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1월 27일
공포영화의 역사 - 네번째, 이태리 공포물의 발전.
b) 유럽
50년대말 나타나서 60년대를 수놓았던 테렌스 피셔나 마리오 바바의 활동은 계속 되었지만, 70년대 미국의 폭발적인 공포영화의 발전과 비교할 때 유럽은 상대적으로 미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 다리오 알젠토와 루치오 풀치가 등장하면서 이태리 공포영화는 그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스파게티호러'의 발전은 '슬래셔무비'의 천하통일과 비견할만한 유럽 공포영화의 천하통일이었다.(슬래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① 이태리의 감독들
60년대에 'The whip and the body', 'Black Sabbath' 등을 찍어냈던 마리오 바바는 70년대에도 '공포의 허니문', 'Bay of the blood', 'The Baron blood' 등의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72년 이후의 작업들에서 그의 재능은 쇠해가고 있었다. 이전에도 공동감독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세계를 아들이 이어받기를 원했는지 72년 이후에는 주로 아들인 람베르토 바바와 공동감독을 하였다. 혹은 타장르의 영화(코미디)에 손대기도 했다. 마리오 바바는 80년 사망한다.
그러나 이태리에는 다리오 알젠토가 있었다. 그는 일찌기 69년 '수정깃털새'를 발표함으로써, 마리오 바바의 후계자임을 천명받고 있었다. 그 후의 작품들은 당시의 지알로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예로 '9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 'Four flies on grey velvet'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 세계의 변화는 1975년 '딥레드'에서 나타난다. '딥레드'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강렬한 음악을 결합시킨 소위 '스파게티 호러'를 유행시킴으로써, 다리오 알젠토가 다른 경쟁자들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음을 보였다. 그는 77년 '서스페리아', 79년 '인페르노' 등의 작품을 통해 범죄의 묘사에 있어서는 '지알로'를 도입하고, 그 세계에 있어서는 '악마적 동화성'을 완성시킨다. 80년대에도 그는 '섀도우(tenebre)'나 '페노미나' 같은 작품들을 계속 생산해냈고, 지금까지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다리오 알젠토와 로메로가 함께 제작비를 댄 영화 '시체들의 새벽'이 유럽에서 '좀비'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자, 루치오 풀치는 잽싸게 '좀비2'(1979)라는 영화를 만들어 낸다. 그는 이 영화로 이태리 좀비물의 원형을 만들어내었을 뿐더러, 단숨에 이태리 호러의 기대주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80년에 만들어진 '씨티 오브 리빙데드'와 '비욘드'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천주교적 세계관을 반영하듯 지옥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식상한 설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고어효과의 과잉사용과 역시 강렬한 사운드로 '스파게티 호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좀비2'의 상업적 성공은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의 러쉬로 이어졌는데, 예를 들면 브루노 마떼이의 'Virus, Hell of the living dead(1980)' 등의 영화를 들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장면들 위에 '시체들의 새벽'에 사용된 고블린의 음악을 덮어 씌우기까지 한다. 안드레아 비앙쉬, 움베르토 렌지, 조다마토 등도 이와 같은 러쉬에 동참한다. 또한 그보다 앞선 70년대 초중반 이후 소위 '몬도영화'라는 위장된 기록영화들이 나타나는데, 이같은 흐름은 '움베르토 렌지'의 'Man from Deep River'로부터 시작한다. 그 후 루게르 데오다토의 '홀로코스트(1977)'의 성공 이후 움베르토 렌지의 'Eaten alive(1980)', 'Cannival ferox' 등의 러쉬로 이어진다. 조다마토는 역시 이러한 경향에도 동참한다 : 포르노 홀로코스트(1981).
이같은 이태리 호러물은 상업적인 이유로 크게 번성하였으나, 80년대 중반 이후 쇠하기 시작한다. 미쉘 소아비나 람베르토 바바 같은 감독들은 85년 이후 '처치'나 '데몬스'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고, 특히 미쉘 소아비는 '아쿠아리스', '델라모르테 델라모어(1994)' 등의 작품으로 이태리 호러영화의 계보를 이을 유망주로서 기대받았으나, 소아비나 람베르토바바는 그 이후 TV쪽으로 회귀하며 장르에서 멀어지고 만다.
