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30일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자유의지 - Trumanshow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인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 인간에게 절대 '선악과'만은 따먹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어겼으며 '원죄'를 지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다. 그 결과 남자는 '노동'의 고통을,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안게된다. 여기까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구약성서의 이야기이다. 왜 성경을 들먹거렸냐고? 이 영화가 그와 같은 스토리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천만에. 애당초 출산의 고통이란 그 곳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자. 인간이라는 존재의 번성은 '원죄'에 의한 것이고, 그러한 '원죄'란 선악과를 따먹은 일종의 '반항' 혹은 '자유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속성은 '반항' 혹은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뒤집어말하면 '원죄'가 결여된 자는 인간이 아니란 말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말하는 '원죄'란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결과' 이상의 의미가 아니란 말을 덧붙여야겠다.
트루먼은 방송국에 입양되어 '논픽션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TV세트 속에서 살아간다. 이 도시는 바로 '에덴동산(Sea-heaven)'이며, 트루먼을 창조한 하느님은 '방송사' 혹은 'PD'이고, 하느님이 사는 하늘나라는 인공달로 만들어진 '스튜디오'다. 게다가 '물에 대한 공포'는 물만은 건너지말라는 약속, 즉 '선악과'와 다름아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일개 피조물이었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인류의 조상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성경속의 '타락'은 이제 한 개인의 '용기'로 대체된다. 그것이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대로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실질적 위협은 거의 없었던 트루먼은 이제 스튜디오를 떠나 진실된 '삶' 속에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같은 설정은 '매트릭스'와도 다르지 않다. 스펙터클이 다소 강해졌을 뿐.
반면 트루먼을 바라보던 개인들이나, 트루먼을 속여 넘기던 배우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무료하게 TV를 통해 관음증이나 채우고 있는 자들이거나, 아니면 방송국의 지시에 따라 한 인간을 완전히 속여넘기는 무감각한 자들이다. 물론 '인간'이 아니라는 표현은 지나친 혹은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그런 모습에는 자유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이쯤되면 피터위어가 '바보상자'의 노예들이나,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박찬욱이 지적한대로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이들은 '신체강탈자의 침입'에서의 '외계인들'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체강탈자의 침입의 주된 설정이 아무도 믿지 못하며, 감염된 이들은 개성이 상실된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트루먼쇼는 직접적으로는 '미디어비판'을 다룬 영화이다. 실제로 픽션에 질려버린 현대인들은 점점 더 논픽션을 원하고 있으며, 그같은 욕구는 자본의 논리와 결합하여 '피어팩터'류의 선정적이고도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인간의 권리를 무시한 방송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트루먼쇼는 자신의 삶이 모두 거짓이고, 한시도 제외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섬찟한 영화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트루먼이 진실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희망적(?)인 성장영화 - 어른이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 이기도 하다.
덧 1. 인간의 '자유의지'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트루먼쇼'는 '클락웍 오렌지'와 유사점을 가집니다.
덧 2. 코드 3으로 출시된 dvd의 다른 버전을 모두 소유한 몇 안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덧 3. 짐캐리의 영화 중 '케이블가이'와 함께 극장에서 본 몇 안되는 작품입니다. 빤해보인다고 해도 '딕과 제인'은 가서 봐야겠습니다.
자. 인간이라는 존재의 번성은 '원죄'에 의한 것이고, 그러한 '원죄'란 선악과를 따먹은 일종의 '반항' 혹은 '자유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속성은 '반항' 혹은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뒤집어말하면 '원죄'가 결여된 자는 인간이 아니란 말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말하는 '원죄'란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결과' 이상의 의미가 아니란 말을 덧붙여야겠다.
