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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Arborday입니다. 이 곳을 들르는 모든 분들께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이 곳에 덧글로 달아주세요. 저는 그리 까탈스러운 사람은 아니랍니다.
더불어 한 가지만 알립니다. 저는 이 블로그에 달아주시는 덧글과 트랙백을 기쁘게, 그리고 정성껏 한 자 한 자 읽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켜온 '덧글에 대해 항상 대응하자'는 원칙을 포기하고자 합니다. (늘 그러겠다는건 아니고, 흠흠) 요즈음 같아서는 정말 꾸준히 운영하는 것이 고작이랍니다. (아니 그게 뭐가 힘들다고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정말 그게 버거울 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제게 질문을 하신 경우나 설명을 위해 추가적 덧글이 필요할 경우에는 반드시 응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양해 부탁드립니다. 2008. 4. Arborday.
공각기동대 트릴로지를 사겠다고 마음을 먹고난 후부터 저도 모르게 공각기동대 TV판을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개별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해도, 보지도 않은 시리즈의 총집편을 사는 것이 조금 찜찜한건 사실이다. 그럼 TV판을 살까? 지름신은 이렇게 찾아온다. 조금 두려워졌다. 이건 좋지 않은 패턴이야. 다행히도 이빨빠진 컬렉션은 안한다는게 내 지름철학인지라 공각기동대에 대한 관심은 품절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억눌렸다. 억눌렸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공각기동대를 사지 않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인거니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오프매장 한 곳에서 공각기동대1기 박스 3개가 온전히 구비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게다가 2기조차도 같은 날 dp장터에 올라온 터였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극장판은 구하기 쉬우니 문제가 아니다) 하늘의 뜻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명은 나를 조롱하며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억제력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뇌리를 스치는 생각, 이걸 확 질러? 3만원대의 공각기동대 트릴로지 박스에서 시작한 가벼운 지름욕구는, 30만원에 달하는 중대한 선택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본 공각기동대는 극장판 1기밖에 없음을 감안할 때, 이건 겁없는 지름에 가까웠다. 게다가 몇 달째 지켜온 한 달 15만원 - 물론 플러스마이너스를 적당히 허용하는 느슨한 계획이기는 하지만 - 원칙도 눈감아야 한다. (스스로의 구매원칙을 깨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경험이 많은 것을 알려준 바 있다.) 일단 쉬운 것부터 하자. 처음부터 사려고 했던 [미스트]와 [어톤먼트]를 집어드는 것은 수월했다. 2000원짜리 [뎀]을 함께 주워드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순간은 금새 닥치는 법이다. 공각기동대 트릴로지. 손에 들었다가 또 꽂아놓고, 다시 손에 들었다가 또 꽂아놓았다. 또 하나의 내가 나에게 말한다. "이 지름은 이성이 허락하지 않는 충동구매로 이어질거야. 신중해야해." 그리고 다른 내가 답한다. "어차피 살거면서." 결론없는 논쟁이다.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한다. 그러고는 물건을 째려보며 대화를 시도해본다. "어이 박스, 난 너를 잘 모르는데 너 그만한 가치가 있어? 대답해봐." 당연하게도 대답이 있을리 없다. 난 바보다. 그러다가 돌연 (아, 이게 웬 황당한 전개!) 어차피 대규모 지름이라면 [엑스파일]을 사는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파일]은 물량이 넉넉하니 한달에 한시즌씩만 구매할 수도 있고(원칙적으로는), 안그래도 몇 번 집었다가 놓은 박스이기도 했고(적어도 공각기동대만큼은 그리워했을거다), 가격도 착하고, 무엇보다도 내 취향의 드라마임이 확실하거든(실은 꽤 많은 에피소드들을 감상하기도 했다). 공각기동대의 쉴틈없는 유혹에 만신창이가 된 내게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새 내 손에는 [엑스파일] 1시즌이 들려있었다. 이건 합리적인 선택이었어라고 말해보지만 뭔가 개운치 않다. 어찌 되었건 그런 과정을 거쳐 나는 [공각기동대]의 세계를 거부하고, [엑스파일]의 세계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그러나 어쩌면 (아마도) [공각기동대]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2008. 5. Arborday.
