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벨벳
세상은 일면 평온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적으로나, 혹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감추어져 있기에 수고를 더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제프리가 우연하게 사람의 잘려진 '귀'를 발견했을 때 평온한 시골 마을은 사건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물론 그 사건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카메라가 '귀'를 잡아준 후 그 나선모양을 따라 점점 어두운 구멍을 클로즈업해가면서 우리는 어두운 세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린치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아하던 비정상, 혹은 어두운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같은 다른 이면을 보는데는 '용기' 혹은 '무모함', 그리고 '호기심'이 필요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제프리는 호기심과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폭력'이나 '위험', 변태들만의 취향인줄 알았던 '사디즘'이나 '관음증'에 직접적으로 연관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뭔가 특별하고 이상한 염색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들은 알게모르게 우리의 주위에 이미 널려 있는 것들이니까 말이죠.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느냐의 문제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물론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말이죠.)

모든 사건이 끝나버린 후 샌디가 그토록 바랬던 사랑을 상징하는 '울새'는 '먹이'를 입에 물고 찾아옵니다. '사랑'이란건 어찌 말하면 다른 '사랑'의 희생을 동반할 수도 있고, '사랑'에 의해 뒤로 밀린 가치들에게 있어서는 폭력이거든요. 다 끝났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어요. 아직도 그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곤충을 먹다니...'라고 읖조리면서 예쁜 '새'만 보고 그것이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곤충'은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용기'는 젊은 이들(실제 나이가 아닌 정신적인)의 전유물이니까 말이죠.

린치의 영화, 아니 적어도 '블루벨벳'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해석을 해대는 것은 의미없는 짓일런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린치 개인의 상상력에 다름 아닐 뿐더러, 스토리나 메세지 외적인 요소들이 감각을 마비시키니까요.
화폭을 옮겨온 것과 같은 몇몇 장면의 영상미는 영화를 본지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계속 영화를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음악 역시 말할 것도 없죠. 미스테리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관능미 역시 영화 속에서 단연 빛을 발합니다. 영화 상영 당시 이 영화가 부정적 반응을 얻자, 자신의 탓을 했다던 로셀리니의 말이 가식처럼 느껴질 정도의 연기력을 보이고 있어요. 이 영화에서 데니스 호퍼가 보여준 연기력도 훌륭합니다. 다소 어리버리해보이는 미남 카일맥클라칸의 캐스팅도 만족스럽구요.
어떻게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p.s. 시네코리아에서 발매된 저가 dvd에는 대략 70분 가량의 '다큐멘터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곱게 늙어버린 이사벨라를 보는 것도 적잖은 재미를 주는군요.



by ArborDay | 2006/02/04 14:25 | 비호러 | 트랙백(2)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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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연습장 at 2006/02/04 14:30

제목 : 데이빗 린치, <블루 벨벳> - 정상-비정상세계의 충돌
복구이유 : 진지하게 쓴 리뷰라서 린치의 세계는 기괴하다. 허나 단지 기괴하지만은 않다. 그의 영화속 무대, 사건, 인물 관계, 그리고 개개의 인물내면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세계가 공존한다(물론 여기서는 정상과 비정상이란 말을 통념속의 뜻을 지니게 한 채로 빌려왔음을 밝힌다). 항상 밝고 평화로운 이면의 어둡고 기괴한 세계를 비추지만 원래의 정상적인 면을 무조건 허상이나 껍데기라고 부정해버리지 않고 양면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린치가......more

Tracked from lunamoth 4th at 2006/09/09 00:59

제목 : Blue Velvet (1986)
《블루 벨벳》은 내게《영 인디아나 존스》 와 『머스그레이브 가의 의식문』처럼,《트윈 픽스》의 FBI 요원 데일 쿠퍼의 유년기 에피소드, 프리퀄로 다가왔다. 그 "이상한 세상"의 "미스터리"에 매혹되어 "꿈"같은 120분이 흐르고 나자 어느새 영화 속에서 벤이 립싱크하던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 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I close my eyes. Then I drift away into the magic night......more