② 비이태리 유럽권 감독들
제스 프랑코는 스페인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감독이었다. 그는 62년 '한밤의 비명소리(Screams in the night, The awful Dr. Orlof)'라는 작품을 통해 스페인 공포영화의 선구자 노릇을 담당했다. 그 이후 가끔씩 '잭더리퍼(1976)'와 같은 정통 공포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대체로 에로 성향이 매우 강한 준포르노적 작품들을 양산해냈다. 사고로 엉망이 된 딸을 위해, 여자들을 나이트클럽에서 유혹한 후 그들의 얼굴거죽을 벗겨버린다는 설정의 최초(공포영화 필모그래피 중)의 작품 닥터 오플로프는 그 후 몇 개의 후속작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제스프랑코 이후 68~75년은 스페인 호러의 '황금시기'라 명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는데, 역시 소프트 에로와 고어의 결합으로 승부를 내는 성향이 강했다.(사진은 '한밤의 비명소리'의 포스터)
프랑스에서는 '장롤랭'이 제스프랑코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장롤랭은 특히 흡혈귀 신화를 좋아했는데 그는 '뱀파이어의 강간'이라는 작품에서부터 일련의 뱀파이어를 차용한 에로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78년 포르노그래피의 물결이 진정되는 분위기에 와서야 제대로 된 공포영화들을 만들어내는데, 78년 '죽음의 포도', 81년 '좀비레이크', 82년 'The living dead girl'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태리의 조다마토와 함께, 제스프랑코, 장롤랭은 흔히 '에로+고어'를 혼합한 유럽의 다작감독 중 3인이라 불리기도 한다.(사진 : 뱀파이어의 강간 포스터)
영국은 테렌스 피셔 이후 공포영화의 전성기가 쇠하여 버렸고, 특이할만한 감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87년 '헬레이저'라는 작품을 가지고, 돌연 클라이브 바커라는 걸출한 감독이 등장한다. 그는 고딕호러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귀족적 악마캐릭터, 그리고 중세 고딕소설과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영국호러계의 기대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많은 작품을 만들지 않고 각본이나 제작에 더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2007년에 토쳐드 소울로 복귀한다고 하니 기대하고 볼 일이다.
- to be continued...
50년대말 나타나서 60년대를 수놓았던 테렌스 피셔나 마리오 바바의 활동은 계속 되었지만, 70년대 미국의 폭발적인 공포영화의 발전과 비교할 때 유럽은 상대적으로 미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 다리오 알젠토와 루치오 풀치가 등장하면서 이태리 공포영화는 그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스파게티호러'의 발전은 '슬래셔무비'의 천하통일과 비견할만한 유럽 공포영화의 천하통일이었다.(슬래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① 이태리의 감독들
60년대에 'The whip and the body', 'Black Sabbath' 등을 찍어냈던 마리오 바바는 70년대에도 '공포의 허니문', 'Bay of the blood', 'The Baron blood' 등의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72년 이후의 작업들에서 그의 재능은 쇠해가고 있었다. 이전에도 공동감독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세계를 아들이 이어받기를 원했는지 72년 이후에는 주로 아들인 람베르토 바바와 공동감독을 하였다. 혹은 타장르의 영화(코미디)에 손대기도 했다. 마리오 바바는 80년 사망한다.
그러나 이태리에는 다리오 알젠토가 있었다. 그는 일찌기 69년 '수정깃털새'를 발표함으로써, 마리오 바바의 후계자임을 천명받고 있었다. 그 후의 작품들은 당시의 지알로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예로 '9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 'Four flies on grey velvet'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 세계의 변화는 1975년 '딥레드'에서 나타난다. '딥레드'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강렬한 음악을 결합시킨 소위 '스파게티 호러'를 유행시킴으로써, 다리오 알젠토가 다른 경쟁자들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음을 보였다. 그는 77년 '서스페리아', 79년 '인페르노' 등의 작품을 통해 범죄의 묘사에 있어서는 '지알로'를 도입하고, 그 세계에 있어서는 '악마적 동화성'을 완성시킨다. 80년대에도 그는 '섀도우(tenebre)'나 '페노미나' 같은 작품들을 계속 생산해냈고, 지금까지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다리오 알젠토와 로메로가 함께 제작비를 댄 영화 '시체들의 새벽'이 유럽에서 '좀비'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자, 루치오 풀치는 잽싸게 '좀비2'(1979)라는 영화를 만들어 낸다. 그는 이 영화로 이태리 좀비물의 원형을 만들어내었을 뿐더러, 단숨에 이태리 호러의 기대주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80년에 만들어진 '씨티 오브 리빙데드'와 '비욘드'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천주교적 세계관을 반영하듯 지옥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식상한 설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고어효과의 과잉사용과 역시 강렬한 사운드로 '스파게티 호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좀비2'의 상업적 성공은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의 러쉬로 이어졌는데, 예를 들면 브루노 마떼이의 'Virus, Hell of the living dead(1980)' 등의 영화를 들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장면들 위에 '시체들의 새벽'에 사용된 고블린의 음악을 덮어 씌우기까지 한다. 안드레아 비앙쉬, 움베르토 렌지, 조다마토 등도 이와 같은 러쉬에 동참한다. 또한 그보다 앞선 70년대 초중반 이후 소위 '몬도영화'라는 위장된 기록영화들이 나타나는데, 이같은 흐름은 '움베르토 렌지'의 'Man from Deep River'로부터 시작한다. 그 후 루게르 데오다토의 '홀로코스트(1977)'의 성공 이후 움베르토 렌지의 'Eaten alive(1980)', 'Cannival ferox' 등의 러쉬로 이어진다. 조다마토는 역시 이러한 경향에도 동참한다 : 포르노 홀로코스트(1981).