0. 대부분 읽은지 꽤 오래 지난 책들이라 어차피 세세한 리뷰는 어려울 것 같으니, 흔적만 간단하게 남긴다. 늘 그렇듯 편견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1. 솔직히 천명관의 글쓰기에 홀딱 빠졌다. 그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장르를 가리지 않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로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흡사 쾌락에의 탐닉과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작가적 자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 (뭔가 늘어놓고 싶은데 정리가 잘 안되니 여기까지만) 다만 가르치려는 생각이 없어보일 뿐이다. [고래]도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모두 추천할만하다. 유쾌한 아이러니와 발견의 순간들이 있는 작품들이다. 두 가지 질문. 첫째,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책 앞 표지에 친필싸인이 있는데, 모든 책에 하나하나 다 적은건가? (그러니까 싸인이 없는 책을 구매한 이가 계시는가?) 둘째,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 실린 [프랭크와 나]가 그가 등단했다는 그 작품이 맞는가? 2. 황석영을 모르고 요즘 소설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어 하나 골랐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실망도 무척 컸다. 내가 집어들은 책은 [바리데기]였다. [바리데기]는 조금 쥐어짜는 감이 없는건 아니나 기본적으로는 너무 착한 소설이다. 현실은 지옥이요, 해결책은 용서다. 너무 착한 소설을 원래 환영하지 않는 성향 탓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게 꽤 진부하다는거다.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보편적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이야기임은 알고 있으나 글쎄? 내 주위에 이걸 읽은 사람들은 다들 좋다고 난리들이니 내가 이상한거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황석영의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달리 읽어본게 없으니(장담할 수는 없다) 추천 좀 해달라. 3. 김영하도 첫 만남. 작품은 [퀴즈쇼]. 젊은 세대의 고충을 다루는 듯 하여 초반부에는 몰입하여 읽었지만, 갑자기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시큰둥해졌다. 전반적으로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영퀴방을 들락날락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 그나마 즐거웠던 전부였다. 쓰다보니 오늘 삐딱한 느낌이네. 4. 내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광팬인 것은 예전에도 설명한 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또하나의 몬스터] 역시 출간과 동시에 사서 읽었다. 하지만 팬북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처음 접해보았다), "아, 이런 것도 팔리는구나." 외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 어떤 언어의 리듬감도 없이 읽어내려가는건 시간낭비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그러한 느낌의 가장 큰 이유는 매끄럽지 않은 번역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5. 지금은 이언매큐언의 [속죄]를 읽고 있다. 언젠가는 책을 한 권 내보리라 달콤한 공상에 빠질 때도 있지만, 이런 인간을 만나면 그게 그냥 꿈임을 깨닫게 된다.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거의 300 페이지에 가깝게 풀어갈 수 있다니 그게 사람인가? (길게 늘리는 것이 부럽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 이야기의 밀도다.) 어쨌거나 이 작품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이다. 호흡이 빠른 일본소설을 주로 읽느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읽히는 리듬감이 장난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나면 영화도 봐야지. 이 작품을 읽은 것을 계기로 영미권이나 유럽의 소설을 조금 읽어보려 한다. [악의영혼]이라는 책이 평판이 좋은 듯하여 주문했는데 기대된다. 6. [속죄]에서 인상에 남는 구절 2개. 물론 괜찮은 구절은 수도 없이 많은데, 하필 비슷한 페이지에서 2개만 추린 이유는 여기쯤이 오늘 읽은 분량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24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북클립을 한 번 써보고 싶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문득 로비는 자신이 도살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모두 그곳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이언매큐언, [속죄], p339 기다릴께. 돌아와. 그토록 소중했던 이 말도 지금은 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수학공식처럼 분명하고 감정이 배제된 일임이 분명했다. 기다림.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기다림이란 너무나 힘겨운 말이었다. - 이언매큐언, [속죄], p368 7. 주문하는 김에 [월하의 여곡성]도 주문했다. 이런건 읽기 전이라도 추천이다. 여자귀신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지나치지 마시기를. 2008. 