 통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장르는 호러이기 때문에, 판타스틱 팩토리가 만드는 영화의 대부분 역시 호러영화이다.
유즈나는 한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감독을 더욱 좋아하지만, 영화사를 먹여살리기 위해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에 주력한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가 감독을 직접 맡는 경우는 적당한 감독을 찾지 못할 때라고 말했고, <좀비오3>가 이에 해당했다. 어쨌거나 이상의 행보에서 유즈나 역시 이 장르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80년대 중반 매니아들의 필감리스트에 오르고도 남을 굵직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이 황금콤비는, 물론 그 시절만큼 서로 의존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결별한 것을 정말 아쉬운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그들이 호러장르에서 계속 하여 활동하는 한, 그들의 공동작업은 머지 않은 기회에 또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한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만날 수 있게 되는 일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항상 즐거운 일일 것임이 자명하다.
- written by Arborday
덧 1. 유즈나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는 'Kino의 Brian Yuzna 인터뷰'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작품을 보면 그 이해도가 확실히 높겠지요. 그는 상업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이 집착하는 캐릭터와 신체 변형 등을 작품에서 다루는데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덧 2. 고든은 한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제작자는 브라이언 유즈나였습니다. 아련한 추억이로군요. 제프리콤즈와 함께.
덧 3.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은 배제되었습니다. 그건 짧은 시간 동안에 쓸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 by | 2006/05/25 14:37 | 특집/칼럼 | 트랙백(2) | 핑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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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좀비오] 네 번째 속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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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해놓은걸 봤는데, 정말 아름다운 컬렉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덧 3. 스튜어트 고든과 브라이언 유즈나를 생각할 때마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라는 영화 친구의 광고문구가 떠오릅니다. 둘은 너무나도 달랐지만,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거늘. ... more
※ 오랜만에 뵙네요. 잠깐 잠수 좀 탔었습니다^^;
공포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좀비오>거든요. 학창시절에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모릅니다. 매일 B급 공포영화(그 시절에는 공포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를 얻기도 힘들어서, 그냥 비디오가게의 공포영화쪽에서 겉표지만 보고 빌렸죠)만 보다가 이 영화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영화보기와 지금의 영화보기가 다르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웬만한 공포영화는 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뿌리님/ 흐흐흐. 잠수타셨군요. 숨은 너무 오래 참으면 힘들어요. ^^
미디어몹님/ 감사드립니다.
김응일님/ 그 평론가 생각이 저와 비슷하네요. 그런데 유즈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해요. 그가 보여주는 비쥬얼들(잔인함을 떠나서)과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 때문에라도 반할 수 밖에 없죠.
내가 만약 소사이어티를 보지 않았다면, 리빙데드3가 최고라는 말에 동감했을거야.
reme19님/ 저 포스터가 주는 느낌은 정말이지 대단했죠. 얼마나 기대를 하면서 집으로 빌려왔었는지 모릅니다.
여하튼간 나도 가장 먼저 봤던게 '좀비오'지. 빠져든건 '지옥인간'이지만.
예전에는 정보 얻기 어려웠어. 다들 그랬지. 다만 내가 다니던 비디오샾의 경우에는 주인장이 공포영화를 꽤 좋아했어. 그래서 많이 권해줬는데,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지. 뭐, 보는 속도가 나오는 속도보다 빠르던 시절이었으니 권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 봐치웠지만.
좀비오는 아직 팔고 있기는 한가보네. movie4989 에 신품 떠 있는걸 보니. 뭐 나도 공포영화 dvd는 얼마 안되네. 삭제가 있어도 한글자막이 있는게 좋아서 애지간한 녀석들은 코드1 잘 안 사고, 그나마 요즘 나와주는 녀석들 별로 맘에 드는 놈도 없고, 고전의 경우는 너무 많이 봐서 dvd 사도 안 볼테고. 리핑이라도 '데드링거' 정도 되어야 돈을 쓸까, 뭐 그렇네.
msn에서 보자꾸나.
말씀하신대로 소사이어티의 비주얼은 정말 넋이 나갈 지경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