이같은 이태리 호러물은 상업적인 이유로 크게 번성하였으나, 80년대 중반 이후 쇠하기 시작한다. 미쉘 소아비나 람베르토 바바 같은 감독들은 85년 이후 '처치'나 '데몬스'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고, 특히 미쉘 소아비는 '아쿠아리스', '델라모르테 델라모어(1994)' 등의 작품으로 이태리 호러영화의 계보를 이을 유망주로서 기대받았으나, 소아비나 람베르토바바는 그 이후 TV쪽으로 회귀하며 장르에서 멀어지고 만다.
② 비이태리 유럽권 감독들
제스 프랑코는 스페인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감독이었다. 그는 62년 '한밤의 비명소리(Screams in the night, The awful Dr. Orlof)'라는 작품을 통해 스페인 공포영화의 선구자 노릇을 담당했다. 그 이후 가끔씩 '잭더리퍼(1976)'와 같은 정통 공포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대체로 에로 성향이 매우 강한 준포르노적 작품들을 양산해냈다. 사고로 엉망이 된 딸을 위해, 여자들을 나이트클럽에서 유혹한 후 그들의 얼굴거죽을 벗겨버린다는 설정의 최초(공포영화 필모그래피 중)의 작품 닥터 오플로프는 그 후 몇 개의 후속작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제스프랑코 이후 68~75년은 스페인 호러의 '황금시기'라 명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는데, 역시 소프트 에로와 고어의 결합으로 승부를 내는 성향이 강했다.(사진은 '한밤의 비명소리'의 포스터)
프랑스에서는 '장롤랭'이 제스프랑코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장롤랭은 특히 흡혈귀 신화를 좋아했는데 그는 '뱀파이어의 강간'이라는 작품에서부터 일련의 뱀파이어를 차용한 에로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78년 포르노그래피의 물결이 진정되는 분위기에 와서야 제대로 된 공포영화들을 만들어내는데, 78년 '죽음의 포도', 81년 '좀비레이크', 82년 'The living dead girl'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태리의 조다마토와 함께, 제스프랑코, 장롤랭은 흔히 '에로+고어'를 혼합한 유럽의 다작감독 중 3인이라 불리기도 한다.(사진 : 뱀파이어의 강간 포스터)
영국은 테렌스 피셔 이후 공포영화의 전성기가 쇠하여 버렸고, 특이할만한 감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87년 '헬레이저'라는 작품을 가지고, 돌연 클라이브 바커라는 걸출한 감독이 등장한다. 그는 고딕호러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귀족적 악마캐릭터, 그리고 중세 고딕소설과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영국호러계의 기대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많은 작품을 만들지 않고 각본이나 제작에 더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2007년에 토쳐드 소울로 복귀한다고 하니 기대하고 볼 일이다.
- to be continued...
# by | 2006/01/27 12:46 | 특집/칼럼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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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신고합니다. ^^
일단 논문은 지금 작업중입니다.
만약 완성되면 한 권 보내드릴테니...
읽고 영 별로면 라면 받침으로라도 쓰시죠... OTL
참고로 제 논문 주제는 해머 호러입니다.
그래선지 님 블로그 내용중에 있는
해머 호러가 반가웠어요. ^^
rumic71님/ 흔히들 제스프랑코로 부르시는 것 같아서, 별 생각없이 그렇게 적었답니다. 하지만 다른 이름을 생각해보니 분명 헤스가 맞는 것 같네요.
풀치를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서도.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