Commented by 염맨 at 2006/02/04 14:29
진짜 재밌어요.
Commented by 염맨 at 2006/02/04 14:31
엄청나게 오래된 데다 단순화도 심한 글이지만, 나름대로 재밌다고 생각해서 트랙백 하나.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4 14:45
예전에 읽었던 감상평이로군요. 그 당시부터 다시 봐야지했던 영화를 이제서야 다시 봤으니 저도 무척 게으른 편인가봅니다.
그나저나 염맨님 덧글 무척 오랫만이군요.
Commented by 석원군 at 2006/02/04 15:02
학교에서 보다가 뒤로 넘어갔던 기억이..가위질을 그렇게 당했는데도,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Commented by jules at 2006/02/04 18:18
블루벨벳도 좋지만 전 트윈픽스 시리즈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난장이가 춤을 추는 그 장면은 지금도 참 강렬하게 남아있지요...
Commented by In-flux at 2006/02/04 21:05
블루벨벳하면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어둡고 음침한 집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ㅎㅎ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4 22:13
석원군님/ 거의 반토막이라죠. ^^

jules님/ 말씀하신대로 '트윈픽스'를 빼놓고 린치를 이야기할 수야 없지요.
저도 아주 좋아라 합니다.

In-flux님/ 집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인지도 모르겠어요.
그 계단이나 복도가 바톤핑크의 낡은 호텔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둡더군요.
거기다가 카메라도 정말 잘 잡아서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더랍니다.
Commented by 비둘기는 하늘의 쥐 at 2006/02/05 12:18
dvd에 70분 가량의 다큐멘터리가 있었군요. 아직 미개봉이라...ㅎㅎ 귀찮아서 뜯지도 않았는데 언제 뜯어서 다큐멘터리 꼭 봐야겠네요. 이사벨라도 이제는 정말 늙었겠군요. 근데 린치 감독의 영화는 역시 어려워요. 얼마전에 스타맥스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 할인하길래 냉큼 구입했죠. 예전에 극장에서 보면서 이해가 안 됐거든요. 다시한번 도전하려고 구입했죠. 근데 린치 감독의 영화는 한번 볼때보다 두번, 세번 볼때가 좋은 것 같아요.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린치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듄(사구)을 가장 쉽게 본 것 같아요.
Commented by WindFish at 2006/02/05 13:14
아직 이영화를 본적은 없었습니다만;..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서양 성인용 야한영화" 정도 개념으로 박혀있었는데..; 예술영화같은 류였나보군요;... 확실히 첫인상이 무섭긴 무섭네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5 14:16
비둘기군/ 시네코리아말고도 몇 개의 버전이 있는지라,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도 다큐멘터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네.
그나저나 비로그인 댓글쓰기 권한을 열어주게나. ^^;;

WindFish님/ 서양 성인용 야한영화를 생각하고 봤다가 낭패를 선 경험이 있답니다. ^^;;
Commented by 석원군 at 2006/02/05 21:42
반이 짤렸는데도 그 정도면, 원본은 장난 아니겠군요;;;;;;; 가지고 계신 DVD는 국내용이 아닌가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5 22:16
석원군님/ 부가영상에 언급되는데 원래 린치는 4시간 분량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최종 편집과정에서 2시간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삭제된 부분은 완전히 소멸되어 남아있지 않다고 하네요.
가지고 있는 DVD는 물론 국내판입니다. 모자이크도 한 번 쯤 지나가죠.
Commented by almaren at 2006/02/06 17:06
국내판은 폭스와 시네코리아판이 있지요.(이중 한곳은 판권문제가 있는 회사라고 합니다만,,,,,) 모자이크는 2002년 당시 상황상 어쩔수없었구요. ㅠ_ㅠ

