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31일
간만에 만나는 잘 만들어진 호러 - Descent
1.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센트'는 간만에 만나는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였습니다. 일전 지인과 호러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닐마샬'은 새로운 영국호러의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었지요. 우연히 만난 '도그 솔져'가 썩 괜찮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아직까지는 틀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틀렸다면 그를 과소평가했다라는 점이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고,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이 작품은 닐마샬에게 영국 독립영화 감독상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건 '클라이브 바커' 이후 사실상 명맥이 끊어졌던 영국호러의 긴 침체기의 끝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동굴'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어두움을 제공하는 장소일뿐만 아니라, 조명만으로 감독이 원하는 어디든지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거든요. 게다가 동굴 자체가 협소한 공간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어요. 흡사 거대한 동물의 내장처럼 우주선을 표현한 '에일리언'의 느낌을 내는 것도 어렵지 않구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뛰어남이 온전히 소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소재로 영화를 찍어도 누가 표현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것이 나오는지는 '케이브'의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고.
3. 영화의 전반부는 최초의 끔찍한 사건과 어머니의 트라우마, 그리고 두어 번의 복선을 제외하고서는 마치 동굴탐사영화의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느슨하지만 전반부까지 영화는 여섯명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은근한 위화감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위화감은 한 남자를 통해 묶일 수 있는 두 여성에게서 만들어지죠.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주노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라가 좁은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감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해요. 이같은 위화감은 극을 끌어가는 하나의 축이 됩니다.
4. 40여분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등장하는 식인괴물 - 괴물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만큼 인간과 비슷하지만 - 들이 보이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스플래터, 혹은 좀비류의 영화로 변합니다. 뭐 액션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러한 진행은 분명히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굴 - 자신들의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 도착한 곳 - 은 멕시코와 다르지 않고, 그 곳에 있던 흡혈귀들은 이 괴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기에 - 빨간 피를 흘릴 뿐만 아니라, 인간과 외형적 특징이 극단적으로 비슷함에도 - 스크린에 자행되는 폭력의 수준까지도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르다는 것이 대부분의 불행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 괴물의 등장씬 이후로도 느낄 수 있을겁니다.
5. 어쨌든 이 작품은 어머니의 트라우마 탈출기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사고 1년 동안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계속해서 보이는 것이 생일케이크 앞에 앉아있는 자신의 아이이죠. 그녀는 이미 사고 이후 정신을 차린 직후부터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병원의 복도에서 어둠에 묻히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여인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지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란게 어떤건지 상상은 되지 않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벗어나기 어려운 고통이 되리라고는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간건 사고였지만, 그 사고의 근원에는 남편의 외도로 인한 부주의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친구를 용서치 않는 모습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친구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단지 새로운 트라우마를 낳을 뿐일겁니다. 대부분의 '복수'를 다룬 영화에서처럼. 트라우마의 해결은 자신의 죽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은 영화의 엔딩 전 아이와의 재회 환상으로 측은하게 형상화됩니다.
6. 영화는 열린 결말의 형식을 택하고 있고,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관객에게 던져줍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의 대사를 잊으신건 아니겠죠? "불을 끄면 어둡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암흑만이 있을 뿐이야. 탈수증과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지. 폐쇄공포증, 공황상태, 망상증, 환각."
극단적으로 동굴 속에서 일어난 전부를 모두 하나의 망상(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 일도 없었던)으로 대치시켜버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영화의 해석에 너무 골머리를 앓지 않기를 추천드립니다. 그건 감독인 닐마샬조차도 원하는 바가 아니에요. 그는 단지 '공포'에만 주력했을 뿐이거든요. 그것이 시각적이든, 심리적이든. 다르게 표현하면 깜짝 효과, 조명, 음악, 폐소공포, 위화감 그 무엇이든간에.
덧 1.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캐리', '페노미나',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풀치의 몇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억지가 있다고 해도 빨간 색의 웅덩이에서 기어나와 소리를 지르는 그 장면에서 '캐리'를 떠올리지 않기는 정말 어렵더군요. '동굴'이 있는 산으로 찾아갈 때의 극단적 하이앵글의 롱쇼트는 이사를 가던 '샤이닝'의 장면을 떠올리더군요. 외부로부터 무력할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하기에는 그만입니다.
덧 2. 대니보일의 '28일후'와 워킹타이틀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 등의 요즘 영국 좀비물의 새로운 변주와, 닐마샬의 정통B급호러, 그리고 'tortured soul'로 조만간 돌아올 클라이브바커까지. 영국 호러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영국 호러영화의 요즈음입니다.
2. '동굴'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어두움을 제공하는 장소일뿐만 아니라, 조명만으로 감독이 원하는 어디든지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거든요. 게다가 동굴 자체가 협소한 공간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어요. 흡사 거대한 동물의 내장처럼 우주선을 표현한 '에일리언'의 느낌을 내는 것도 어렵지 않구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뛰어남이 온전히 소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소재로 영화를 찍어도 누가 표현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것이 나오는지는 '케이브'의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고.
