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사나이 - 인간 사이의 거리.

49년에 만들어진 이 매혹적인 작품은 원작에 기대어 시종일관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의 몰입을 끌어낸다. 요즘의 스릴러물처럼 한 방에 의존하는 작품은 아니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제3의 사나이에 대한 정체는 처음부터 눈치를 챌 수도 있을 것이다. 눈치가 둔하다고 해도 중반부 고양이가 등장하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마틴스'라는 인물의 내면 묘사에 있다. 주어진 정보를 모두 가진 후에 과연 이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제3의 사나이에 대한 정체보다 훨씬 궁금한 그런 작품이다. 대사와 시선 등을 통해 영화는 그의 내면을 충실히 표현하는데 성공한다.

'3'이라는 숫자는 상당히 다양한 느낌으로 전달된다. 단어 그대로 숨겨졌던 제3의 인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관계에 있어 배제된 혹은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제3자'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관계에 있어 '거리'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그 거리가 밀접하다면 아마 범죄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대관람차에서의 그 유명한 대사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사실 대관람차에서의 대화는 명대사 퍼레이드가 이어진다고 봐도 과언 아니다), 다음 대사는 무척이나 섬찟하게 느껴진다.
"저 점들을 보게. 저 점들 중 하나가 없어지면 과연 슬플까? 점 하나당 2만파운드를 준다고 하면 몇 개나 없앨지를 생각하지 않을까?"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 마틴스는 "나라도 그럴걸세."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정의'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피해자'는 공감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가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은 단지 '여자'였을 따름이다. 그가 경찰에 협조하는 이유는 오로지 버려진, 그리고 이미 애틋한 마음이 싹터버린 여자때문이었다. 마틴스는 여자에게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처음 꺼낼 때, "그가 내 여자를 탐한 적이 있어요."라는 말을 던진다. 이 말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째서 그토록 속보이는 이야기를 꺼내고 만 것인가?
여자가 '비열하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호의를 거부하던 역앞의 대기실. 여자의 뒤를 쫓아 엇갈리는 미닫이문, 그리고 떨궈진 자신의 외투에 고정되는 그의 시선은 그 유명한 엔딩의 담배맛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다. 아니 애절하게까지 느껴진다.
여자에게 있어 홀리는 어떻게 해도 '제3자'일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여자에게 주기로 한 그 혜택을 거부당한 후, 마틴스는 죽은 자가 더 행복할 '비엔나'를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이에 경찰은 '피해자'들과 '홀리'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버린다.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을 돕겠어요."
피해자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의 막연한 정의감은 실체화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목숨을 잃은 한 군인은 마틴스가 총을 들도록 독려한다.
어떤 계기가 있지 않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3자'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비겁하지 않은 당연한 현상일런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고전에 대한 편견을 종식시켜줄만큼 재미있는 영화이다. 상업성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봐도 여전히 세련된 구석을 가지고 있다. 빈번하게 사용된 클로즈업과 경사앵글은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크게 공헌한다. 러닝타임 내내 듣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메인테마 연주는 언밸런스한 맛을 던지고 있지만, 영화에 녹아들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흠잡을 데 없다. 특히 오손웰즈의 시니컬한 연기와 대비되는 다소 부드러운 조셉코튼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걸작 중의 걸작이다. 몇 번을 보더라도 당신을 만족시켜줄 그런 보물이 될런지도 모른다.

by ArborDay | 2006/02/08 07:30 | 비호러 | 트랙백(1) | 덧글(12)

트랙백 주소 : http://Arborday.egloos.com/tb/218381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 at 2007/07/18 02:40

제목 : 1940년대의 스릴러물 <제3의 사나이>
제3의 사나이 포토 감독 캐럴 리드 개봉일 1949,영국 별점 2007년 7월 18일 본 나의 2,651번째 영화.영화 매니아라면 봐야할 영화 100편의 40번째 영화.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1001편의 233번째 영화.1949년작의 고전물의 영화다. 흑백 영화.이 영화가 대단한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그냥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봤는데,1940년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잘 만든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그러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고, ......more

Commented by 지킬 at 2006/02/08 11:05
조셉 코튼이란 배우, 제임스 딘이나 오손 웰즈 마냥 명성이 자자한 인물은 아니지만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자신의 색깔을 잘 보여준 배우 같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8 12:06
지킬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Commented by 비둘기... at 2006/02/09 00:12
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아직까지 못 본 영화군요^^ 그리고 오늘 제가 형 오기 1시간 전쯤에 강변 갔었습니다. 조금만 제가 늦게 갔어도 마주칠 뻔 했네요. 왜 이렇게 dvd매장만 가면 사고 싶은게 많은지... 꼭 사야될 거만 사가지고 오는데... 참 힘들더군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9 11:20
비둘기군/ 사고 싶은 것만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수집 4년차의 자네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방법은 총알을 조금만 가져가는 것이라네. ㅠㅠ
Commented by almaren at 2006/02/09 19:13
고전명작이란 명성을떠나서 이영화는 참재미있습니다. ^^ 거기다가 계속 반복되는 배경음악, 여주인공의 뒷모습과 가로수, 놀이동산 장면 그리고 오손웰즈의 비열한 연기 등등 볼것도 많았지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9 20:11
almaren님/ 스토리, 영상미, 음악, 대사, 연기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기묘한 물건입죠.
Commented by WindFish at 2006/02/09 22:12
음 영화를 제대로 보질 않아서 거의 이해할수 없으니 아쉽군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10 12:13
WindFish님/ 언제 찬찬히 봐보세요. 썩 괜찮은 영화랍니다.
Commented by 새침떼기 at 2006/07/19 01:34
마지막 스틸도 그렇고, 이 영화는 참 사람이 프레임에서 사라진 뒤의 여운이 좋아요.
아, 남기신 글 보고 왔습니다. 예전에 한 번 들렀다가 링크를 걸려고 했는데 이글루스를 떠나실 것처럼 말씀하신 포스팅이 있어서 그냥 지나쳐갔죠. 떠나지 않으셨다니 기쁘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19 01:43
새침떼기님/ 사실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습니다만, 스스로 운영해나갈 능력이 없습니다. ㅠㅠ
앞으로 자주 뵙도록 할께요. ^^
Commented by joyce at 2006/07/20 23:33
이 영화 때문에 한때 조셉 코튼을 제일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역할도 이 영화에서만큼 좋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20 23:41
joyce님/ 이해할 수 있어요. 사실 저도 그렇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