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의 의미 - 3부(스플래터, 고어영화)

드디어 최종편이네요. 가장 길군요. 부족하지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계속 갑니다.

고어의 의미 1부
고어의 의미 2부

고어와 스플래터의 차이점

우리나라에서는 '스플래터'를 칭하면 '이블데드, 좀비오, 데드얼라이브' 등의 영화를 연상하지만,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 등지의 감독들은 '스플래터'를 굉장히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네크로맨틱'을 스플래터 영화라 하는 것에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네크로맨틱에서는 코믹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트게라이트'감독은 스스로를 '스플래터'감독이라고 칭합니다.
심지어 '스크림'도 '스플래터'영화라고 소개되기도 하죠.
'스플래터'라는 장르 구분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스플래터'라는 용어는 원래 '극대화된 고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스플래터'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우리의 영화는 일반적 고어영화보다 더 고어적이다."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였으니까요.

맥카티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스플래터영화란 관객을 무섭게 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고어를 통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사실 공포영화는 그 세부장르가 무엇이든 관객을 편하게 만드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죠.)

여기에서 조금 나아가서 현재의 스플래터에 대한 해석으로서 '고어+코믹'의 형태의 해석을 시도한 것은 Eckhard Hammel의 해석입니다. 그는 스플래터의 기원을 만화에서 보이던 과도한 폭력과 코믹한 신체훼손으로 생각하고, 이것이 영화로 흘러들어온 것을 스플래터로 보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스플래터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는(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스플래터'의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1. 스플래터는 과장된 폭력을 근간으로 한다.
고어와 같습니다.
2. 스플래터는 과장된 폭력을 바탕으로 코믹함을 유추해낸다.
과연 이 코믹은 감독의 의도적인 경우일까요? 아니면 관객의 해석일까요? 만약 감독은 무섭게 할 의도가 있었음에도 관객이 웃기만 한다면 그건 스플래터일까요? 스플래터가 아닐까요? 이러한 해석은 약간의 모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장르구분은 자의적일 수 밖에 없겠지만요. 예를 들어 저같은 경우는 어지간한 고어장면에서 '유머'를 항상 느낍니다. 그럼 저에게 모든 고어영화는 스플래터라는 의미일까요? 아닐까요?
이런 해석은 너무나도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머'에 대한 부분을 무시합니다. 또한 '무섭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맥카티의 구분도 반대합니다.

3. 스플래터 장르는 영화의 내러티브의 논리성보다는 장면적 효과에 근간을 둔다.
제가 뒤에 말할 고어영화의 두번째 속성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러티브의 논리성이 아주 뛰어나면서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장면적 효과를 강조하면 그것은 스플래터일까요? 아닐까요? 저는 그래서 내러티브의 논리성에 대한 부분은 과감히 생략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2번의 '코믹성'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고어'와 '스플래터' 사이에는 별다른 의미차이가 없이 거의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프랑스 비평가들은 '고어'가 명사이고, '스플래터'가 동사라는 점에서 스플래터에는 행위중 동작의 의미가 있음에 주목합니다. 또한 태생적으로 '고어'란 영화의 효과를 이야기한 것이며, '스플래터'는 처음부터 하부장르로서 정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실제로 많은 경우 두 단어는 의미상의 차이없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전자인 '고어'만 사용합니다. '스플래터'라는 말은 너무 모호해요.

결국 '스플래터 영화'라는 장르구분을 저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겝니다.
'극단적 고어+코믹'영화를 '스플래터'라고 부르거나 좀 더 자의적으로 '스플래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요.

고어영화, 스플래터영화

개인적으로는 '고어'나 '스플래터' 모두 영화의 한 표현방법일 뿐, 공포영화의 하나의 독립적인 '하부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플래터는 '고어'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단 스플래터는 장르를 지칭하기 때문에, '고어영화'라는 용어로 완전히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믹' 설정에 대한 개념적 모호함 때문에 저는 '스플래터'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어영화'는 '고어'의 사용이 불쾌함을 유발하려는 것인지 무서움을 유발하려는 것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유머를 유추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스플래터'라는 방식의 분류보다 조금 더 포괄적 의미에서의 '고어영화'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저는 '고어'라는 단어는 '표현방법'으로서의 영화적 효과를 의미하고, 공포영화의 '하부장르'로서는 '고어영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부장르'로써의 '고어영화'는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슬래셔'도 '스플래터'도 '좀비물'도 모두 포함할 수 있지요.
일반영화들에서도 분명히 '고어'효과는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포영화가 아닐 경우 '고어영화'라고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하부장르'라고 이야기한 유일한 이유일겝니다.
이런 식의 구분은 필립 루이에의 것과 동일합니다. 필립 루이에 역시 그의 책 '고어영화 - 피의 미학'에서 그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어영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반드시 공포영화에 한한다.
2. 고어가 영화를 전개하는 핵심 구실을 해야만 한다.