트루먼은 방송국에 입양되어 '논픽션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TV세트 속에서 살아간다. 이 도시는 바로 '에덴동산(Sea-heaven)'이며, 트루먼을 창조한 하느님은 '방송사' 혹은 'PD'이고, 하느님이 사는 하늘나라는 인공달로 만들어진 '스튜디오'다. 게다가 '물에 대한 공포'는 물만은 건너지말라는 약속, 즉 '선악과'와 다름아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일개 피조물이었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인류의 조상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성경속의 '타락'은 이제 한 개인의 '용기'로 대체된다. 그것이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대로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실질적 위협은 거의 없었던 트루먼은 이제 스튜디오를 떠나 진실된 '삶' 속에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같은 설정은 '매트릭스'와도 다르지 않다. 스펙터클이 다소 강해졌을 뿐.
반면 트루먼을 바라보던 개인들이나, 트루먼을 속여 넘기던 배우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무료하게 TV를 통해 관음증이나 채우고 있는 자들이거나, 아니면 방송국의 지시에 따라 한 인간을 완전히 속여넘기는 무감각한 자들이다. 물론 '인간'이 아니라는 표현은 지나친 혹은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그런 모습에는 자유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이쯤되면 피터위어가 '바보상자'의 노예들이나,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박찬욱이 지적한대로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이들은 '신체강탈자의 침입'에서의 '외계인들'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체강탈자의 침입의 주된 설정이 아무도 믿지 못하며, 감염된 이들은 개성이 상실된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트루먼쇼는 직접적으로는 '미디어비판'을 다룬 영화이다. 실제로 픽션에 질려버린 현대인들은 점점 더 논픽션을 원하고 있으며, 그같은 욕구는 자본의 논리와 결합하여 '피어팩터'류의 선정적이고도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인간의 권리를 무시한 방송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트루먼쇼는 자신의 삶이 모두 거짓이고, 한시도 제외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섬찟한 영화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트루먼이 진실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희망적(?)인 성장영화 - 어른이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 이기도 하다.
덧 1. 인간의 '자유의지'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트루먼쇼'는 '클락웍 오렌지'와 유사점을 가집니다.
덧 2. 코드 3으로 출시된 dvd의 다른 버전을 모두 소유한 몇 안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덧 3. 짐캐리의 영화 중 '케이블가이'와 함께 극장에서 본 몇 안되는 작품입니다. 빤해보인다고 해도 '딕과 제인'은 가서 봐야겠습니다.
# by | 2006/03/30 11:08 | 비호러 | 트랙백 | 덧글(2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생각하게 하시네요^^
진실은 저 어둠속에 가려있듯이 자신이 진실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것 역시
착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워니홍님/ 자유의지가 없는 자는 왠지 인간답지 않잖아요.
동사서독님/ 물론, 에드 해리스에게도 건배해야죠. ^^
boogie님/ 적어도 한 가지에 대해 진실이 아님은 밝혔지 않습니까. ^^
yugo님/ 저는 당시 케이블가이는 별로였다라고 생각했답니다. 다시 보니 좋더군요.
언제봐도 주인공 이름이 인상적이예요. 트루먼... 트루 맨.
숏다리코뿔소님/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대사죠.
리디님/ 일단 몰랐던 부분을 가르쳐주신점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다보니. ^^;;
몇 가지 의문은 있으나 말씀하신대로 추후 본문의 논리전개에 대해서는 당연히 수정해야할 듯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하느님이란 존재가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결론인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자유의지'이다에 대해서는 고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리디님의 리플이 뻘쭘해질 수 있을테니 당분간은 포스팅의 수정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초중반 다 못보고 후반부만 봐서 아쉬웠었죠.
하지만 그 짧은 기억으로도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실생활에서도 종종
'나도 또 다른 트루먼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게 만들어줬죠.
그거 고치라는 얘기가 아닌것 같은데 엉뚱하네요
출산이 아니라 출산의 '고통'이 생긴건데.
미디어몹님/ 감사드립니다.
gg님/ 인정합니다. 제가 어제 덧글을 잘못 읽었네요.
인간은 그대로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 어렴풋히 기억나네요..
이 영화를 보고 난후 문득문득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한번씩..^^;
'매트릭스' 시리즈와 함께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념을 제시해준 수작이라고 보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