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뱀파이어물 - 박쥐성의 무도회

이 작품은 분명히 노골적인 '해머사 드라큐라물'에 대한 장난질로 점철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전복적이라는 성격을 제외하면 대단한 영화가 아닙니다.
대단히 재미있지도 않고, 포복절도할만큼 웃기지도 않고 소름이 돋을만큼 무섭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만들어진지 오래 된 영화라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쇼킹한 영화도 아닙니다.
결국 당시의 관점에서 이 작품이 가진 전복성을 제외하면 사실 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만큼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게 제 솔직한 생각이에요.

'겁없는 뱀파이어 킬러 혹은 죄송합니다만 당신의 이빨이 내 목을 물고 있네요'라는 엄청 긴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영화는 제목부터 엄청난 포스를 뿜어댑니다. 이 제목만 봐도 이 작품 범상한 작품이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이 영화에서 들어맞는 고정관념은 하나도 없죠. 영화는 그같은 설정에 슬랩스틱 코미디를 더해서 끌어갑니다. 그렇게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뱀파이어물은 완성됩니다.

음지에서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관례와 같았던 뱀파이어는 이 영화에서는 아예 광고를 하고 다닙니다. 자기 PR 시대의 도래인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녀석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게다가 뱀파이어가 멋진 중년 신사냐구요? 아니에요.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답니다. 세상에, 불로장생의 대명사 뱀파이어가 어찌 그렇게.
아버지는 딸을 보고 음탕한 마음을 품고 다 큰 딸의 엉덩이를 때려댑니다. 게다가 하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콩가루 집안을 만들어내죠. 가부장제를 비꼬았냐구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내는 그리 약하지 않아요. 몽둥이를 들고 남성을 찾아다니죠. 그리고 딸도 마찬가지, 아버지가 때리는걸 즐기는 듯 보이거든요.
남성간의 '동성애'를 암시하는 장면도 나온답니다. 이 당시 남성간의 동성애와 뱀파이어물은 조금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면 가히 혁명적인 설정일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건 드라큐라를 여성의 목을 물고 빨아대는 섹스심벌로 만들어버렸던 '해머하우스'의 그것들은 이 영화에서 완전히 망가져버립니다.

영화가 나온 1967년 당시의 눈으로 돌아가보자면 이같은 자기PR이나, 어떤 사회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기조는 당시의 히피(일반적으로는 1966년에 뉴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런던 등 유럽으로 확대되었습니다)의 탈사회적 행위들을 풍자한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충분히 보수적인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보수적 성격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저 카메라가 지나가는 모든 것에 대해 조롱으로 일관하는 편입니다. 영화는 조롱으로 시작해서 조롱으로 끝납니다. 기성세대, 신세대, 뱀파이어 모두 그 조롱을 피해갈 수 없어요.

물론 영화에서 구체화된 가장 큰 악이라면 역시 뱀파이어일겁니다. 그들은 사람을 해치니까요. 이 영화에서의 뱀파이어는 전염병이나 섹스심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권위라는 느낌을 풍겨댑니다. 화려한 무도회를 여는 뱀파이어의 모습은 전형적인 설정이구요,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누구인지 마을 사람들 모두 알고 있다는 설정도 덧붙여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못 본 척하죠. 이건 권위에 굴복해버린 사람들이라고 밖에는 말하기 어렵네요. 목에 구멍이 두 개가 나있고 누가 한 짓인지 뻔히 알면서도 '늑대인간'의 탓으로 돌리고 맙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항해야 할 것에는 대항하지 못하면서 젊은이들의 행동에나 색안경을 끼고 있는 기성세대가 이 영화 최고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됩니다. 유일하게 뱀파이어에게 대항하는 것은 기성세대인 외부인이지만 그들도 전혀 멋지지 않습니다. 멍청한 박사에 똑똑치 못한 조수. 박사는 형편없는 망상증 환자처럼 보여요. 영화의 마지막에 박사는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세상을 멸할 씨앗을 가지고 나오거든요.

