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05일
관계가 없다면 이미 죽은거야 - Carnival of souls
1962년 만들어진 영혼의 카니발은 꽤나 흥미있는 작품입니다. 한번도 공포영화를 찍은 적이 없는 감독과 각본가가 3만달러의 돈으로 3주 동안 뚝딱해서 만든 작품이라, 단점은 꽤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특유한 황량함은 그와 같은 단점들을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상영되었으나,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언론의 관심 속에 1989년 감독판으로 재개봉되게 됩니다. 그리고 '식스센스'가 개봉한 후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식스센스'와 이 영화는 비슷한 부분이 꽤 많았거든요.
영화의 내적 개연성이나 유령 등의 디테일은 당연히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반전 역시 이제서야 영화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너무나 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1962년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생각해볼때 이 작품의 결말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쇼크를 줬을 것 같네요. 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안다고 해도 훌륭한 장점들이 많아요. 저는 여자가 무엇엔가 홀린 듯이 오르간을 치던 장면과, 잠시 세상이 일그러지면서 아무도 그녀를 인지하지 못하는 - 동시에 그녀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는(사운드가 제거된) - 장면만큼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저도 볼 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아주 단순한 영화임에도). 그 중 하나이기도 하며, 제가 이 영화를 바라보는 주된 방식은 사회 속에서의 '인간상실'이라는 관점입니다. 여인은 애당초 신에 대한 믿음도, 인간에 대한 관계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강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고, 자신의 몫(돈을 받으니까 오르간을 친다)을 해내는 프로페셔널함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은 그녀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충고를 하지만, 여인은 자신이 '공포'에 노출되기 전까지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점차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겁니다.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되며 그녀 역시 그 누구의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녀를 찾는 것은 유령들 뿐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에게서 사회성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무리짓지 않고서는 이 험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관계는 인간에게 당연한 것입니다. 영화에서의 여주인공은 그러한 관계를 거부합니다. 오로지 '돈'과 '직업'에 의해서만 움직이죠. 이러한 설정은 노골적인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시선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 '영혼'이 상실된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이죠.
영화 속의 유령은 그리 무섭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얼굴에 화장 조금 한 정도거든요. 저승사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 유령들은 오히려 좀비와 더욱 가깝습니다. 조금만 사려깊은 분이라면 조지 A.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에 나오는 좀비들은 이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금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흑백영화와 고전영화에 극단적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이 영화는 피해가시는게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컬트클래식은 한 번 쯤 경험해보는게 좋으리라 생각되는군요.
덧1. 여태까지 제 블로그를 놀러오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채시고 있겠지만, 저는 모평론가가 모든 해석을 페미니즘에 맞추는 것처럼 어지간한 영화들에 대한 해석은 관계 및 의사소통에 맞추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변명은 다른 포스팅으로 하기로 합시다.
덧2. 과연 크라이테리언 dvd 잘 만드는군요. 자켓서부터 서플까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일단 오리지널 버전만 감상했습니다.
덧3. 나이트샤말란은 이 영화를 분명히 봤을겝니다. 또한 데스티네이션과 같은 영화 역시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살아난 시체들의 밤'에 끼친 영향력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러나 이 작품의 특유한 황량함은 그와 같은 단점들을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상영되었으나,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언론의 관심 속에 1989년 감독판으로 재개봉되게 됩니다. 그리고 '식스센스'가 개봉한 후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식스센스'와 이 영화는 비슷한 부분이 꽤 많았거든요.