5. Arborday. ![]() [세븐데이즈]는 겉보기에는 분명 유괴영화이자, 법정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 [세븐데이즈]의 정체는 폭력영화이며, [구타유발자들]의 연장선 하에서 이해되는 것이 옳다. [세븐데이즈]의 한 소재인 유괴는 모성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 하에서 하나의 수단으로 격하된다. 그와 동시에 감독은 딸을 살려돌려보냄으로써 유괴의 범법성에 대해 생각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교활함을 보이기도 한다.2) 법정은 단지 그 공간을 빌려주는데 그친다. 그 탓에 윤리는 서사에 묻혀 관객의 곁을 (잠시간) 떠난다. 그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공정성이란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무엇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그리고자 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무죄라고 생각해요?"라는 대사에서 드러나듯, 캐릭터들이 추구하는 것은 공정함이 아니라 제 관심사이다. 변호사는 자신의 승리를, 범법자는 자신의 석방을, 권력자는 치부의 은폐를 추구한다. 유괴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에게도 제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다. [세븐데이즈]는 이같이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벌이는 폭력의 향연을 그려낸다. 내가 [구타유발자들]을 보고나서 정말 미칠 정도로 갑갑했던 것은 영화가 다루는 폭력이 단지 물리적 폭력에 한정되고, 동시에 고작 순경 나부랭이 - 순경을 무시하고자 함은 아니다, 단지 파급효과에 대한 차이를 둔 것 뿐이다 - 의 폭력에 국한된다는 사실이었다. 물리적 폭력은 때로는 가장 효과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원시적이고 하등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계급의 인간들이, 좀 더 고등의 폭력을 행사한다면3) 어떤 모습일까? [세븐데이즈]는 그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세븐데이즈]는 [구타유발자들]보다 한 차원 높은,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폭력을 다루고 있다. [구타유발자들]의 다리 밑 공간은 진실을 떠난 법정,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운동장의 한 복판, 그리고 가장 평온한 공간인 '마이 스위트 홈'까지 확장된다. 각각의 플레이어들은 그 거룩한 콜로세움에서 자신의 강점들을 이용해 싸운다.4) 변호사는 법지식과 말빨로 승부하고, 높은분은 권력을 남용하고, 깡패는 주먹과 공갈로 맞선다. 아무 것도 없는 이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는 수단을 가릴 여유가 없다. 그는 변호사의 딸을 유괴함으로써 대리전을 벌인다. 즉, 영화는 흡사 '어떤 종류의 힘이든 인정할테니 어디 한 번 싸워보자'는 식으로 그려진다. 결국 원신연에게 이 세상,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특정한 룰이 없는 이종격투기장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싸움에서 누가 이길까? 답은 뻔하다. 결국 센 놈이 이기는 것이고, 이기는 놈이 센 것이다. 물론 [세븐데이즈]가 [구타유발자들]보다 훌륭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관객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는 이는 흔치 않다. 게다가 이 정도 수준의 상업영화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것이 내가 [세븐데이즈]를 지지하는 이유이다. 기억의 한 편으로 묻어두었던 태권브이가 어떤 식으로 재현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08. 5. Arborday. 1) 물론 쥐를 먹는 장면과 같은 부분의 삭제에서 볼 수 있듯 [구타유발자들] 역시 갈데까지 간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외면받은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갈데까지 간 원신연의 작품이 보고 싶은게 사실이다) 딱히 친절한 작품은 아니었던 것이다. 덧붙여 [구타유발자들]의 가장 멋진 설정은 차예련의 팬티를 벗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사라진 팬티 한 장은 수컷들의 폭력적 본능에 불을 지핀다. 2) 생각할 틈이 없도록 만드는 것에 일조하는 것은 이 작품의 현란한 편집이다. 정적인 카메라를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 때문에 [세븐데이즈]의 너무 많은 샷은 솔직히 거슬렸다. 테크닉 과잉이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신없는 카메라는 목적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븐데이즈]의 전반적 서사 구조는 튼실한 편이지만 세부적으로 볼 때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다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경찰들, 그 정도 물증 못 찾아낼 정도로 수준이 낮지는 않다. 그러나 카메라의 속도감은 사소한 단점들을 가려주며 동시에 유괴의 정당성과 같은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할 틈을 관객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3) 예상할 수 있듯 본질은 같다. 폭력에 고등, 하등의 차이가 뭐가 있겠는가. (본문의 하등, 고등의 분류는 편의상의 구분이다. 대충 뜻은 통하리라 생각한다.) 4) [구타유발자들]도 이와 흡사한 장면이 있다. 교수는 위엄을 떨며 잠시간 양아치들을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상황은 반전된다. 그 이유는 그가 손을 떠는 것을 양아치가 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법정이 아니라면 대체로 주먹은 법보다 빠르고, 한적한 곳이라면 대체로 주먹은 펜보다 세다. 어디서든 - 심지어 블로그스피어에서도 - 홈 어드밴티지란 존재하는 법이다.
