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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와 관련해서 말하고 싶은 몇 가지 것들입니다. 이미 진력이 날 정도로 들으셨을테고, 저 역시 영화종사자가 아닌지라 잘 아는바가 없어 경제학도의 입장에서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합니다. 주류경제학자의 견해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1. 스크린쿼터를 없애라고 주장하는 이들? 일단 짚고 넘어가야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이 FTA협상의 전제로 스크린쿼터의 축소 및 폐지를 걸고 넘어갔다는 점이죠. 그에 비해 우리 영화종사자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할 때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누가 이익일까요? 자유무역에서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유는 '보복' 때문입니다. 게임이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완전한 자유무역보다 일부산업을 보호함으로써 더 많은 국익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보복'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죠. 그러나 문화산업에 대해서는 전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도 있습니다. 그 잘난 '국익'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보호가 더 올바른 전략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단지 협상력의 부재와 힘의 논리에 밀린 것이라 생각되는 반기지 못할 결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요. 2. 자기 밥그릇 지키면 나쁜가? 제 생각이지만 자기 밥그릇은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습니다.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챙기는 것은 이 험난한 사회에서는 기본에 가깝습니다. 단 한 가지의 사실만이 그들의 밥그릇 챙기기를 비난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들의 그 행위가 우리에게 손해를 주느냐죠.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손해란 '보호로 인한 경쟁력의 약화'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경쟁'은 시장이 완전하게 작동할 때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러나 세계의 영화시장이란 엄밀하게 헐리웃 스튜디오들의 독과점체제입니다. 그 말인즉슨 '경쟁'을 좀 더 원활하게 만든다고 해도, 그 수혜가 우리 국민에게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죠.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차선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관적으로도 어차피 독과점체제라면 독과점을 이루고 있는 기업의 수가 많을수록 소비자에게 이롭습니다. 3. 예술영화 안 걸리는게 스크린쿼터와 무슨 관계? 영화종사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예술영화는 스크린쿼터를 고수한다고 해도 극장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크린쿼터가 없어진다고 해도 극장에 걸리지 않습니다. 예술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지천에 널려있어 특화시키면 떼돈을 벌 것 같지만서도, 예술영화 전용관은 돈벌이가 되지 않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술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가문의 위기 따위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이유는 누군가가 보기 때문입니다. 극장수를 많이 잡았기 때문에라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그 많은 극장 좌석이 텅텅 빈다면 그런 횡포는 부릴 수 없습니다. 결국 슬프게 이야기하면 '자본'의 논리요, 좋게 이야기하면 '관객'의 취향 탓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예술영화를 몰아내는 것을 가속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를 할 때 2시간 정도를 함께 보내고, 이야기거리를 제공해 주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영화를 선택합니다. 따라서 영화의 선택기준은 단지 영화의 질 뿐만이 아니라, 어떤 영화가 이슈화되었느냐, 어떤 영화가 더 시간을 편히 보내게 해주느냐로 변화했습니다. 그것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영화는 7천원짜리 상품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이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극장들은 배급사의 횡포가 없더라도 예술영화를 걸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다른 수단을 통해 접근해야 합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다른 수단으로 저예산영화를 독려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우습기도 합니다. 그것을 위한 돈은 어차피 관객 돈일 뿐만 아니라, 그런 정책은 스크린쿼터가 유지되어도 행사가 가능합니다. 4. 스크린쿼터 때문에 보기 싫은 한국영화만 봐야한다고? 스크린쿼터 의무상영일수가 늘어날수록 한국영화의 제작편수가 많아집니다. 물론 다른 조건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경우에 말입니다. 경제학적인 용어 ceteris paribus(다른 조건은 불변)라는 가정이 더 어울리겠네요. 보기 싫은 한국영화는 관객이 극장에 가지 않으면 조만간 떨어집니다. 그러면 나머지 의무상영기간 동안은 다른 영화가 걸리겠죠. 스크린쿼터와 보기 싫은 한국영화가 걸리는 것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많이 만들어져서 많은 기간을 나누는 것이나, 적게 만들어져서 적게 나누는 것이나 질적 제고가 없다면 별 차이가 없거든요. 굳이 우열을 따지자면 많이 만들어지는 편이 조금 낫겠군요. 헐리웃과의 경쟁으로 질적 제고가 일어나는 경우만 위의 견해를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공정경쟁은 불가능합니다. 배급파워에 있어서의 불균형은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 자명합니다. 더더욱 돈만 쳐들인 영화들을 보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5. 한국영화는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니 스크린쿼터가 필요없다? 마지막으로 한국영화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니 스크린쿼터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낙관자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그 정도의 경쟁력이 있다면 차라리 내부경쟁을 시키는 것이 훨씬 관객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신등급의 불이익을 받지 않는 특목고를 예로 드는 것이 좋겠군요. 더 낮은 경쟁력을 가진 영화들과는 어차피 경쟁시켜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이길 것이 뻔한 게임인데다가, 시장 전체의 수준만 다운그레이드할 뿐이거든요.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스크린쿼터로 인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간에, 한국영화의 수준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면 한국영화만 보는 것이 관객에게 이롭지 않겠습니까?(극단적인 예입니다.) 이런 경우 스크린쿼터를 굳이 없앨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스크린쿼터의 폐지나 축소를 원하지 않습니다.(물론 보완 정도는 원했지만요.) 그러나 현실은 당연히 축소나 폐지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약자인 우리 정부가 다른 선택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유리한 것인지는 알고 당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스크린쿼터는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더 나은 정책이었을겝니다. 영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