린치감독 작품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으로 느껴라고하는데 그말이 맞는것 같아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2/06 20:44
almaren님/ 아무래도 저가인 시네코리아쪽이 판권문제가 있으려나요.
린치 감독 작품은 영화 한 두 편의 분량으로 풀어내기 어려울 만큼 방대해서 그냥 함께 훑어가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릅니다.
미술을 전공한 양반답게 장면장면도 꽤나 멋있구요. ^^
Commented by 雪花º덕범♡ at 2006/11/10 12:41
잘 읽고 갑니다. 블루 벨벳에 사용된 음악인 'In Dreams'의 가사도 의미 심장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꿈에서만 당신과 함께할수 있는 것과 꿈에서 깨면 당신이 없다는 것... 제프리의 비정상적인 세계의 내딧음은 꿈 속이고, 프랭크가 그 노래에 눈물을 흘릴정도로 감동받는 이유는 자신이 어둠속(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요? ^-^

저는 이 영화를 이제서야 봤다지요. 지금은 Roi Orbison의 베스트 앨범을 들으면서 그의 몽롱한 느낌의 목소리를 느끼고 있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11/10 15:40
雪花º덕범♡님/ 네, 가사를 찾아봤더니 정말 의미 심장하더라구요.
저도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Roi Orbison의 음악 꽤나 들었지요. ^^
Commented by 수운 최제우 at 2006/12/25 23:23
린치의 매력이 거의 100% 들어간 엄청난 걸작이죠. 개인적으로 린치의 최고작으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꼽지만 순수하게 재미와 매력 면에서는 이 작품이 최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신작 '인랜드 앰파이어'는 국내에 개봉할 런지 무척 궁금하군요. 평가는 썩 좋지 않지만.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12/26 00:24
수운최제우/ [광란의 사랑]도 좋지. 그래도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트윈픽스]를 제외하면 [블루벨벳]이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린치의 신작을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아. [인랜드 앰파이어]는 평을 보고 감상할 생각이야. 개봉된다면 말이지.
Commented by mazzy at 2008/03/07 07:52
음악두 넘조왔죠... Roy Orbison 외에도 Blue Velvet's composer Angelo Badalamenti(also Twin Peaks) music is beautiful.. and the song 'Mysteries of love' where Jeffrey and Sandy are slow dancing was song by Julee Cruise. David Lynch 가 Julee Cruise 에 노래를 도 작사하셨죠. Isabella Rossellini 조아하시는 분들...그분 쌍두이세요^^.. Mulholland Dr. and the Elephant man 두 good good good 이에요!!!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3/08 15:56
mazzy님/ 맞아요, 린치의 영화들은 정말 괜찮아요. ^^
Commented by regulus at 2008/03/31 22:56
'평온한 시골 마을은 사건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 '귀'를 잡아준 후 그 나선모양을 따라 점점 어두운 구멍을 클로즈업해가면서 우리는 어두운 세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제게 있어선 우리나라에서 린치 작품이 처음 '대중화'된 '트윈픽스'의 이미지랄까요. 배율을 높힌 시각적인 밀착감으로 어둠 속을 슬라이딩해 들어가는 시선의 행보 때문에 린치 작품에는 때때로 '악마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걸로 기억하는데, '겉과 속'에 관한 레토릭이였을 것 같네요. 한꺼플 한꺼플 겉을 벗겨 보면 알게 되는 진실(속)이 있긴 한데 그게 어딘가 추악한데다, 그걸 꿰뚫어 보거나 엿보기 위해선 흔한 시선으로는 안 되고 업노멀한 지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강박관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 마음도 뭔가로 '뒤덮이게' 된 것처럼 말이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4/01 16:03
regulus님/ 전 [트윈픽스]를 제대로 못 봤다죠. 시간낸다 낸다 하면서 아직껏 미루고 있답니다. 하신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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