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버전 '아메리칸 뷰티' - Dead End

1. 99년 영국의 연극계에서 주로 활동하던 34세의 '샘멘데스'는 '아메리칸뷰티'라는 썩 잘 만들어진 - 아니,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바 있어요. 작품의 스토리는 단순했지요. 겉보기에는 번지르르해보이던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 알고보니 완전 콩가루 집안이었다는. 영화 '데드엔드(더로드)'도 전혀 다르지 않아요. 20년동안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지름길로 들어서면서 이 가정의 모든 문제점이 다 튀어나옵니다. '아메리칸 뷰티'가 미국 중산층 가구를 대상으로 코믹, 드라마의 외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 영화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공포'를 부각했다는 것이 다른 점이겠죠. 갑갑한 가정을 그리기에는 '공포'가 더 효과적일지도 몰라요.

2. 영화 속의 지름길의 이미지는 물론 처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몽환적이며 끝없이 반복되죠. 뭐가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Dead End'에서의 지름길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상징성을 가지는 공간입니다. 이 길에서는 가정의 모든 문제점이 다 낱낱이 공개됩니다. 가족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권위, 그를 무던히 참아내는 아내, 처가에 대한 불만, 마리화나를 태우는 아들, 임신을 했다는 딸.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알고보니 아들의 실제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였다네요. 세상에!
이 지름길이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내재해 있었던 것이었을 뿐이죠. 그들이 그런 사실들을 몰랐던 것은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일과 같은 날들을 살아갔다면 그들의 참을성은 이 가족의 외형을 그럴 듯하게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곤경에 빠지자 그들 내부의 문제들이 하나하나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그렇게 보자면 이 길은 처가로 가기 위한 지름길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화해를 끌어내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일 뿐이에요.

3. 이제 문제점은 부각되었으니, 화해가 있어야겠죠. 이 길을 벗어나서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딸의 질문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게임기와 마릴린맨슨의 CD를 사야겠다고 해요. 자신의 동심을 되찾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아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겠죠. 아버지는 딸에게 과거를 이야기하는 중 어머니는 너를 택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어머니를 옹호합니다. 딸은 아버지의 술을 버리고 그를 격려합니다. 너무 늦었다구요?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영화속 인물의 죽음이 아니니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생각이죠. 언제까지나 참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가정이라는 공간은 그리 따스하기만 한 공간은 아니라는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 말입니다. 쉴새없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곳, 그 곳이 가정입니다.

4. 앞서 말했듯 가족의 해체를 영화로 다루는 것은 이 작품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에요. '아메리칸 뷰티'가 아니더라도 68년의 로메로의 영화 속에서도 그런 개념들은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이미지들이 독창적인 것도 아니구요. 영화의 반전이라는 것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말한 그 모든 사실들이 이 영화를 깎아내릴 수는 없어요. 이 작품은 제가 2000년대 이후 본 호러영화 중에서는 상위권에 꼽히는 수작이에요. 어떤 한 부분만을 떼어보자면 최고라고 말할만한 부분은 없지만, 그 어떤 부분도 모자란 부분은 없어요. 아니 평균 이상은 충분히 하고 있지요. 소위 '올라운드 호러영화' 라고 불러도 될겁니다.


덧 1. 장-밥티스트 안드레아, 이 감독도 제법 기대가 되는 감독입니다. 영상도 연출도 깔끔해요. 그러나 차기작으로 imdb에 소개된 작품들을 보니 코미디 성향의 작품들이네요.

덧 2. 이 영화의 엔딩 때문에 엄청난 논란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종류의 모호성을 더하는 것은 별 의미없는 장르에 고유한 일반적인 엔딩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80년대의 수많은 작품들은 이런 식의 결말을 흔하게 사용했었죠. 편하게 보세요.