종합하자면 이 작품은 폴란스키가 만든 작품답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말할만은 합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금물이에요.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어디에선가 다 한 번 씩은 접해보았을 그런 이야기이니까요. 그래서 이름값만 믿고 어렵사리 영화를 구해봤다가는 후회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드는군요.


덧 1. 영화의 제목이 '박쥐성의 무도회' 혹은 '드라큐라 무도회'로 알려진 이유는 제법 근사한 무도회씬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덧 2. 샤론 테이트 정말 예쁘네요. 슬프게도 아직까지도 좋지 못한 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지만, 적어도 영화 속의 그녀는 살아있는 생동감에 넘친답니다.


by ArborDay | 2006/05/08 12:00 | 공포/호러 | 트랙백(1)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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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하로기의 무비툰 at 2007/05/14 21:58

제목 : 박쥐성의 무도회 (드라큐라 무도회 The Fearl..
감 독 : 로만 폴란스키 주 연 : 잭 맥고란, 로만 폴란스키, 샤론 테이트 장 르 : 코믹/뱀파이어 상영시간 : 108분 Sharon Marie Tate 출생일 : 1943년 1월 24일 사망일 : 1969년 8월 9일 첫 아이 출산을 기다리던 1969년 8월 9일, 당시 임신 중이었던 그녀와 4명이 찰스 맨슨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광신적인 집단에 의해서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헐리우드 역사상 가장......more

Commented by 오유 at 2006/05/08 12:32
이 영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참 잼있게 봤더랬습니다. 폴란스키가 이런 것도 찍네 하면서 말이죠 ㅎㅎㅎ 폴란스키의 어벙한 조수 역할도 귀여웠습니다. 하지만, 샤론 테이트의 매력적이고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고통스런 일이었죠. 두 사람이 이 영화로 만났다고 하던데 세상에, 그런 비극이 닥칠 거라 짐작이나 했을까요, 쩝.
Commented by 야옹이형 at 2006/05/08 12:39
포스터 귀여워요~ 요새도 예전처럼 저런 일러스트식 포스터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훨씬 매력적인데.. 나만 그런가. ㅋ
Commented by 다미친코드 at 2006/05/08 12:47
박지성! 순간 놀랐습니다 ㅋ
Commented by toluidine at 2006/05/08 13:10
좋아라 하는 영화입니다. 오래된 영화여서 회화적인 느낌도 많이 들었고, 뭐랄까 마치 만화배경에서 어줍짢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랄까, 그런 느낌이 좋았습니다. 내내 즐겁게 보다 생뚱맞을 만큼 엄청난 결말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라는. ^^;

샤론 테이트는 정말 아까운 것 같아요. 그리 처참하게 죽어나갔으니... 쯧쯧.
Commented by jjay at 2006/05/08 13:13
포스터가 참 마음에 들어요.
어벙한 얼굴로 앉아서 보고 있으면 즐거울 것 같애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08 13:19
오유님/ 제가 폴란스키라도 사랑에 빠졌을 것 같았답니다. 하지만 그런 비극이 기다리리라고는.

야옹이형/ 내가 봐도 그래. 이 포스터 느낌 진짜 좋지 않아?

다미친코드님/ 흐흐흐. 놀랄게 뭐 있습니까. 저도 박지성 엄청 좋아합니다. 어지간한 경기는 다 챙겨보구요. ^^

toluidine/ 그러고보니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은 쏙 빼놓았네 그려.
나도 오래된 영화의 회화 배경이 참 좋더라고.