영화의 내적 개연성이나 유령 등의 디테일은 당연히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반전 역시 이제서야 영화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너무나 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1962년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생각해볼때 이 작품의 결말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쇼크를 줬을 것 같네요. 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안다고 해도 훌륭한 장점들이 많아요. 저는 여자가 무엇엔가 홀린 듯이 오르간을 치던 장면과, 잠시 세상이 일그러지면서 아무도 그녀를 인지하지 못하는 - 동시에 그녀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는(사운드가 제거된) - 장면만큼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저도 볼 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아주 단순한 영화임에도). 그 중 하나이기도 하며, 제가 이 영화를 바라보는 주된 방식은 사회 속에서의 '인간상실'이라는 관점입니다. 여인은 애당초 신에 대한 믿음도, 인간에 대한 관계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강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고, 자신의 몫(돈을 받으니까 오르간을 친다)을 해내는 프로페셔널함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은 그녀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충고를 하지만, 여인은 자신이 '공포'에 노출되기 전까지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점차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겁니다.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되며 그녀 역시 그 누구의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녀를 찾는 것은 유령들 뿐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에게서 사회성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무리짓지 않고서는 이 험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관계는 인간에게 당연한 것입니다. 영화에서의 여주인공은 그러한 관계를 거부합니다. 오로지 '돈'과 '직업'에 의해서만 움직이죠. 이러한 설정은 노골적인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시선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 '영혼'이 상실된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이죠.
영화 속의 유령은 그리 무섭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얼굴에 화장 조금 한 정도거든요. 저승사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 유령들은 오히려 좀비와 더욱 가깝습니다. 조금만 사려깊은 분이라면 조지 A.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에 나오는 좀비들은 이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금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흑백영화와 고전영화에 극단적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이 영화는 피해가시는게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컬트클래식은 한 번 쯤 경험해보는게 좋으리라 생각되는군요.
덧1. 여태까지 제 블로그를 놀러오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채시고 있겠지만, 저는 모평론가가 모든 해석을 페미니즘에 맞추는 것처럼 어지간한 영화들에 대한 해석은 관계 및 의사소통에 맞추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변명은 다른 포스팅으로 하기로 합시다.
덧2. 과연 크라이테리언 dvd 잘 만드는군요. 자켓서부터 서플까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일단 오리지널 버전만 감상했습니다.
덧3. 나이트샤말란은 이 영화를 분명히 봤을겝니다. 또한 데스티네이션과 같은 영화 역시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살아난 시체들의 밤'에 끼친 영향력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 by | 2006/03/05 21:59 | 공포/호러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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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Carnival of Souls
1962년에 나온 컬트영화인데 얼마전에 나온 식스센스나 디아더즈 때문에 또다시 이름이 오르내리는 작품이다. 광고나 홍보물제작 전문가들 몇명이서 푼돈으로 캔사스의 한 시골동네를 배경으로하여 기술적으로는 매우 거친솜씨로 찍었는데 당시에는 별볼일없이 사라졌다가 20여년후 80년대에 다시 컬트의 명작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돈이 없었으니 기술적으로는 크게 봐줄것도 없고 배우들은 극소수가 출현하며 (당연히 감독이나 스텝도 출연) 연기력은......more
... 자 수영은 스스로가 죽어있음을 알게된다. 영화에서 경계를 헤매는 것은 수영 뿐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영혼의 카니발]을 떠올릴 법한 공중전화부쓰씬.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사전적으로 살아 있을 뿐이다. 영화가 요구하는 것 꿈에서 깨어난 수영이 ... more
너무 괜찮죠...ㅠ.ㅠ)b
개인적으로 부록 셔플에서 한국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어찌 그리 웃기던지... -_-;;
벨마님/ 저도 첫경험은 화질이 안 좋은 비디오였어요.
완전 다른 영화를 만나는 느낌이었답니다.
그 관계도 역시 인간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것이니 관계를 가지면 죽는다는 것도 제법 무서운 영화일 것 같네요.
DVD의 부록이 참 재미있습니다. 촬영장소인 물놀이공원(이름이 뭐드라?)도 개장이후에 계속 이유없는 사고가났답니다. (이영화를 촬영하기전) 마침내 재기불능으로 폐장했다지요. 그리고 이회사에서 만든 1978년 한국소개영상물도 볼만합니다. 한국을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아주 좋은나라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트랙백 감사합니다. ^^
almaren님/ 라면도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ㅠㅠ
공원의 그 황량함에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영화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감독은 수없이 많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답니다. ^^
아니, 사실 이런 것이 변하지 않은 모습일까요~_~;
어쨌거나!! 시간이 꽤 지난 작품임에도 [영혼의 카니발]은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