덧 3. 전 짧은 영화가 좋습니다.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도 싫고, 모든 영화를 80~90분대라고 생각하던 비디오키드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검열 탓인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82분의 러닝타임 부담도 없고 좋네요.


by ArborDay | 2006/04/20 12:37 | 공포/호러 | 트랙백(2)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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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디드리트 at 2006/04/20 13:11
제가 자주다니는 카페에서 본 리뷰랑은 느낌이 전혀 다르네요 다른영화같은 기분이+ㅁ + 공포영화가 보고싶은 마음은 언제나 간절한데 봐지지 않는건 제가 따로 행동을 안해서인거 같기도하네요..ㅠ_ㅠ 다운이 아니면 보기 힘든것도 많고..ㅎㅂ ㅎ; 시험 끝나면 주말에 날잡아 영화를 여러편 봐야겠어요>ㅅ < 좋은하루 되세요~
Commented by 너털도사 at 2006/04/20 13:26
전혀 정보가 없던 시기에 디빅으로 봤던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ArborDay님 글을 읽고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네요..
Commented by Shasha at 2006/04/20 14:47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개봉됐던 영화죠? 저도 굉장히 좋아했던 영화입니다.
Commented by 雅人知吾 at 2006/04/20 17:05
망설였는데 저도 봐야겠네요.
Commented by 『한군』 at 2006/04/20 17:38
필름포럼에서 봤는데, 극장안에 사람이 여섯명 밖에 없어서 꽤나 무섭게 봤습니다...
Commented by 미디어몹 at 2006/04/20 18:39
arborday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되었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4/20 21:14
디드리트님/ 워낙 많은 사람이 존재하니 평들도 다양한게 당연하겠지요.
시험 잘 치시고, 편한 마음으로 영화 많이 보세요. ^^

너털도사님/ 감사드립니다. 저와 비슷하게 영화를 파악하셨나봐요. ^^

Shasha님/ 예. 바로 그겁니다. 잘 빠진 작품이죠.

雅人知吾님/ 시간이 아깝지는 않으실겁니다.

한군님/ 허허허. 고작 여섯명. 그래요. 그게 현실입니다.

미디어몹님/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at 2006/04/21 19: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4/21 20:17
비공개님/ ^^
Commented by slip at 2006/04/22 19:17
영화에 대한 이야길 해보곤 싶지만 여전히 정리가 안되어서 ^^;
근데 전 사고당한 여자에 의해서 그들(가족)이 죽어가며 고통을 당했다 식으로 해석을 했었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4/22 21:31
slip님/ 사실 전 이 영화에서 사고당한 여자의 복수와 같은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어요.
그냥 공포로 그린 가족에 대한 비판을 주로 하고, 그를 받쳐주는 줄거리가 사고 후 살아남은 여자가 무의식상태에서 빠진 악몽 정도로 받아들였죠. 사실 줄거리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서요. 물론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설정들은 중요시하지만. ^^
어쨌거나 slip님께서 원하셨던 영화평 2개는 다 올라왔네요.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줄거리의 해석을 원하셨던 것 같은데.
Commented by slip at 2006/04/23 18:24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을 잊고 있었네요. ^^;
덕분에 좋은 감상 잘 보았습니다. (__)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4/23 20:05
slip님/ 잘 읽으셨다면 다행이네요. ^^
Commented by 칸나 at 2006/06/25 23:37
이렇게 해석할 수 있군요-_-..;; 전 단순히 공포로만 봤었는데..저 여자는 누구일까...왜 이들은 살해당하는 것일까...그런 요소에 착안하고 봤는데 초점이 다르게 맞추어진 리뷰라 신선합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6/26 03:52
칸나님/ 전 처음 볼때부터 딱 초점이 이렇게 맞춰지더라구요. 왜 그랬을까요? ^^
신선하다니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수운 최제우 at 2007/01/17 20:13
최근에 나온 공포영화 중 거의 '전설' 급으로 남을 작품이죠. 아마 10년이 지난 후 이 작품에 대해서 엄청난 호평을 할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할로윈'과 '나이트메어' 등등과 같은 작품을 열광하듯이 말이지요. 아 그리고 '디센트'는 아직 보지 않아서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 말만 들으면 거의 '전설'급인데 으음~~~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1/17 21:02
수운최제우/ 아마 이 작품은 후일 상당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거야.
일단 네가 여기 남긴 그 덧글은 나만 봐도 될 것 같아서 메모장에 복사한 후 따로 저장했다.
어지간하면 개인적인건 메일로 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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