jjay님/ 후후후. 진지한 얼굴로 앉아서 보고 있어도 즐거울 것 같은데요. ^^
Commented by 겜퍼군 at 2006/05/08 13:34
음 예전에 이영화를 MBC에서 본거 같긴한데 마지막에 뱀파이어에 물린 사람을 데리고 나오는 걸로 끝나는 영화 맞나요? 겸사해서 샤론테이트에 대해 검색해보니 멘슨주의인가 ㅡㅡㅋ 음 집다 광신도집단등 뭔가 최근까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많이 쓰이는 소재이고 유사한 것들을 본거 같네요. 휴.. 살벌한 세상..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08 13:40
겜퍼군님/ 넵. 그 영화 맞습니다.
늘 그렇지만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서워요. 더 끔찍하고.
Commented by 바다별 at 2006/05/08 14:03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6/05/08 15:20
저도 아직 전편을 보진 못했고 TV에서 한 걸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인데, 암튼 뱀파이어 영화 내에서는 유독 유명합니다. 폴란스키 감독이라 더 그런 지도 모르겠지만.
Commented by dcdc at 2006/05/08 15:35
제목이 참 멋진데요!;
Commented by AKSN at 2006/05/08 17:13
포스터 글씨가 정말 예쁘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08 18:26
바다별님/ 재미는 있습니다.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는건 어렵지만.

rumic71님/ 폴란스키 감독인데다가, 영화 자체가 혁신적이에요. 당시로서는.

dcdc님/ 네. 극강포스를 뿜어내지요? ^^

AKSN님/ 저도 좋아하는 표지랍니다. ^^
Commented by 석원군 at 2006/05/08 18:30
전 무지하게 웃기던데요 ^^; 폴란스키의 어벙벙한 표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섭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습니다. 특히 앤딩 부분이;;;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08 21:00
석원군/ 무서운 영화는 아니니까. ^^
무지하게 웃겼구만. 사실 나도 꽤 웃긴 했는데 좀 냉정하게 평가를 했나보네.
Commented by 김응일 at 2006/05/08 21:33
샤론 테이트.. 폴란스키의 포스를 억누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 역시 명 감독들의 초기작들은 나름 뭔가 앞으로의 기대감같은 것을 갖게 하는 것들이 있죠. 아직 보지 못한 영화인데 자극 받았습니다. ^^
Commented by 써머즈 at 2006/05/08 23:29
포스터가 상당히 귀여운데요? 제목은 거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수준이예요. :p
Commented by 미디어몹 at 2006/05/09 09:30
arborday 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타누키 at 2006/05/09 12:05
덜덜덜....박쥐성→박지성으로 보고 왔습니다.
깜짝 놀랐네요 ^^;; 한번 보고 싶네요 ㅎㅎ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09 12:14
김응일님/ 그렇죠. 개인에게 너무 큰 아픔이었을테니.

써머즈님/ 흐흐흐. 옆에 덧붙여주신 제목 너무 귀엽네요. ^^

미디어몹님/ 감사드려요. ^^

타누키님/ 박지성씨 무도회 가면 춤 잘 출까요? 새삼 궁금해집니다.
Commented by 동사서독 at 2006/05/10 14:42
1. 설정만으로도 재미있어 보입니다. 꼭 봐야되겠네요.
2. 리메이크 되었으면 합니다.
3. 박지성보다 이영표가 춤을 더 잘 출 것 같습니다. 헛다리짚기 춤 ^^;;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5/10 23:08
동사서독님/ 1. 제가 적은 글이 흥미롭다면 보셔도 좋습니다. 간만에 매우 객관적으로 쓴 글이랍니다.
2. 괜찮겠네요.
3. 상상하고 있습니다. 역시 댄서라면 C.호나우도가.
Commented by 비에로 at 2006/10/10 22:35
어렸을 때 토요명화에서 해준 걸 보고 좋아했던 기억이 나는데, 추억 속의 이미지와는 좀 다른 느낌이네요. 언제 다시 찾아봐야 할텐데..^^;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10/11 00:49
비에로님/ 아무래도 머리크고 본 영화는 다르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서, 보이는 것 자체에 차이가 생긴달까요.
Commented at 2007/05/15 15: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5/15 20:02
비공개님/ 한 번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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