3. 영화의 전반부는 최초의 끔찍한 사건과 어머니의 트라우마, 그리고 두어 번의 복선을 제외하고서는 마치 동굴탐사영화의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느슨하지만 전반부까지 영화는 여섯명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은근한 위화감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위화감은 한 남자를 통해 묶일 수 있는 두 여성에게서 만들어지죠.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주노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라가 좁은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감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해요. 이같은 위화감은 극을 끌어가는 하나의 축이 됩니다.
4. 40여분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등장하는 식인괴물 - 괴물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만큼 인간과 비슷하지만 - 들이 보이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스플래터, 혹은 좀비류의 영화로 변합니다. 뭐 액션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러한 진행은 분명히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굴 - 자신들의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 도착한 곳 - 은 멕시코와 다르지 않고, 그 곳에 있던 흡혈귀들은 이 괴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기에 - 빨간 피를 흘릴 뿐만 아니라, 인간과 외형적 특징이 극단적으로 비슷함에도 - 스크린에 자행되는 폭력의 수준까지도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르다는 것이 대부분의 불행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 괴물의 등장씬 이후로도 느낄 수 있을겁니다.
5. 어쨌든 이 작품은 어머니의 트라우마 탈출기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사고 1년 동안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계속해서 보이는 것이 생일케이크 앞에 앉아있는 자신의 아이이죠. 그녀는 이미 사고 이후 정신을 차린 직후부터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병원의 복도에서 어둠에 묻히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여인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지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란게 어떤건지 상상은 되지 않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벗어나기 어려운 고통이 되리라고는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간건 사고였지만, 그 사고의 근원에는 남편의 외도로 인한 부주의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친구를 용서치 않는 모습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친구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단지 새로운 트라우마를 낳을 뿐일겁니다. 대부분의 '복수'를 다룬 영화에서처럼. 트라우마의 해결은 자신의 죽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은 영화의 엔딩 전 아이와의 재회 환상으로 측은하게 형상화됩니다.
6. 영화는 열린 결말의 형식을 택하고 있고,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관객에게 던져줍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의 대사를 잊으신건 아니겠죠? "불을 끄면 어둡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암흑만이 있을 뿐이야. 탈수증과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지. 폐쇄공포증, 공황상태, 망상증, 환각."
극단적으로 동굴 속에서 일어난 전부를 모두 하나의 망상(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 일도 없었던)으로 대치시켜버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영화의 해석에 너무 골머리를 앓지 않기를 추천드립니다. 그건 감독인 닐마샬조차도 원하는 바가 아니에요. 그는 단지 '공포'에만 주력했을 뿐이거든요. 그것이 시각적이든, 심리적이든. 다르게 표현하면 깜짝 효과, 조명, 음악, 폐소공포, 위화감 그 무엇이든간에.
덧 1.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캐리', '페노미나',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풀치의 몇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억지가 있다고 해도 빨간 색의 웅덩이에서 기어나와 소리를 지르는 그 장면에서 '캐리'를 떠올리지 않기는 정말 어렵더군요. '동굴'이 있는 산으로 찾아갈 때의 극단적 하이앵글의 롱쇼트는 이사를 가던 '샤이닝'의 장면을 떠올리더군요. 외부로부터 무력할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하기에는 그만입니다.
덧 2. 대니보일의 '28일후'와 워킹타이틀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 등의 요즘 영국 좀비물의 새로운 변주와, 닐마샬의 정통B급호러, 그리고 'tortured soul'로 조만간 돌아올 클라이브바커까지. 영국 호러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영국 호러영화의 요즈음입니다.
# by | 2006/03/31 11:01 | 공포/호러 | 트랙백(3)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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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독 : 닐 마샬 주 연 : 쇼나 맥도날드, 나탈리 잭슨 멘도자 장 르 : 공포 상영시간 : 99분 개봉일 : 2007-07-05 (목) 관련링크 : http://www.descent2007.co.kr/...more
개인적으로 만족감은 디센트쪽이 높았습니다.디센트 덕분에 독솔져를 보게됐으니^^;
2번정도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만 그런가...-.-;
범피님/ 저도 그 정도는 놀랐습니다. 범피님만 그런건 아니에요. ^^
귀신만 안 나오면 안 무서웠는데 이제 늙었나봅니다.
jjay님/ 앗! 전 그게 소원입니다. 무서워서 꺼보는 것. 나이가 들면서는 뭐가 나와도 - 통장잔고나 카드고지서를 제외하면 - 안 무섭더라구요.
몽중인님/ 트랙백 감사드립니다. 캐리의 그 장면은 정말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얼뜨기 같던 여자아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계기가 된.
결국은 dvd로 즐기거나 뜻맞는 몇 명이서 자체상영회를 할 수 밖에 없을 듯.
그 이상한 무리들에 대한 수 많은 사연들을 생각하느라고 장면을 놓치기까지 했어요.^^;
갑자기 스플래터로 변할 줄이야. ^^
slip님/ 골룸 학살씬에서 희열을 얻지 못했다면 당연한 수순 아닌가 싶네요. ^^
영화가 끝난 후 빨리 비상구로 나가 빛을 보고 싶더라구요. ㅎ.ㅎ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