앞서 저는 '고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했지만, 저 역시 가끔은 '스플래터영화'(혹은 '스플래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유머를 동반한 극대화된 고어영화'를 의미합니다.(Eckhard Hammel의 정의에서의 변형)
이는 통상적 스플래터의 정의를 적용하여 이해를 돕고자 하는 차원입니다.(이블데드는 '고어 효과를 가미한 오컬트 좀비물' 등으로 표현하는게 더 정확하겠지요.) 그리고 이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명백히 '코미디'를 염두에 둔 작품인 경우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ex. 데드얼라이브, 이블데드2 etc) 혹은 국내에 '스플래터'물이라고 많이 인식된 작품들의 경우이거나 말이죠.(ex. 이블데드, 좀비오 etc)

그런 차원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스플래터'라는 용어를 구어적으로 사용한 정도라고 말씀드리면 정확할겁니다.
이같은 성향은 '이블데드', '좀비오', '데드얼라이브'로 이어지는 극단적 고어씬을 담은 영화들이 유머를 동반했기 때문이지요. 부연 설명하자면 샘레이미나 스튜어트 고든이 모두 '공포감독'으로서의 성향보다 다른 성향이 더 강했기 때문에 굳혀진 경향이기도 하며, 동시에 고어씬에는 특유의 '과장'이 포함되기 마련이고 이는 어떤 의미에서 '유머'를 동반할 수 밖에 없었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경향이기도 할겝니다.
이런 식의 접근에 있어서 최초의 스플래터 영화는 '피의 향연(Blood feast)'이 아닌 '이블데드'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거에요.(그러나 고어에 의도적 코믹이 결합된 것은 사실 H.G.루이스의 두번째 영화 'two thousand maniacs'에서도 이미 나타나긴 했답니다. 따라서 '이블데드'가 최초의 스플래터영화다라는 말은 잘못 알려진 것일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마치며

이 포스팅은 저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혼재되어 있지만, 주의 깊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어떤 것이 제 생각이고 어떤 것이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를 구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포스팅은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식' 수준의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용어의 정의에 제 생각을 덧붙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저야 별 볼 일 없는 호러광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흔히들 달고 있는 인터넷 칼럼니스트 등의 명함도 없거든요.), 다양하게 제시된 용어의 의미들 중 제가 지지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심각한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포스팅을 통해서도 '고어가 영화의 핵심적 구실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어느정도까지인가'에 대한 모호성을 제거하지 못했네요. 그래서 인상적 '고어'가 등장하는 영화 혹은 '고어' 외에는 별다른 장면들이 없는 영화들을 편하게 '고어영화'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분은 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부터 장르구분은 잘 못했거든요.


- The end

by FromBeyonD | 2005/08/20 23:01 | 특집/칼럼 | 트랙백 | 핑백(2)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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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했다. 만약 영화 속에 인용된 그 잔혹한 장면 때문에 주노가 고든 루이스를 아르젠토보다 낫다라고 말한 것이라면, 그녀에게 풀치는 신과 같은 무엇일거라 생각한다. 고어영화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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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래터영화'에 대해 "스플래터는 과장된 폭력을 바탕으로 코믹함을 유추해낸다."고 말한 Eckhard Hammel의 해석을 인용하고 있는 문서를 인용한다. http://arborday.egloos.com/16645613) 물신주의(Fetishism). 특히 페티시즘 이라는 단어는 요새 들어와 단지 '성적 집착증'으로 사용되는 모양이지만, 그러한 의미로 해석될 수 ... more

Commented by 소드 at 2005/08/21 00:07
드디어 최종편이군요..
사실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편이지만 고어나 스플레터의 정의까지는 파고들어가 본적이 없기에 꽤나 흥미있는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레드몽키 at 2005/08/21 01:47
잘 읽었습니다..그간 뭔가 뒤범벅 되어 있던 용어의 뜻을 조금이나마 추스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reme19 at 2005/08/21 02:12
어정쩡하게 알고 있어 헷갈리던 것들이었는데.. 이젠 조금 정리되네요.^^
정말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5/08/21 11:11
저는 '훼손상태'를 중시하면 고어, '훼손과정'을 중시하면 스플래터로 말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사실 딱부러지게 구별할 수 없죠.
Commented by mavis at 2005/08/21 11:15
멋진 글입니다. 3부에서 앞글에서 제기했던 의문을 해결해주시네요. 1부부터 읽으면서 '그럼 스플래터랑 고어는 어떻게 다른거지?' 궁금했었거든요. 정리가 되 가네요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FromBeyonD at 2005/08/21 11:35
to all/ 감사드립니다.
사실 장르구분이란건 원래 자의적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인지 잘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XX타임즈에서도 리뷰를 장르로 구분하려 했었지만 그냥 가나다순으로만 정리를. ^^;;
Commented by In-flux at 2005/08/21 17:29
정말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명확하게 정리해주시니 이해가 빠르게 ㅎㅎ
Commented by 지킬 at 2005/08/21 20:47
이런 글 쓰기 쉽지 않은데 잘 읽었습니다. 딱히 구분을 안 두고 썼었는데... 앞으로도 잘 구분할 거라곤 장담 못하지만(^^;) 그래도 의미 차이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게 됐네요.
Commented by 솔리드 at 2005/08/22 12:03
너무 잘 읽었읍니다..도움이 많이 되었읍니다..
확실히 이해가 다된건 아니지만 눈이 띄이겠죠..^^;
Commented by neungae at 2005/08/22 14:29
비욘디님..잘 읽고 갑니다..
공포영화에..막연하게..그냥..무섭고..자극적이면..
다 공포영화라 여겼는데..조금이나마..공포영화를
이해하는데..도움이 된 것 같아서..저 스스로
뿌듯해지는데요..(혼자서만..)...다음에도..
좋은 시리즈 글 부탁드려요..시원한 하루요^^
Commented by FromBeyonD at 2005/08/22 18:17
to all/ 이런것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본 포스팅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잘 정리가 되었으니까요. ^^
Commented by 몽중인 at 2005/08/22 19:41
3부작에 걸친 이 글만으로 더이상 '고어'를 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가히 고어의 완결편이자 완전정복입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신 비욘드님에게 감사를
Commented by FromBeyonD at 2005/08/22 23:38
몽중인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
Commented by Meta-David at 2008/05/29 01:12
안녕하세요!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 포스팅을 하면서 약간 참조한 부분이 있어 핑백이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싶어 말씀드립니다.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5/30 01:58
잘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요. 또 뵐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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