신나게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영화 커뮤니티의 정모에 나가거나 혹은 영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의외로 영화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음에 놀랄 때가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누군가를 만나서 경제학 이야기를 하기를 꺼리는 편이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피한달까. 생각해보건대 지겹기도 할게다.
그런데 무비스트의 민용준 기자는 앞서 말한 사람들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마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열정과 진지한 고민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점까지도 드러낸다. 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자신의 모자람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부족함에 대한 인지는 향후 그를 발전시킬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그의 고민의 시간에 대해 보답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늘 그렇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의 열정은 내 안의 무엇인가를 꿈틀대게 휘저어 놓는다. 게다가 그는 타인의 말 - 영화에 대해서라면 자신보다 훨씬 부족할 나의 말조차도 - 을 제대로 들어주는 법까지 알고 있으니 대화하기가 더더욱 즐겁다. 그의 블로그를 추천하니 시간 있을 때 한 번 쯤 방문해보시기를 권한다. 아직은 포스트의 수가 많지 않지만, 앞으로 빼곡하게 채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2008. 5. Arborday.
야심차게 밀어부쳤던 프로젝트였던 훌라후프가 장난감점에 입고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다. 화가 난 상점 주인은 쓰레기와도 같은 그것들을 길거리에 던져버린다. 그러나 그 중 하나가 흡사 신의 인도를 받는 것처럼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한다. 코너를 돌고, 차도를 건너고, 또 코너를 돌며 굴러가던 이 훌라후프는 마침내 기적적으로! 한 소년의 앞에 쓰러진다.
이 장면은 내가 [허드서커 대리인]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성공은 운에 의해서 완성된다. 이 장면을 좋아하는 까닭은 (예전에는 운이 개입하는 승부는 불공평해서 싫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만들어낸 승부들이 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거만한 생각을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운으로부터 공명정대한 신의 존재를 감지하는, 그리고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유신론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08. 5. Arborday. 덧. [한반도]가 [태극기 휘날리며]가 나올 즈음이 아니라, 지금 나왔다면 미국반대의 논리로 읽히며 흥행에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농담이다. 이런 말은 구태여 필요없다 생각하지만, 덧붙이자면 나는 [한반도] 안 좋아한다. ![]() 이것은 [엑시스텐즈]까지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전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이 필연적으로 공포영화로 분류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육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미지의 것이란 공포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이며 가지고 있는 육체를 잃는 것(그러니까 어쩌면 죽음, 혹은 종말)은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대표하는 감독들 중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되는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줄기차게 그러한 종류의 상상력을 드러내왔다. 이러한 상상은 다소 발칙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인간은 기술과 합일한다. 제임스우즈는 비디오테크와 합일하고(비디오드롬), 제임스 스페이더는 자동차와 합일을 꿈꾸는 듯 보이며(크래쉬), 주드로는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에 서 있다(엑시스텐즈).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제시된다. 과연 크로넨버그가 인간이 기술과 합일하는 것을 진화의 한 프로세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상상력은 진화에 대한 것일까, 종말에 대한 것일까. 어느 부분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신체의 재형성이란 유치한 이야기일 뿐, 그것의 실체는 죽음에 다가서는 것임을 지적한다. [크래쉬]에서 본(엘리아스 코티어스 분)은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본의 이 대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들에 대한 크로넨버그의 대답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깊게 관여되어 있어. 과학기술에 의한 신체의 재형성이지." 그러나 잠시 후 본은 이렇게 말한다. "죽은 이들의 강한 성적 에너지를 전달하는거지. 그것을 경험하고 재현하는거야. 그게 내 프로젝트야."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 신체의 재형성은요?" "그것은 유치한 관찰적 재연일 뿐이야. 그건 단지 표면에 떠서 아무도 위협하지 않아. 내 잠재적인 파트너들의 반응을 테스트하는거지." 결국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이 끊임없이 환기시키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진화라기보다는 과학기술에 함몰되어 인간본연의 모습을 상실해가는 그런 시류에 대한 불안함이다. 과학은 하루가 멀다하고 변해가지만,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즉,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급속도로 변해가지만 그 안에 사는 인간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극단을 달리는 의학을 습득한 두 주인공이 결국은 내면에 의해 붕괴되는, 그러니까 외적으로는 발전을 거듭했지만 내면에 소홀한 죄로 파국에 도달한 [데드링거]는 바로 이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즉, 크로넨버그는 [데드링거]를 통해 신체변형(인간의 외부)과 관련하여 할 수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이미 다 한 셈이었다. 2008. 5. Arbo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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