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장소 - Brokeback mountain

고대그리스인들의 일부는 남성이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간의 사랑을 가장 완전한 사랑의 형태로 보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15년전즈음 카우보이 간의 노골적인 동성애 영화를 만들면 뜬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정말이다. 물론 그것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곁눈질만으로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뚝뚝 잘라서 넘어가는 듯한 여백의 미를 가지고 있으며, 세세한 감정선의 압축묘사 역시 뛰어나며, 동시에 관조적이고 사실적이다. 분명히 이 작품은 지독하게 절제된 러브스토리이다.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인 동시에 '추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진 곳이며, 사회의 관습으로부터 떨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치유'의 장소이기도 하고, 보다 '근원적'인 무엇이기도 하다. '도시' 혹은 '문명'에 반하는 무엇이기도 하다. 어쩌면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들의 '소망'이며, '순수'의 상징이다. 소망과 순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잃기 마련이고, 결국은 찌든 어른으로 청년은 변화한다.

이 같은 순수의 상실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영화 속의 '여성들'이다. 시내로 이사를 가자고 요구하는 에니스의 아내와, 사업에 여념이 없는 - 전화만으로도 남편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거라는 비아냥을 듣는 - 잭의 아내는 '동성애'에 의해 피해를 입은(배제되어버린) 여성이라기보다는 '돈'으로 상징되는 '문명'의 신봉자들로 해석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동성애'로 상징될 수 있는 그들의 욕망이나 소망 - 그들이 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꿈 - 들은 살아가면서 점점 다다를 수 없는 무엇이 되어간다. 그들은 평생 하고 싶은 무언가를 마음 속에 감추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남자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 된 후 그들이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추억'이며 '동경' 뿐이다. 가끔씩 삶의 고통에 찌들은 어른들은 순수한 시절 가지고 있었던 '동심'이란 것을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가끔이다. 그들이 일년 중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만나는 시간 정도 될까 모르겠다.

우리에게 브로크백마운틴은 가슴 속 깊이 묻어놓은 자신만의 멀어진 꿈이다. 다시 말하면 브로크백마운틴은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장소이다. 그것을 다시 꺼집어내는 것은 어쩌면 퇴행일수도 있고, 어쩌면 진실한 삶을 찾고자 하는 용기의 발현일 수도 있다. 당신이라면 지금이라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걸 던지겠는가, 아니면 죽기 전에 후회하겠는가. 이것도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덧 1.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더 훌륭한건 브로크백 마운틴의 전경이나 상징성입니다.

덧 2. 백인남성 외의 인물들이 가지는 부정적 상징성(여성은 문명의 신봉자로, 멕시코인은 남창이라는 타락의 매개체로), 그리고 보편적인 공감대에의 호소. 비록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이 작품에 대한 아카데미의 노미네이트는 비주류를 끌어안았다기보다는 입맛에 맞는 영화를 선정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덧 3. 대사도 음악도 무척 마음에 듭니다. 빠르지 않은 호흡 역시. 영화를 볼 때보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더 많이 생각이 나는 부류의 영화네요.

by ArborDay | 2006/03/23 09:54 | 비호러 | 트랙백(9)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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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브로크백 마운틴 - 구스타브 산타올라야 (Broke..
음악에 경제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구스타브 산타올라야 '브로크백 마운틴' 의 음악이야말로 경제적인 음악의 가장 훌륭한 표본의 하나일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를, 마찬가지로 단출한 기타와 현악 사운드로, 그에 반해 최대한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효과가 백 명 가량이 동원된 오스트라 음악에 못지않으니, 진정 경제적이라는 것 외에 어떤 표현이 적합할지 싶다. 그래서인지 정작 ......more

Commented by Sion at 2006/03/23 10:36
아하! 저는 되려 사랑이야기라는데 갖혀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다는 걸 미처 떠올리지 못했군요_no 워낙 싫어하는 덕목이 눈에 밟힌지라 시야가 좁아진 듯;;
Commented by Fithelestre at 2006/03/23 11:38
"평생 하고 싶은 무언가를 마음 속에 감추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라는 표현이 정말 적절해서 순간 찡했답니다. 그 타협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게 특히나 구질구질하게 그려진 탓에 더욱 와닿았던 것 같아요. 좋은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하는 감상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겜퍼군 at 2006/03/23 11:39
음 글을 읽고나니 이 영화가 달리 보이는군요.
Commented at 2006/03/23 12: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언제나 at 2006/03/23 13:05
아내가 보고와서 감동적이었다고 하던데 정말 글을 읽어보니 나도 보고싶네요. 그냥 좀 잘 만든 게이영화이겠거니 했는데... 놓칠뻔 했네요. 꼭 봐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3/23 13:24
sion님/ 시야가 좁았기 때문은 아닐겁니다. 그저 사람마다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 틀린거지요. 전 꿈을 잃어가고 있는 30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쪽이 부각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Fithelestre님/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대로 현실이란 이리저리 치이는 것으로 그려졌기에, 더더욱 할 수 없었던 것이 애절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겜퍼군님/ 원래 어떻게 보셨는지 구경하고 싶었으나. ㅠㅠ

비공개님/ 죄송합니다. 인정합니다.

언제나님/ 아내가 감동적이었다고 하면 어지간해서는 봐주셔야죠. 그게 바람직할 것 같은데요. ^^
Commented by 놈알 at 2006/03/23 13:33
별로 관심 없는 영화였는데 이 글을 보니까 좀 관심이 생기네요
이 영화에 대해 이런 식으로 초점을 맞춘 글은 처음 봤어요
(전 영화 관련 글은 워낙 잘 안 보는 편이기도 하지만 헤헤)
Commented by 솔리드 at 2006/03/23 14:25
가슴 속 깊이 묻어놓은 자신만의 멀어진 꿈..
브로크백마운틴은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장소다..좋다..
영화는 이런 느낌으로 봐야하는데..선입견을 가지고 보다니..
역시 최고의 감상평입니다..느낌이 다르네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6/03/23 17:25
뭐 실제 서부 개척 시대에도 호모들이 꽤 많았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3/23 19:09
놈알님/ 워낙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영화인데 조금씩은 다 차이점이 있을겁니다. 관심이 생긴다는 그거 칭찬이시네요. ^^

솔리드님/ 감사합니다. 전 그다지 역하거나 뭐 그렇지는 않았어요. 사람 사는게 워낙 별 일이 다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입장에 똑같이 놓이기전까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여 판단하는 것도 불가능할테구요.

rumic71님/ 네. 서부극에도 은근한 동성애코드는 살짝 엿보일때가 많지요.
Commented by 연주 at 2006/03/23 23:09
후기를 보면 그렇구나 싶은 글들을 많이 보게 되지만... 과연 이런 해석이 가능할 만큼의 단서를 영화에서 제대로 던져줬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습니다. 저는 못 받았거든요. ㅠㅠ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이 생각나는 영화라는 점은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3/23 23:18
연주님/ 영화 자체를 뜯어 분석하기 보다는 느낌을 글로 전달했으니, 연주님께서 그리 느끼지 못하셨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겝니다.
단, 제가 없는걸 만들어내서 글로 쓴건 아니에요. 느낀대로 쓴거거든요. ^^
Commented at 2006/03/24 00: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미디어몹 at 2006/03/24 08:56
안녕하세요 미디어몹입니다. arborday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링크가 불편하시면 아래 리플로 의사를 표시해주세요.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포스팅되시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3/24 10:46
비공개님/ 역시, 같은 처지였군요.

미디어몹님/ 좋은 하루 되세요.
Commented by 뿌리 at 2006/03/24 16:34
처음 보고서는 메세지가 잘 와 닿지가 않았는데, 두 번 보니 어느 정도
ArborDay님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약간 비스무리.. 하게^^).

그리고 배경이 정말 멋졌습니다. 원츄!
Commented by 기린 at 2006/03/24 22:54
저도 연주님의 말씀에 동감..
전 보는내내 너무 지루하고,도무지 그 느린템포에 졸음이 쏟아지기까지..
더구나 주위의 여성들이 동성애신이 나올때마다"재수없어"라고 연발하는 통에...;;
물론 정경은 정말 멋지더군요.한편의 다큐먼터리를 보는듯한...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전 참 별로였던..ㅎㅎㅎ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3/26 09:32
뿌리님/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

기린님/ 그러셨군요. 극장에 왔으면 조용히들 볼 것이지. ^^;;
Commented by Ritsuko at 2006/03/27 01:13
원작의 미니멀리즘을 완전하게 느끼게 한 영화라고 해야할까요.. 확실히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많이 보여준 작품같네요... 특히... 대사..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3/27 10:37
Ritsuko님/ '엘리펀트'의 느릿느릿하고 무감정한 연출이라면 의외로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왠지 '아이다호' 삘도 나고 말입니다.
Commented by 지킬 at 2006/04/01 00:26
제 블로그에 글만 덜렁 올려놓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터라 이제야 이 글을 읽어보네요. 역시 에니스처럼 빈곤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이라면 모를까 전 아마도 죽기 전에 후회할 듯합니다.

배우들 얘긴데... <그림 형제>에서 나왔던 히스 레져와 이 영화의 그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무뚝뚝한 카우보이 역에 그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4/01 01:08
지킬님/ 전 후회 안할만큼 '돈'을 포기하고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이젠 잘 풀리든 잘 안 풀리든 '후회'와는 관계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그림형제'를 못 봤습니다. 그래서 그의 카우보이 역이 얼마나 대단한 연기변신인지는 잘 느끼지 못했지요. 이 영화만 놓고보면 참 좋게 느껴지더라구요.
Commented by yuz at 2006/04/02 15:26
막상 볼 때는 좀 별로였었어요. 그... 남자끼리 뭐하는 장면이 나와서 - -;
하지만 그런 개인적으로 무지 싫어하는 장면 외에도(...)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였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4/02 17:01
yuz님/ 볼 때 보다는 보고 난 후 더 좋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뭐 볼 때도 그리 역하지는 않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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